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In The Post-Apocalyptic Zombie World RAW novel - Chapter (128)
좀비세상 속 사령술사가 되었다 128화(128/162)
김태영이 정신병을 진단받아 감금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평소처럼 활기찬 아침은 아니었다.
늘 밝게 인사하던 심가람도 어두운 표정으로 조용하고.
나긋하게 인사하던 유아라도 아무런 말 없이 묵묵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침 식사를 위해 매번 모이는 교실에 모였고.
“제안할 게 있네.”
그 자리에서 이상운이 손을 들며 모두를 집중시켰다.
“태영군의 식사나 다른 관리 말이네만, …혹시 괜찮다면 우리에게 맡겨줄 수 있겠나.”
이상운이 말하는 우리란 당연히 이번에 새로 합류한 생존자들을 뜻했다.
이상운과 여자 생존자 넷.
그렇게 총 다섯이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저희도 태영이의 상태를 살피고 싶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이상운의 제안은 간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존 중학교 멤버들은 모두 같은 얼굴로 이상운을 바라봤고.
그중 대표로 한보미가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말투에서 적대적인 감정이나 의심은 묻어있지 않았다.
순순한 의문.
한보미는 이상운을 신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어제 있었던 소란으로 김태영의 정신병이 확정된 탓이겠지.
그리고 이상운도 마찬가지로 한보미의 물음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유는 바로 그거네. 태영군을 살피고 싶은 마음. 간단하게 말해서 자네들은 태영군을 아끼니까.”
“그게 문제가 있나요…?”
“문제가 생길 수 있지. …반대로 물어보겠네. 자네들은 만약, 태영군이 간절히 부탁한다면. 그래, 가령 자신을 풀어달라고 처절하게 부탁한다면.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나?”
“…….”
이상운 교수의 말에 한보미는 침묵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피하고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거절할 수 있다. …라고 대답하는 건 쉬울 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을 때.
김태영의 일행이었던 그녀들은 확신할 수 없겠지.
그야 그만큼 그를 특별하게 생각했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태영이 관리를 …잘 부탁합니다.”
“그래, 맡겨주게. 너무 걱정은 말게. …태영군의 상태가 괜찮아지면 천천히 다시 합류하면 되는 거니까.”
“태영이 상태가 …빨리 괜찮아질까요?”
한보미는 이번엔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마 김태영을 보살피는 안건보다 이 부분이 더 궁금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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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한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는 현재 이상운 뿐이기에.
그리고 이상운은 잠시 침묵하더니.
어렵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저 최선을 다해보겠네.”
그 의사다운 대답에 일행들은 어둡던 표정에서 그나마 조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상운의 연기에 내심 감탄하였다.
‘이 인간…. 기숙사 때부터 철판 두꺼운 건 알았지만, 연기력 좋네.’
이상운은 김태영이 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물론 그가 김태영에게 정신병 진단을 내린 것 또한 내 지시에 따른 것이니.
그런데 …이 정도 연기력은 바라지도 않았건만.
아무래도 천성이 사람 뒤통수를 치는데 특화되어있는 듯하다.
‘뭐,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편하니.’
이상운이 나를 따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야 이 세상에서 내 밑에 붙는 것보다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이용하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그가 의사이기에.
물론 나에겐 만능 힐러 그레이스가 있기에 의사 같은 건 필요 없지만.
언젠가는 내가 이끄는 집단이 내가 전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그때 모든 구성원을 그레이스더러 치료하라 할 수도 없고.
이런 망한 세상이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러기엔 이상운 같은 적임자가 없으니까.
“그럼 태영군은 우리에게 맡겨주고…. 자, 앞으로 다 잘 될 거니 다들 기운 내게. 태영군은 잠시 정신적으로 아플 뿐이잖나.”
그렇게 이상운의 마무리로 우리의 아침식사 겸 간이 회의는 끝이 났다.
그리고 식사 후.
“저기…!”
오전 일과를 위해 농기구를 가지러 가던 나를 복도에서 누군가 불러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보미.
‘얘가 먼저 말을 다 거네.’
아직 내가 뭘 하기도 전인데 대체 무슨 일일까.
“네, 보미 씨. …뭔가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나요?”
“아, 네….”
내 물음에 한보미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태영이 관리해주는 일에는 서호 씨도 함께 해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요?”
그녀의 부탁은 뜻밖이었다.
물론 이상운이 말한 ‘김태영과 정이 든 일행’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상운이 말한 김태영 관리팀에 나는 속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어제까지만 해도 김태영은 나를 죽이려고 소란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제가 가면 태영 씨가 싫어할 텐데요.”
“네, 알아요. …하지만 태영이는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에요. 사교성이 좋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잘 찾는 그런 사람이에요.”
물론 알고 있다.
호텔에서 만났던 김태영이 딱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그, 그러니까 태영이랑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사이를 회복해주세요! 어차피 나중에는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렇군.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해했다.
김태영의 정신이 나간 것인 일시적인 일.
다만, 만약 정신을 회복하고 풀려난 뒤에도 감정이 남아있다면 곤란하기에.
김태영이 묶여있는 지금 천천히 오해를 풀어달라는 뜻이었다.
‘그게 실제 조현병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차피 김태영는 조현병 환자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 둘이 오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저, 정말요?”
나는 흔쾌히 웃으며 한보미의 부탁을 승낙했다.
‘나야 잘 됐지….’
물론 나라고 김태영과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승낙한 것은 아니다.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쪽.
한보미니까.
“그럼 앞으로 매일 상태 보고 해드릴게요.”
“……네?”
나는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태영이 상태도 궁금할 거 아니에요? 제 차례 때 태영 씨랑 대화하고 상태가 어떤지 알려드릴게요.”
“…….”
내 말에 한보미는 잠시 멀뚱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곤.
살며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서호 씨는 …배려심이 많은 분이네요.”
“그렇게 보였나요?”
“네, 다른 애들이 서호 씨를 잘 따르는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한보미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어제 그런 일을 겪으셨는데 이런 부탁까지 받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차례 감사를 전한 한보미는 금방 고개를 들고서 다시 그 은은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나한테는 처음 웃어주는 건가.’
나는 잠시 그녀의 미소에 빠져있었다.
물론 그녀의 얼굴이 예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그녀가 나를 향해 저렇게 웃어 보이는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오전 일 열심히 해요.”
“네, 보미 씨도요.”
그렇게 우리는 복도에서 엇갈리며 친근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김태영과 1대1 면담의 시간이라….’
나는 뜻밖에 들어온 기회에 미소 지었다.
물론 나도 김태영의 관리에 참가하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다.
김태영과 단둘이 남아 솔직한 대화도 나눠보고 싶으니까.
다만, 어제 날 죽이려 한 김태영의 관리를 내가 나서서 맡겠다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니까.
‘그런데 한보미가 나서서 부탁해온다면 나야 고맙지.’
덤으로 한보미와 단둘이 시간을 가질 명분도 생겼기에.
내겐 아주 좋은 기회였다.
。 。 。
김태영이 강당 체육창고에 갇힌지 3일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 우리 일과에는 한 가지 일과가 추가되었다.
바로 김태영의 관리.
현재 체육 창고에 묶인 채 갇혀있는 김태영의 식사와 용변, 그리고 기본적인 청결을 관리해주는 일로.
이상운과 네 명의 여자 생존자.
그리고 나를 합쳐 총 여섯 명이 해당 작업을 맡게 되었다.
“안녕, 태영아.”
“저리 꺼져.”
3일째 저녁, 오늘 김태영의 저녁 식사 당번은 나였다.
“왜 그래, 보미도 나랑 네가 사이 좋아지길 바란다는데.”
“……너 이 씨발련아. …보미 건드리기만 해봐.”
“하하, 누가 건드린다고 했나? 보미가 나한테 부탁했다고. 너랑 사이 풀었으면 한다면서.”
“……개새끼가.”
물론 김태영은 나를 전혀 환영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그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달그락….
나는 저녁 식사로 나온 참치캔과 완두콩이 담긴 접시를 김태영 앞에 내려두었다.
나라고 이놈에게 손수 밥을 먹여줄 생각은 없다.
먹여주고 싶어도 수저를 내밀면 이 새끼가 내 손째로 뜯으려 하기에 그럴 수도 없다.
“나는 진심이야. 진심으로 보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재밌는 구경 끝났으면 빨리 꺼져라. 네 헛소리도 목소리도 더는 듣기 싫으니까.”
“하하, 너무하네. 한때는 우리 사이 좋았는데.”
“…진짜 죽여버린다.”
아직은 이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정도이다.
당연히 김태영에게는 하고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그에게 하고픈 말을 모두 건네는 것은, 모든 일이 완료된 이후니까.
“안 먹는다니 어쩔 수 없네. 그럼 가볼게.”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태영아, 너무 그렇게 이 드러내지 마.”
짧은 대화 이후, 나는 체육창고를 나서며 씨익 미소 짓고.
김태영을 바라봤다.
“자꾸 그러면 …진짜 네 여자들 건드리고 싶잖아.”
“…이 씨발 새끼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에 순간 김태영의 이마에 핏줄이 세워졌다.
그리고 마치 짐승처럼 내게 소리를 치고.
나는 그 배경음을 기분 좋게 감상하며 창고의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보미의 부탁을 들어주긴 어려운 듯 보인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한보미의 마음이니까.
“저, 정말인가요? 그 정도로요?”
“네, 태영 씨도 자기 상태를 깨닫고 나니까 좀 진정하신 것 같더라고요.”
“하아…. 다행이다.”
한보미는 내 말을 듣고 안도하며 미소지었다.
“많이 걱정했는데…. 순조롭게 사이가 회북중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이게 다 보미 씨 덕이죠. 보미 씨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이것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후훗, …공을 돌리는 건, 저 위로하고 싶으셔서 그런 거예요?”
“……으음, 들켰나?”
“서호 씨는 거짓말이 서투네요.”
“하하.”
거짓말이 서툴다라.
그 서툰 모습도 거짓인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많이 궁금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표정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한보미의 미소가 상당히 마음에 들기에.
‘첫날 왔을 때랑은 완전 다르네.’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운동장의 산책로 쪽 벤치였다.
그곳에 앉은 한보미는 가녀린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처음 나를 봤을 때 보였던 그 차가운 얼굴과는 차원이 다른 따뜻함.
‘태영이가 얘를 가장 아끼는 이유를 알겠네.’
한보미의 미소에는 무언가 마력이 있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매료의 마안’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보미의 미소를 마주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 또한 한보미 자체를 원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매료의 마안의 힘을 등에 업고서 그녀를 향해 상냥한 미소를 비추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태영 씨의 상태도 금방 회복될 거고, 그렇게 되면 다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살며시 한보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볍게 닿는 정도로 힘을 빼고서.
하지만 그 가벼운 터치에 한보미의 눈동자가 살며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서호 씨는, …위로를 잘 하시네요.”
“으음, 그런가요?”
“네, …왠지 서호 씨랑 대화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하하, 우연이네요. 저도 보미 씨랑 얘기 나눠보니 비슷한 기분인데.”
“…….”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나는 곧바로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내 손의 온기가 사라져 의식이 됐는지, 한보미는 내 손을 힐끔 바라보고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을 바라봤다.
“전에 얘기한 적 있었나요? …사실 처음에는 서호 씨, …되게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죄송해요. 실례인 건 알지만 그때는 태영이랑 혜연이가 사라져서 많이 예민했거든요.”
“그래도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이제는 안 수상하다는 뜻이죠?”
“후훗, 수상한 사람이랑 이렇게 대화를 나눌 리가 없잖아요.”
한보미는 그녀의 말대로 조금의 경계심도 없는 순진한 모습으로 내게 웃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나는 김태영의 상태 보고를 명목으로 한보미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김태영이었지만.
지금처럼 한보미가 나에게 가지는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와의 사이는 순조롭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 남은 건 균열 한 방인가.’
한보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목적은 당연히 그녀를 따먹는 것이니.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이가 좋아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균열 한 방이라면.
꽤 괜찮은 그림을 생각해뒀다.
。 。 。
김태영이 창고에 갇힌 지 4일째 되는 날 아침.
김태영은 매트리스 위에서 몸이 묶인 채 눈을 떴다.
“…….”
정신병자라는 진단을 받고 이곳에 갇혀 절망적인 아침을 맞이한 것이 벌써 네 번째.
눈을 뜨고 느껴지는 이 참담한 기분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김태영은 그저 괴로웠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오로지 억울함만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나 …진짜 정신병인가?’
그것은 바로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의심.
자신이 분명히 들었던 심가람의 신음소리,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부부.
하지만 이상운이 말하길 그런 부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행들이 말하길, 심가람은 이서호의 교실에 방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충격적인 사실이 김태영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괴로웠다.
‘그럼, 그 남자들은 …정말 내가 미쳐서 죽인 건가?’
자신이 저질렀던 그 잔혹한 행위가, 어떠한 명분도 없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했다.
그렇기에 김태영은 감히 창고를 탈출할 생각조차 안 했다.
물론 가끔 찾아오는 이서호는 치가 떨릴 정도로 싫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을 받아들인 상태.
어떻게 보면 의욕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야 자신은.
정신병자라고 하니까.
“…….”
그리고 그렇게 그가 멍하니 창고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르르륵….
김태영이 갇혀 있는 창고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찾아왔다.
“……너는.”
그리고 김태영은 찾아온 인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