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8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83)화(83/151)
“신부 장식이군요!”
“네! 저랑 공녀님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약혼 축하드려요, 레이첼 백작.”
그레이엄이 내민 것은 분홍 장미를 엮어 만든 부케, 돌로라사가 내민 것은 장미를 동그랗게 엮은 화관이었다.
레이첼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케를 받아 들고 화관을 썼다.
두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와, 정말 예뻐요! 잘 어울려요! 우와아.”
“진짜 신부 같아요!”
약혼식도 치르기 전에 신부 장식이라니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었지만 두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레이엄은 엄마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다가 레이첼에게 달려가 폭 안겼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고마워, 그레이엄! 엄마는 그레이엄이 있어서 행복해.”
돌로라사가 뺨을 비비는 두 사람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레이엄은 좋겠다.’
시안이 돌로라사에게 애정 표현을 해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귀족 아버지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그레이엄에게 보여주는 애정은 점잖고 차분한 시안의 애정과는 달랐다.
돌로라사는 뺨을 비비고 품에 꼭 안아주며 듬뿍 쏟아주는 레이첼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은 그레이엄이 더 부러웠다.
자그마한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꼬옥 붙잡았다.
‘빨리. 빨리 레이첼 백작이랑 아빠가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레이첼 백작이 내 엄마가 되잖아. 그럼 그레이엄을 안아주는 것처럼 나도 안아줄 거야. 뺨도 비벼주겠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품 안 가득 그레이엄을 안았던 레이첼이 살며시 아이를 놓아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레이엄은 엄마에게 부케를 더 만들어 줄 거라며 정원사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홀로 남은 돌로라사가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앗, 어. 저어. 저도 그레이엄한테 가볼게요.”
“공녀님.”
레이첼은 돌로라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낮추고 아이와 눈을 맞췄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돌로라사가 움찔 놀라며 굳어졌다.
‘호, 혼나는 걸까? 내가 욕심을 부려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돌로라사를 빤히 바라보던 레이첼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화관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냥한 공녀님의 선물 덕분에 무척 기뻐요.”
“아…….”
따뜻한 인사에 돌로라사가 흘끗 그레이엄을 돌아보았다.
그레이엄은 커다란 가위를 들고 부케에 쓸 장미를 자르는 중이었다.
돌로라사는 그레이엄이 이쪽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두 팔을 뻗어 레이첼의 목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녀님?”
레이첼의 품은 시안만큼 넓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다.
“아, 안아주고 싶었어요.”
사실은 안기고 싶었던 거지만.
혹시 욕심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레이첼이 실망할까 봐 무서워서 거짓말로 둘러댔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창피해진 돌로라사가 얼른 레이첼의 품을 벗어나 그레이엄에게 돌아가려 할 때.
레이첼이 제 품에 안긴 돌로라사의 등을 마주 꼬옥 안아주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 듯 후후 웃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공녀님을 안아드리고 싶었어요.”
“우와아…….”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혹시 누가 공녀님을 괴롭혔나요?”
“아니에요! 괴롭힌 사람 없어요. 그냥, 그냥…….”
빨리 레이첼 백작이 아빠랑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려던 돌로라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레이첼이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어머, 정말요?”
레이첼이 얼른 돌로라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댔다.
돌로라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말이네. 우리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정원에서 너무 오래 놀았나 봐요.”
“거, 걱정해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공녀님이 편찮으시면 속상하고 걱정된답니다.”
레이첼은 사용인을 불러 정원을 정리하게 하고 담요와 따뜻한 차를 준비하라 이르면서 내내 돌로라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돌로라사의 세상은 별나라보다 반짝이고 별사탕 나라보다 달콤했다.
* * *
한동안 레이첼과 시안의 약혼 소식으로 떠들썩하던 프람 저택은 곧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레이첼의 부모님인 제임스월드와 라일리의 추모식 준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추모식을 준비하는 라일러스는 평소와 달리 내내 진지하고 정갈한 성직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짐을 옮기는 인부들이 돌아간 뒤 레이첼이 라일러스를 찾아왔다. 그녀는 기도실 입구에 서서 조심스레 대부를 불렀다.
“아빠. 저 왔어요.”
“오, 레이첼 왔구나.”
기도실 구석에 놓인 제임스월드와 라일리의 초상화를 바라보던 라일러스가 반색하며 레이첼을 맞았다.
“무슨 일이냐. 여기까지 온 걸 보면 할 말이 있어서겠지?”
“아빠께 허락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허락하마.”
흔쾌한 대답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 아직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는걸요.”
“네가 하는 일은 뭐든 다 허락해야지. 혹시 테오도르와 재혼하고 싶다는 거면 좀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일단 놈을 예니스의 몽둥이로 백팔 번쯤 때린 후에 생각해 보자꾸나.”
“그런 거 아니에요.”
레이첼이 부모님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혹시 아빠, 추모식에서 식사 대신 차를 대접해도 될까요?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차가 있어요.”
“대접하고 싶은 차?”
“……평범한 차가 아니라서요. 아빠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싫어하시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되거든요.”
“아아, 그 차 말이지.”
라일러스는 다 안다는 듯 언제나처럼 미소 지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관없단다. 네가 원한다면 추모식에서 어떤 차를 누구에게 대접하든 나도 예니스 님도 제임스월드나 라일리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정말 그럴까요?”
“그럼. 내 말이 거짓이라면 예니스 님께 당장 벌을 받으마.”
라일러스가 눈을 감고 두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도실 밖에서 짹짹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어떠냐. 진짜지?”
“혹시 예니스 님께서는 원래 누구에게도 벌을 안 주시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테오도르 같은 놈들도 멀쩡하게 살게 내버려 두신다거나?”
“예니스 님께서 테오도르를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하니?”
“아닌가요?”
“그래. 아니야. 네가 있지 않니.”
라일러스가 장난스레 한쪽 눈을 찡끗했다.
“뭐, 테오도르 얘기는 제쳐두자꾸나. 예니스 님께서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용서하실 거야. 나나 제임스월드는 말할 필요도 없고. 필요하다면 예니스의 주교라는 내 이름을 걸어주마.”
“고마워요, 아빠. 덕분에 마음 편하게 준비할 수 있겠어요.”
“무얼. 그러려고 네 아빠가 된 거니 얼마든 이용하렴.”
“감사합니다.”
이제 차를 준비할 시간이었다.
* * *
추모식을 며칠 앞둔 밤. 낯선 사람이 프람 저택에 찾아왔다.
레이첼은 커튼을 치고 최소한의 조명만 켠 빈방에서 손님을 맞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인사에 어둠 속에 녹아 있던 사람 그림자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시안처럼 검은 망토와 안대로 모습을 가렸지만 그와 달리 마르고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였다.
신중하게 주변을 살핀 남자가 망토와 안대를 벗었다. 눈부신 백발과 섬뜩한 백안에 레이첼은 순간 움찔 놀랐다.
‘대공 전하께 미리 듣긴 했지만 정말 엄청난 모습이네. 몰랐다면 당황했겠어.’
남자가 깍듯이 예를 갖췄다.
“대공 전하의 정혼자를 뵙습니다. 대공 전하의 미천한 종, 휘지우스입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길드의 장을 맡고 계시다고요. 대공 전하께서 정보와 수색에 있어서는 제국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고 칭찬하시더군요.”
하얀 눈동자가 번뜩이며 레이첼을 향했다.
“……대공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무시무시한 겉모습이나 딱딱한 말투와 달리 기뻐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그대에게 맡기면 구해다 줄 것이라 하더군요. 그대만큼 믿을 만한 자가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하…….”
휘지우스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의 정혼자가 되셨으니 이제부터 제가 백작님의 충직한 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과격한 표현이었으나 레이첼은 굳이 정정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우선 부탁했던 것을 받고 싶습니다.”
“증류기 말씀이시군요.”
휘지우스가 들고 온 주머니를 내밀었다. 사람 머리만 한 주머니에서 달그락달그락 도자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장인이 섬세하게 빚은 증류기입니다. 만들기 어려운 만큼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백작님의 품격과 목적에 부합하는 물건이 되어줄 겁니다.”
“여기에 유리 나무와 물을 넣고 끓이면 되는 거죠?”
“맞습니다. 유리 나무가 검게 변할 때까지 서서히 가열하면 천사의 자장가라 불리는 유리 나무 차가 완성됩니다.”
“귀한 것을 구해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그건 천사의 자장가입니다. 말벌주와 달리 한두 잔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최소한 1년은 꾸준히 마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요. 죽이려고 우리는 게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혹시 더 구해드릴 것은 없습니까?”
“아뇨. 이제 괜찮아요. 나중에 필요한 게 생기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휘지우스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레이첼이 주머니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곧 있을 부모님의 추모식. 낯짝 두꺼운 테오도르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레이첼에게 헛짓거리를 하러 올 것이다.
그곳에서 제가 제임스월드에게 보냈던 유리 나무 차를 만나면, 독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차를 마신다면, 테오도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벌 떨까? 깜짝 놀랄까?
뭐든 상관없었다.
레이첼은 그 망할 자식의 입속에 유리 나무 차를 부어 넣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