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0화(10/218)
메리가 데려다준 아버지의 집무실 앞에 선 나는 괜히 어디 옷이 구겨진 데 없나 살폈다.
물론 아까 전 메리의 상태로 봐서는 내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전부 매만졌겠지만 말이다.
“……메리도 무서워.”
메리의 단장 욕구에 불을 지핀 대가로 나는 총 다섯 벌의 원피스를 입어 보고 그에 어울리는 머리도 다섯 번이나 해 보아야 했다.
마치 메리의 손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말에 메리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색이 떠올랐으나, 다행히도 아버지를 기다리게 하기 싫다는 말로 벗어날 수 있었다.
‘앞으로 가끔은 아버지 핑계를 대야지.’
흠흠. 작게 목을 가다듬은 나는 손을 들어 커다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아버지, 저 에리타예요.”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 기다리고 있자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달칵 문이 열렸다.
문을 당겨 연 것은 에일런이었다.
조금 놀라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선 에일런이 설핏 웃었다.
“빨리 보고 싶어서.”
“……아.”
“얼른 들어와.”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입술만 벙긋거리던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에일런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아직 이런 호의는 익숙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런 내 모습에 에일런이 잠시 입술을 무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그래, 대답했다.
조심스레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가장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나는 밝아진 얼굴로 조르르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그래, 내 딸.”
그러자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손쉽게 나를 안아 올렸다.
“앗!”
안아 달라는 뜻으로 달려온 건 아닌데…….
하지만 굳이 내려 달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얌전히 헤헤 웃으며 안겨 있었다.
“방 구경은 잘 했니?”
“네! 정말 예뻤어요.”
“그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에일런을 바라보았다.
문득 아버지에게만 쪼르르 달려와 방긋 웃는 내 행동이 에일런에게는 속상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태도의 차이에 혹시나 기분이 상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눈이 마주치자 에일런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 다정하고 예쁜 미소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자 눈매를 둥글게 휜 에일런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위에서 허, 하는 아버지의 허탈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그리 웃는 게 몇 년 만인 줄 모르겠구나.”
타박에 가까운 말과는 달리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근데 몇 년 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네 동생이 그리도 좋으냐.”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아버지의 질문에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입을 연 에일런을 향해 금방 관심을 돌려 버렸다.
“아버지가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좋지 않을 리가요.”
그 낯부끄러운 대답에 얼굴이 빨개져 어버버거리는 나와 달리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지 않을 리가 없지.”
“…….”
“에리타, 네 오라비가 저리도 너를 좋아하는구나.”
“으아…….”
부드러운 듯 짓궂은 말에 너무 부끄러워진 나머지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하지만 조금 민망할 뿐, 선명하게 느껴지는 애정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할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다행스럽게도 에일런의 말이 나를 이 부끄러운 상황 속에서 꺼내 주었다.
“에리타가 부끄러워하잖아요.”
뒤이어 나온 말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그래. 먼저 해야 할 얘기가 있지.”
그 말에 동의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낮게 가라앉았다.
나는 어딘가 진지해진 분위기에 아버지가 내려 준 소파 위에 얌전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당분간은 에리타 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을 비밀로 해야 할 것 같구나.”
“비밀로요?”
“그래. 혹시 모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란다.”
혹시 모를 위협. 그게 전부일까.
잠시 그에 대해 생각하는 내 표정을 무어라 받아들였는지, 아버지가 부드럽게 나를 달랬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아주 잠시 내가 딸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퍼져 나가지 않게 막고 있는 것뿐일 테니까.”
“아…….”
“하지만 네 의사가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란다. 괜찮겠느냐.”
“네에. 저는 상관없어요.”
그 다감한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은 분명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일 테니까.
“이해해 줘서 고맙구나.”
흐뭇하게 웃은 아버지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할 얘기는 전부 끝났으니 저녁때까지 아비랑 같이 저택 구경이라도 하겠니?”
반가운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주군, 페른입니다.”
들려오는 페른의 목소리에 아버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에 알 만하다는 듯 맞은편에 있던 에일런이 픽, 웃었다.
“……들어와.”
한숨과 함께 떨어진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온 페른은 구겨진 아버지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쾌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죄송하지만 저택 구경은 도련님과 함께 하셔도 괜찮으실까요?”
“페른.”
그에 아버지가 입을 막으려는 듯 위협적으로 그를 불렀지만 페른은 생글생글 웃으며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밀린 서류입니다. 오늘 안으로 끝내 주셔야 하는 것들만 추렸습니다.”
“하…….”
나는 혹시 화가 나셨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저 깊게 한숨을 내쉬기만 한 아버지는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에리타. 오늘은 같이할 수가 없겠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오늘 안으로 못 끝내면 제가 또 밤을 새워야 해서요.”
웃고 있지만 어쩐지 아까보다 피곤해 보이는 페른의 얼굴에 나는 속으로 작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아마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건 나를 찾아온 것 때문일 테니까.
“으응, 아니에요. 저는 그, 오라버니랑 같이 가면 되니까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하자 맞은편에 있던 에일런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버지는 바쁘시니 제가 대신 에리타와 함께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에일런에 힐끗 아버지를 올려다본 나는 자리에서 내려와 에일런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버지가 아니라서 실망한 건 아니지?”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맞잡자 들려온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아까 아버지한테만 웃어서 속상했던 걸까.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금 다급하게 소리치자 그런 내 반응에 저가 더 놀란 듯한 에일런이 사과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놀라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닌데.”
“그냥 조금 어색해서…….”
말끝을 조금 흐리며 눈치를 보자 나를 바라보던 에일런의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괜찮아. 앞으로 더 친해지면 되니까. 그렇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어색함도 사라지겠지.
내 손을 부드럽게 한 번 꾹 쥔 에일런이 아버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아버지.”
그가 씩 웃으며 말하자 아버지의 얼굴에 어이없어하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다.
녀석……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뒷말은 너무 작아 듣지 못했다.
“그래. 다음에는 함께 가자꾸나.”
“네! 이따 봬요!”
하지만 결국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는 아버지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흔들었다.
“대공 전하를 뺏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속에 있지도 않은 말을 잘도 하는군.”
“하하, 속에 없는 말이라니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리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둘러보다 오너라. 네 오라비가 어련히 잘 챙겨 주겠지만 말이다.”
페른의 말을 무시하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아버지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페른에게도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위압적인 아버지에게 장난스럽게 대꾸할 수 있는 페른이 퍽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탁
우리의 뒤로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나는 맞잡은 손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일단 걸으면서 얘기할까?”
에일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곧바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색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발을 옮기는 에일런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
탁-
에일런과 에리타가 집무실을 나섰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점점 작아져 들리지 않게 되었을 즈음.
“도련님이 저리 웃으시는 모습은 제가 온 뒤로 처음 보는군요.”
신기함과 놀람이 묻은 페른의 말에 아슬란이 픽, 웃었다.
저리 웃는 모습이라…….
“정확히 7년 만이지. ……저 아이가 환하게 웃은 것이 말이야.”
가문에 흐르는 피 탓인지 에일런 역시 어렸을 때부터 빠른 성장을 포함해 여러 방면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 아이답지 않게 무심한 성격 역시 크로바하츠가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슬란 역시 어렸을 때부터 매사에 무던했으니 말이다.
그런 에일런이 유일하게 아이처럼 웃던 것이 세르비아와 에리타의 앞이었다.
“원래도 제 어미와 동생 앞에서만 웃던 아이였다.”
7년 전부터 에일런이 웃지 않게 된 것은 아이가 유일하게 웃음을 보여 주던 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래. 그래서 나는 이 빌어먹을 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
잠시 과거를 되짚던 아슬란이 등받이에 느릿하게 등을 기대며 읊조렸다.
달라진 분위기에 웃고 있던 페른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지금은 유능한 보좌관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였다.
“우선 황후의 끄나풀이 고아원에 다녀갔습니다. 고인의 가족으로 위장해 원장의 시신도 확인했다고 합니다.”
“역시 그쪽이었군.”
예상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아슬란이 서늘하게 웃었다.
“흔적은 남지 않았겠지.”
“예. 고아원에서 아가씨를 데려간 것은 외국의 귀족으로 해 두었습니다. 그들은 이틀 전에 제국을 떠났고요.”
“흠.”
“황후가 백방으로 추적해 봤자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배가 침몰해 바다에 빠질 예정이니까요.”
말을 마친 페른이 씩 웃었다.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을 테지만 황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파헤쳐도 그저 우연의 일치라는 결론만 나올 테니 말이다.
그런 페른을 바라본 아슬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을 위해서 뿌려 놓았던 미끼를 문 여우.
그 여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차근차근 주위를 포위하는 데에 성공했으니.
“그자는.”
“카일이 따라붙었습니다. 명만 내리시면 언제든 생포 가능합니다.”
“7년 동안이나 잘 숨어 있었군.”
이제는 명분을 거머쥘 차례였다.
“카일에게 전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맹수가 흉포하게 웃었다.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상태로 내 눈앞으로 데려오라고.”
크로바하츠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