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SS Chapter 60
외전 60. [After Story] Happily Ever After
제국력 653년.
괴수와의 최종결전으로부터 1년 뒤.
에버블랙 제국. 남단 크로스로드.
결혼식 후야 축제.
***
결혼식이 끝나고, 후야 축제가 이어졌다.
길고 긴 3일짜리 피로연, 그런 느낌이려나.
다들 완전히 풀어져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기간이었다.
결혼을 축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도시가 가득했고, 나는 이 후야 축제 기간 동안 그런 이들을 하나 하나 마주하며 감사를 표했다.
“애쉬 황자! 아니, 애쉬 황태자! 아니, 브링어 대공! 늦어서 정말 미안하오, 흐어엉!”
“괜찮다니까요, 발렌 공…… 으악, 술 냄새! 얼마나 마신 거야!”
“우리 도시국가연합을 대표해서, 다시 기른 내 멋진 콧수염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수염을 다듬다가 늦다니이이.”
“이제라도 와서 축하해 줬으면 됐지, 그나저나 떨어져!”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축하해 주러 오다 보니, 날짜 오차가 조금 생겨서. 조금 늦는 바람에 결혼식을 놓친 영웅과 왕들이 탄식하며 진탕 술을 마셨고.
“뭐야뭐야, 왜 이렇게 죽을 듯이 마셔?”
“음주가무 하면 우리 드워프가 또 빠질 수 없지~”
“이봐요, 켈리베이! 나랑 대작하다가 그쪽으로 도망치는 거야?!”
“자자~ 그럼 누가 먼저 뻗는지 각 종족의 명예를 걸고 마셔봅시다~”
이 과음은 자연스럽게 각 종족별 주량 대결로 넘어갔다…… 어째서? 왜 이 치들은 눈만 마주치면 배틀 상황으로 넘어가는 거야?
“인간 대표는 누구야?! 이 간약한 녀석들, 명예로운 전투에서 빠질 테야?!”
이미 잔뜩 취한 베르단디가 손을 휘저으며 인간 대표를 찾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누가 술 잘 마시냐? 인간족 대표로 출전할 사람?”
아무리 그래도 종족의 위신이 걸린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질 수는 없지.
자, 누가 화웅의 목을 따오겠느냐!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자 믿음직하기 그지없는 거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살면서 취해본 적이 없거든요.”
“오오 토르켈 오오……! 좋다, 너만 믿는다! 가라!”
살면서 취한 적이 없다는 토르켈의 말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평생 입에 술을 대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왜 나선 거야!
한 잔 마시고 대자로 뻗어버린 토르켈 대신 제니스가 다급하게 투입되었다.
“한잔 할까, 아들?”
“좋죠, 아버지!”
제니스는 하프블러드 대표로 나온 한니발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
대기 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치솟는 것을 느끼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괜찮은가?
한편, 이 부어라 마셔라의 현장에서 한 발짝 벗어난 곳에서.
아리안 왕국 국왕 밀러와 수인왕 쿠일란이 조용히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윤은?”
“잘 자고 있수다.”
“그렇군.”
주위를 살핀 밀러가 조용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약조한 물건일세.”
“이것은……!”
“그래. 윤이 고향에서 항상 덮고 자던 이불이야. 아주 어릴 때부터 썼지. 가서 덮어주게.”
“정말 귀엽군. 꼭 덮어주겠소.”
“그리고 이건…… 윤의 어릴 때 초상화. 자네에게 주겠네.”
“오오오! 이런 귀한 것을!”
“올라가는 길에 잠깐 윤을 보고 가도 되겠나?”
“물론이유. 같이 갑시다.”
웬일로 이렇게 훈훈한 풍경도 있군.
그 옆의 노점상이 가득한 대로에는 시드를 안은 릴리와, 릴리의 휠체어를 미는 데미안, 그리고 그 뒤를 졸졸 쫓는 쥬니어와 헤카테의 모습이 보였다.
오물오물 솜사탕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시드와 함께, 이들은 각자 간식거리를 쥐고 행복하게 웃으며 걸어갔다. 부디 너희는 이 아수라장에서 멀리 벗어나려무나.
“애쉬님!”
이때, 광장을 가로지르고 내게 오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다름 아닌 미하일의 다섯 아내였다.
“우리 남편 못 보셨어요?!”
“예? 미하일 말입니까?”
“그래요. 축제의 소란을 틈타 도망쳐 버렸는데, 어디로 간 건지……!”
물론 나는 미하일의 행방을 모르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하일의 다섯 아내는 채찍과 입마개 등의 기구를 흉흉하게 휘두르며 남편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달려갔다…… 아니, 잠깐. 뭘 휘둘렀다고?
이어서 단아한 로브 차림새의 노부인이 내게 다가왔다.
“황태자 전하. 제 남편 못 보셨나요?”
“……디어뮈딘님 말씀입니까?”
“그래요. 이 영감탱이, 축제의 소란을 틈타 또 도망쳐 버렸거든요. 후후.”
상아탑의 진짜 주인께서는 흉흉하게 웃으며 사라졌다.
“잡히면…… 진짜 죽었다…….”
“…….”
도망친 이들의 명복을 조용히 속으로 빌어주는데, 루카스가 총총걸음으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주군.”
“어, 루카스. 좀 어때?”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쪽으로.”
“응?”
“긴히 주군을 모셔와 달라고 요청한 분들이 계십니다.”
루카스의 안내를 받아 골목을 돌아 돌아, 지하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 들어서자…….
“앗!”
도망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미하일, 디어뮈딘, 그리고 체인까지.
음울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이들에게 다가가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다들 여기서 뭐하세요? 아내분들이 찾으시던데.”
“드디어 왔군, 애쉬 황태자.”
자신의 잔을 쭉 들이켠 디어뮈딘이 나를 향해 눈짓했다.
“소개할 때가 되었구료.”
“예? 뭘요?”
세 남자는 서로를 돌아보더니, 동시에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바로, ‘유부남즈’요.”
“……?”
그건 또 뭐하는 암약 사조직인데……?
미하일이 초췌한 얼굴로 소개했다.
“전선의 유부남들만이 모인 모임이야. 이제 애쉬, 너도 가입 조건을 충족했으니 우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아니, 딱히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이 사조직의 목적은 뭡니까?”
“그냥, 이렇게 모일 자리가 있으면 우리끼리 몰래 모여서 숨이나 잠깐 돌리는 거지.”
세 유부남은 서로를 보며 쓰게 웃었다.
“차마 아내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는 작은 불만들을 대나무숲처럼 털어놓거나.”
“이번 N번째 기념일에는 또 무슨 색다른 선물을 줘야 아내에게 이쁨받을지, 맛집은 어디에 데려가면 좋을지, 선물과 식당 리스트를 공유하거나.”
“아내 몰래 산 신상 마차나 골렘 장난감 이런 거 있으면 서로 돌려가며 숨겨주거나.”
뭐, 뭐야, 이 세상 소심한 사조직은…….
“물론, 오해하지 마. 나는 내 아내들을 정말로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 내 아내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거든.”
“사랑하지. 사랑하는데…….”
세 유부남이 동시에 어깨를 떨었다.
“가끔 무서울 뿐이야…….”
옆을 보자, 어째서인지 루카스도 자신의 양어깨를 붙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아니 너는 결혼식 올리고 이제 하루 지났잖아! 첫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
진정 이것이…… 모든 유부남이 도달하는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도 이런 말로를 맞는다고?
“당장 우리와 함께할 필요는 없소. 하지만 훗날, 같은 신세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자리가 필요하다면…….”
디어뮈딘이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연락해 주시오. 기꺼이 가입을 받아주지.”
그때였다.
콰직-!
거세게 술집 문이 열리더니,
“이놈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죄인은 오라를 받으라-!”
계단을 타고 미하일과 디어뮈딘과 체인의 아내분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발각됐나?!”
“뒷문으로 도망쳐, 애쉬!”
“여기는 우리가 막을 테니까, 어서-!”
세 남자는 처절한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들의 아내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아니 왜 장대하게 희생하는 척하는 거야! 그냥 다 사랑스러운 여러분의 반려지 않습니까!
***
잔뜩 취한 손님들이 돌아가며 사고를 치고.
이 와중에 서로 눈이 맞은 이들이 취기 덕인지 새로 커플이 되고.
커플이 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취기가 가셨는지 또 찢어지고.
도망친 유부남 생포에 현상금이 걸리고.
현상금 헌터들이 유부남 사냥을 시작하고.
유부남들이 역으로 그 헌터들을 매수하고. 치밀한 암투가 물밑에서 펼쳐지고.
축제 마지막 밤 사용하려던 폭죽을 에반젤린이 실수로 대낮에 터뜨리고.
복구는 내게 맡기라며 자신만만하던 켈리베이가 오후 내내 새 폭죽을 만들더니, 실수로 유폭시켜서 플라잉 드워프가 되고.
유폭한 불꽃놀이가 추락한 지점이 하필 마차 창고라, 다행히 말들은 무사히 대피시켰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신상 마차가 모조리 그슬리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그 외에도 무시무시한 온갖 사건 사고가 즐비했던 전쟁 같은 후야 축제도, 결국은 끝났다.
“으어어.”
후야 축제 3일차의 밤이 끝난 뒤, 나는 비틀거리며 호텔의 내 방에 들어섰다.
최상층 스위트룸은 현재 아바마마께서 사용하시는 터라. 나와 세레나데의 방은 그 아래층이었다. 스위트룸만큼은 아니어도 꽤 좋은 방이다.
“정말…… 엉망진창인 결혼식이었어…….”
지난 일주일을 떠올리며 나는 치를 떨었다. 이런 난장판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날은 영원히 안 올 것 같은데.
투덜거리며 방에 들어오던 나는 다급하게 숨을 죽였다.
‘앗.’
세레나데는 먼저 잠들어 있었다.
손님들을 치르느라 늦는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테이블에 엎드린 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다.
“늦어서 미안해.”
나와의 시간을 기다렸을 세레나데의 뺨을 나는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이젠 정말로 네 거야.”
잠결에 내 말을 들은 것일까?
세레나데의 입술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정말인가요……?”
“그럼. 정말이지.”
“헤헤…….”
내 손에 뺨을 비빈 세레나데는 다시 잠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나는 부드럽게 세레나데를 안아서 침대에 누인 뒤 이불을 덮어주었다.
“…….”
잠든 아내의 얼굴을 한참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퇴창 쪽으로 몸을 옮겼다.
크로스로드의 전경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문 아래에 쿠션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크로스로드의 모습을 가만히 살폈다.
창밖의 풍경은 고정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변화했다.
도시의 불빛이 어지러이 움직이고, 캄캄한 하늘은 멀리서부터 어슴푸레 밝아왔다.
달이 경로를 따라 미끄러지고, 구름이 뭉쳤다가 흩어지고, 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잠든 세레나데의 고운 숨소리를 들으며, 쉴 새 없이 흐르는 바깥 풍경을 살피다가.
어느새 나도 잠들었다.
***
…….
***
……긴 꿈을 꿨다.
***
아주 길고, 멋진 꿈을.
***
“……어?”
선잠에서 깨어난 나는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쁘게 흐르던 창밖의 풍경이 어느새 멈춰 있었다.
그리고 세레나데에게 덮어주었던 얇은 이불이 내 어깨 위에 걸쳐져 있었다.
시간은 새벽쯤 되었을까.
놀라서 주위를 보자, 어느새 세레나데는 침대가 아니라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레나데, 괜찮아? 언제 깼어?”
“…….”
내가 물어도, 세레나데는 또렷한 시선으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볼 뿐.
나는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물었다.
“세레나데?”
“낭군님.”
그제야 내 쪽을 본 세레나데가 흐릿하게 미소했다.
“마치…… 아주 오랜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에요.”
“…….”
“그리고, 무척 좋은 꿈을 꾼 것 같아요…… 낭군님께서도 그러신가요?”
나는 빙그레 미소했다.
“응.”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세레나데의 서늘한 손을 맞잡았다.
“아주 길고, 아주 멋진 꿈을 꾼 것 같아.”
우리는 잠시 나란히 앉아,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하늘 아래로, 그리운 도시의 전경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레나데.”
나는 문득 물었다.
“이 길의 끝에서, 너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
“음…….”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민하던 세레나데가 입을 열었다.
“많은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하고.”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요약되지가 않으니까요.”
세레나데는 배시시 웃었다.
“항상 행복할 순 없을 거예요.”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올 것이다.
“영원할 수도 없을 테고요.”
우리는 영생 대신 단명할 테고.
“세간에서 말하는 ‘잘 산다’와는 다른 기준의 삶을 살 수도 있겠죠.”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눈을 돌려야 할 때도 있겠지.
“어쩌면 또다시, 몇 번이고, 산산조각이 나버릴지도 몰라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실패하고, 다시 폐허 위에 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레나데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그래도 괜찮아요.”
확신을 담아, 속삭였다.
“그 또한 인생이니까.”
나는 어쩐지 뜨거워지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우니까.”
천천히, 우리는 입을 맞췄다.
아주 조심스럽고 또 소중하게.
“…….”
입술을 뗀 뒤, 이마를 맞닿은 채.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천천히 감기는 세레나데의 은빛 눈을 마주하며, 나는 미소했다.
“그래.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아.”
나 역시 확신을 담아 말했다.
“우리는 멋진 인생을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