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8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81)화(81/151)
이번에는 벨윈더가 나섰다. 그녀는 시가르를 한 번, 시안을 한 번 바라보더니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좌관, 그대가 전단 제작자에게 보낸 서신을 내가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전단 제작자에게 보낸 서신이라면…… 헉!”
테오도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기다렸다는 듯 시종이 은쟁반을 들고 나타났고, 벨윈더는 그 위에 놓인 종이를 펼쳤다.
“여기에는 ‘레이첼 백작과 시안 대공은 오래전부터 불륜을 저지르는 사이였다. 이 더러운 자들의 진실을 고발한다.’ 고 적혀 있네요.”
“그, 그걸 어떻게……!”
벨윈더는 곧장 대답하는 대신 씩 웃었다. 일단 말을 시작한 그녀는 아까와 달리 시가르를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수도에서 일하는 전단 제작자를 모두 불러 모은 뒤 금화 주머니를 내던졌습니다. 내 아들을 모욕한 자를 붙잡고 싶었거든요.”
침을 꿀꺽 넘겨 삼킨 테오도르가 말했다. 아까보다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그건 제가 보낸 서신이 아닙니다. 전 전단 제작자를 만나러 간 적도 없어요!”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서신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요. 서신을 전달한 사람 역시 심부름꾼에 불과했고요.”
“역시! 증거도 없이 제가 보낸 서신이라 단정하시다니 너무하시는군요!”
“하지만 레이첼 백작 덕분에 이 서신을 쓴 사람이 당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레, 레이첼이?”
레이첼이 공손하게 무릎을 굽혀 예를 갖췄고, 벨윈더는 은쟁반에 놓여 있던 다른 서신을 들어 흔들었다.
“테오도르 보좌관, 당신이 예전에 썼던 각서라고 하더군요.”
“각서? 저는 각서 따위를 쓴 적이 없는데요?”
“정말인가요? 피넛이라는 시녀에게 밀린 급여를 주겠다는 각서인데요. 여기, 이 이름 부분이 방금 테오도르 보좌관이 쓴 본인 이름과 같은 필체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두 장의 종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테오도르가 화들짝 놀랐다.
“이, 이, 이, 이걸 대체 어디서! 분명 잘 숨겨 두었는데!”
“반응을 보니 본인이 쓴 각서가 맞는 모양이네요.”
테오도르가 쓴 각서와 전단 제작자에게 보낸 서신은 이미 필체 감정을 마쳐두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벨윈더가 은쟁반에 각서, 서신, 그리고 테오도르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나란히 올린 뒤 시가르에게 내밀었다. 은쟁반 위에 놓인 종이들이 파르르 떨렸다.
벨윈더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시가르의 눈을 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제께서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백작의 말대로 저자는 자신을 고발한 백작에게 앙심을 품고 거짓 소문을 퍼트려 폐하의 명예에 큰 흠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한 시가르가 손을 뻗어 곁에 선 테오도르의 뺨을 내리쳤다.
뻐억! 소리와 함께 테오도르가 바닥을 뒹굴었다.
“어억!”
“더럽고 무능한 놈. 감히 나를 속여?”
“죄, 죄송, 아악!”
발로 넘어진 테오도르의 얼굴을 꾹 짓밟은 시가르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황태후께서 이토록 적극적인 분이신 줄 몰랐군요.”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지요. 있는데 없는 것과 다름없는 어미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어미 노릇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어미 노릇이라…….”
시가르가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은쟁반을 든 벨윈더의 몸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후들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가르는 뭐가 재미있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미있군요. 어떤 노릇을 해주실지 기대되는군요, 어머니.”
“…….”
무능력하고 지저분한 보좌관을 임명해서 자신의 무능력을 입증한 시가르는 몸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연회장에 남은 귀족들은 테오도르가 저지른 추잡한 짓을 비난하고 전단 따위에 휘둘린 적 없다는 얼굴로 시안과 레이첼의 약혼을 축하했다.
* * *
황실 마차 안.
짜악!
시가르의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오른 테오도르의 뺨을 내리쳤다. 벌써 몇 번째인지 때리는 시가르도, 맞는 테오도르도 알지 못했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
짜악!
“뭐? 시안과 레이첼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어?”
짜아악!
“근거도 없이 내게 그딴 헛소리를 지껄였을 줄이야!”
퍼억!
말을 마친 시가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테오도르에게 발길질했다.
쿠당탕, 테오도르의 몸이 바닥을 구르며 마차가 덜컹거렸지만 밖을 지키는 자 누구도 감히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전부,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쓸데없이 입을 열면 더 호되게 매질 당한다는 것을 아는 테오도르는 입을 꾹 다물고 끅끅거리기만 했다. 서러움에 차오른 눈물이 벌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가 풀릴 때까지 한참이나 퍽퍽 발길질해대던 시가르가 신발 끝으로 테오도르의 몸을 꾹꾹 눌렀다.
“자. 이제 어쩔 생각인지 말해보아라. 네 놈 덕에 나는 더러운 놈을 보좌관의 자리에 앉힌 무능력한 황제가 되었다. 어떻게 책임질 셈이냐?”
“……큽. 흡.”
“뭐? 지금 당장 사지를 찢어 죽여달라고? 그거 나쁘지 않지.”
사실 시가르는 당장 테오도르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레이첼이 시안의 약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에게 테오도르는 아주 멋진 골칫거리였으니까.
시가르가 감정적인 인간이기는 해도 손에 쥔 몇 안 되는 패를 스스로 버리는 짓을 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겁 많은 테오도르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그는 뺨이 부푼 탓에 뭉개지는 발음으로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흑.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뿐입니다.”
“달라질 것이 없다? 웃기는 소리. 네 놈 덕분에 시안 놈은 지순한 사랑을 하는 자가 되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온 사교계의 응원을 받게 되었어!”
“아니, 아직 아닙니다.”
“아니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긍정왕 테오도르는 놀랍게도 시안의 말에서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아냈다.
“대공은 미끼를 써서 겨우 약혼 허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레이첼이 아직 시안 대공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시가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맞다. 시안은 자신과 레이첼이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레이첼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서 매우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레이첼을 흔들어 그녀를 빼앗아 오겠습니다. 저를 원해서 절절매던 여자입니다.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면 금세 마음을 바꿀 겁니다.”
“흐음.”
말이 되는 얘기 같았다.
테오도르에 대한 마음 때문에 시안을 밀어낸 레이첼이니까. 테오도르가 흔들면 금세 넘어오겠지 싶었다.
시가르는 레이첼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시안의 모습을 상상했다.
울부짖는 시안. 추하게 매달리는 시안. 실연의 아픔에 시름시름 앓는 시안.
어떤 모습이든 전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좋다. 네놈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거다.”
“마, 맡겨만 주십시오.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내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외쳤고 시가르는 씩 웃었다.
* * *
다음 날, 스테판은 눈을 뜨자마자 시안과 레이첼을 찾아왔다. 그는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차를 마시는 두 사람을 보더니 분통을 터트렸다.
차분하게 대꾸하는 시안과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스테판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뭐가?”
“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나한테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약혼? 약호온?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내가 그동안 너 어떻게 도와줬는지 잊었어?”
“이제 알게 됐잖아. 일이 많아서 미리 알려줄 정신이 없었어.”
“아오. 이걸 친구라고. 배신감 장난 아니다.”
“싫으면 친구 하지 말든지.”
“싫어! 친구 할 거야! 친구 할 거라고! 너! 그리고 레이첼 백작! 약혼할 때! 귀족 원로회 대표로 나 초대해!”
“그래.”
“좋아! 화 풀렸다!”
“잘됐네.”
레이첼은 시안과 스테판이 자기 얘기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대화에 끼지 못했다.
시안과 손을 잡고 있어서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맞잡은 손이 흔들렸고, 그만큼 레이첼의 마음도 흔들렸다. 그의 손은 레이첼의 손을 전부 덮을 만큼 커다랗고 아주 따뜻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연회장 밖에서도 계속 약혼 흉내를 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제 연회에서 공개적으로 약혼 예정이라는 사실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전단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적당히 약혼 예정인 척하다가 파혼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시안은 레이첼의 예상을 깨고 아침 일찍부터 그녀를 찾아왔다. 그는 차를 청했고, 나란히 앉기를 원했고, 손을 잡아도 되겠냐 물었다.
‘약혼은 전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 유효한 것 아니었나요?’
‘그렇다고 어제 연회에서 약혼을 발표하고 오늘 당장 취소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테오도르와 황제가 다음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이대로 쉽게 물러날 자들이 아니라는 건 백작도 잘 아실 테지요. 당분간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레이첼은 결국 시안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았다.
‘……솔직해지자, 레이첼. 사실 벌써 파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기쁘고 설레고 좋았잖아. 그것도 엄청. 대공 전하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달콤했으니까. 아직은 끝내기 싫어.’
용기를 내어 시안의 손가락 하나를 꼭 붙잡았다.
그는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을 쥔 레이첼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꽉 감싸 주었다.
레이첼의 가슴이 쿵쿵쿵쿵 거세게 뛰었다.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가 한 귀로 흘러들었다가 한 귀로 흘러나갔다.
“그래서, 약혼식은 언젠데?”
“미정.”
“먼저 약혼하자고 한 사람은 누군데?”
“비밀.”
“키스는 했고?”
“키…….”
시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스테판을 돌아보았다.
“그딴 건 왜 묻는데?”
“그야 당연히…….”
“궁금하니까아아아!”
질문을 마무리한 건 거대한 정원수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아트레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