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only healer in this world RAW novel - Chapter 47
48. 그리고 그들은…….
조용하던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만을 수집하고 보유하기로 정평이 난 만물상이 충격적인 진실을 세상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진실에 처음에는 모두 진위를 의심했다.
그러나 곧이어 쏟아지다시피 하는 증거물에 사람들은 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변이 게이트의 진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재앙!
-음지에 가려진 각성자계의 드러난 민낯.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모든 관련자들 엄히 징치되어야… ‘불법 게이트 관련자들, 직위나 랭크에 관계없이 모두 처벌 예정’
만물상이 진실을 고백한 이후.
어디를 가든, 무엇을 틀든 관련 소식이 끊이질 않고 들렸다.
불법 연구소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요.
중국에서 어떻게 하급 각성자들을 협박하여 이용했는지도 자세히 밝혀졌기에 일반인들 또한 이 사건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여기에 얽힌 여러 나라의 수뇌부들 역시 존재했기에 그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뒤늦게 밝혀진 진실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혼란과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폭탄처럼 뻥뻥 터지는 진실과 연쇄적으로 드러나는 추가 의혹.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밝혀지는 또 다른 스캔들까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야이씨; 이러다가 나라들 다 망하는거 아니냐?
-솔까 이 정도면 망해도 될 듯
-진짜 환멸남ㅋㅋㅋ 안 그런 데도 있는 거 아는데 소위 잘나가던 나라들이 그딴 미친 짓거리나 하고 있던 거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음
-어차피 각성자들 대부분 길드 단위로 움직이는데…. 나라 따위 없어도 되지 않나?
각성자들 사이에는 이런 여론까지 들불처럼 번져나갈 정도였다.
미쳐 돌아가던 상황이 그나마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한 것은 크루세이더가 나서기 시작했을 때였다.
[…누군가는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관심이 흐려져 진실이 묻히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루세이더는 이 자리에서 천명합니다. 그 끔찍한 전대미문의 진실에 관련된 자는 단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치죄할 것을 말입니다. 도망가도 소용없습니다. 숨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의 말을 듣고 있는 당신이 관련자라면 당신이 있는 그곳이 어디든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좀 더 정확히는 크루세이더의 새 길드장이 된 여하린이 선전포고에 가까운 입장표명을 했을 때였다.
무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말이다.
이제는 길드 연합에서 갈라져 나왔다지만 크루세이더는 명실상부 세계 1위 길드였다.
그들이 관련자들을 모두 찾아내 축출하겠다고 선언하자 혼잡함이 그나마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뭐, 그래 봤자 여전히 여러모로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대로라면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겠지. 크루세이더의 이름 아래에서.’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데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의 소란은 상처가 낫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서운하지는 않아요?”
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여하린의 몇 번째인지 모를 입장표명 방송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뭐가 말인가?”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온다.
“길드장 자리 내준 거요. 원래라면 당신이 저기 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별로. 관심 없다.”
묵묵하게 방패를 닦던 하태겸이 정말로 관심 없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아. 역시 새로운 몬스터를 잡으려면 내 옆이 더 좋아서 그러는 거죠?”
“…두 번째.”
“네?”
“…….”
슥슥.
여전히 방패를 닦는 하태겸의 귀가 발갛게 변해 있었다.
뭐가 두 번째라는 거지?
‘그래도 길드장을 그만둔 걸 후회하지 않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그만한 자리를 내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나로서는 하태겸이 큰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종종 확인하게 되는데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해인 님!”
주방에 있던 최유성이 함박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양손에 맛있는 냄새를 폴폴 풍기는 접시를 가득 든 채였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저번에 맛있다고 하셨던 걸로만 만들었어요.”
“아니, 잠깐만요. 너무 많은데…?”
“많이 드셔야 얼른 회복이 되시죠!”
냄새도 좋고 분명히 맛도 좋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양이 너무 많다는 거다!
‘다 먹으면 분명 배가 터져버리고 말 거야.’
“성자는 너무 조금 먹어서 걱정이군.”
어느새 방패를 내려놓은 하태겸도 가세했다.
“내가 적게 먹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많이 먹는 거라니까요?”
하지만 나는 곧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이 과보호들 같으니라고.’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백번을 말해도 들어먹지를 않는다.
하지만 그게 또 귀여워 보이는 게 문제였다.
누가 그랬더라?
귀여워 보이면 그건 이미 게임 끝인 거라고.
“나 멀쩡한 거 알죠? 그냥… 지금은… 말하자면 충전 중인 것뿐이에요. 스킬 못 쓰는 거 아니라고요.”
벌써 여러 번 말해준 사실을 또다시 상기시켜주자 최유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드시면 좋잖아요.”
“…그건 그래요. 알았어요. 잘 먹을게요.”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나서 그런지 그의 팔불출 짓도 영 싫지가 않다.
엄청나게 소중히 대해지는 기분도 썩 괜찮고.
-수컷 새는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잡아 필사적으로 열렬하게 구애를 합니다. 능력 있는 수컷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틀어놓은 TV에서 어느새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한 귀로 흘려 넘겨 들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괜찮은데.’
이들을 살리기 전.
나는 내 생명의 일부를 불살라서라도 모두를 구하고자 했다.
아깝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아니면 안 된다는 내 욕심은 아주 확고했다.
‘그리고 정말로 스태프가 가진 스킬 발동만으로는 부족했지.’
내가 바란 소원의 범주가 어마어마했던 탓이었다.
-유한의 격이 문제라면, 그 격을 없애면 되잖아?
복잡한 문제는 가장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의외의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치유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시간을 잡아두는 힘의 영향이니, 그 힘을 끊어내면 된다.
‘그 방법을 유한은 심장을 파괴하는 것으로 제시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대신, 내 모든 것을 불태울 의지로 속에서 울컥 치솟는 비릿함을 삼키며 안력을 돋우었다.
그때였다.
띠링!
[당신의 놀라운 선의에 무한한 경의를!] [당신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타인을 구하고자 하는 고귀한 숭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의지는 당신의 뜻을 받들 것입니다.]뜻을 알 수 없는 알림이 뜬 것은.
‘내 착각이었나?’
시스템은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이었다.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넌지시 원하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시스템 메시지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더랬지.
그래서 분명 그 모든 안배를 해 둔 것이 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내 생명을 불태우는 대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무한한 힘을 휘두를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꿰뚫는 시선을 극한으로 활성화하여 모든 것을 비주얼화시킨 뒤엔 온갖 스킬을 둘러 휘둘렀던 기억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효과는 아주 훌륭했다.
유한의 심장에 얽혀 있는 무수히 많은 선을 끊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본래의 주인을 잃은 힘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유한은 세계를 지탱하는 축이자 성좌라는 존재에서 그저 가슴이 뚫린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
억겁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가 후련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저 재빨리 그의 심장을 넣고 치유를 퍼부었을 뿐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은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명의 빛은 그렇게나 찬란했다.
‘그 이후로 탈력한 것처럼 힘을 잃었지.’
휴식을 취해도.
포션을 마셔도.
텅 빈 에너지는 차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지. …아쉽기는 하지만.’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때의 기적을 제외하면 사실 평범한 고갈 상태 정도라고나 할까?
게다가 내가 걱정이 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호감도: 100] [*호감도: 100]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패시브 스킬이나 다름없는 스탯창은 여전히 동동 잘 떠 있다는 점이다.
“아, 도원재 씨는 식사했대요?”
열심히 잘 먹다 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태겸이 한숨을 쉬고 최유성이 머뭇거린다.
그것을 보고 답을 알았다.
“또 거기 갔어요?”
“네에….”
“아니, 왜 자꾸 거기를 가지?”
행복으로 부풀었던 가슴이 슬쩍 가라앉았다.
“죄책감이겠지.”
죄책감.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혈육이나 다름없던 만물상의 배신.
한차례 봉합해 괜찮아진 줄 알았건만 협회장의 일로 다시 더 크게 곪았던 상처가 터져버렸다.
거참.
잘못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괴로워하는 건 죄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잠깐 다녀올게요.”
최유성과 하태겸이 다녀오라며 내게 눈짓했다.
예전에는 누구 하나 편애할까 봐 전전긍긍하더니 이제는 서로 보듬어 주기까지 한다.
하여간에. 여러모로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
“주인님.”
들어서자마자 알아챈 도원재가 나를 불렀다.
꺼끌한 목소리였다.
“왜 이러고 있어요?”
“아직도 안 깨어나네.”
대답 대신 영 딴소리다.
하지만 나 역시 궁금했던 주제 중 한 가지라 자연히 말이 그쪽으로 향했다.
“…때가 되면 깨어나지 않을까요?”
“그게 언제일까.”
“그러게요.”
나는 평온하게 누워있는 유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본론을 꺼냈다.
“아직도 미안해하고 있는 거 아니죠? 만물상이 자백한 덕에 다른 피해자들도 다 구제받고 있잖아요.”
만물상이 자백한 이유는 간단했다.
다름 아닌 도원재를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었지요. 그리고… 부질 없는 희망도 있었고.
시간을 되돌린다는 달콤한 말.
보고 싶은 이가 과거에 남아있는 이에게는 얼마나 유혹적인 제안이었을까.
-예전에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 한 적이 있는 것, 기억합니까?
만물상은 예전에 달아두었던 기약 없는 빚을 꺼내 들며 내게 부탁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지고 갈 테니 부디 도원재를 놓지 말아 달라고.
-원래 놓을 생각 없었는데요.
삐딱하게 대답하자 주름진 장년인의 눈가가 붉게 젖어 들어갔던 것이 뇌리에 남는다.
“그리고… 유한도 무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요.”
벗어나는 과정이야 험난했지만 어쨌거나 결과가 좋으면 된 거 아닌가?
“그런가….”
“그런 거예요.”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원재가 싱겁게 웃음을 흘렸다.
“빨리 눈이나 떴으면 좋겠네.”
“그러게요. 근데 도원재 씨, 의외로 유한 씨 안 싫어하나 봐요.”
죄책감이니 뭐니 하지만 도원재는 정말 착실하게 유한을 돌봤다.
그래서 문득 생각나 물은 건데.
“아니, 싫어.”
“…네?”
이 단호한 대답은 뭐지?
하지만 도원재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싫은 놈이지만. 주인님을 만나게 해줬으니까, 뭐.”
뭐지. 그 대답은?
왠지 깨어나면 서로 잘 맞는 친구가 될 것 같다.
아니면 엄청나게 투닥거리는 앙숙이 되거나.
“세상을 열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지만 애초부터 나는 주인님을 만난 것부터가 닿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였는걸.”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샐쭉 휘어진다.
“그래서 기대가 돼. 지금까지도 충분히 설렜는데, 전 성좌가 공언하는 새로운 미래는 과연 어떨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
더 최악이 다가올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정반대로 안온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다.
“나도 무척이나 기대돼요.”
불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그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혼자라면 분명 두렵고 고민되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미래로 나아가는 것조차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랑 같이 갈 거잖아요. 그게 어디든지 말이에요. 그쵸?”
“당연하지, 주인님.”
삐잇!
꿈실꿈실.
자신도 잊지 말라는 듯 내 로브 모자 속에서 홍염이가 콕콕, 부리로 쪼아댄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는 이상, 나는 언제나 기쁘게 미래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은 시끄러울 거 같으니 조용한 곳 찾아서 여행이나 갈까요?”
“그것도 좋을 것 같네.”
“고갈 상태만 벗어나면 몬스터 사냥도 하러 가요.”
“그것도 좋아.”
“새로운 등급 게이트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태겸이 좋아하겠는데?”
“일단 유한 씨가 깨어나야… 어?”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도원재 씨, 저기 봐봐요. 지금 손가락, 손가락 움직이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미동도 없던 유한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던 것이다.
“두고 갈까 봐 걱정됐나 본데?”
실없는 소리를 하는 도원재를 흘겨보며 나는 소식을 전하러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최유성 씨, 하태겸 씨! 지금 유한 씨가!”
눈을 크게 뜬 두 남자가 S급 신체 능력을 뽐내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를 따르며 나는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나를 지탱해주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문득, 이곳에 떨어지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일무이한 힐러인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그때는 무슨 웬 요상한 창이냐 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언제나 지나간 상처를 품고 살아가야만 할 줄 알았다.
묻어두고 잊으면 잊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 와 이 사람들을 만나고서 알게 되었다.
‘몬스터를 잡으면서 힐링이라…. 이게 진정한 힐러의 힐링이지. 암.’
왠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할 법한 생각 같지만 뭐 어때.
원래 힐러 외길만 걷는 사람들은 어딘가 좀 특이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뭐,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해인 님!”
“주인님.”
“성자.”
나를 기다린 남자들이 제각기 자신만의 호칭으로 나를 부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곧 눈을 뜨려는 또 하나의 구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곧 드러날 황금빛 눈동자를 기다렸다.
이 세상에 불려와 유일무이한 힐러가 되었지만.
정작 치유된 것은 나였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