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8)
Chapter 227 – 227. 엘레노아
“토벌 실패?”
소식을 전해들은 엘레노아는 헛숨을 내쉬었다.
방금 넷째 왕자인 레르훌타 제르만이 전해준 정보는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응, 토벌에 실패했다고 하더라고. 마수가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날래서 별 상처도 못 냈다고 들었어. 그래서 형들은 아버지한테 엄청 혼났고.”
단순히 혼났다라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세 사람이 이끌고 간 병사들의 목숨 값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가벼운 언사였다.
참고로 4왕자 레르훌타와는 한 살 차이였기에 친구를 하자며 말을 놓기로 했다.
“아버지가 직접 나서겠다고 말씀하시는 걸 가신들이 겨우 말렸다니까?”
엘레노아를 위해서 가져왔다던 과일을 본인이 씹어 먹으며 꿍얼거리는 레르훌타.
그는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모난 형들을 비판했다.
“매일 같이 훈련이랍시고 싸워대던 형들이 웬일로 합을 맞추나 했어. 아버지도 많이 실망하셨을 거야.”
‘그놈의 아버지.’
제4 왕자 레르훌타는 과할 정도로 자신의 아버지를 신봉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 마디 할 때마다 본인 아버지에 대한 반응을 곁들인다.
자신의 아버지인 라마훌 국왕을 향한 과한 충성심과 의존도.
그게 엘레노아가 본 레르훌타라는 남자였다.
“하아, 아버지께서 나도 형들이랑 같게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너도 말이야.”
찡긋 윙크하는 모습이 참으로 싫지만 어쨌든.
엘레노아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확인해보는 건 어때? 아마 국왕 폐하께도 왕자의 능력을 보일 기회인 것 같은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 * *
몇 시간 후.
찾아온 건 제1 왕자 라훌이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표정이 어두웠으며 이를 으득 물며 화를 내고 있었다.
“레르훌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가 엘레노아에게 찾아온 건가 싶었던 라훌.
실제로 레르훌타는 엘레노아의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형님?”
의아한 표정으로 장남을 바라보는 레르훌타. 하지만 라훌은 그를 보는 순간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크억!”
고개를 돌아가며 붕 떠오른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당황한 레르훌타는 어벙한 표정으로 외친다.
“무, 무슨 짓입니까! 지금 엘레노아 공주가 옆에 있지 않습니까!”
“닥쳐라! 감히 아버님께 나를 모욕해? 그렇게도 아버님께 잘 보이고 싶었나? 형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아니, 혀,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냥 마수를 토벌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왜 이번 토벌에서 실패한 이유를 굳이 짚어가며 말한 거냐! 내가 군을 통솔했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 그건.”
“덕분에 아버님이 나를 보시던 표정이 어땠는지 아느냐? 빌어먹을 놈!”
당장에 몇 대 더 후려치고 싶다는 표정의 라훌이었으나 옆에서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엘레노아와 눈이 맞더니 쳇 하고 혀를 차며 밖으로 나섰다.
타국의 공주 앞에서 보일 모습은 아니었으나, 그가 얼마나 감정적이며 자기 멋대로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빌어먹을.”
레르훌타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슬며시 훔치며 일어나서는 엘레노아에게 사과했다.
“못 보일 모습을 보였네.”
괜히 쓴웃음을 지으면서 레르훌타는 어색하니 뒷모습을 긁적인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라훌 님께서 저렇게 불편해하실 줄은 몰랐어. 내 잘못이야.”
왜냐면 레르훌타에게 대형마수 토벌 전략에 관해서 조언을 준 게 바로 엘레노아였으니까.
그리핀 왕국은 침략을 통해서 덩치를 불려갔다. 이는 단순히 원주민뿐만이 아니라 마수들의 상대도 자주 해왔던 탓에 대형마수를 상대하는 전략도 여러 가지 있었다.
사하르 사막처럼 마수조차 살아남기 힘든 장소에서 살아온 제르만 왕국과는 쌓아온 경험이 달랐다.
엘레노아의 사과에 레르훌타는 진심으로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크게 휘젓는다.
“아냐. 덕분에 아버지에게 인정도 받았고, 다음 토벌에서는 나도 불러주실 것 같아. 네 덕분이야.”
그리핀 왕국의 마수토벌 전략 중 하나를 떼어준 것이기에 레르훌타는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엘레노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위험하지 않을까?”
“응?”
“내가 말해준 방식은 마법과 더불어 다소 숙련도가 요구되는 방식이야.”
“…….”
“네가 동행한다면 작전의 발안자로서 주도적으로 작전을 지휘해야 할 텐데 아직 전장 경험도 없는 네가…….”
그 말에 레르훌타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 * *
“하하, 이거이거. 너무 부끄럽네.”
방에 놓인 포도를 먹으며 2왕자 레훌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레훌 역시 1왕자 라훌, 3왕자 세르훌과 함께 마수토벌에 참가했다가 실패하고 왔음에도 표정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너를 다시 그리핀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얘기했는데 실패했어. 미안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2왕자 레훌.
구름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안에 담긴 탐욕을 엘레노아는 읽고 있었다.
“아버지가 꽤나 화가 나셨어. 게다가 넷째인 레르훌타가 라훌 형님의 작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짚은 것 때문에 형님 위치도 말이 아니지.”
이야기를 듣던 엘레노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형제분들끼리 사이가 좋아 보여 보기 좋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냐며 레훌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엘레노아는 자신이 봤던 광경을 떠올리며 답했다.
“1왕자인 라훌 님께서 확실히 화를 내셨지만 그래도 4왕자인 레르훌타와 화해를 하셨거든요.”
“……화해를 했다고?”
“네, 그래서 레르훌타는 다음 토벌에 굳이 참여하지 않기로 하셨어요. 라훌 님께서 다시 국왕 폐하의 신뢰를 쌓아야 하니까요.”
“…….”
“차기 후계자이시니 당연하겠죠.”
그런 건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엘레노아를 바라보는 2왕자 레훌.
어느새 그의 여유롭던 표정은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아하하, 그래. 그랬구나? 몰랐네.”
“제 방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
“하지만 조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엘레노아는 근심이 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장남이신 라훌 님께서 조금 과하게 감정적인 경향이 있으시더군요. 이웃나라의 공주인 제 입장에선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인접한 타국의 후계자가 감정적인데다가 여성도 밝힌다.
엘레노아의 입장에서는 썩 좋게 보이진 않을 것을 그나마 포장해서 말하고 있다는 걸 레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레훌 님은 참 부드러운 분이십니다. 모든 일에 여유가 있으시고 평화로우세요.”
“고마워.”
그리 말하며 레훌은 슬쩍 엘레노아를 바라봤다. 뭔가를 고민하듯.
* * *
3왕자 세르훌은 차가운 분위기의 남자였다. 그렇다고 데이우스 베르디와 비슷하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단순히 말주변이 없기에 굳이 침묵하고 있다는 편이 옳았다.
엘레노아의 방으로 홀로 찾아왔어도 그는 별 말 없이 묵묵하니 앉아서 그녀를 지켜봤다.
슥슥.
지금 엘레노아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3왕자 세르훌에게 부탁해서 캔버스와 각종 도구들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굴 그리는 거지.”
자신을 그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세르훌이었으나.
막상 그곳에 그려지고 있는 건 무심한 표정을 한 흑발의 미남이었다.
“데이우스 베르디요.”
“그리핀의 위령사인가. 최근 상당히 유명하더군.”
얼마나 자주 그렸는지 엘레노아는 이제 데이우스라면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엘레노아는 점점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자신이 그린 거지만 데이우스를 눈에 담자 기분이 좋아졌다.
“히히.”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흘린 소녀 웃음. 엘레노아가 어깨를 들썩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세르훌이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남자를 좋아하나?”
“네.”
“…….”
설마 이렇게 단호하게 답할 줄 몰랐기에 세르훌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으나.
표정에는 굳이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죠. 그는 이미 약혼녀가 있거든요.”
“……그래.”
“뭐, 일방적인 짝사랑이죠. 어쩔 수 없어요.”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게 생각보다 가슴이 아팠던 세르훌.
이런 매력적인 공주의 마음을 얻고도 약혼녀가 있다는 위령사가 괘씸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러던 엘레노아는 뭔가 깨달았는지 세르훌과 데이우스의 그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생각해보니까 데이우스랑 세르훌 왕자님은 비슷한 면이 있으시네요?”
“비슷……?”
이 남자와 자신이?
세르훌은 머리도 탁한 회색이었으며 피부는 구릿빛이다. 키도 그에 비해서는 작은 편에 몸은 얇아보여도 잔근육이 잘 자리 잡고 있다.
이래 봬도 세르훌은 전사였으니까.
하지만 엘레노아는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과묵하시거든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어대는 엘레노아를 바라보며, 세르훌은 혹시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 * *
“걔가 진짜 나쁜 게 뭔지 아세요?”
제르만 왕국으로 향하기 위해, 마리아스 대삼림을 지나는 와중.
우리 쪽 마차로 건너온 아리아가 입에 마른 오징어를 문 채로 말한다.
“공주님한테 지금 걔라고 한 거야?”
내 옆자리에 앉은 데이아가 어이없다며 주의를 줬으나 아리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걸 전부 아무렇지 않게 활용한다는 점이 아주 나쁜 거예요.”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능력이었으나, 엘레노아는 좀 달랐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진짜 물불 안 가리고 막 달려든다니까요? 옛날에 걔한테 세뇌 당한 애들 구하겠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쯧 하고 오징어를 물며 고개를 젓는 아리아.
데이아는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으나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1회차 때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교수님 덕분에 애가 완전히 변해서 다행이에요. 무슨 병 때문이었죠?”
아리아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 고개를 저었다.
“병이 아니다.”
“예? 하지만 지금 엘레노아랑 제가 아는 엘레노아랑은 많이 다른데요.”
한쪽은 타락한 공주.
반란 수괴로서 프로파간다를 통해 아카데미 학생들을 반란군으로 만들어 왕국에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다.
또 한쪽은 순박한 엘레노아.
지금은 그림이나 그리며. 굳이 일탈이라고 한다면 가끔 야릇한 그림을 끄적이고 혼자 헤실헤실 웃는 정도이겠지.
그래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엘레노아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순진한 엘레노아는 꿈에 갇히고, 왕족으로서의 책임만이 남은 엘레노아가 현실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두 인격이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러니까.
“둘 다 될 수 있다는 소리다.”
“…….”
내 말에 아리아는 오징어 다리를 꿀꺽 삼키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막, 사고 치진 않겠죠?”
그 질문에는.
“…….”
따로 답하기가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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