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23화(123/218)
모습을 바꾼 후 유르젠이 말해 준 곳으로 가자 적당해 보이는 마차 하나가 서 있었다.
“마차를 타러 왔네.”
“패를 보여 주시지요.”
마부의 말에 조금 전 유르젠에게서 받은 은색 패를 보여 주자 그가 단정한 몸짓으로 마차 문을 열었다.
“목적지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사담이 없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어도 될 법했다.
탁-
테인과 내가 마차에 올라타자 마차 문이 닫혔다.
“출발하겠습니다!”
이랴-
마부가 말고삐를 당기는 소리가 들리고 멈춰 있던 마차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신전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 마차로 십 분 정도는 달려야 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테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흠…….”
지금 테인은 후드를 써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눈과 코가 전부 가려져 보이는 거라고는 입술과 턱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이 신전이다 보니 후드를 벗으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인의 덩치에 후드를 눌러쓰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시선을 끌 것 같기도 했고.
“테인.”
“네, 에리타 님.”
테인을 부르자 그가 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후드 좀 벗어 볼래?”
내 요구에 테인은 한마디의 의문도 표하지 않고 바로 후드를 젖혔다.
만약 후드를 벗게 되면 분명 누군가는 테인의 얼굴을 기억할 게 분명했다.
‘저 얼굴이 쉽게 잊힐 얼굴은 아니지.’
나는 자연스럽게 팔불출 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아주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테인 너도 신전에 있을 때는 얼굴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으응,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바꾸는 건 어려운 마법이었지만 최상급 마법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딱-
속으로 주문을 읊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테인의 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조금 더 매서운 인상으로 변했다.
눈매가 조금 사나워지고 눈썹이 짙어진 탓이었다.
“조금 아쉬운데…….”
지금도 인상이 바뀌긴 했지만 본판이 잘났던 탓인지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음, 테인, 머리색도 바꿔도 돼?”
“원하시는 대로 해 주세요.”
내 물음에 테인이 사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운 인상으로 만들어 놔도 웃으면 귀엽다니…….’
그냥 아주 귀엽기를 타고난 게 분명했다.
나는 주접 아닌 주접을 떨며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보들보들한 짙은 잿빛 머리칼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음, 됐다.”
내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눈동자를 굴린 테인이 제 머리칼 색을 보고는 어색한 손길로 머리를 매만졌다.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음, 아냐. 지금 딱 괜찮은 것 같아.”
머리카락을 원색 계열로 바꿨더니 이목구비를 바꾼 것보다 인상이 더 확실하게 달라졌다.
물론 나는 테인의 원래 모습이 제일 좋지만.
***
오 분쯤 더 달리자 마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다 와 가나 보네.”
사락-
쳐져 있던 커튼을 살짝 걷어 내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모여든 인파는 내 예상보다 더 많았다.
아직 신전의 입구가 보이지 않는 거리임에도 줄이 늘어서 있을 정도였으니 신전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더 많겠지.
‘……칼리온은 괜찮으려나.’
물론 이런 것 하나로 민심이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자기가 겪은 일을 더 크게 생각하니까.’
칼리온이 전쟁 영웅으로 이름이 드높은 건 수도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조금 먼 얘기였다.
그러니 이렇게 대놓고 뭔가 퍼 주는 쪽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어휴, 사람 진짜 많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꼼꼼히 커튼을 쳤다.
속도를 줄인 마차는 늘어선 줄을 지나 마차가 드나드는 입구로 향했다.
마차가 들어서자 신관복을 입은 이들이 마치 주차장을 관리하는 것처럼 멈출 곳을 가리켰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가린 베일이 흐트러지지 않았나 확인한 후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바꾸었음에도 베일을 착용한 건 신전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는지라 구겨질지 모르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고 나서자 내 옆으로 화려한 마차 몇 대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편히 볼일 보고 오시지요.”
확실히 유르젠이 붙여 준 사람이라 그런지 마부는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먼저 필요한 말을 척척 꺼냈다.
나와 테인은 마부를 뒤로하고 신전의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 사람들이 바글거리던 곳과 달리 이곳은 한적했다.
저 뒤에 자리한 마차들과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보아도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출입구인 듯했다.
‘여기는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사람들만 받는 모양이지. 하여튼 신은 공평하니 어쩌니 하는 건 다 말뿐이라니까.’
속으로 투덜거리던 내가 신전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저어…….”
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한 명이 신전 입구로 다가왔다.
중년쯤으로 보이는 신관이 자애롭게 웃는 얼굴로 그런 여인의 앞에 다가섰다.
“태양의 자비가 함께하시기를. 어쩐 일로 오셨나요?”
“아, 오늘 신전에서 평민들에게 공짜로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던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길을 몰라서요.”
여인은 연신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저희 아들이 태어난 지 겨우 두 달이 됐는데 신관님의 축복을 받으면 건강하게 자라지 않을까 해서요…….”
빠르게 말을 잇던 여인이 피곤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제 아이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 눈빛에서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느껴졌다.
해진 천에 싸여 있는 아이는 세상모르게 잠든 채였다.
신관은 그런 여인의 행동에 잠시 멈칫했다가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셨군요. 그런 거라면 이쪽 수습 신관님이 안내해 주실 겁니다. 따라가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여인은 웃는 얼굴의 신관이 불러 준 수습 신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분명 보기 좋은 장면이었으나 베일 안의 내 눈빛은 싸늘했다.
조금 전 평민 여인이 신관 쪽으로 다가설 때 미세하게 찌푸려졌던 신관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갈무리한다고는 했지만 누군가의 표정을 읽어 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내가 보기에 저 신관은 방금 자리를 뜬 모자를 싫어했다.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
저 여인 전에 신전을 나섰던 귀족에게는 신관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으니까.
그때 고개를 돌린 신관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빠르게 내 옷차림을 훑은 그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내게 다가왔다.
“태양의 자비가 함께하시기를.”
“태양이 그대의 앞길을 밝힐지니.”
나는 내키지 않지만 신관의 인사를 태양교의 인사로 맞받았다.
그러자 신관이 한층 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환영합니다, 자매님. 어쩐 일로 오셨나요?”
그 인사를 들은 내 심사가 한 번 더 꼬였다.
아까 평민 여인에게는 환영한다는 소리도 안 하더니.
자매님은 언제 봤다고 자매님이야.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신께서 들어 주셨으면 하는 기도가 있어서요. 일인 기도실을 사용하고 싶은데…….”
“아아- 신실한 자매님이시군요.”
“뭘요. 다 신께서 저를 돌보아 주신 덕이죠. 헌금은 어디서 하면 될까요?”
“헌금이라면 저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뒤쪽은 호위분이신가요?”
“아, 맞아요. 아버지가 제 걱정이 지극하셔서……. 같이 들어가도 괜찮죠?”
“당연히 괜찮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단정하게 걸음을 옮기는 신관의 뒤를 따랐다.
‘아, 진짜 짜증 나.’
마음 같아서는 신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신관이라는 놈이 저렇게 돈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도 되는 거냐고.
순간 신이 있었으면 진작 나타나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 봬도 이 세계에서 나는 이레귤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명색이 신이면 진작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여태껏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는 전부 그랬는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절대 안 올 거니까 오늘만 참자…….’
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내가 일 골드를 헌금으로 넣자 콧구멍을 벌렁거린 신관의 얼굴에 나는 또다시 불쾌해졌다.
이쯤 되면 일부러 신전에 대한 내 감정을 혐오로 바꾸기 위해 차려진 상황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이곳의 신관들이 전부 이런 건지 아니면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는 이 신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에 대한 내 편견이 더 단단하게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일인 기도실은 이곳입니다.”
신관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온 나는 새하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황궁에서 보았던 대성전도 새하얗더니 이곳 역시 벽이고 문이고 할 것 없이 전부 희었다.
“혹시 기도가 오래 걸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신께 기도를 올리는 데에 시간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하면 저는 이만 다른 형제자매님들을 맞으러 가 보겠습니다.”
“아, 네. 감사해요, 신관님.”
그렇게 신관은 끝까지 자애로운 척을 하며 자리를 떴다.
아직 기도실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지친 기분이 들었다.
“……테인, 조금만 기다려 줘.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내 말에 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고마워.”
나는 그런 테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준 뒤 하얀 문을 밀었다.
들어가서 대충 신 몇 번 불러 보고 기도 좀 해 보고 나올 생각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고작 몇 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