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9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97)화(97/151)
아트레이유가 주머니를 열며 씩 미소 지었다.
“기억 나는 모양이네?”
주머니 안에 든 향신료 특유의 냄새에 시안이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고, 기다렸다는 듯 아트레이유가 테오도르의 얼굴에 후춧가루를 뿌려댔다.
“너! 내가! 레이첼! 백작! 괴롭히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푸, 푸엣취! 에에취! 흐아, 에흐! 에취! 아니, 잘못! 에취! 흐에취!”
테오도르는 양손이 꽁꽁 묶인데다 뒤를 막고 선 시안 덕분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재채기를 해댔다.
“너는! 내가! 한 말이! 엣치! 우습냐! 내가! 못할 줄! 알았냐고!”
“어엉, 잠깐, 에엣취! 엣취! 흑, 제발, 푸엣취! 콜록!”
아트레이유는 주머니가 텅 비고서야 식식대며 후춧가루 테러를 멈췄다.
“하여튼 말을 안 들어. 에칫! 우씨. 나까지 재채기했잖아.”
눈물, 콧물, 침과 후춧가루로 엉망이 된 테오도르가 기진맥진해서 훌쩍거렸다.
“흐어어. 어어엉.”
“징그럽게 왜 울고 난리야? 야, 됐으니까 안으로 들어가.”
아트레이유에게 떠밀려 비틀비틀 감옥 안으로 들어간 테오도르는 차가운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끼익, 철컹!
낡은 감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지만 기운이 빠진 테오도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엉망이 된 얼굴을 바닥에 문대며 흐린 눈으로 아트레이유와 시안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아트레이유가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너도 귀족이었으니까 알지? 귀족법에 형량 상한 따위 없어. 네가 지은 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전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야.”
“큽. 크흡.”
맞는 말이었다.
평민들 사이에서 적용되는 제국법은 관대했다. 저지른 죄가 많을 때는 죄인이 저지른 죄 중 가장 형벌이 무거운 죄만 죗값을 치렀다.
그러나 귀족법은 잔인하고 엄격했다. 본보기를 보이라는 뜻에서였다.
입과 코를 가렸던 손을 내린 시안이 멍한 얼굴로 감옥 안에 엎어진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선대 프람 백작 부부와 레이첼 백작을 살해하려 한 테오도르의 결말은 사형.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끝내 줄 수는 없지.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마.’
손에 묻은 후춧가루를 툭툭 털어낸 아트레이유가 개운한 얼굴로 돌아서다가 생각났다는 듯 마지막 말을 던졌다.
“아, 맞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 아빠가 너 꺼내주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는 하지 마. 우리 아빠가 그렇게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거든.”
눈물이 고여 어룽어룽 흔들리던 테오도르의 눈동자에 절망이 깃들었다.
어두운 감옥 가장 깊은 곳에 테오도르를 남겨 둔 채, 시안과 아트레이유가 걸음을 돌렸다.
* * *
테오도르가 다녀간 후, 프람 저택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케이티가 오랜만에 전단을 들고 레이첼의 집무실로 뛰어들어 왔다.
“백작님! 레이첼 백작님! 허억!”
“좋은 아침이야, 케이티. 아침부터 그레이엄이랑 달리기 연습한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이거, 이거 전해 드리려고 달려온 거라고요.”
레이첼은 케이티가 내민 전단을 받아들었다. 한두 장이 아니었다.
[파렴치한 범죄자, 감히 백작의 저택에 숨어들다!남의 일처럼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 담장이 높고 경계가 삼엄한 백작의 저택에 숨어들 수 있다면 놈은 담장이 낮은 집은 어디든 숨어들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아이사 제국과 수도의 평화를 위해 지독한 범죄자 테오도르는 엄격하게 처벌받아 마땅하다.
벨윈더 아이사]
간밤에 레이첼의 저택에서 벌어진 일을 알리는 전단이었다.
케이티는 레이첼이 전단을 모두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밖에서 테오도르 같은 범죄자는 당장 공개 처형 해야 한다고 난리예요.”
“그래?”
“이렇게 되길 바랐어요! 전 처음부터 그 자식을 공개 처형 시켜버리고 싶었다고요!”
과장된 분노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첼도 마찬가지였다. 테오도르가 처음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놈이 내연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던 순간부터 내내 놈을 처형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륜은 법으로 정한 범죄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놈을 망신 주고, 놈이 저지른 다른 일을 빌미로 놈이 가진 것들을 빼앗을 수는 있었지만 놈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원작 레이첼에게는 자기 목숨을 내던지고 싶을 만큼 나쁜 짓이었는데 말이지.’
테오도르가 순순히 함정에 걸려준 덕분에 레이첼은 드디어 놈을 처형대 위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시가르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짓 반란죄 따위가 아니라, 진짜 놈이 저지른 죄로.
레이첼이 지난 밤 테오도르에게 졸렸던 목을 만졌다. 세게 졸린 탓에 목과 손목에 시커먼 멍이 생겨 버렸다. 의사는 없어지는 데 며칠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안은 속상해했지만 레이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멍쯤이야. 테오도르를 붙잡을 수 있다면 멍이 몇 개가 생기든 상관없었다.
전단을 대강 눈으로 훑은 레이첼이 케이티에게 전단 뭉치를 돌려주었다.
“아침부터 가져오느라 고생했어. 테오도르 잡혀간 기념으로 이따가 저녁때 파티라도 할까?”
“알겠습니다. 주방에 얘기해서 아주 으리으리한 파티로 준비할…….”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돌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라일러스와 그레이엄, 그리고 돌로라사였다.
“레이첼 백작! 괜찮으세요? 꺄악! 세상에!”
돌로라사는 레이첼의 목에 새겨진 멍을 보자 깜짝 놀라 굳어졌고, 그레이엄은 레이첼의 무릎에 엎어져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엄마아아! 으어어어엉! 나쁜 아빠! 나쁜 아빠 미워어!”
레이첼은 서럽게 우는 그레이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로라사를 향해 생긋 미소 지었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와 주셨네요.”
“아, 그, 그게. 사정이 있었어요. 사실 오늘도 올 생각이 없었는데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모, 목이랑 손목은 어떻게 된 거예요?”
“테오도르가 졸라서, 조금 다쳤어요.”
“조금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 어쩌면 좋아…….”
“다행히 대공 전하께서 금방 구해주셨답니다.”
“아빠가 금방 구했다고요? 이게 금방 구한 거예요?”
울음이 전염된 건지 돌로라사가 자그마한 손을 꽉 말아쥐며 훌쩍였다.
“아, 아빠 너무해요. 구해줄 거면 더 빨리 구해줬어야지. 이게 뭐야. 예쁜 레이첼 백작 목에 상처가 나버렸잖아요.”
“대공 전하를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제가 부탁드린 일이었습니다.”
“레이첼 백작이요?”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자 돌로라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결국 속상한 마음을 이기지 못했는지 그레이엄의 옆에 엎드려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팔을 뻗어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 라일러스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구나.”
“아빠는 왜 미안하세요?”
“네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니. 상처가 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자책하게 돼.”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선택한 일이었는걸요.”
뚜벅뚜벅, 힘겹게 발을 옮겨 레이첼의 곁으로 다가온 라일러스가 멍을 살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치료, 해 주랴?”
“아뇨. 치료하지 말아주세요. 테오도르한테 보여줘야죠.”
레이첼은 테오도르가 죗값을 전부 치르기 전까지 목의 상처가 남아 있길 바랐다. 이게 없어지면 운 좋고 제멋대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놈이 자신의 죄를 부정할 것 같았으니까.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들어 목을 감쌌다.
테오도르가 자신의 목을 조르던 감각이 떠올라 몸이 떨렸고, 멍든 부분이 눌려 통증도 느껴졌다.
“……네 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라고, 꼭 말해줄 거예요.”
라일러스가 속상하다는 얼굴로 레이첼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딸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버지는, 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말릴 수 없었다.
* * *
달그락, 은쟁반 위에 놓인 주전자와 찻잔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났다.
쟁반을 들고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는 레이첼을 발견한 시안이 쓰게 웃었다.
“정말 직접 오셨군요.”
“네. 이것만은 꼭 제 손으로 하고 싶어서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시안은 손으로 레이첼의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그녀의 목에 난 멍을 살폈다.
걱정스레 목을 살피는 시선에 레이첼의 낯이 뜨거워졌다. 기뻤다. 파혼한 후에도 그가 지금처럼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품었다.
‘어쩌지? 마음을 정리하기는커녕…….’
테오도르가 잡혔으니 이제 정말로 시안과의 약혼을 마무리해야 했다. 마음의 정리를 하고 싶어 곁에 있겠다는 그를 며칠간 억지로 떼어 놓았다.
분명 자신 있었다.
테오도르를 잡아넣고 일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시안과의 짧은 약혼을 좋은 추억으로 여기며 후회 없이 그와 멀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시안은 여전히 레이첼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멋지고,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 상냥했다. 그가 좋았다.
‘대공 전하가 나 아닌 사람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니.
‘……일이 마무리되면 그레이엄을 데리고 잠시 프람 영지에서 지내다 와야 할지도 모르겠어. 차라리 그게 낫겠다. 그레이엄이 성인이 될 즈음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거야.’
돌로라사와는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로 인연을 유지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레이첼은 속으로 크게 숨을 내쉬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괜찮습니다. 손으로 눌린 부분에 멍이 생긴 것뿐이에요.”
“정말이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겁니까? 전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화가 나고 두려워서 몸이 떨릴 지경인데.”
시안은 레이첼의 몸에 손대지 못하고 바르르 떨며 머리카락 끝만 만지작거렸다. 가까이 서 있어서인지 커다란 몸이 바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지켜주셨잖아요. 마지막에 단검은 닿기도 전에 막아주셨고, 멍이 생긴 것 말고는 달리 다치지 않았답니다.”
“멍이 생긴 것 말고는, 이라니.”
목소리를 높이려던 시안이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내렸다.
가만히 손에 든 쟁반을 내려다보던 레이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무척 바쁘시다 들었습니다.”
시안은 원로회의 대표인 동시에 테오도르에게 피해를 당한 레이첼의 약혼자였다. 그는 테오도르가 저지른 각각의 죄를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처벌을 결정해야 했다.
덕분에 며칠째 저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원로회 건물과 지하 감옥을 오가며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테오도르가 저지른 짓은 전부 증거가 명백했지만 저지른 죄의 수가 많아 처리에 꽤 품이 드는 모양이었다.
시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레이첼 백작이 죄송할 일은 없습니다. 놈이 저지른 죄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뿐이니.”
“그렇다면 감사하고, 또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는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시안은 언제 성을 냈냐는 듯 순식간에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다.
레이첼은 그런 시안이 무척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슬쩍 쟁반을 들어 보였다.
“그럼 이제 길을 안내해 주시겠어요?”
짧게 숨을 내쉰 시안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십시오.”
두 사람은 해가 들지 않아 습하고 차가운 지하 감옥의 끝, 테오도르를 향해 걸었다.
화학적 거세를 위한 돈베 줄기 달인 물을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