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In The Post-Apocalyptic Zombie World RAW novel - Chapter (81)
좀비세상 속 사령술사가 되었다 81화(81/98)
교주는 애써 잠이 든 후 아침에 깨어나서도 찜찜한 기분은 여전했다.
“교주님…?”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녀 신도.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앉아있는 교주를 불안한 눈으로 응시하며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불쾌해.’
교주는 심통이 나 있었다.
곰곰이 곱씹고 있던 것은 어젯밤 관리 시중을 받던 여러 장면.
잠이 들기 전에는 몸에서 느껴지던 그 손길만 떠올리느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만 보니 결국 그 남자 노예….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교주는 이를 앙 물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시녀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교주님! 제, 제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일까요?”
“…….”
잠에서 깨어난 교주가 심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시녀는 그것이 자신 탓이라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녀의 고충도 모른 채.
교주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젯밤 미묘한 미소로 마사지하던 이서호의 얼굴뿐이었다.
‘감히 내가 발언을 허락했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해?’
뭔가 있을 것이다.
뭐라도 말할 것은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 해 ‘여긴 괜찮습니까.’ …라거나, ‘어디가 좋으십니까.’ …같은.
그런 시답잖은 물음도 해도 괜찮았다.
‘목소리 내는 게 그렇게 힘든가?’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얄궂게도 그의 마사지는 너무나 상냥하고 기분 좋아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
‘…아니면 어디서 사셨냐, 원래는 뭘 했냐 라거나. …물어볼 건 많잖아.’
사실 교주 자신도 알고 있다.
이미 그녀가 그와의 첫 만남부터 ‘허락 없이 발언 금지’라는 명령을 하였기에.
설령 발언 허가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런 친근한 질문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으득….
“히이익…!”
교주는 심통이 났다.
“시녀장을 불러오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처음 보는 교주의 짜증스러운 모습에 시녀는 다급하게 방을 나가 시녀장에게로 향했다.
이후 교주는 시녀장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밤 관리 시중은 새로 들어온 그 남자 노예에게 전담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하지만 그는 남자인데 괜찮으신가요?”
“그자가 실력이 가장 좋더군요. 어차피 남자는 무기질적인 도구나 다름없으니 상관없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시녀장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아침 준비를 도운 뒤 자리를 물러났다.
‘흥, 어디까지 다물고 있을지 두고 보자고.’
교주는 방의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멸망한 도시를 바라보며 이서호를 떠올렸다.
이대로 넘어가기엔 그녀의 짜증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서호는 매일 밤 그녀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개꿀이네.’
시녀장의 지시를 전달받은 이서호는 고개를 숙이곤 남몰래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짜증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않은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우선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는 조심스러움이 생각 외의 이득을 낳았으니.
그날 밤이 되자 이서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여러 도구를 가지고 교주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교주님,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오세요.]허락이 떨어지자 이서호는 조심히 방문을 열고 촛불의 은은한 불빛이 일렁이는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
교주는 저번과 같은 의자에 앉아 가운을 입은 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와 있었네.’
이서호는 근처에 도구를 정돈해 두고 우선 그녀의 뒤로 다가가 어제처럼 젖은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말려갔다.
능숙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도중.
“…흠, 흐흠.”
갑자기 교주가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을 내뱉었다.
‘…뭐지?’
어제는 이러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잠이 들었었는데.
이서호가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교주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바라봤다.
“심심하네요.”
“…네?”
“지루하다고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니 굉장히 지루하네요.”
“아, 죄송합니다. 금방 말리도록 하겠습니다.”
“…읏, 그, 그게 아니라.”
속도를 높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이서호는 당황하는 교주를 보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며시 보이는 젖은 머리카락 속 그녀의 새하얀 귀는 약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눈치껏 뭐라도 얘기할 텐데….’
평소에는 그리 눈치가 빠르던 그가 이번만큼은 이토록 감이 없기에 교주는 다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괜히 급히 하다가 실수하지 말고. …적당히 아무거나 이야기해보세요.”
“……이야기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견문이 짧아서 교주님이 즐거우실 법한 이야기는….”
“으읏, 누, 누가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라 했나요? 그냥 대충 당신에 관한 이야기로도 충분합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이서호는 붉어진 교주의 귀를 거쳐 살며시 떨리는 그녀의 뒷머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갑자기 내 이야기를 하라고? 대체 뭐지….’
혹시나 자신을 의심하는 것일까, 잠시 의심이 들었지만 뒷모습으로도 보이는 그녀의 당혹감에 의심은 곧바로 사라졌다.
‘그게 아니라면 흠…. 일단 적당히 아무거나 말해볼까.’
당연하지만 백화점에 관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만에 하나 그녀가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으니 되도록 조심히 주제를 골라야 했다.
‘…뭐, 재밌을 법한 이야기는 이거 밖에 없나.’
잠시 고민하던 이서호는 얼마 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밌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어느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기숙사인가요.”
“네, 역시 흔한 이야기라 좀 그럴까요?”
“아뇨, 계속하세요.”
교주는 그 주제가 나쁘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의 이야기라.’
호기심이 생겼다.
왠지 전혀 모르는 그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에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처음 듣는 판타지 동화를 읽어줄 때와 비슷한 기분.
그런 설레는 마음으로 교주는 발을 휘적거리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녀는 다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곳에서도 노예였습니다.”
담담하게 시작한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
그렇기에 그녀는 설레며 흔들던 다리를 멈춰버렸다.
“이곳에 다른 남자분들과 하는 일은 별다를 것 없었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궂은일을 저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을 빼면요.”
그가 말하는 내용은 분명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일일 텐데도.
그의 목소리엔 어떠한 원망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교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과거 아버지를 통해 남자라는 종 자체에 체념한 기분.
남자란 원래 그러하다.
비슷하게 그도 자신을 노예로 부리는 그들을 향해 ‘저들은 원래 저런 것들이다.’ …라는 체념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리라.
“어째서죠…?”
“네?”
“당신이 어째서 그곳의 노예가 된 거죠? …뭔가를 했나요?”
대체 뭘 했길래 황매교도 아닌 일반 대학 기숙사에서 노예가 되었을까.
역시 남자라는 종답게 뭔가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었을까.
“하하, 뭘 하긴 했죠. 저희 기숙사는 특이하게 군부대 하나와 함께 지냈거든요.”
“그럼 …혹시 그 군인들과.”
“네, 군인 몇이 학교 동기를 덮치려고 해서 그걸 말리다 찍히게 됐습니다.”
“…….”
예상대로 남자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그런 남자들을 말리다 그런 처지가 된 것이었다.
사실을 듣고 나자 교주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의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어째서인지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기분은 이서호가 그녀를 마사지해줄 때와는 다른 뜨거움이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옅은 분노.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함께 생존하던 대학교수님이 사람을 밤중에 몰래 모았습니다. 이유는 점점 선을 넘는 군인들을 몰아내자는 내용이었고요.”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교주는 순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기대감으로 차있었다.
“쿠데타군요! 군인들을 몰아낸 거죠?”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 기숙사가 아닌 이곳에 있지 아니한가.
힘을 합쳐 군인들을 몰아내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게 아닐까.
그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이서호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빗질했다.
“아뇨, 실패했습니다. …아예 시도도 못 했어요. 중간에 들켰거든요.”
“네? …어, 어째서죠?”
“으음…. 조금 바보 같을 수도 있는데.”
이서호는 부끄러운지 눈을 피하고 볼을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기숙사에 제가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저희 쪽에 합류했습니다.”
“……읏.”
이어지는 말에 교주는 움찔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하하, 그런데 그 여자애가 사실 중대장이랑 몸을 섞는 관계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낌새를 눈치채고 염탐하러 온 거였죠.”
“…네?”
“결국 작전은 바로 전날에 들켜버렸고 …그래서 실패했던 겁니다.”
“그럼 그대로 노예로 지냈던 건가요? …좋아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아뇨, 그럴 리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교주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고개를 돌리자 마주치는 이서호의 눈.
그는 살짝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는지 평소 명랑했던 그의 눈빛은 어둡고 칙칙하게 바뀌어 있었다.
“본보기로 한 명을 처형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투표로 뽑힌 게 만만했던 저였고요.”
무척이나 차갑고 담담한 그 이야기에 교주는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 감정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과거를 알게 된 그녀는 이서호에게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 잘 도망쳐서 여기로 들어오게 됐으니 저로서는 행운이었죠. 하하, 나름 해피엔딩이네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교주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이서호의 모습.
하지만 교주는 살며시 느껴졌다.
아직 저 안에 자리 잡은 그 당시의 상처와 공포들.
그리고 그런 연약한 남자의 일면을 본 교주의 마음속에서는.
여성의 본능이 만들어내는, 흔히 ‘모성애’라 불리는 것이 솟아났다.
‘그런 일이….’
교주는 지금까지 정체 모를 두근거림만 느끼던 이서호에게 측은지심이 더해졌다.
노예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옅은 분노를.
도중에 기숙사의 여자애 대해 들었을 때는 작은 통증을.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자 정체불명의 마음이 솟아나며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교주는 이내 손을 꽉 쥐고는 태연한 척 얘기했다.
“흥, 그래도 이젠 제 전속 노예니 그때랑은 차원이 다른 평화를 누리겠군요.”
“네, 정말 잘 됐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뭔가 필요한 건 없나요?”
“……네?”
“읏, 그, 그러니까. …좀 먹고 싶은 거라거나. …가지고 싶은 거라거나.”
교주는 태연한 척 얘기하면서도 자신이 뭐라 떠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에겐 뒤통수만 보여서 망정이지.
아마 정면에 있었다면 볼을 붉히고 눈을 빙글빙글 돌리는 그녀를 마주했을 것이리라.
‘왠지 뭐라도 해주고 싶어.’
정체 모를 마음속 감정.
그 감정은 당장 저 남자를 행복하게 만들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를 걱정하고 챙겨주며 기쁨을 느끼라고 그녀를 자극했다.
‘…왜 이러지?’
다만 귀만 빨간 교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서호는 의문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자신의 이야기가 꽤 안타깝기는 하지만.
애초에 그녀 본인이 남자들을 과거의 이서호처럼 부리는 중일 텐데.
‘어쨌든 원하는 거라.’
진심으로 들리는 그녀의 말에 이서호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그에게 필요한 건 전혀 없다.
그는 풍족한 식량도, 아늑한 집도, 어여쁜 여자들도 잔뜩 있으니.
‘내 여자가 되라 …같은 건 안 통하겠지.’
결국 유일하게 떠오른 헛생각에 이서호는 교주 몰래 피식 웃더니 대충 입을 열었다.
“그럼 …실례가 아니라면 교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제 이야기요?”
딱히 가지고 싶은 건 없으나, 이서호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보니 문뜩 이서호도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애초에 그에게 교주는 그저 미친 광신도 집단을 이끄는 사이비 교주일 뿐이기에.
그런 그녀의 개인사에 꽤 흥미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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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저에 대해 …궁금한 건가요?”
“네, 괜찮으신 선에서 들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주는 이서호에게 등을 보인 채 그 몰래 살짝 미소 지었다.
‘내게 부탁하면 정말 뭐든 얻을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이서호의 사정을 모르는 교주의 입장으론 그는 무려 많은 식량이나 좋은 대우 등 여러 가치 있는 것 중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원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 한 것이다.
‘흐음…. 그렇게 내가 궁금한가?’
교주는 살짝 볼을 붉히고 검지로 머리카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럼 뭐…. 저도 간단하게 이야기해 드리죠.”
이후 교주는 그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녀도 그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특이한 좀비에게 물려 특별한 힘을 얻은 것은 이야기할 수 없으니.
되도록 황매교를 설립한 이야기는 빼고 말해야 했다.
그렇기에 남은 것은.
그녀의 어두운 과거사뿐.
‘…실망하는 건 아니겠지?’
이야기를 시작하며 교주는 약간의 걱정에 사로잡혔다.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외도를 통해 태어난 여자란 걸 …말해도 괜찮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의 어두운 사정까지 그가 들어주길 원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가 그 사정을 듣고 그래도 그녀를 이해해주길 원했다.
그렇기에 교주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륜으로 자신이 태어났고.
아버지의 원래 아내가 사고로 죽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된 것.
그러며 그녀는 처음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풍족하지만 아버지 답지 않은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온 것.
그리고 다시 외도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본 것.
그렇게 그녀가 자라온 이야기를 그녀도 이서호처럼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얘기했다.
그리고 이후 유학을 떠나 한국에 온 것까지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
“…….”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뭐지?’
그 반응에 교주는 살짝 불안함이 솟아났다.
어째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지금 대체 무슨 얼굴을 하고 있지?
자신은 조금 전 그가 이야기할 때 다양하게 맞장구를 쳐줬는데.
이서호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실망한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교주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껴져왔다.
그렇게 솟아나는 감정이 터질 것 같을 때.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이서호가 긴 침묵 끝에 조용히 목소리를 내었다.
“……어?”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런데도 이렇게 의젓하게 잘 커 주셨습니다.”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볼을 붙이며.
그녀를 뒤에서 상냥하게 안아주었다.
두근, 두근.
따뜻하고 넓으며 단단한 그의 품.
교주는 살며시 손을 올려 그의 두꺼운 팔뚝을 매만졌다.
‘……아, 그렇구나. …이거구나.’
조금 전 눈시울을 붉혔던 어두운 감정이 전혀 다른 따뜻한 감정으로 바뀌며 다시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제는 코끝까지 살짝 붉어진 교주는.
살며시 손을 얹었던 이서호의 팔을 꼭 붙잡았다.
‘나는 이런 걸 원했구나.’
어릴 적부터 가슴 속에서 느껴지던 기묘한 공허함.
그녀는 그 정체가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를 만나며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외면한 아버지를 보고.
그녀는 그 모습에 남자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건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깃든 것이 아닌.
아무것도 없어 텅 빈 공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지금 이 순간 살짝 채워짐으로.
교주는 자신의 마음속 결핍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롭고도 따뜻한 감각에.
교주는 울먹이는 눈으로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붙인 이서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파파.”
“……네?”
“……에?”
정말 자신도 모르게 말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