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24화(124/218)
테인에게 인사를 건넨 나는 문을 닫았다.
창문이 하나도 없어 자칫 답답하게도 느껴질 수 있었으나 은은하게 내부를 비추는 마법 등 덕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네.”
1인 기도실이라기에 골방 정도를 생각했건만 내부는 의외로 널찍했다.
내 침대 두 개를 가져다 붙인 것보다 조금 더 작다고 해야 할까.
“이건 여신상인가?”
의자의 방향에 따른 방의 앞쪽에는 작은 조각상이 올려진 단상이 있었다.
손에 동그란 구를 들고 눈을 감은 모습으로 조각된 여신상을 보자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왔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스스로 오긴 했지만 미미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주위를 힐끗거린 나는 입을 열었다.
“……저기,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허공에다 대고 혼잣말을 하는 건 상당히 두꺼운 얼굴을 필요로 했다.
“태양신님, 거기 계시면 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나는 이런 내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한다는 걸 위안 삼고는 다시금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의 쪽팔림을 참아 보아도 소설처럼 누군가의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여기에 온 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어.
기도실에 들어온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있어 봤자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옅게 남으려는 미련을 떨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윽……!”
순간 눈앞이 희게 물들었다.
***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빛에 눈꺼풀을 질끈 감았던 나는 몇 초가 지난 뒤에야 느릿하게 눈을 떴다.
“뭐야…….”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공간은 좁진 않지만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신전의 기도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온통 새하얗기만 한 곳은 기도실이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나는 당황이 잔뜩 담긴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오직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했다.
혹시나 싶어 마력을 일으켜 보았지만 단 한 줌의 마력도 모여들지 않았다.
‘설마…….’
이 상황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아까 전 혼잣말을 하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것뿐이었다.
“태양신……?”
그렇게 생각하니 결벽적으로 새하얀 공간이 신전과도 흡사하게 보였다.
누군가 그렇다고 말해 준 것도 아니건만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애초에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걸.’
근데 그럼 태양신은 어디 있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장본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까 보았던 여신상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하다못해 목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요!”
나는 적당히 소리쳐 보았다.
하지만 내 외침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고, 벽이 없다고 느꼈던 게 맞는 듯 어딘가에 부딪쳐 돌아오는 메아리도 없었다.
“아무도 없어요?!”
이번에는 꽤 크게 소리를 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누구와 마주쳐도 위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 자신감의 원천은 마법이었다.
그랬기에 마력도 통하지 않는, 마치 내가 알던 하늘 아래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 공간에서 나는 철저히 무력했다.
‘마법도 안 되고, 불러도 대답도 없고. 뭐 어쩌라는 거야…….’
이 상황 자체가 무섭지는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계속 걸어가면 뭐라도 나오려나.”
한 방향을 정해 한참을 걸었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죄다 새하얗고 또 새하얀 공간이었다.
“돌겠네…….”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중간에 구두를 벗어 든 덕에 발이 아프진 않았지만 지친 건 사실이었다.
이쯤 되니 태양신이고 뭐고 그냥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하…….”
나는 터벅터벅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냥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더 걸어 봤자 지치기만 하겠지.
기도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인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빨리 안 나가면 테인이 걱정할 텐데…….”
시간을 알 수 없으니 이곳에 떨어진 뒤로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체감상 적어도 한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물론 신전에 도착하기 전에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얘기를 해 두었지만 그게 몇 시간은 아니었단 말이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푹 내쉬어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천장인지 뭔지 모를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쿠구궁-
공간 전체가 부르르 진동했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벌떡 일어섰다.
내가 발을 디딘 곳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으나 주위를 휘휘 둘러보아도 처음부터 벽과 벽의 경계조차 없던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생소한 통증과 함께 머릿속에 신묘한 목소리가 직격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을 먼저 보고 오렴.]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조금 전 이곳에 올 때처럼 눈앞이 희게 물들었다.
***
에리타가 막 새하얀 공간에 떨어졌을 때였다.
“……!”
평소 대공저에서 에리타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것처럼 문 옆에 반듯하게 서 있던 테인은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조금 전 미묘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아주 미미했기에 놓칠 뻔했으나 분명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미행이 따라붙지는 않았는데.’
제 주인이 뒤를 맡기고 들어갔으니 한 톨의 이상한 점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게 호위의 의무였다.
테인은 에리타의 앞에서는 절대 내보이지 않았던 날카로운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그가 느꼈던 기운이 스스로 지키고 선 문 안에서 새어 나왔다는 것까지는 테인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
다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온통 새하얗던 공간에서 벗어난 채였다.
“아으, 머리야…….”
조금 전 신비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던 탓인지 미미한 두통이 일었다.
눈을 꾹 감고 삼십 초쯤 가만히 서 있었을까.
“아, 이제 좀 살겠다.”
사그라든 두통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재 내가 딛고 선 곳은 귀족가의 저택 안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널찍한 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아야 할 게 뭐길래.”
조금 전 들었던 목소리를 상기한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분명 이런 구조의 방은 처음 보는 게 분명한데도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구두를 벗어 들어 맨발이라고는 해도 발걸음 소리가 나야 한다는 걸 알아챈 건 조금 뒤였다.
“여기는…….”
포근한 사용감은 있으나 인기척은 없는 방을 둘러보던 나는 어째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커다랗게 난 창문 밖의 풍경을 알고 있었던 탓이다.
눈에 익은 정원의 모습에 저절로 입이 떨어졌다.
“……대공령이잖아.”
그래. 내가 아는 것과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분명히 대공령에 있는 정원이었다.
아슬란이 세르비아를 위해 만들었다던 그 정원.
내가 좋아했던 그곳이었다.
“그러면 여기는…….”
내가 다시 방 내부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 리 신관을 데려오게!”
순식간에 가까워진 소란과 함께 고요하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어딘가 친숙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년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온 하녀들이 재빨리 넓은 침대를 정돈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들에게 다가섰다.
“저…….”
“빨리 준비해! 빨리!”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내게 시선을 두지도 않고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아니, 정확히는 내 몸을 통과해 지나쳤다.
마치 내가 투명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못이라도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마님을 안고 오고 계시네.”
내 고개가 돌아간 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후였다.
“테르반……?”
열린 문 앞에 초조한 얼굴로 서 있는 건 한 이십 년쯤 젊어 보이는 테르반이었다.
하지만 그건 놀람의 끝이 아니었다.
복도를 내다보던 테르반이 화색을 띠며 비켜선 후 한 여인을 품에 안은 채 방으로 들어선, 젊은 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숨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분명 아버지였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이전의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가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힌 여인의 얼굴과 그녀의 배가 잔뜩 불러 있는 걸 보고는 알아챘다.
‘설마…….’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사람들은 나를 볼 수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을.
“세르비아, 조금만 힘내. 정신 잃지 말고. 응?”
“아슬란…….”
“그래, 당신 옆에 있어.”
“에일런은요? 우리 아들…… 많이 놀랐을 텐데…….”
“……에일런도 지금 오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신 몸부터 챙겨.”
두 사람의 대화에는 에일런이 존재했다.
그건 하나의 사실을 나타냈다.
‘그럼 지금 저 배에 있는 건…….’
나는 나도 모르게 세르비아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우리 에리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한 발 더 다가선 탓인지 세르비아의 여린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당신이 소중히 품었으니까 그럴 거야.”
아- 나는 결국 멍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