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99)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99)화(99/151)
저택으로 돌아온 레이첼을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그레이엄이었다.
검술 연습을 마치고 저택으로 들어가던 아이는 마차에서 내리는 레이첼을 발견하자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응, 엄마 잘 다녀왔어. 또 검술 연습하고 있었구나?”
“얼른 스승님처럼 세져서 엄마 지켜주고 싶으니까요!”
원래도 검술 연습을 열심히 하던 그레이엄은 테오도르의 침입 이후 연습 시간을 더 늘렸다. 그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레이첼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인 점은 아이가 뛰고 휘두르는 게 거의 전부인 검술 연습을 지겨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레이첼이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자 그레이엄이 폴짝 뛰어 레이첼의 품에 안겼다.
“에헤헤, 엄마 좋아!”
“세상에, 이 땀 좀 봐. 우리 그레이엄, 많이 힘들었구나?”
“힘들어도 재미있으니까 괜찮아요! 앗, 혹시 저한테서 땀 냄새 나요?”
그레이엄이 땀에 젖은 제 팔과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레이첼은 웃으며 그레이엄의 뺨에 제 뺨을 비볐다.
“엄마는 잘 모르겠는걸? 우리 그레이엄한테서 언제나 달콤한 냄새가 나거든.”
“에이. 아닌데. 저도 냄새 맡을 줄 알거든요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레이첼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아 기쁘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사실 달콤한 냄새는 저 말고 엄마한테서 나요.”
“……그러니?”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말에 레이첼이 몸을 움찔했다. 제 목덜미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 숨을 깊게 들이쉬던 시안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레이엄은 엄마가 굳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행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응. 엄청 엄청 달콤한 냄새예요. 케이크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사탕 같기도 해서 안기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공녀님이 저를 엄청 엄청 부러워해요.”
케이크, 아이스크림, 사탕. 전부 시안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달콤해서 핥고 싶을 정도인데요.’
속삭이는 시안의 목소리가 떠올라 아찔했다.
그의 목소리가 달콤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순간 핥으셔도 괜찮다고 대답할 뻔했던 자신의 속마음이 부끄러워서이기도 했다.
* * *
며칠 후, 테오도르는 원로회 감옥을 벗어났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 못해 경비병들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아 부축해주어야 했다.
매질로 생긴 상처나 부실한 식사, 해를 받지 못한 채 지낸 날들.
테오도르의 건강을 상하게 할 것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놈이 지금처럼 망가진 원인은 하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놈은 남성성을 상실한 이후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 기계적으로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햇빛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던 테오도르는 자신의 앞에 선 시안을 발견하고 눈을 껌뻑였다.
“……대공.”
질질 끌려 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테오도르를 가만히 지켜보던 시안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 저택 침입 2회, 백작 협박 5회, 백작 추행 1회, 사용인에게 임금 미지급 등 그동안 네놈이 저지른 스물한 가지 죄에 대한 처벌이 마무리되었다.”
스물하나. 테오도르가 엘로사 백작으로 불릴 때부터 지었던 죄들의 합이었다.
테오도르가 대답 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제 마지막으로 네놈이 저지른 네 가지 죄, 전 프람 백작 부부의 살인 교사와 시신 유기, 두 번의 레이첼 백작 살인 미수에 대한 처벌, 사형을 집행하겠다.”
“…….”
“귀족법에 따르면 네놈은 네 번 사형 당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놈의 목숨은 하나뿐이지.”
시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레이첼을 죽이겠다고 그녀에게 덤벼들던 테오도르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 탓이었다.
“……원로회에서 처형당하게 된 것에 감사하라.”
법으로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원로회가 아니었다면 겨우 사형 따위로 생을 마무리하게 두지 않았을 테니까.
사형 선고가 끝나자 주변을 지키고 서 있던 경비병들이 다시 테오도르를 부축했다.
“끄응. 망할 죄인 놈. 감옥에서 얼마나 잘 먹고 편안하게 발 뻗고 지냈으면 아직도 몸무게가 이렇게 많이 나가는 거야?”
“그 많은 죄를 지어놓고도 이토록 멀쩡하게 죽을 수 있다니. 웃기지도 않아.”
“그러게나 말이야. 심지어 우리가 사형장까지 둘러업고 가주잖아? 내가 살던 영지였다면 동네 사람들이 머리끄덩이 잡고 질질 끌고 갔을걸.”
테오도르를 향해 비웃음을 퍼붓던 경비병들이 앞서 걷는 시안을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대공 전하께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겠어. 자기 약혼자를 추행하고 죽이려고 한 놈한테 약도 발라줘야 하고, 사형장에서 곱게 죽이기까지 해야 하니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라면 절대 못 할 짓이지!”
쯧쯧 혀를 차는 경비병들의 목소리에 테오도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옥에서 마주칠 때마다, 시안은 눈빛으로 테오도르를 난도질했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아도 테오도르는 느낄 수 있었다.
시안의 머릿속에서 테오도르는 수백 번도 더 찢겨 죽었다는 사실을.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테오도르에게 정해진 벌만을 준 것은 오로지 레이첼 때문이었다. 레이첼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로회 정원을 빠져나온 무리는 숲길을 지나 귀신이 튀어나올 듯 스산한 사형장으로 향했다.
멀리 정갈하게 준비된 사형장이 보이기 시작하자 테오도르가 몸을 비틀었다.
“시, 싫어. 싫어! 싫다고! 죽기 싫어!”
“어, 어어. 이놈이 왜 이래?”
경비병 하나가 당황해 테오도르를 놓쳤고, 테오도르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경비병을 떼어내고 뒤돌아 도망쳤다.
그러나 몸이 온전하지 않은 데다 너무 오래 걷지 못한 놈은 어기적거리다가 곧 흙바닥 위로 넘어졌다.
철퍼덕!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엎어진 테오도르의 눈가에 핑 눈물이 돌았다.
‘안 돼. 살아야 해.’
살고 싶었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누가?
제인은 어디론가 숨어버려 찾을 수조차 없다.
레이첼은 저 대공이라는 자가 꽁꽁 지키고 있어 건드릴 수가 없다.
엄마인 베렝겔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고.
‘황제 폐하. 그분이라면 도와주실지도 몰라. 폐하께 사정해서, 다시 기회를 달라고 빌면……. 좀 얻어맞을지도 모르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황제 폐하를 만나게 해줘. 폐하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분께 내가 여기 잡혀 있다는 걸 알리란 말이다!”
일어나다가 넘어지고 일어나다가 넘어지며 앞으로 기어가기를 얼마쯤 반복했을까. 눈앞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
테오도르는 싸늘한 예감에 떨어진 것을 주워 살폈다.
“이, 이건……?”
베렝겔라가 좋아하던 값비싼 귀걸이였다. 팔아서 살림에 보태려고 했으나 아무리 집을 뒤져도 보이지 않아 그녀가 집을 나가면서 하고 나갔겠거니, 생각했던 물건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어, 저거.”
경비병이 테오도르가 손에 쥔 귀걸이를 알아보았다.
“얼마 전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처형하신 중년 여자가 끼고 있던 귀걸이로군. 그날따라 심기가 불편하다면서 평소보다 잔인하게 죽이셨어.”
“……뭐……?”
“제법 비싼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있다며 보석상에 팔아 돈으로 바꿔오라 하셨는데 귀걸이 한 짝이 사라져서 어찌나 곤란했는지. 어디 갔나 했는데 여기 있었어.”
테오도르의 귀에서 윙윙 이명이 울렸다.
시가르가 처형했다고? 베렝겔라를?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고 있던 귀금속을 돈으로 바꿔오라고 했어?
아무리 수소문해도 베렝겔라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시가르 때문이었다.
귀걸이를 쥔 테오도르의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벅저벅, 느린 걸음으로 테오도르의 곁에 다가온 시안이 말했다.
“황태자 전하의 말을 허투루 들은 모양이군.”
“…….”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시가르는 네놈의 생존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네놈을 처벌하는 걸 알면서도 원로회로 전갈 하나 보내지 않았어.”
“알고…… 있었다고? 황제 폐하께서, 내가 원로회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시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제국에서 네놈이 원로회에 잡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
실낱같은 희망이 툭 끊어졌다.
기사들에게 테오도르를 일으키라고 말하려던 시안이 한 마디를 보탰다.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었는데.”
“…….”
“레이첼은 네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네놈 따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행복하게 살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보란 듯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레이첼과 시안이 테오도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테오도르가 반항을 멈췄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즈음 시안이 레이첼을 찾아왔다.
“보고 싶었습니다, 레이첼 백작.”
“앗. 오셨군요.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가라앉은 시안의 목소리에 레이첼은 그가 무슨 말을 전하러 왔는지 깨달았다.
창가에 선 레이첼의 곁으로 다가온 시안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테오도르의 처형을 마무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이첼이 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 제가 대공 전하께 괜한 짐을 지워드린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마음은 후련해요. 백작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놈을 내 손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공 전하, 지금 표정이…….”
레이첼의 말에 시안이 미간을 좁히며 몸을 기울였다. 그의 이마가 레이첼의 어깨에 툭, 닿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레이첼이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어깨에 닿은 머리는 생각보다 묵직하고 뜨거웠다. 규칙적으로 내쉬는 시안의 숨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렸다.
“대, 대공 전하?”
“제게 할 얘기가 있으시지요. 이대로 듣겠습니다.”
“아…….”
시안은 레이첼이 오늘을 위해 무슨 말을 준비했는지 아는 눈치였다.
레이첼이 두 손을 꾹 마주 잡았다.
마음의 정리 따위는 하지 못했다.
레이첼은 여전히 시안이 좋았다. 자신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그를 안아주고 싶을 만큼. 시안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가 파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를 바랄 만큼.
‘그러다가 진짜 파혼하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기대하는 건지.’
자신의 마음을 비웃은 레이첼은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대공 전하 덕분에 저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원했던 복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우리는 테오도르가 벌여놓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약혼했지요. 테오도르가 정리되었으니 이제…….”
의도와 다르게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크게 숨을 내쉬고서 마음을 다잡은 레이첼이 말을 매듭지었다.
“이제, 파혼하도록 해요.”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상처받는다는 게 이런 걸까. 레이첼의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잠시 레이첼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움직이지 않던 시안은 얼마간 지난 뒤에야 몸을 일으켜 바로 섰다. 어째서인지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미소라니.
파혼을 기다렸다는 의미 같아서 레이첼의 가슴이 욱신거렸다.
“레이첼 백작.”
“……네.”
“미안하지만.”
시안이 느리게 팔을 뻗어 손바닥을 레이첼의 뺨에 가져다 댔다. 붉은 노을이 응접실을 뒤덮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내뿜는 열기 때문인지 레이첼의 얼굴이 후끈 뜨거워졌다.
“나는 당신과 파혼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