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9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91)화(91/151)
레이첼이 멍하니 시안과 눈을 맞추는데 객석에서 스테판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미치겠네, 우리 대공 전하!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니까!”
스테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뼉을 치며 ‘짜란다, 짜란다, 뽀뽀해, 뽀뽀해!’ 고함을 질러댔다.
주변의 귀족 몇이 흥겹게 맞장구를 쳤고 벨윈더도 기분이 좋은지 맑게 웃었다.
그레이엄과 돌로라사도 저들끼리 꺄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라일러스가 홀로 입술을 삐죽이더니 약혼식을 마저 진행했다.
“그럼 다음으로 약혼반지 교환을 진행하겠습니다. 도둑…… 아니 대공은 백작에게 반지를 전달하십시오.”
단상에 놓인 반지 함을 집어 든 시안은 안에 든 반지를 꺼내 레이첼의 왼손 약지에 끼웠다. 반지 중앙에 푸른빛이 옅게 감도는 다이아몬드가 반짝이고 있었다.
반지 낀 레이첼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시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잘 어울릴 줄 알았습니다.”
“대공 전하, 방금 하신 말씀…….”
“묻고 싶은 게 많다는 거 압니다. 다음에 얼마든 답해드릴 테니 지금은 약혼식에 집중에 주세요. 여기서 사정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레이첼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왜 약혼 서약이 아닌 사랑을 맹세했느냐고 물을 수 없는 게 당연한데도 머리가 멍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행복하다는 얼굴로 반지 낀 레이첼의 약지를 만지작거리는 시안의 손길에 눈앞이 아찔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면 좋아.’
레이첼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약혼은 언젠가 깨질 거짓이며 시안은 자신의 짝이 아니라 그레이엄의 장인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알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시안이 꿈꾸듯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색 다이아몬드, 구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흔한 보석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영원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에 꼭 푸른빛이 담겼으면 했습니다.”
“어, 어째서요?”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안 그래도 주체하기 어려운 마음이 시안의 대답에 속절없이 녹아내릴 것을 알면서도.
“푸른 빛이 도는 다이아몬드는 레이첼 백작의 눈동자를 닮았으니까요.”
레이첼은 시안이 자신의 손등에 입 맞추는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인정해야 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시안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시안의 다정함에 자신이 몸서리칠 만큼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대공 전하를 사랑하는구나.’
티티예니스가 쏘아 올린 은빛 가루가 레이첼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무슨 정신으로 약혼식을 마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안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레이첼은 시안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을 때마다 화들짝 놀랐고 그가 웃을 때마다 얼굴을 붉혔다.
약혼식이라서 다행이었다. 고조된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으니까.
약혼식이 끝난 뒤, 시안은 레이첼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레이첼과 시안은 함께 프람 저택 후원을 거닐었다.
‘약혼식에서 했던 맹세가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시려는 거겠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언제나처럼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이었을까.
거짓이라는 단어와 여태껏 시안이 자신에게 해줬던 다정한 행동들이 동시에 떠오르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동안 가슴이 아팠던 이유를 알겠어. 나는 대공 전하 곁을 떠나기가 싫었던 거야.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람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왜 한 번도 시안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시안은 또렷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 훤칠한 키에 너른 어깨와 등, 강대한 지위와 권력과 무력을 가졌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늘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레이첼은 곁에서 말없이 자신과 발걸음을 맞춰주는 시안을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미리 알게 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레이엄과 돌로라사는 원작대로 연인이 되어야 했고, 그러려면 이 약혼은 언젠가 끝나야 했다.
그레이엄의 엄마가 되어 원작의 내용을 바꾼 레이첼에게 그것은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어쩌면 가슴이 아플지도 모른다. 제 곁에 없는 시안을 그리워하거나 그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질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아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깨닫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
이제야 공식적으로 약혼을 마쳤고 아직 파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당장 이 마음을 밀어내며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천천히 정리하면 돼. 할 수 있을 거야.’
다짐하며 달아올랐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걸음을 늦췄다.
“대공 전하.”
시안이 함께 발걸음을 늦추며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이제야 불러주시는군요. 기다렸습니다.”
레이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의미였다.
아까 약혼식에서 했던 맹세가 그녀를 향한 진심이 담긴 고백이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레이첼은 고개를 저어 말랑말랑하게 부풀어 오르는 설렘을 애써 털어냈다.
“대공 전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궁금한 것이든, 부탁이든 전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부탁드릴 것이 있었거든요.”
솨아아, 가을바람이 레이첼과 시안 사이를 급히 지나갔다.
잠시 입을 다물고 바람이 멎길 기다렸던 레이첼이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테오도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주세요. 저 역시 대공 전하께서 하신 맹세가 어떤 의미였는지 여쭙지 않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는지 시안의 눈이 커졌다.
레이첼은 시안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덧붙였다.
“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끝이 올 때까지 전하의 가짜 약혼자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대공 전하 역시 그렇게 해주세요.”
시안의 맹세가 진심이었다면 레이첼은 분명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뿐. 어차피 그의 마음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거짓이었다면 레이첼 자신이 슬퍼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래도 저래도 상처받을 진실이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이 가장 나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인 법이니까.
* * *
휘지우스는 레이첼과 시안의 약혼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이 온 동네에 퍼진 뒤에야 물러났다.
“드디어 해방이군. 이제 네놈의 신체를 도려내는 충동을 참을 필요가 없겠어.”
테오도르는 잔뜩 약이 올랐다.
“하! 그딴 충동이 있기는 했습니까? 그냥 나를 겁주려고 하는 말이겠지요!”
“내가 느낀 충동이 진짜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안 그런가?”
사실이었다.
휘지우스가 무슨 충동을 느꼈는지와 관계없이 테오도르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니까.
“젠장! 길드 장이라는 사람이 왜 나를 이렇게까지 방해하는 겁니까!”
테오도르에게서 떨어져 훌쩍 창가로 다가간 휘지우스가 씩 웃었다.
“여태 말하지 않았나? 네놈과 노는 게 즐거워서라고.”
“그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믿을 것 같습니까?”
“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말이군.”
휘지우스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테오도르는 주먹을 꽉 쥐며 발을 쿵쿵 굴렀다.
“젠장, 젠장, 젠장!”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다시 피식 웃음을 흘린 휘지우스는 망토와 안대로 몸을 가리고 밖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황제 폐하께서 날 가만히 놔두지 않으실 텐데.”
추모식에서도, 약혼식에서도 아무런 일을 해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다시 시가르를 만나기 전에 레이첼을 흔들어 제게 데려올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약혼을 해버렸으니 공공장소에서 레이첼에게 애정을 호소하기는 어려웠다.
테오도르가 아는 레이첼은 사람들의 시선을 매우 의식했다. 그녀는 곁에 약혼자를 두고 테오도르에게 다가와 안길 만큼 배짱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레이첼에게 접근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전에도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곧 대공비가 될 레이첼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을 서성이던 테오도르가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서신! 서신을 써야겠어!”
진한 연서를 쓸 생각이었다. 그동안의 추억과 애정을 담은 연서를 쓰면 레이첼은 분명 흔들릴 것이다.
“좋은 생각이야. 일단 흔들리면 그다음은 쉽지. 레이첼 혼자 밖으로 나오게 하거나 내가 저택에 숨어들기 쉽게 도와달라고 하면……!”
“어휴, 너 바보냐?”
“……?”
들떠서 종이와 펜을 꺼내던 테오도르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트레이유가 창틀에 걸터앉아 테오도르를 한심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화, 황태자 전하! 여기는 어떻게? 여기 3층인데…….”
“3층이 왜? 그냥 올라오면 되지. 그나저나 이 저택은 지키는 사람도 없더라?”
사실이었다. 시가르가 내준 임시 거처에는 기사도 호위도 딸려 있지 않았다. 시가르는 테오도르의 안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테오도르가 입술을 씹으며 뒷걸음질 쳤다.
“왜 오신 겁니까? 전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알아. 뭔 짓 할까 봐 왔는데 안 하더라고. 그래서 구경하다가 이제 가려던 참이었어.”
“그럼 가십시오!”
“근데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네가 멍청해도 너어무 멍청하잖아.”
“머, 멍청하다고요?”
“레이첼 백작한테 서신 주고 싶다며? 그게 되겠어? 네 서신이 온전히 레이첼 백작한테 도착하게 시안 숙부가 내버려 두겠냐고.”
아, 젠장.
누가 중간에 서신을 가로챈다니, 생각도 못 한 부분이었다. 레이첼이 응접실에 앉아 서신을 받고 깜짝 놀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결국 원점이었다.
서신을 빼앗기지 않고 레이첼에게 전달하려면 우편국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했는데, 프람 저택은 워낙 경비가 단단해서 테오도르는 숨어들 수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다른 방법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테오도르의 눈에 절망이 어리는 것을 지켜보던 아트레이유가 씩 웃었다.
“야. 그 서신이라는 거, 내가 전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