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0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04화(104/218)
혼잣말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인사였다.
“……별말씀을요.”
나는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어쩐지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 않았다.
칼리온은 쉬이 아티팩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테인에게 처음 목소리를 돌려주었을 때와 흡사했다.
‘……뭔가 닮았네.’
칼리온과 테인.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기를 몇 분.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던 시린 벽안이 서서히 뚜렷한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감정의 갈무리가 끝난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에 나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팔찌를 먼저 짚었다.
“아티팩트를 착용하실 때는 항상 팔찌를 먼저 끼셔야 해요.”
“그렇군요.”
“항상 착용하고 계시면 가장 좋겠지만 부득이한 경우에 아티팩트를 빼 놓으셔야 하면 그때는 반지를 먼저 빼시구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잔잔한 내 설명에 칼리온은 별다른 말 없이 알겠노라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이 끝나자 우리 사이에는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그저 고요하기만 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고요한 공기가 훑고 지나간 후, 마침내 보석함을 내려다보던 칼리온이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그의 길쭉한 손가락은 아까 내가 읊어 주었던 대로 팔찌에 먼저 닿았다.
“……이건 다이아몬드가 아닙니까.”
부드러운 손길로 팔찌를 들어 올린 칼리온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팔찌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 맞아요.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형 아티팩트를 만들려면 다이아몬드가 제일 좋거든요.”
“……음.”
내 말에 칼리온이 별다른 대답 없이 목을 울렸다.
그런 그의 얼굴은 어쩐지 곤란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제야 내가 만든 팔찌의 디자인에 생각이 미친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볼을 문질렀다.
“아, 디자인이 조금 화려하긴 한데……. 거기서 보석을 더 빼면 마법이 발동되지 않아서요. 조금 양해 부탁드릴게요.”
칼리온이 들고 있는 팔찌는 얇은 은색 링에 새끼손톱만 한 다이아몬드가 하나, 그 옆으로 작은 사파이어가 네 개 박힌 모양이었다.
물론 사치스러운 귀족들이 착용하는 장신구에 비하면 딱히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새였으나…….
‘칼리온은 장신구를 거의 안 하니까.’
거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칼리온은 늘 검은색과 같은 짙은 색 계열의 옷만 입었다.
그런 그가 착용하기에는 조금 화려한 디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잠시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칼리온은 옅게 웃는 얼굴로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네?”
“팔찌가 화려해서 놀란 게 아닙니다.”
그럼 왜? 그 이유가 아니라면 칼리온이 곤란해할 이유가 뭐가 있지.
나는 의아함이 잔뜩 묻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눈빛에 칼리온은 잠시 나와 눈을 맞추다가 이내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웃음에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그런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칼리온이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제게 이것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그 질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아리송해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깝지 않냐니.
자기에게 저걸 주는 게 아깝지 않냐는 뜻인가?
그 뜻을 생각해 보던 내 미간이 슬슬 좁아질 무렵, 칼리온이 찬찬히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아티팩트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음, 딱히 가치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그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대꾸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대가 만든 이 아티팩트가 세상에 나온다면 아마 세상은 발칵 뒤집히겠지요. 적어도 황궁과 마탑의 마법사들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볼 겁니다.”
그들은 천금을 치르고서라도 이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할 테고.
칼리온의 조곤조곤한 설명은 듣기에는 좋았으나 여전히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아티팩트가 얼마나 비싼 값에 거래되는지 알고 있었다.
라그라스 상단에서 취급하는 아티팩트 중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만든 거였으니까.
라그라스 상단이 원작에서보다 더 빠르게 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칼리온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를 제대로 이해했다.
“음, 전하.”
“네, 에리타 양.”
내가 손바닥을 한 번 꾹꾹 누른 후 칼리온을 부르자 그는 나를 곧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그 반짝이는 벽안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전하께 그 아티팩트를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냐고 물으셨죠.”
“……예, 그랬습니다.”
“저는 전혀 아깝지 않아요.”
내 단호한 대답에 내게 닿아 있던 칼리온의 시선에 일순 파문이 일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셨어요. 그리고 제게는 전하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구요.”
“…….”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전하께 도움이 되고자 했던 거고, 그렇기에 아티팩트의 가치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제 마음이 전하를 돕고자 하니까요.”
직설적인 어휘를 택한 건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겪어 본 바를 생각하면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데에는 굳이 말을 길게 늘일 필요가 없었다.
칼리온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내게 그런 그를 도울 능력이 있었던 것뿐이다.
나를 바라보는 칼리온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중 내가 알아볼 수 있던 감정은 놀람과 미약한 기쁨,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 정도였다.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음, 설마 전하께서는 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모른 척하실 건가요?”
그래서 나는 일부러 가벼운 물음을 던졌다.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저번과 같이 그의 속내에 발을 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칼리온의 감정을 엿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그제야 칼리온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나 역시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도울 겁니다.”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다정한 대답을 해 주었다.
어쩐지 조금 낯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내가 의도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보세요. 전하께서도 그러실 거면서…….”
“그렇네요. 내 질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그런 걸로 마음이 상할 정도로 속이 좁진 않아요.”
장난스러운 내 대답에 칼리온의 눈매가 나붓이 휘었다.
‘저 눈웃음만 보면 기분이 영 이상하단 말이야.’
손가락 끝에서 간질거리는 감각이 맴돌았다.
“……이제 얼른 팔찌부터 착용해 보세요. 혹시나 불편하신 점이나 이상한 점이 있으면 조금 더 손봐야 하니까요.”
조금 어색하게 시선을 스윽 피한 나는 아티팩트로 주제를 돌렸다.
어쩐지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기가 영 민망했다.
“고맙습니다, 에리타 양.”
그런 내 모습에 칼리온이 나직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팔찌를 꺼내 들었다.
그가 단정한 손길로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도와주려고 했는데 필요가 없었네.’
칼리온을 도와주려고 살짝 몸을 일으켰던 나는 무리 없이 한 손으로 팔찌를 착용한 칼리온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검술을 연습하면 저런 것도 잘하는 건가.’
그는 내가 일어난 걸 보지 못했지만 괜스레 홀로 민망한 기분이 들어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사이 칼리온은 혼자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있었다.
여기 칼 다루는 남정네들은 왜 죄다 손가락이 예쁜지 모르겠네.
아버지와 에일런도 손이 예쁜데 흘깃 본 칼리온도 만만치 않았다.
“……자동으로 크기 조절이 되는군요.”
칼리온이 반지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하는 말에 나는 뒤늦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제가 전하의 손가락 크기를 몰라서 크기는 자동으로 조절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나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리타 양?”
테이블을 돌아 그의 곁으로 다가서는 나를 보며 칼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이 아티팩트들은 제 마력에만 반응하게 해 두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마법사는 이거 작동 못 시킬 거예요. 마력의 흐름도 느끼지 못할 거구요.”
내 마력에만 반응하는 것과 다른 마법사가 이 아티팩트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안전장치였다.
오래 걸린 이유 역시 그 두 가지 탓이었다.
“잠시만 실례해도 될까요?”
“기꺼이.”
그의 앞에 서자 칼리온이 입꼬리를 올리며 왼손을 내밀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다루기에 거슬리지 않도록 왼손에 팔찌와 반지를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그의 손을 붙잡자 따뜻한 온도 사이로 금속 특유의 냉기가 전해져 왔다.
나는 곧장 눈을 감고 열 문장 남짓한 주문을 외웠다.
화악-
내 손에서부터 빠져나간 마력이 칼리온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웅- 내 마력을 느낀 반지와 팔찌가 잘게 떨렸다.
“……이제 됐어요.”
그건 아티팩트가 정상적으로 발동했다는 의미였기에 나는 눈을 뜨고 칼리온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마주한 칼리온의 표정은 어딘가 묘하기도, 조금 멍하기도 했다.
설마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전하……?”
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칼리온을 불렀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확률은 낮지만 아티팩트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빨리 손보아야 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내 물음에 칼리온이 조금 늦은 반응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주가 걷힌 느낌이 너무 생경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