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1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16화(116/218)
겨우 아버지와 에일런의 질문 세례에서 빠져나온 나는 메리의 도움을 받아 나갈 준비를 했다.
같이 나가자고 했더니 정말 순식간에 밥을 먹고 온 테인은 방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가씨, 정말 테인 님이랑 둘이서만 나가시는 거예요?”
“응, 왜?”
“아니이……, 저는 조금 걱정된단 말이에요.”
메리가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영 테인을 경계하는 눈초리더니 그 연장선인 듯싶었다.
“에이, 뭐가 걱정된다고 그래. 테인은 내가 옛날부터 알고 지내서 정말 괜찮아.”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메리를 달랬다.
‘테인이 누구한테 미움을 받거나 그럴 성격은 아닌데…….’
성격이 너무 순해서 걱정까지 했던 테인이 아닌가.
‘아직 어색해서 그런가? 테인이 낯을 조금 가리긴 하는데…….’
과거의 기억 탓인지 테인은 처음 보는 사람을 꺼리는 기색이 있었다.
날을 세우는 건 아니지만 쉽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뭐,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거로 할까.’
이런 경우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두 사람 사이에 골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난다면 메리도 테인의 순한 성격을 알게 되겠지.
“아가씨, 준비 끝났어요.”
메리의 말에 거울을 보자 단정하게 묶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짙은 녹색 머리 끈으로만 장식된 머리는 심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입은 연두색 원피스와는 맞춘 듯이 잘 어울렸다.
여기서 머리카락 색을 바꾸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크로바하츠 대공녀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오늘도 고마워, 메리!”
“별말씀을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메리는 마지막으로 원피스의 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어차피 나가면 또 주름이 생길 테지만 메리의 기쁨을 뺏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도 마법으로 나가실 거예요?”
“응, 그러려고.”
나는 메리의 물음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달칵-
문을 열자 요령 없게도 벽에 기대지도 않은 채 꼿꼿이 서 있던 테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테인, 들어와. 나가자.”
‘들어와’와 ‘나가자’는 상반된 뜻이었으나 테인은 나를 알았다.
조금 전 메리의 말이 생각났는지 테인은 잠시 멈칫했으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배시시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귀여워…….’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문을 닫았다.
고개를 돌리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메리와 테인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리는 깨끗한 화장대를 정리하고 있었고 테인은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머네.’
내가 아끼는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
화악-
정교하게 몸을 감싸고 있던 마력이 흩어지고 나와 테인이 눈을 뜬 건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길 위였다.
조금 전까지 천장이 있던 자리에는 화창한 하늘이 있었다.
“으, 눈부셔.”
너무 밝아 눈을 괴롭히는 햇빛을 막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마법을 사용하느라 테인과 잡고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적당히 선선한 공기와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테인, 오늘 날씨 되게 좋…….”
몸을 휙 돌려 들뜬 목소리로 테인에게 물으려던 나는 말을 멈추었다.
테인은 멍한 얼굴로 땅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아니, 땅보다는 조금 위인 것 같은데…….
테인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모양새가 손이 저린가 싶기도 했다.
“왜 그래?”
혹시 텔레포트의 부작용인가 싶어 걱정된 나는 몸을 숙여 테인의 얼굴을 살폈다.
시선을 마주하자 잿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끔뻑였다.
“아…….”
그러고는 이내 화들짝 놀라 크게 뜨이더니 테인이 뒷걸음질 쳤다.
마치 다리가 백 개쯤 달린 지네를 본 내가 기겁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머리가 아픈 건 아닌 모양이라 다행이었지만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테인을 보니 장난기가 솟았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내 얼굴이 그렇게 이상해?”
나는 일부러 심통이 난 듯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내 얼굴을 조금만 자세히 살폈다면 미처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눈매를 보았겠지만 테인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젓느라 바빴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던 테인은 변명 대신 고개가 떨어져라 머리를 젓기만 했다.
그 모습이 귀엽다가도 마음이 아팠다.
“미안, 장난친 건데……. 많이 놀랐어?”
“아…….”
싱긋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테인이 멍하게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안심한 듯 배시시 웃으며 웅얼거렸다.
“에리타 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순한 얼굴은 둥글게 접힌 눈매마저 순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시절에도 내게 배운 동글동글한 글씨로 가끔 적어 주던 말이었다.
그 문장을 테인의 목소리로 듣게 되니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그런 예쁜 말은 어디서 배웠어.”
나는 울컥한 목소리를 참기 위해 부러 웃으며 테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흐음, 어디부터 가지.”
테인과 함께 번화가로 나온 나는 잠시 목적지를 고민했다.
“그냥 돌아다녀 볼까.”
사실 이렇게 나온 건 기분 전환이었다.
어제는 칼리온에게서 무거운 이야기를 들었고, 오늘은 메리에게서 초대장 폭탄을 받았다.
복잡한 일정 뒤에는 휴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남은 재료 중에 반 이상은 칼리온이 구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칼리온의 저주를 풀기 위한 재료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필요한 재료 중에는 원한다고 해서 당장 구할 수 없는 것들도 여럿 있었다.
흑마법이 괜히 악랄하다고 칭해지는 게 아니었다.
저주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재료들이 필요했다.
비싸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아니기도 했다.
‘시간만 좀 들이면 내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서 다행이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만 빼면 재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 휴일이었다.
옆을 보자 테인은 얌전히 걸음을 멈춘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시선이 테인의 옷으로 향했다.
“……정했다. 일단 옷부터 사러 가야겠네.”
목적지를 정한 나는 곧바로 테인을 이끌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은 테인은 그저 내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하여튼 착하기는.
딸랑-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는 한 달쯤 전 내가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들렀던 곳이었다.
들어선 매장은 상당히 장사가 잘되는 모양인지 사람이 꽤 많았다.
그때 나와 테인의 앞에 단정한 차림의 점원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정중한 점원의 태도는 저번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귀족의 차림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평민의 차림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잠시 둘러봐도 될까요? 아직 무엇을 살지 결정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요, 손님. 마음껏 둘러보시고 필요하신 게 있다면 편히 불러 주십시오.”
내 물음에 점원이 친절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자 테인이 주위를 살피며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늘 순했던 눈매가 날카로워진 걸 보니 호위의 본분을 다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성실하다니까.’
나는 테인을 호위로 쓰려고 데려온 게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테인은 호위라는 위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딱히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몇 년을 알고 지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테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나는 표정과 몸짓으로 테인의 생각과 기분을 유추해 냈으니 이 정도야 아주 식은 죽 먹기였다.
‘테인이 좋아하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말을 하지도 못하겠네.’
기실 테인의 행복은 내가 바라 마지않는 것이었으니 테인이 만족한다면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테인, 잠깐 이리 와 볼래?”
옷을 살피던 내가 살랑살랑 손짓하자 얼굴에 물음표를 단 테인이 후다닥 다가왔다.
‘푸흐, 완전 강아지 같아.’
덩치가 덩치인지라 강아지라는 비유는 어울리지 않지만 내가 부르자 순식간에 누그러진 눈매를 보고 있자니 그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저는 왜…….”
내 앞에 선 테인이 나와 내 손에 들린 옷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전히 내가 자신을 부른 의도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테인의 턱 밑에 들고 있던 셔츠를 가져다 대었다.
상단 일을 하며 자연스레 높아진 안목에도 이 셔츠는 꽤 마음에 드는 데다 테인에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음, 역시 잘 어울리네.”
옷을 거둬들인 나는 셔츠를 팔에 걸었다.
테인은 여전히 멀뚱히 서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인 네가 내 호위 기사를 해 주기로 했으니까 내가 선물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어?”
내 말에 테인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는 괜찮은데…….”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원래 나 메리나 마릴린한테도 선물 자주 주거든. 너도 이제 내 호위니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주는 선물이야.”
한사코 거절하던 테인은 다른 시녀들한테도 선물을 준다는 말까지 듣고 나서야 결국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선물을 주면 잘 받았으면서 호위라고 거절을 하는 건가.
어쩐지 심통이 나서 나는 두세 벌만 사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내 팔이 무거워질 때마다 테인의 눈동자가 더 크게 흔들렸지만 무시했다.
테인이 계산대로 향하는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내 신경을 끌려는 듯 그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뒤로 돌지 않자 결국 테인은 내 옷자락을 슬쩍 잡았다.
“왜?”
뒤로 돌아 묻자 테인이 우물쭈물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전부 사실 건가요?”
“응, 전부 살 건데.”
테인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답하며 계산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점원에게 포장을 부탁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그리고 저거 전부 다 테인 네 거야.”
“전부…….”
“응, 전부. 저거 싹 다.”
오늘 내가 고른 옷은 상하의 전부 합쳐서 스물네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