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02)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02화(102/218)
나는 아침부터 연구실로 향했다.
그런 내 뒤로 오늘부터 정식으로 내 호위가 된 테인이 따라붙었다.
“안녕, 테인. 잘 잤어?”
“네, 푹 잤습니다. ……에리타 님은요?”
“조금 늦게 자긴 했는데, 그래도 잘 잤어.”
테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연구실까지는 금방이었다.
마법이 둘러진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여기에 서 있으려고?”
“네. 원래 호위는 밖에서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나를 따라 들어오지 않고 문 옆에 자리를 잡고 선 테인 탓이었다.
말을 흐리는 테인의 얼굴에서는 뭐 잘못한 게 있는 건가 걱정하는 기색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나는 그런 테인의 모습에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으음, 원래는 그렇게 하는 게 맞긴 한데…….”
따지자면 원래 호위라면 방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게 옳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테인을 정말 호위처럼 데리고 있기에는 내 마음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거기다 가뜩이나 어제 아버지와 대련한다고 힘을 쭉 뺐던 앤데.
테인의 얼굴에는 어제 아버지한테 맞았던 멍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수인들의 회복력은 사람보다 뛰어났기에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시퍼런 멍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 봐야 아파 보이는 것도, 미안한 내 마음도 그대로였지만.
“안이 조금 지저분하긴 한데 괜찮으면 들어와 있을래?”
“네?”
“밖에 서 있으면 힘들잖아. 어차피 나 연구실에 있을 때는 찾으러 오는 사람도 없거든.”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게 뭐 있어. 테인은 내 호위잖아. 그냥 편하게 들어와 있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끝말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조금 묻혔다.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테인은 괜히 주위를 휘휘 둘러본 후에 후다닥 나를 따라 들어왔다.
쿵-
마력이 새어 나가는 일이 없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발동.”
그 후 나는 문에 손을 얹고 나직하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문과 이어진 벽 전체가 약하게 빛을 발했다.
“이건…….”
“아, 보호 마법진이야.”
나는 내 작업대를 향해 걸어가며 눈을 동그랗게 뜬 테인에게 설명했다.
“보호 마법진…….”
“사실 내가 마법 연구를 하다가 연구실을 터뜨린 전적이 몇 번 있어서……. 그 뒤로는 아예 연구실 자체에 마법진을 새겼어.”
연구를 하다가 귀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굉음과 함께 연구실 안을 엉망으로 만들기를 몇 번.
놀라 달려온 아버지와 에일런을 멋쩍은 얼굴로 맞이했던 뒤로 내 연구실은 과장 조금 보태어 방공호 같은 마법으로 도배가 되었다.
여기는 수도에 오면서 새로 단장한 거고.
“거기 소파 있지? 거기서 편하게 있으면 돼. 심심하면 책장에 있는 책 아무거나 읽어도 괜찮고.”
“그럴게요.”
테인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것과 다르게 소파 근처를 서성거렸다.
자꾸 내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게 혼자 앉아 있기가 눈치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작업대에 몸을 기댔다.
“혼자 앉아 있기 싫어서 그래?”
잔잔한 웃음이 서린 목소리로 묻자 테인은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호위인데 혼자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서 하는 말은 정말이지 성실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어.”
“그래도…….”
“나도 뭐 확인만 해 보고 앉을 거야.”
재차 괜찮다고 말하자 그제야 테인은 쭈뼛거리며 소파에 살짝 앉았다.
평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처음 호위로 온 날이라 기합이 바짝 든 모양이었다.
그 후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뻣뻣하게 차려 자세로 앉아 있던 테인은 슬쩍 일어나 책장으로 갔다.
‘다음에 테인이 좋아하는 종류의 책도 몇 권 가져다 놔야겠네.’
테인이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유르젠의 영향인지 덩달아 책을 좋아하는 테인이 적당한 두께의 책을 몇 권 찾아 들고 소파로 돌아왔다.
순한 얼굴로 잔뜩 집중한 테인의 모습을 본 나는 그제야 내 할 일을 시작했다.
‘평화롭네.’
종이가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와 내가 내는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연구실 안에 내려앉았다.
이러고 있으니 흑마법이고 황후고 전부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얼른 칼리온이 황제가 됐으면 좋겠다.’
이 세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아일라가 사라졌지만 내 세계는 여전히 잘 흘러갔다.
자그만 아티팩트 두 개를 이리저리 훑어본 나는 더 이상 손볼 구석이 없음을 확인했다.
‘일단 이건 됐고.’
나는 반지와 팔찌의 형태를 한 아티팩트를 작은 보석함 안에 넣었다.
이건 이따가 주어야 할 사람이 있으니.
시계를 흘끔 본 나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시간을 내서 교단에 한번 가 볼까.’
지금 교단은 썩었다는 아버지의 말 역시 함께 떠올랐지만 내가 교단을 떠올린 이유는 태양신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만든 게 과거의 태양신이라고 했었지.’
만약 정말로 이 세상을 창조한 게 태양신이라면, 아일라가 사라진 것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에 수인에 몬스터까지 있는데 신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
‘다음에 모습을 바꾸고 가 보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굳혔을 무렵이었다.
우웅-
작업대 위에 놓아두었던 노트에서 약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오늘 내가 하루 종일 연구실에 박혀 있겠다고 한 이유였다.
테인을 쉬라고 보내지 않고 연구실 안에 데리고 들어온 이유기도 했고.
[황후가 조금 전 궁을 떠났습니다. 시간이 괜찮다면 지금 그대에게 가도 되겠습니까?]내가 노트를 펼침과 동시에 물음표가 문장을 마무리했다.
나는 그 옆에 놓여 있던 펜을 들고 빠르게 문장을 적어 내렸다.
-전하께서 괜찮으시다면요. 아티팩트를 사용하실 때 조금 어지러우실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구요!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십 분쯤 후에 보러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어쩐지 약간 날림체인 필체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노트에 적힌 짤막한 문장을 내려다보는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서렸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나는 노트를 덮고 테인이 앉아 있는 소파로 걸어갔다.
칼리온이 곧 온다고 했으니 테인에게도 말을 해 두어야겠지.
테인은 아까 골라 온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테인.”
“아, 에리타 님. ……할 일은 다 끝내신 거예요?”
내 부름에 책에 고정하고 있던 테인의 시선이 위로 올라왔다.
“음, 일단은. 그보다 테인한테 말해 줄 게 있어서.”
“저한테요?”
테인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었잖아.”
부드러운 내 말에 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것 같은 얼굴.
테인이 가끔 짓곤 하는 맹목적인 표정이었다.
“그게, 곧 있으면 황자 전하께서 여기로 오실 거거든.”
조금 민망해하는 얼굴로 소식을 건넨 나는 테인의 표정을 살폈다.
테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음, 너무 갑자기 얘기했나.
“만약에 테인 네가 원하지 않으면 다음에 유르젠이랑 같이 만나도 돼. 오늘 전하께서 오시는 건 나랑 따로 용건이 있어서 오시는 거니까.”
어젯밤 황후가 며칠간 레노센 공작저에 가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칼리온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가면무도회가 있던 날 그와 나누던 얘기를 마저 하기도 해야 했고, 조금 전 완성한 아티팩트 역시 전해 줘야 했다.
밖으로 나가자니 우리 둘 모두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는 탓에 장소는 내 연구실로 정해졌고.
어쨌든 그러니 테인이 오늘 꼭 칼리온과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테인이 내 호위이긴 해도 보통 방 안에까지 호위를 대동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오늘 칼리온이랑 만나는 건 아버지랑 오라버니 빼고는 아무도 모르니까.’
같이 만나겠다는 두 사람을 뜯어말리느라 아침부터 진땀을 뺐었다.
그리고 원래 계획은 유르젠도 함께 약속을 잡아 네 명이서 같이 만나는 거였으니까.
“십 분쯤 후에 전하께서 오신다고 하셨는데 어떡할래?”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테인이 다부진 눈빛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
‘……이 장면 어쩐지 되게 익숙한데.’
나는 아무 말 않고 서로를 응시하는 칼리온과 테인을 번갈아 살폈다.
흐르는 공기는 어색…… 아니,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 내 가족들과 테인이 만났을 때의 상황과 비슷했다.
물론 칼리온은 어제의 아버지처럼 살벌하진 않지만.
‘근데 얘네는 왜 이러냐고.’
분명히 조금 전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또 왜 서로 빤히 쳐다보고만 있느냔 말이다.
그것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묘한 표정으로.
“흠흠.”
결국 침묵을 견디다 못한 내가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유하게 풀렸다.
“아, 실례했군. 수인족의 차기 후계자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 놀라서.”
부드러운 말로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건 칼리온이었다.
놀라서 쳐다봤다기에는 표정이 미묘했지만 그런 건 넘어가기로 했다.
가끔은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봐서 좋을 게 없다는 직감이 들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랬다.
인생의 지혜랄까.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늑대족의 차기 전사 테인이라 합니다. 이 자리에 선 제 뜻이 곧 수인들 모두의 뜻이라 여겨 주십시오.”
“수인들의 뜻이라……. 하면 나도 내 소개를 다시 해야겠군.”
내가 알던 테인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칼리온과 인사를 주고받는 테인의 모습은 어엿한 무리의 우두머리와도 같았다.
지금 테인의 모습에서는 평소의 여리고 순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테인네 아버지가 보시면 되게 뿌듯해하시겠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품을 떠난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테인의 가장 여렸던 모습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근데 어제 아버지랑 오라버니 볼 때는 되게 무서워하는 것 같던데.’
아버지가 워낙 살벌하게 쳐다보셔서 그랬나?
다행히 서로 인사를 나눈 칼리온과 테인은 내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얘기를 잘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