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In The Post-Apocalyptic Zombie World RAW novel - Chapter (71)
좀비세상 속 사령술사가 되었다 71화(71/98)
내가 도와줬던 아저씨의 이름은 박병석이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박사장이라 불리는 이 하급 노예 아저씨를 도와준 덕분에 나는 첫날부터 노예 동료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매료의 마안의 호감도 버프 덕도 있겠지만.
“자네는 팬데믹 이전에는 뭘 했었나?”
“그냥 대학생이었습니다. 별로 특별할 거 없었어요.”
“이야, 나는 일을 잘 하길래 분명 현장밥 좀 먹어본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 친구야, 원래 대학물 먹은 놈들이 머리가 좋아서 일을 더 잘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은 내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분명 박 아저씨를 도와준 효과도 있겠지만.
‘묘하게 어디서 느껴본 분위기인데.’
오전 업무를 끝낸 점심시간.
우리들은 각자에게 배정받은 자그마한 식량을 후딱 먹고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아 잡담을 나눴다.
그런 무리 속에서 사람들은 내게 상당히 친절하고 서슴없이 다가왔다.
조금 전에 친해진 김태영과는 사뭇 다른 거리낌 없는 감각.
그 정체를 깨달은 건 옆에서 떠들던 어느 아저씨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래도 서호 같은 친구가 이렇게 들어온 것도 전부 교주님의 덕이지. 허허.”
그건 바로 광신도 같은 교주의 찬양.
그는 남자를 배척하고 자신들을 최하위 노예로 부려먹는 교주를 칭송하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그 얘기에 주변의 다른 남자들도 인상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건 그거구나.’
그제야 나는 묘한 기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흔히 도심에서 길을 걷다 갑작스레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흔히 있지 않은가, 도를 아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남녀들.
그들은 언제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하다.
사이비 특유의 친절함.
이들도 종교라는 소속감 안에서 같은 동료들에게 한없이 친절하며.
새롭게 들어온 나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친절히 다가왔다.
즉, 이들도 이곳의 여자들과 다름없이 사이비에 빠져든 종교인인 셈.
하지만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광신도적인 대화 주제나 기묘한 미소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오히려 나에겐 잘된 일이니까.
‘이러면 좀 더 수월해지겠어.’
원래 무언가를 심취해서 믿어본 사람이 다시 무언가를 믿기도 쉬우니.
“아, 저 잠시 화장실 좀….”
“어어, 그래그래, 다녀와.”
나는 기회를 봐서 슬쩍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일단 친해지는 건 클리어…. 그럼 이제 문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턱을 짚으며 생각에 빠져 걷던 중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윤지혜.
그녀는 동그란 눈매를 불만스럽게 찡그리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지만 피하지도 않고 유심히 나를 바라본다.
“하, 하하….”
그에 나는 일부러 바보 같은 웃음을 내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윤지혜는 그제야 살며시 눈을 피했다.
‘남은 건 저년을 어떻게든 하는 건데.’
그냥 밤에 기회를 봐서 확 덮쳐버릴까.
그런 고민을 하던 도중.
“어이!”
“억.”
투욱.
누군가 살갑게 나를 부르며 내 어깨에 자신의 몸을 부딪쳐 왔다.
그 정체는 바로 김태영.
조금 전에 친해졌던 동갑의 남자였다.
“화장실? 같이 가자.”
“아니, 여자애들도 아니고.”
“뭐 어때. 간만에 또래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김태영은 여전히 특유의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따라온다.
뭐지?
이놈 같은 성격이면 저기 모닥불 주변을 둘러싼 노예들의 중심에서 웃고 떠들고 사람을 끌어모을 텐데.
유독 나에게 집중하는 듯한….
그리고 그 이유는 노예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들을 수 있었다.
“너 …딱히 이 종교에 믿음은 없지? 여기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온 거고.”
헤실거리며 사람 좋은 미소만 짓던 그가 날카롭게 관통하는 추측을 내뱉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김태영은 씨익 웃어 보였다.
이런 놈들이 의외로 눈치가 좋다니까.
그보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야 너, 조금 전에 받은 배식을 불만스럽게 보기도 했고, 일할 때도 묘하게 주변을 살핀단 말이야.”
“너 무슨 홈즈라도 되냐? 그보다 왜 그렇게 주의 깊게 살펴보는 건데? 좀 징그러워….”
나는 진지하게 질색했다.
남자에게 주시받는 건 상당히 기분이 거시기 하기에.
특히 악감정이 아닌 호감의 관심은 더더욱.
…설마 그래서 화장실?
“미쳤냐?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김태영은 볼일을 마친 뒤 말을 끊고 잠시 조용히 손을 씻었다.
마치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듯 등을 돌리고 손을 털며 뜸을 들이다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나도 여기에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온 거야. 목적만 달성하면 여길 나갈 거고.”
그 대답은 상당히 의외인 것이었다.
“…목적이면 조금 전의 그 사진?”
“맞아, 걔를 찾으러 여기에 왔어. 온 건 일주일 정도 전에.”
과연, 여기로 함께 와 헤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이곳으로 온 여자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화장실을 나와서도 잠시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걔는 누군데? 여자친구야?”
“그런 거 아니야. 물론 그 정도로 소중하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거든.”
이른바 소꿉친구라는 것이었다.
김태영은 이후 자신의 사정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우리는 여기서 좀 떨어진 K중학교에 지내던 생존 그룹이었어.”
K중학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중학교야 널리고 널렸으니 당연한가. 나중에 이아린에게 위치를 물어보자.
“거기서 나름 사람들이랑 힘을 합쳐서 잘 지내고 있었거든. 어떻게 안정적인 식량을 얻을 방법도 찾았고.”
“안정적? 무슨 수로?”
“우연히 식량이 가득 담긴 트럭을 찾았거든. 두 대나. 게다가 농작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감자 같은 것도 키워보려고 시도 중이야.”
그 대답에 나는 상당히 놀라워했다.
분명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몇 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농작물을 재배할 정도라면 거의 정착했다고 해도 좋을 수준.
좀비에 대한 방어책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어쩌면 김태영의 그룹은 이 좀비 세상에 처음으로 적응하는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나나 교주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
“어쨌든 학교에서 잘 지내던 도중인데. …잠시 탐색을 나간 사이에 그 애가 이곳으로 끌려왔어. 그래서 찾으러 온 거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김태영은 나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잠입한 침입자였다.
‘보아하니 이 녀석이 중학교 그룹의 리더로군.’
그건 이야기를 듣자 곧바로 알아챘다.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사회성, 속마음이나 의도를 곧바로 알아채는 눈썰미.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용감함.
리더의 자질을 잘 갖춘 남자.
흔히 이런 아포칼립스 창작물의 주인공을 할 법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해? 내가 일러바칠지 어떻게 알고?”
“푸핫! 네가? 좀 전에 맞을 각오로 처음 본 아저씨를 지키려 달려든 네가?”
김태영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친근하게 웃어댔다.
“미안하지만 난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 너는 그럴 놈이 아니야. 그래서 얘기한 거지.”
사람 보는 눈이 좋다, …라.
‘이게 틀린 건지 맞는 건지.’
일러바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굳이 이곳에 침입자가 있다는 예시를 남기고 싶지 않으니.
다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 착한 청년으로 봤다면 그 눈은 놀라자빠질 정도로 틀렸다.
나는 이득이 없었다면 오늘 처음 본 그런 아저씨 처맞든 말든 그냥 두고 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꼭 걔를 발견하면 나한테 알려줘. 이름은 차혜연이라고 해.”
“…그래, 알겠어.”
그래도 이 녀석의 이 따뜻한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만약 …기숙사가 아니라 나도 이 녀석이 있는 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작 잠깐 봤을 뿐인 녀석이지만.
아마 이 녀석은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며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도 살아갈 길을 찾는 이정표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나도 함께 따라갔다면.
‘…그럼 이런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못 했겠지.’
바보 같은 가정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내 상황이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일이 끝나면 백화점으로 초대나 해볼까.’
나라고 꼭 내 밑에 깔려 앙앙거리는 여자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녀석이라면 친하게 지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교주의 일이 끝난다고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무리를 짓고 교류하며 살아가는 종족이다.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했을 때 김태영의 그룹과는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오후도 힘내 보자고!”
돌아간 이후 왠지 파이팅이 넘치는 김태영은 사람들의 중심에서 내 팔을 들어 올리며 의욕을 끌어올렸다.
‘그럼… 이 녀석의 일도 도와주려면 어쨌든 내 일을 진행해야 하니.’
나는 팔을 붙들린 채 억지로 손을 들어 올리고서 눈으로는 이곳을 지켜보는 감시자를 바라봤다.
윤지혜.
묘하게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여자.
일단 저 여자부터 해결한다.
。 。 。
늦은 밤.
호텔의 2층, 주로 관리직을 맡은 여자들이 잠을 자는 숙소.
방은 차고 넘치기에 관리자들은 모두 각자 하나의 방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야간근무가 비번이었던 윤지혜는 자신의 방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려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서호.’
속옷 차림으로 잠옷을 유심히 바라보던 윤지혜는 문뜩 떠오른 한 노예의 이름을 되뇌었다.
‘첫날인데 벌써 사람들이랑 엄청 친해졌었지.’
이상할 정도로 계속 머리에 맴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취향이었던가?
‘아냐, 남자는 역겹고 다 쓰레기야.’
잠깐 든 헛생각에 윤지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스물 하나인 젊은 나이지만 그녀는 남자가 싫었다.
어릴 적부터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보 같고 난폭했으며 성격이 나빴다.
친구끼리도 서열을 정하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밑에 두고 깔보고.
무슨 일만 있으면 폭력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야만적인 것들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취향이라니.
윤지혜는 어릴 적부터 봐왔던 남자 학우들 때문에 남자와의 교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평생 여성 친구들이나 언니 동생들과 함께.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나름 예쁜 얼굴을 살려 항공과에도 지원했다.
물론 좀비 사태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지만.
‘어쨌든 이건 아니야. 이건 좀 더 다른 감정….’
윤지혜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다.
이건 호감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닌.
‘그래, 단순히 존경 같은 거야. 생각해봐. 누가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지키려 들어? 그건 숭고한 행동이야.’
어라? 그런데 그건 내가 생각하던 남자랑 다른데.
윤지혜는 자신을 설득하는 생각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부정하는 의견을 내뱉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억지 부정으로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이익…!”
그렇게 머리를 헝크리며 어떻게든 잡생각을 날려버리려던 그때.
━똑똑.
누군가 그녀의 방 문을 노크했다.
[ 지혜야. 자니? ]목소리를 듣자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노예 교관으로 근무하는 홍시은 선배.
윤지혜와 이곳에서 꽤 사이가 좋으며 그녀가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네, 네! 언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에 윤지혜는 다급하게 잠옷을 입고는 서둘러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얼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자.
“짜잔!”
홍시은은 날카로운 얼굴 답지 않게 아이처럼 미소 지으며 윤지혜의 얼굴로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어? 언니, 이건….”
“굉장하지? 우리 고생한다고 교주님이 내려주셨어. 내일 오후 근무지?”
그건 술이었다.
그것도 그냥 술이 아닌 과실주.
여자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종류의 술이었다.
꿀꺽.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 술의 자태에 윤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고.
“오늘 한 번 회포나 풀까?”
능글맞게 미소 짓는 홍시은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마실 수 있는 술.
그녀도 한창 술자리를 즐길 젊은 나이였기에 좀비 사태로 마실 수 없는 술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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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주님의 은총으로 술을 받다니.
이걸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자, 잠시만요! 얼른 테이블 정리할게요!”
“응, 천천히 해. 우리도 정리해야 하니까.”
“…우리요?”
홍시은의 말이 무언가 걸린 윤지혜는 그녀의 말을 되물으며 고개를 돌렸고.
“아, 잠깐 도우미 좀 불렀지. 들어와.”
그곳에는.
“실례하겠습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을 자꾸 어지럽히던 그 인물.
이서호가 여러 가지 맛있는 안주들을 한가득 들고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