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9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95)화(95/151)
시가르를 찾아온 테오도르는 아트레이유에게 받은 서신 두 통을 내밀었다.
시가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테오도르에게 서신을 건네받았다.
“레이첼 백작이 시안 놈에게 보내려던 서신을 아트레이유가 가로챘다고?”
“그렇습니다!”
테오도르는 자신만만해 보였지만 시가르는 쉽게 믿지 않았다.
“아트레이유가 네놈의 서신을 직접 전하겠다고 한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중간에 시안 놈의 서신을 가로채기까지 했단 말인가?”
“정말입니다! 한 번 읽어봐 주십시오!”
시가르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서신을 펼쳤다.
[시안 대공 전하께.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프람 저택 2층 손님용 침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정에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을 물릴 테니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 주세요.
레이첼 프람]
서신을 읽은 시가르가 입을 좌우로 길게 찢으며 웃었다.
“정말이군.”
“황태자 전하께서 정말 엄청난 일을 해주셨습니다.”
시가르는 시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데다가 레이첼 앞에서 헤벌쭉 웃는 아트레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유일한 적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황궁에서 내쫓았을 존재였다.
‘지난번에 혼쭐을 낸 뒤로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 역시 두 발로 걷는 짐승을 가르치는 데는 매가 제일이야.’
시가르가 서신을 흡족해하는 것이 기쁜지 테오도르는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았다.
“겉으로는 지고지순한 사랑인 척하고 있지만 더러운 자들입니다. 이제 막 약혼한 주제에 밤의 밀회라니요.”
더러운 시안이라. 시가르의 마음에 쏙 드는 별명이었다.
턱을 문지르며 웃었더니 테오도르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폐하, 서신을 가로챘으니 써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공 대신 제가 약속 장소로 찾아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레이첼과 단둘이 만나 할 얘기가 있던 참이었거든요.”
“그런가.”
건성으로 대답한 시가르가 알현실 한쪽에 서 있던 시종에게 손짓했다. 시종이 화들짝 놀라며 종종걸음으로 알현실을 벗어났다.
눈치 없는 테오도르는 시가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계속 주절거렸다.
“그동안 레이첼을 만날 때마다 대공이 방해하지 않았습니까. 조용한 곳에서 다시 만나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면 분명 레이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돌리게 만들어야지요! 레이첼은 저를 사랑했습니다. 매일 밤 제 사랑을 구걸하던 여자이니 옛날 일을 조금만 떠올려 주면 금세 제게 안겨서 눈물을 줄줄 흘릴 겁니다.”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흐흐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곧 시가르가 내보냈던 시종이 알현실로 돌아왔다. 시종이 든 은쟁반 위에 묵직한 단검이 놓여 있었다.
시가르는 단검을 집어 들며 무심하게 말했다.
“헛된 기대는 버려라.”
“……예? 헛된 기대라니요?”
“레이첼은 시안의 약혼자다. 기분 나쁘지만 놈이 그럴듯한 신랑감인 건 부정하기 어렵지. 그 여자가 설령 진짜 네 놈을 사랑한다 해도 쉽게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거다.”
“그, 그렇…… 그렇지 않을……. 아마도……. 제 서신을 받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녀도 아직 저를 사랑하는 게 분명…….”
확신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놈은 이제 믿을 수 없어. 다시 기회를 달라기에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건만 추모식에서도 약혼식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쓸모없는 놈이 아닌가.’
태앵!
시가르가 들고 있던 단검을 테오도르의 앞으로 던졌고, 테오도르는 갑자기 날아든 단검에 화들짝 놀라 파르르 떨었다.
“화, 황제 폐하! 이, 이것을 왜……!”
“레이첼 백작을 만날 때 가져가라. 가져가서 레이첼을 죽여.”
“예에?”
잠시 머뭇거리던 테오도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그, 어어. 마, 맞습니다! 레이첼이 저를 사랑하지만 대공 때문에 저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어질 방법은 같이 죽는 것뿐이겠군요!”
헛소리.
하지만 시가르는 테오도르가 지껄이는 말이 헛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토 달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건 테오도르가 레이첼을 죽이기만 하면 됐으니까.
테오도르가 허둥지둥 단검을 챙겼고, 시가르는 씩 미소 지었다.
* * *
보름달이 뜨는 밤.
해가 산 너머로 모습을 숨긴 후 레이첼이 프람 저택 2층 손님방으로 들어섰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시안이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가벼운 실내복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레이첼이 후우, 짧게 숨을 내쉬었다.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대공 전하께서 지켜주실 텐데요.”
“지켜드릴 겁니다. 지켜드리겠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놈이 돌발 행동을 해서 백작이 놀라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요. 정말 제가 대역이 되면 안 되겠습니까?”
“또 그 말씀이세요?”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침실로 테오도르를 유인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시안은 자신이 분홍 가발을 쓰고 레이첼로 위장한 채 침대에 누워 있겠다고 나섰다.
분홍색 가발을 쓰고 하늘하늘한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다소곳이 누운 시안이라니!
시안을 흠모하는 제국의 모든 영애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일이었다.
“제가 어떻게 대공 전하께 그런 일을 부탁드리겠어요.”
“안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도 멋있고 잘생긴 대공 전하의 평판을 지켜드리고 싶어서?”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백작의 안전 앞에서 제 외모에 대한 평판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해요. 그것도 아주아주.”
벌써 몇 번이나 나눈 대화였고, 시안은 레이첼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레이첼의 앞으로 다가온 시안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제게는 그딴 것보다 백작의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잠시 말을 끊은 시안이 레이첼을 올려다보았다.
“지나치게 놈을 도발하지 마십시오. 놈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
거짓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레이첼은 입을 다물었다.
시안이 미간을 좁히며 레이첼의 손을 끌어가 손등에 입을 맞췄다. 레이첼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이 평소보다 억셌다.
결혼이 무효가 되고 테오도르와 마주하는 게 처음도 아닌데 밤이라는 시간과 침실이라는 장소 때문인지 시안은 평소보다 훨씬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대공 전하가 걱정하신다고 내 할 일을 떠넘기거나 대충하고 싶지는 않아. 이제 정말 마지막일 테니까.’
말없이 레이첼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시안은 한 번 더 레이첼의 손등에 꾹, 입술로 도장을 찍고서야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테오도르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 * *
테오도르는 자정이 한참 지나서야 손님용 침실에 도착했다. 2층 창문으로 올라가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던 탓이었다.
창문을 넘어 구르듯 안으로 들어온 테오도르가 밭은 숨을 쉬었다.
“하아! 허억! 젠장, 무슨 2층이 이렇게 높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3층까지 쉽게 쉽게 들어 오던데!”
테오도르는 누워서 한참을 헉헉거린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방 안을 살피던 그는 침대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첼을 발견했다.
“레이첼!”
“……테오도르.”
“하하, 놀랐지? 대공이 아니라 내가 나타나서 말이야. 아, 혹시 대공 대신 내가 나타나서 내심 기뻐하고 있는 건가? 하하하!”
테오도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레이첼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보고 싶었어, 레이첼!”
짜악!
그러나 레이첼은 테오도르가 가까이 다가오자 망설이지 않고 뺨을 올려붙였다.
“제인의 오두막 앞에서 꼬리 내리고 도망갈 땐 언제고 어딜 슬금슬금 기어들어 와?”
“레, 레이첼. 이게 무슨 짓이야?”
“게다가 감히 작위도 없는 평민 따위가 백작 저택 침실에 무단으로 숨어들어? 그것도 부족해 이름을 막 부르기까지 하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하! 사랑 앞에서 작위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평민인 제인과 그 긴 시간 사랑놀이를 해왔던 테오도르다운 발언이었다.
레이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테오도르의 반대쪽 뺨을 올려붙였다.
짜악!
테오도르가 주춤거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고, 동시에 놈의 푸른색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 너어……! 네가 어떻게 내 뺨을 두 번이나……!”
짧게 내뱉은 테오도르가 침대에 앉은 레이첼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레이첼을 침대 위에 쓰러트린 채 양손으로 레이첼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윽, 이거 놔아!”
“나 때린 거, 용서할게. 당신이 나한테 화났다는 거 알고 있었거든. 근데 여긴 지금 우리 둘뿐이잖아.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봐. 당신, 아직 나 사랑하지?”
“미쳤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 너랑 헤어지고 그레이엄이랑 둘이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보면 몰라?”
“그런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거, 이해해. 날 사랑하지만 약혼 때문에 대공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날 거부하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모질게 구는 거야.”
테오도르가 키득키득 웃으며 레이첼의 뺨에 더러운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빨리 날 사랑한다고 말해. 아니면, 기억나게 해줘?”
미친놈.
그동안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테오도르를 보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오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미친놈 같았다.
‘이 자식도 아는 거야.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테오도르는 레이첼의 손목을 붙잡았던 손을 떼 한 손으로는 목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뱀처럼 느긋하게 허리를 쓸었다.
끔찍해서 소름이 확 끼쳤으나 목을 눌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리, 꺼…… 꺼져.”
“쉿, 조용히 해. 금방 생각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전부 기억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알았지?”
레이첼이 입술을 비틀며 내뱉었다.
“……난 분명, 기회를 줬어.”
“하하, 그래. 그거참 고맙…….”
테오도르가 채 말을 마치기 전, 날카롭고 서늘한 것이 그의 턱 밑에 와 닿았다.
“당장 손 떼고 물러나. 죽여버리기 전에.”
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