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80)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80)화(80/151)
시가르가 테오도르와 베아트릭스를 이끌고 천천히 레이첼과 벨윈더 쪽으로 다가왔다.
벨윈더가 황급히 무릎을 굽혔다.
“……황제를 뵙습니다.”
“10년 만인가요.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시가르의 말을 들은 레이첼의 눈이 동그래졌다.
‘10년 만이라고? 10년 동안 안 만났다는 거야?’
황궁이 크다고는 하지만 모자지간이 한 궁 안에 살면서 1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레이첼의 팔을 잡은 벨윈더의 손이 옅게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황제의 은덕 덕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 해칠 수 있었지만 아량을 베풀어 그러지 않았다는 듯 오만한 대답이었다.
벨윈더가 입술을 깨물었고, 레이첼은 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벨윈더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황태후 전하가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 황제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가? 멜리타 부인 앞에서는 그토록 당당하던 분이 황제를 이토록 두려워하다니, 이해가 안 돼.’
시가르가 제지우스에게 저지른 짓을 모르는 레이첼은 벨윈더를 위로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가르의 시선이 벨윈더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도록 입을 여는 것뿐이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시가르의 입이 좌우로 길게 늘어났다.
벨윈더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레이첼은 차분했다.
“그래, 레이첼 백작. 그대를 만나고 싶었다. 내 동생과 추잡하게 놀아났다지? 철벽같은 내 동생을 홀릴 만큼 밤 기술이 대단하다던데, 나중에 내게도 보여주시오.”
레이첼은 물론 곁에 선 자신의 아내 베아트릭스까지 한꺼번에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이었다.
레이첼의 마음속에 짜증이 치밀었다.
‘예상했던 말이긴 한데 실제로 들으니 열 받네.’
곁에 서서 웃음을 참느라 몸을 들썩이는 테오도르 역시 꼴 보기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놈의 고간을 걷어차고 싶었으나 황제 앞에서 황제의 보좌관을 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화를 가라앉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시안이 레이첼의 앞을 막아섰다.
“언사를 주의해 주십시오.”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너와 레이첼 백작이 저질렀다는 불륜 얘기는 전해 들었다. 염문 하나 없던 네가 이런 추잡한 짓을 저질렀다니 믿기지 않아.”
“레이첼 백작과 약혼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륜을 저지른 적은 없습니다.”
“……약혼을 했다고?”
약혼 얘기에 테오도르가 불쑥 끼어들었다. 조금 전까지는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더니 이제는 잔뜩 약이 오른 얼굴이었다.
“결혼 무효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를 꾀어 약혼이라니, 역시 결혼 무효가 되기 전부터 불륜을 저질렀던 게 분명합니다!”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지만 불륜을 저지른 적은 없습니다. 레이첼 백작이 혼자 되는 순간부터 내내 구애하다가 이제 겨우 약혼 허락을 얻어낸 참입니다.”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지! 그딴 말을 누가 믿을 줄 압니까!”
“사실입니다.”
시안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연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프스단추였다. 그것은 연회장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눈이 부실 만큼 영롱하게 빛났다.
테오도르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것은…….”
“기억하는군요. 레이첼 백작이 그대에게 선물했던 사랑의 증표입니다. 아쉽지만 아직 소매에 달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깟 커프스단추쯤, 소매에 달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시안이 샹들리에가 매달린 천장 쪽으로 커프스단추를 높이 들어 올렸다. 단추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아련했다.
“나는 이 단추를 소매에 달고 싶어서 미칠 지경인데요. 레이첼 백작이 언제쯤 내게 마음을 내주고 이 단추를 허락할까 싶어 한순간도 이것을 몸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 말에 지난번 시안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던 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안이 베렝겔라의 앞에서 커프스단추를 꺼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인가 봐. 그게 아니라면 대공 전하께서 거기 커프스단추를 갖고 오셨을 리가 없잖아.”
“어머, 그럼 그때부터 레이첼 백작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의미인가?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으셨는데.”
“아냐, 잘 생각해 보니 레이첼 백작을 흉보던 여자를 싸늘하게 바라보셨던 것 같기도 해.”
“낭만적이기도 하시지. 정말 레이첼 백작을 사랑하시나 보네.”
작게 들려오는 소리에 레이첼이 얼굴을 붉혔다.
‘역시 대공 전하. 저 단추를 이렇게 이용하실 줄은 몰랐어. 게다가 어쩜 저런 얼굴로 저런 얘기를 하실 수가 있지? 나까지 깜빡 속을 것 같잖아.’
시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레이첼 백작이 제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녀는…… 전 남편인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요. 질투가 나서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말을 잇는 시안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안 그래도 열리지 않는 레이첼 백작의 마음이 닫힐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나 상황을 주변에 함부로 알릴 수 없었죠. 스테판이 증인입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홀 구석에 서 있던 스테판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자식, 레이첼 백작 짝사랑하느라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니까요.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라 제가 몇 번 다리를 놔주기도 했어요.”
“백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백작의 부모님이 다스리던 영지를 조건으로 억지 약혼을 했습니다만, 설마 그것 때문에 엉터리 전단이 돌고 백작의 명예가 실추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춤 뒤로 물러선 테오도르가 시가르의 눈치를 살폈다.
시가르에게 레이첼과 시안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던 놈은 제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거,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셋이서 짜고……!”
테오도르의 말을 끊는 시가르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남편이 반역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고발했으나 그를 깊이 사랑하는 백작이 죄책감 때문에 대공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라.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황제 폐하! 제 반역죄는 풀린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니, 그보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결혼 시절 레이첼 백작이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테오도르를 향한 레이첼의 사랑은 모든 이야기의 출발 지점이었다.
레이첼이 진심으로, 테오도르만을 사랑했다면 놈이 주장하는 불륜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안이 레이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짝사랑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테오도르와 레이첼, 둘을 아는 주변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진실이었다.
원작의 레이첼은, 테오도르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진심으로 놈을 사랑했으니까.
테오도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거, 거짓말입니다! 레이첼은 분명 제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저를 버렸습니다!”
“그게 언제부터였지?”
“그……. 결혼이 무효가 되던 날부터…….”
“그렇다면 그전에는.”
“……온 집안을 제 초상화로 도배할 만큼 저를…… 사랑했습니다…….”
시가르의 얼굴에 노골적인 혐오와 분노가 드러났다.
레이첼과 시안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 따위 처음부터 없었을 텐데 자기 마음대로 테오도르의 주장을 믿어놓고 이제 와 화를 내는 꼴이 우스웠다.
‘그러게 증거도 없이 테오도르 같은 놈 말을 믿으면 안 되지. 대공 전하를 깎아내리는 말에 신이 나서 증거 같은 건 살필 생각도 못 한 황제도 똑같은 인간이지만.’
이쯤 되니 분위기가 묘했다.
대부분의 귀족은 시안의 사랑에 감동했고 전단의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테오도르만은 여전히 침을 튀기며 불륜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왜?
테오도르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레이첼에게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귀족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이 테오도르에게로 옮겨갔다.
레이첼이 나설 차례였다. 그녀는 앞으로 성큼 나서더니 테오도르의 뺨을 올려붙였다.
짜아악!
연회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속닥이던 귀족들, 테오도르를 비난하던 시가르, 얻어맞은 테오도르까지 모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움직인 것은 레이첼의 빨간 입술뿐이었다.
“더럽고 이기적인 자식. 네 놈은 황제 폐하의 보좌관이 될 자격이 없어.”
“어…….”
테오도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을 깜빡이다가 시가르를 올려다보았다.
황제의 보좌관은 황제의 수족과 같은 자. 따라서 그를 때리는 것은 황제의 신체에 손찌검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시가르가 표정을 굳혔다.
“레이첼 백작.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내 보좌관에게 손을 올리다니.”
“저는 폐하의 신하로서 폐하의 수족에 묻은 더러움을 닦아내려 했을 뿐입니다. 부디 더럽고 썩어 빠진 수족을 하루빨리 잘라내십시오. 폐하께 더러움이 묻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내 수족이 더럽다니,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제가 저자를 반란 혐의로 신고했으니까요. 어떻게 혐의를 벗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난 놈이 제게 복수하기 위해 황제 폐하께 거짓을 고하고 거리에 헛소문이 적힌 전단을 뿌린 겁니다.”
시가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레이첼이 시가르에게 내는 시험이었다.
여기서 시가르가 레이첼의 말을 인정한다면 테오도르가 레이첼에게 보복하기 위해 전단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고 사건은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시가르가 테오도르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놈에게 손찌검한 레이첼을 처벌하려 한다면. 테오도르가 전단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저 소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근거도 없는 말로 황제의 보좌관을 모함하지 마시오. 여봐라! 당장 내 보좌관에게 손찌검한 레이첼 백작을……!”
그리고 시가르는, 사건을 그저 소문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시종을 시켜 준비한 것을 가져오게 하지요.”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시종 몇이 황급히 연회장을 빠져나갔다가 은쟁반을 가지고 돌아왔다.
레이첼은 은쟁반 위에 놓인 깃펜을 집어 테오도르에게 내밀었다.
“자, 테오도르 보좌관. 종이에 이름을 써보십시오. 거리에 전단을 퍼트린 것이 그대라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테오도르가 피식 웃으며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휘갈겨 썼다.
“이걸로 내가 전단을 퍼트렸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레이첼, 예전에도 그랬지만 당신은 참 머리가 나쁘단 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테오도르가 기다렸다는 듯 허리춤에서 전단을 꺼내 흔들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전단은 인쇄물이라고. 내 글씨 따위를 알아봐야 아무 소용 없어.”
“아무래도 머리가 나쁜 건 당신인 것 같은데요. 내가 설마 인쇄물 글씨와 당신 글씨를 비교하려고 했겠어요?”
“……어?”
레이첼이 고개를 기울이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