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79)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79)화(79/151)
찐득한 잼과 과자 부스러기가 멜리타의 뺨에 묻어 뭉개졌고, 당사자인 멜리타와 지켜보는 레이첼을 비롯한 귀족 모두가 깜짝 놀라 숨을 집어삼켰다.
당황한 멜리타가 더듬거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화, 황태후 전하. 이게 대체 무슨…….”
“몰라서 묻는 겁니까?”
벨윈더는 군림하는 장미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위엄이 넘쳤다. 10년간 황태후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긴. 오랜만이니 모를 만하군요. 제지우스가 죽은 뒤 처음이니까. 10년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을 만한 시간이지요.”
“…….”
멜리타의 눈동자가 떨렸고, 벨윈더는 웃었다.
“그래요. 10년은 긴 시간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났어도 사교계의 꽃이라는 자가 대공의 약혼녀에게 저급한 말을 속삭이는 건 안 될 말이 아닙니까?”
“야, 약혼녀라고요?”
“그래요, 약혼녀. 아직 공식적으로 약혼 발표를 하지 않은 상태라 조심하는 중이었는데 헛소문이 적힌 전단이 도는가 싶더니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멜리타는 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뜬 채 굳어졌다. 홀 여기저기서 귀족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 들으셨어요? 그 대공 전하께서 약혼을 하신대요.”
“맙소사. 곧 공식 발표하려던 내용을 누가 일부러 저급하게 전단으로 흘렸다는 뜻이잖아요.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어요.”
“쉿. 방금 멜리타 부인이 당한 거 못 보셨어요? 이러다가 황태후 전하께서 들으시겠어요.”
누군가의 주의에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뺨에 잼과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멜리타가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멜리타는 사교계의 꽃이었다.
본래 사교계의 꽃은 황후인 베아트릭스나 황태후인 벨윈더가 되어야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통에 그 뒤를 멜리타가 이어받았다.
아들인 스테판이 벌어다 주는 어마어마한 돈, 공작의 어머니이며 황후의 동생이라는 지위, 아름다운 외모를 내세운 멜리타는 사교계를 점령하고 마음껏 연회와 권력을 즐겼다.
제 눈 밖에 난 자들에게는 명예와 권력, 그 무엇도 나눠주지 않았다. 멜리타의 앞에서 귀족, 특히 여성들은 헛기침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벨윈더가 멜리타의 드레스 위에 들고 있던 간식을 던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교계의 꽃이 아닙니까. 처신을 똑바로 하셔야지요. 겨우 그딴 전단 따위에 휘둘리면 되겠습니까.”
“요, 용서하십시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사교계로 복귀했다고 다시 꽃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단, 멜리타 이아콥스, 그대가 사교계의 꽃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품위를 지키는 동안에는요.”
“……명심하겠습니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 몸을 돌린 벨윈더는 곁에 선 시안과 레이첼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멜리타에게 호통쳤던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미소였다.
레이첼이 황급히 예를 갖췄다.
“황태후 전하를 뵙습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레이첼 백작! 만나고 싶었습니다. 서신으로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만나니 무척 반갑군요. 시안과 약혼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축하해요.”
“저야말로 직접 황태후 전하를 뵙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약혼 얘기는…… 미리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무슨 소리를. 결혼 전에 상대의 부모님에게 인사하는 건 사교계 유행이 아니잖아요. 결혼 전에 미리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요. 시안을 나무라지 말아주어요.”
“나무라다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대공 전하께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벨윈더는 레이첼이 무척 마음에 든 눈치였다.
“듣던 대로 아름답고 차분한 사람이군요. 멜리타가 못된 말을 해서 당황했을 텐데 흔들리지 않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칭찬 감사합니다.”
벨윈더가 레이첼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냥 두고 보기만 해도 아까운 사람에게 대체 무슨 짓들인지 몰라요. 많이 놀랐지요? 황태후궁에서 소문을 들은 나도 놀랐는데 백작은 얼마나 놀랐을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소문일 뿐인걸요. 내버려 두면 제풀에 지쳐 잠잠해졌을 거예요. 소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속상하고 무서웠을 텐데?”
“소문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주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대공 전하나 황태후 전하처럼요.”
“……어쩜 말을 이다지도 어여쁘게 할까.”
곁에 서 있던 시안이 벨윈더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똑똑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요.”
“그래. 네 얘기를 듣고 잔뜩 기대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단단한 사람이구나. 아름답기도 하고 말이지.”
레이첼이 멋쩍게 미소 지으며 시안을 올려다보았다.
“황태후 전하께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예. 사실이니까요.”
망설임 없는 대답에 레이첼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쑥스러운 얘기였지만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기뻤다.
벨윈더가 수줍어하는 레이첼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예쁘기도 하지. 시안,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만 내게 레이첼을 양보해 주면 안 되겠니? 만난 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구나.”
“싫습니다. 레이첼 백작의 파트너는 저예요.”
“내 아들이 이렇게 욕심쟁이인 줄은 몰랐구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요즘 사교계는 결혼 전에 상대의 가족을 만나지 않는다고요. 레이첼 백작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으음. 백작이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지.”
말을 마친 벨윈더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레이첼이 얼른 멀어지려는 벨윈더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황태후 전하께서 제게 시간을 내주신다면 오히려 영광이지요.”
“어머, 그런가요?”
“그럼요. 저야말로 오늘 황태후 전하와 시간을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걸요. 하지만 두 분께서 함께 참석하는 연회는 오랜만이실 텐데 제가 방해될까 걱정스러워요.”
“방해는 무슨, 시안은 황궁에서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걸요. 안 그러니, 시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두 여자와 번갈아 눈을 맞추던 시안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첼 백작이 원한다면. 아쉽지만 물러나겠습니다.”
시안의 대답이 재미있는지 벨윈더가 아이처럼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첼 백작, 지금 들었나요? 어미는 어쨌거나 상관없지만 레이첼 백작의 의견은 중요하다네요.”
“으음.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서운하시겠어요.”
“서운하기는. 죽은 제지우스도 늘 저랬답니다. 아빠를 쏙 빼닮아 엄마보다 제 여자를 먼저 챙기는 게지요. 아들을 잘 키운 것 같아서 오히려 뿌듯합니다.”
그러고는 얼른 레이첼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럼 아들, 엄마는 레이첼 백작과 데이트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렴.”
“함부로 레이첼 백작에게 쓴소리하거나 상처 주지 마십시오. 어머니께 화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요, 대공 전하. 부디 걱정 마시옵소서. 이 황태후 벨윈더, 대공 전하의 하나뿐인 정혼자께 예를 다하겠나이다.”
장난스레 말을 마친 벨윈더가 레이첼의 팔을 끌고 멀어졌다.
벨윈더와 레이첼이 움직이자 주변에 모여 아닌 척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귀족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레이첼이 주변을 훑어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황태후 전하다워. 멋있다.’
대화 내내 벨윈더는 일부러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를 냈다. 그건 그녀가 레이첼을 귀애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사교계의 꽃인 멜리타조차 레이첼을 함부로 대했다는 이유로 혼쭐이 났으니, 앞으로 귀족들은 사교계 구석에서도 함부로 레이첼의 험담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레이첼에게 팔짱을 낀 벨윈더가 소곤거렸다.
“레이첼 백작이 내게 시간을 내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정말 고마워요.”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제가 영광이지요.”
“시안 녀석이 레이첼 백작이 나를 불편해할지도 모른다면서 절대 귀찮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어머, 대공 전하께서 저를 잘못 보셨네요. 제가 신분이 높은 어른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역시! 레이첼 백작은 그럴 것 같았어요. 아아, 오랜만에 사교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정말 좋네요.”
“오늘 연회 끝날 때까지 저와 더 많이 이야기 나눠주세요.”
“나야말로 잘 부탁해요.”
벨윈더가 주는 애정이 고맙고 기꺼워서 레이첼은 연회 내내 그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웃었다.
밤이 깊고 연회가 무르익었을 무렵, 연회장 입구에 서 있던 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위대하신 제국의 태양, 시가르 아이사 황제 폐하와 베아트릭스 황후 폐하, 그리고 보좌관 테오도르 입장합니다!”
연회장 한쪽에서 벨윈더와 이야기를 나누던 레이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보좌관? 테오도르가 죽지 않았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황제의 보좌관이 되었다고? 말도 안 돼.’
황제의 보좌관은 말 그대로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사람이었다.
시가르가 변덕 때문에 여러 번 갈아치우기는 했지만 원래 황제의 보좌관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지략가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실제로 반란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혐의를 벗고 살아난 것까지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황제의 보좌관을 맡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황제를 따라 들어와 연회장을 둘러보던 테오도르가 레이첼을 발견하더니 씩 웃었다.
레이첼이 테오도르의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저게 뭐야. 낡고 치수도 안 맞는 게 누가 봐도 남의 예복을 입은 꼴이잖아. 혹시 황제가 테오도르를 여기 데려오려고 급하게 보좌관의 지위를 내린 걸까?’
왜?
이유는 간단했다.
테오도르를 이용해서 전단의 내용이 사실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어찌 됐건 잘됐네. 일이 더 쉬워지겠어.’
덕분에 하고 싶었던 복수도 잔뜩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