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In The Post-Apocalyptic Zombie World RAW novel - Chapter (60)
좀비세상 속 사령술사가 되었다 60화(60/98)
넘어트린 선반을 치운 뒤 문을 열고서 마주한 그 남자의 첫인상은 여유로운 미소였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미쳐버린 세상.
그런 세상에서 죽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남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평온한 얼굴.
지금껏 스치듯 마주친 생존자 모두 아무리 해맑게 웃어도 숨겨지지 않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자신을 이서호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런 약간의 피로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미소로 그녀를 마주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라 다행이었어요.”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남자라서일까.
이서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문밖의 좀비 두 마리를 처리하고 그레이스를 창고에서 꺼내주었다.
밖으로 나갔을 때는 좀비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고 몸싸움을 벌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옷가지의 흐트러짐조차 없이.
‘대체 무슨 마술을 쓴 거지…?’
신을 믿는 그녀이지만 믿기지 않는 상황에 마술이라는 생각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좋은 향기….’
오랜만에 맡는 은은한 샴푸향.
이서호가 옆으로 다가오자 평화롭던 세상에서 흔히 맡았던 그리운 샴푸향이 풍겨 왔다.
그러고 보니 이서호는 얼굴의 평온함 뿐만 아니라 차림새마저 깔끔했다.
얼굴에는 흔한 얼룩 하나 묻어있지 않고 옷은 마치 방금 쇼핑몰에서 구매한 것처럼 깨끗하고 반듯하다.
그 모든 모습이 그녀에게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든 이런 세상인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서호의 모습은 마치 방금까지 원래의 행복했던 세상에서 이제 막 넘어온 것만 같은 신비로운 모습이었기에.
“……혹시 천사신가요?”
“네?”
그래서인지 그레이스는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서호는 당황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무심코 중얼거린 말이 헛소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 아뇨! 죄송해요! …조금 전까지 불안했던 탓에 정신이 없어서.”
“그렇겠죠. 갇혀계셨으니까요. 이해합니다.”
그는 그레이스의 엉뚱한 말에도 상냥하게 미소 짓고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 배려가 감동적이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던 그레이스는 왠지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신의 신부가 되기로 맹세한 그녀지만 자신을 구해준 기적 같은 남자에게 소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신이 보내주듯 자신을 구원해준 남자.
심지어 외모도 깔끔하며 성격도 상냥하다.
‘여자라면 어쩔 수 없어….’
비록 그녀는 수녀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인간.
여자로 태어난 이상 매력적인 남성에게는 끌릴 수밖에 없다.
그저 주님께 맹세한 대로 금욕적인 삶을 고집할 뿐.
본능적인 이끌림을 그저 꾹꾹 참아내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냄새나지 않을까?’
다만 깔끔한 이서호의 옆에 있다 보니 그녀의 차림새나 향기 등이 신경 쓰였다.
기본적인 위생은 강의 물을 사용해 해결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샴푸향이 나는 이서호에게는 불쾌한 향이 느껴질 수도 있으니.
그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슬쩍 흘겨본 이서호의 표정은 온화했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까 궁금할 정도로.
그리고 그는 그런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능숙히 불을 피웠다.
레스토랑 내부에 불이 번지지 않도록 커다란 캔으로 임시 화로를 만들고 가방에서 꺼낸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그러자 어두웠던 레스토랑 내부가 은은한 불빛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 지켜보자 그제야 그도 이 멸망한 세상을 생존해가는 같은 생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작은 화롯불로 물을 끓인 이서호는 따뜻한 커피를 그레이스에게 내밀며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그런데 그레이스라는 이름은 세례명인가요? …수녀신 거죠?”
“아, 네.”
“근처에서 지내시고 계신가요?”
“네, 팬데믹 이전까지 다니던 성당에서 그대로….”
이서호가 내민 따뜻한 커피를 자그마한 입으로 후후 불고 살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따뜻해…. 게다가 달아.’
커피에는 약간의 꿀이 들어갔는지 더 향긋하고 달달했다.
그리고 따뜻한 음료가 차가워진 몸 안으로 들어가자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 대체 얼마 만이지….’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 매번 몸과 마음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다 보니 이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낸 게 언제인지 잊었을 정도였다.
신기하다.
분명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가 내민 커피 한 잔에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랑 같이…. 그건 정말 고생 많으셨겠네요.”
“아뇨, 서호 씨도 그렇고 다른 분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요.”
“그럴 리가요. 제 한 몸 지키기도 힘든 세상인데 아이를, 그것도 다섯이면 전혀 다르죠.”
이후 이서호가 나눠준 식량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중 아이들을 지켜온 이야기를 듣자 이서호는 눈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감탄했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해 해왔던 것인데.
그레이스는 그동안 힘겨웠던 일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쑥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홀짝이는데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이서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그레이스 씨만 괜찮으시면요.”
그는 지금까지 짓던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혹시 제가 지내는 곳에서 함께 지내시지 않으시겠어요?”
“……네?”
생각지도 못한 제안.
그야 그의 말대로 이렇게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세상에 아이 다섯에 연약한 여자 하나를 데려간다는 건 그대로 짐을 떠안겠다는 뜻이니.
그렇기에 그레이스는 이서호에게 그런 기대를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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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구해주고 약간의 식량을 나눠준 것에 충분히 감사할 뿐이었는데.
“그, 그래도 괜찮으세요?”
“네, 사실 저희 거점에는 식량이 풍족하거든요. 여섯 명 정도는 여유롭습니다.”
“정말요…?”
기적같이 달콤한 그의 말.
그 감사한 제안에 그레이스는 순간 감정이 차올라 눈물이 맺혔다.
“흐윽,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서호 씨…! 서호 씨는 주님이 주신 은혜가 분명해요…!”
서슴없이 그녀를 도와주겠다는 이서호의 모습은 그녀에겐 천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서호는 그녀의 말이 부담스럽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거창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연히 아무 대가도 없이 그레이스 씨를 데려가는 게 아니니까요.”
식량과 거처를 제공하는 대신 대가를 받겠다.
하지만 그 제안에 그레이스는 활짝 미소 지었다.
“네, 그럼요! 당연하죠! 저도 염치없이 공짜로 식량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청소든 빨래든, 하물며 막노동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다.
그야 이서호가 아니라면 이후로도 막막한 상황 뿐이기에.
이서호가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이 뒤에도 오늘 찾은 통조림을 다 먹으면 다시 목숨을 건 탐색을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해 그녀가 죽으면 아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런 외줄에서 구해준 이서호에게 그녀는 한없이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웃으며 해 보이겠다.
그게 굶주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덜 힘들 테니.
。 。 。
“언니―!”
“누나―!”
해가 뜨고 아직 이른 아침.
이서호는 타고 왔던 승합차에 그레이스를 태우고 그녀가 지낸다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가자 그레이스에 대한 걱정으로 잠도 자지 않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전부 그녀에게 안겨 들었다.
식량에 대한 것보다 그레이스가 무사하다는 것에 기뻐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서호는 평소 그레이스가 아이들을 얼마나 소중히 대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얼른 짐부터 챙길까요?”
이서호는 감동적인 재회를 마무리 중인 그레이스에게 다가가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그제야 이서호의 존재를 눈치챈 아이들이 지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짐…?”
“언니, 이 아저씨는 누구예요?”
이후 그레이스는 아이들과 함께 조촐한 짐을 챙겨 이서호의 차량에 탑승했다.
이서호의 승합차는 좀비가 없는 안전한 길만을 골라 편안하게 달려갔다.
그 모습이 그레이스는 무척 신기했다.
어떻게 이 정도로 좀비가 없는 곳만 골라서 가는 걸까.
자신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면 식량을 찾는 게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렇게 이서호에게 다시 경이로움을 느끼며 오랜만의 드라이브를 즐긴 그녀는.
곧 도착한 백화점을 마주하고는 지금껏 느낀 것과 차원이 다른 놀라움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서호는 그레이스와 아이들을 4층 주차장을 통해 백화점 안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3층으로 내려가 이서호의 생활 공간을 보여줌과 함께 그의 여자들을 소개했다.
그레이스는 가장 처음 밝은 조명과 커다란 티비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전기가….’
좀비 사태가 터지고 전기가 끊긴 것은 한참 전의 일.
그런데 이서호의 그룹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전기를 마음껏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놀란 것은.
“아저씨! 어라…? 새로 데려온 분들인가요?”
“아이들도 있네? 현서가 좋아하겠다.”
“역시 서호 오빠…. 상냥해요.”
이서호처럼 깔끔한 외모에 아름다운 여자들.
하나같이 일반인을 넘어선 예쁜 사람들만 잔뜩 모여 있었다.
그리고 다들 이서호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걱정이나 근심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후 그레이스는 이서호를 통해 일행들을 소개받고.
“그럼 우선 샤워부터 하시겠어요? 그동안 식사 준비를 할 테니까요.”
“…네? 샤워요…?”
그의 제안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이서호가 안내해 준 말도 안 되는 공간으로 답을 받았다.
“여, 여기 이거…. 모, 목욕탕이에요?”
“편하게 쓰세요. 샴푸나 바디워시는 저쪽에 있고 수건은….”
그레이스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목욕탕을 보고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죽을 때까지는 보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
특히 따뜻한 물이 넘치는 욕조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었기에.
그레이스와 아이들이 모두 함께 들어가도 넉넉한 욕조.
“하아아….”
몸을 깨끗하게 씻고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자 이완되는 근육들과 함께 황홀한 감각을 느꼈다.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꺄르륵 거리는 모습과 함께 어쩌면 좀비 사태가 꿈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
그리고 놀라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지 모를 깨끗하고 향긋한 감각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그레이스.
이서호는 그녀가 욕실에서 나오자 곧바로 5층으로 안내했다.
5층은 남성 의류코너로 이서호는 5층의 한 공간을 깔끔하게 비워 소파나 침대 등으로 채워뒀다.
“저, 정말 여기서 지내도 괜찮나요?”
“네, 어차피 아무도 안 쓰는 층이니까 편하게 지내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고요. 마지막으로 식사 말인데….”
그동안 지내던 성당과 달리 깨끗하고 아늑해 보이는 5층의 공간.
심지어 3층에서 전기를 끌어와 간단한 전자제품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아, 마침 오네요.”
아이들이 자신의 침대를 정하며 해맑게 장난을 치는 사이 이서호는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곳에서 좀 전에 유하연이라 소개받은 여성이 은색 카트를 밀며 다가왔다.
“배고프시죠?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혹시 부족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네? 어? 이, 이거….”
“와아! 밥이다!”
“김이 모락모락해!”
그녀가 가져온 것은 이서호가 좀 전에 말했던 식사였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그녀가 생각했던 식사란 단순한 통조림이나 크래커 등의 과자 종류였는데.
유하연이 가져온 카트에는 무려 김이 피어오르는 김치찌개와 각종 나물 반찬. 그리고 따뜻한 밥과 계란프라이가 있었다.
아이들의 음식 취향을 모르기에 한국인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조합을 준비한 듯 보인다.
‘심지어 돼지고기까지 들어가 있어….’
대체 어디서 이런 재료들을 구한 것일까.
그레이스는 놀라움을 떠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전기라면 태양광 발전 같은 것도 있으니 이해할 수 있고 수도도 전기가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음식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밑반찬으로 나온 음식들 모두 통조림 따위가 아닌 금방 만든 신선한 음식들이었다.
이제는 정말 이서호가 하늘이 보내준 천사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기적.
대체 이걸 기적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적일까.
“저, 서호 씨….”
식사를 마친 후 지친 아이들을 재운 그레이스는 조심스럽게 이서호를 불렀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건네준 무전기를 통해 그를 부르자 그는 친히 5층으로 올라와 주었다.
이후 두 사람은 아이들이 자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그런 이서호를 마주한 그레이스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그를 조심히 바라봤다.
오늘 그에게 받은 것들.
안전하고 깨끗한 거처에 따뜻한 욕조, 거기다 신선한 음식들까지.
그 모든 것을 대접받은 그레이스는 이제 감사함보다는 두려움이 얼굴 위로 떠올랐다.
멸망한 세상에서 이 정도로 윤택한 환경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이 모든 은혜를 고작 노동 정도로 갚기엔 그녀의 양심이 너무 가책을 느끼기에.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저랑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귀한 공간에 귀한 음식들까지.”
부담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은혜지만 우선 그레이스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저, 그, 그런데 이런 것들을 선뜻 받아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이서호에게 그럴 능력이 있고 풍족한 자원이 있다고 하지만.
좀비로 멸망한 세상에서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귀한 것이었다.
어제 우연히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쉽게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레이스의 걱정 섞인 말에 이서호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부담 느끼지 마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공짜로 드리는 게 아니라고.”
“네, 당연히 해주신 만큼 열심히 일해서 갚겠지만. …도저히 노동으로 은혜를 갚기에는 해주시는 것들이….”
부담을 느끼지 말라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그레이스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고.
이서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뭔가 조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네? 어떤….”
“제가 그레이스 씨에게 바라는 대가요. 저는 그레이스 씨를 일 시킬 생각이 없거든요.”
“그,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은혜를 갚기가…!”
“걱정하지 마세요. 그레이스 씨는 제가 드린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제게 제공하실 수 있으니까요.”
걱정 서린 얼굴로 다급히 말하는 그레이스를 손짓으로 진정시킨 이서호는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온화해 보이는 그의 미소에 도리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이서호는 순진한 그레이스의 표정을 보곤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멀뚱히 그를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뒤로 살며시 다가가.
그레이스의 가냘픈 어깨에 슬쩍 손을 얹었다.
남자의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어깨를 덮자 그레이스는 순간 움찔 놀라곤 이서호를 올려다봤다.
“서호 …씨?”
왠지 지금까지 봐왔던 미소와는 어딘가 다른 음흉해 보이는 그의 눈빛.
몸을 핥는 듯한 그의 눈빛에 그레이스는 본능적으로 눈동자를 떨었다.
“흐읏…!”
그저 아무것도 아닌 어깨를 매만질 뿐인데.
그레이스는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발그레 붉어져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어째서인지 머릿속에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의 신도를 유혹하는 악마는.
언제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그 이야기가 떠오른 그레이스는 도망칠 수 없게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는 이서호를 보며.
어쩌면 그는 신이 내려주신 은혜가 아니라.
신이 내려주신 시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그의 유혹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