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26화(126/218)
이번에 눈을 뜨면서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기분이었지만 나 스스로도 무슨 느낌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감과 거부감이 솟구쳤다.
몸에 새겨진 거부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감이 안 좋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공간을 밝히는 건 띄엄띄엄 벽에 박혀 있는 마법석이었다.
바람도 빛도 들지 않는 걸로 보아 어딘가의 지하로 추측됐다.
어디에 있는 곳인지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어느 시점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없네.’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공간에는 어쩐지 스산한 공기가 흘렀다.
등 뒤로 비죽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곳에서 아무런 영향도 행사할 수 없으니 당연하게도 이 공간 역시 내게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는데 말이다.
그건 오로지 이 지하 공간이 품고 있는 기운이 암울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조금 뒤 나는 왜 내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건…….”
드넓은 지하를 일자로 쭉 걸어가다가 발견한 제단.
단상처럼 마련된 제단은 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가장 밝았다.
그리고 제단을 확인하느라 계단을 올랐다가 돌아본 지하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
그 거대한 마법진 안에는 작은 마법진이 가닥가닥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제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 하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오랜 기간 흑마법을 조사해 왔기에 저 마법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았다.
제물로 바쳐진 이의 영혼을 뽑아내는 마법진.
그리고 영혼을 빼앗겨 죽는 순간까지도 가장 순도 높은 고통을 주어 끝의 끝까지 절망하게 만드는 것.
“……미친놈들.”
내가 발을 딛고 선 이곳은 흑마법사들이 세운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낀 이유가 설명되었다.
그를 넘어서 구역질이 치밀기까지 했다.
지금이 어느 시점인지는 몰라도 이 제단이 황후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위치를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저번에 칼리온이 내 연구실에 찾아왔을 때 했던 얘기 중 빈민가에 제단이 있을 확률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만약 여기가 그곳이라면?
이 정도 되는 규모의 제단이라면 그들이 바치는 제물의 수 역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나는 급하게 계단을 내려와 제단의 입구를 찾아 헤맸다.
아까 고아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나갈 수 없을 확률이 높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공간 밖으로 벗어나지는 못해도 공간 안을 둘러보는 건 제약이 없었으니까.
우웅-
이동 마법진 특유의 마력이 느껴진 건 내가 이 내부에 출입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였다.
화악-
제단의 반대쪽에서 마법진이 반짝였다.
마법진을 통해 이 공간에 들어온 다섯 명은 모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나는 저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을 참았다.
“……준비는 잘되었겠지?”
가장 앞에서 걸어오던 이에게서 품위 있는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이의 것이었다.
‘황후…….’
황궁에서 열렸던 무도회.
그곳에서 들었던 황후의 목소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내리눌렀다.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지켜보는 것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 계집을 이르심이라면 지금 의식을 위한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계집? 의식?
“준비는 언제쯤 끝날 것 같은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계집을 들이기에 앞서 이쪽에서도 해야 할 준비가 있지 않습니까.”
황후를 따라온 복면인 중 가장 키가 큰 한 사람은 황후의 곁에 남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흑마법을 위한 마법진을 보강하여 그리고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황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이 말한 계집이라는 게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건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황후와 복면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려던 순간이었다.
피잉-
작은 소음이 대화를 끊어 내자 복면인이 품속에서 수정 구슬을 꺼내 들었다.
‘통신구잖아……?’
일반적인 통신구와 조금 다르게 생긴 저건 소모용 통신 구슬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저걸 쓰는 모양이네.’
흑마법사들은 순리를 거스른 이들이었기에 마법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고유 마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이 끌어다 쓰는 힘의 원천은 그들이 바친 피와 그것을 흡족해하는 악마의 힘이니까.
-준비 끝났습니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복면인은 황후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문을 열도록 하지.”
그게 허락의 뜻인 듯 복면인은 문을 열겠다는 말을 한 후 수정구를 깨뜨렸다.
드드드-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그저 벽이라고 생각했던 제단 뒤의 공간이 커다란 소음을 내며 갈라졌다.
‘이게 무슨…….’
내가 놀란 건 저 벽이 갈라진 사실 그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음울한 기운의 탓이 더 컸다.
갈라진 벽 안의 공간에서는 그저 느낌뿐이 아니라 실제로 절망과 악으로 가득 찬 사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황후와 복면인은 개의치 않고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고아원에서 나를 튕겨 냈던 투명한 막이 없었다.
황후와 키가 큰 복면인이 지나갈 때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겹겹이 갈라졌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벽을 지났을까.
드디어 벽이 아닌 또 다른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미친 새끼들…….’
그리고 나는 참담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귀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에 떠도는 소리가 내 귀로 선명하게 박혀 들었다.
“배고파…….”
“엄마 어디 있어……? 흐윽, 엄마아…….”
“아파……. 너무 아파요…….”
“으아앙!”
제물을 바칠 때 흑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건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악마는 순수한 영혼을 타락시킨다고들 하지.
그와 일맥상통하는 이유였다.
그때 황후와 키가 큰 복면인 앞으로 비리비리해 보이는 한 남자가 걸어왔다.
“오셨습니까.”
“델리아는 어디 있지?”
“계집과 함께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델리아. 나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황후가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이며 저 남자가 깍듯이 존칭하는 인물이었다.
분명 황후와 더불어 이 집단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인물이 틀림없었다.
황후는 등을 돌려 걸어가는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갇혀 있던 아이들과 멀어져 점점 좁아지던 길은 어느 순간 확 넓어졌다.
“아아악!”
“허억, 허억……. 그만……. 제발……. 끄윽!”
소리 차단 마법을 걸어 두었던 건지 넓은 공간으로 발을 디딘 순간 귀를 찢는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참혹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랐다.
‘……제단뿐이 아니었어.’
분명 벽 안으로 들어와 처음 마주한 곳에는 아이들이 잔뜩 갇혀 있었다.
아마 그 아이들은 내가 예상했듯이 제물로 쓰기 위해 납치해 온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더 깊은 안으로 들어오자 이 공간의 두 번째 용도가 드러났다.
이곳은 그저 제물을 모아 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생체 실험…….’
유리관 안에 갇혀 무엇인지 모를 액체를 주입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체 일부가 몬스터의 것인 사람도 있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은 이토록 잔인하고도 역겨운 행위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행했다.
“하…….”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짙은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처음 테인을 만났던 날의 격투장 지하.
삶의 희망을 잃은 수인들을 보았던 그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짙은 무력감과 분노가 밀려들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델리아.”
“제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치미는 분노를 애써 꾹꾹 누르며 대화에 집중했다.
델리아라 불린 이 역시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아이는 따로 실험실 안에 두었습니다. 워낙 가진 마력이 방대해서 밑 작업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의식이 제대로 먹힐지가 문제군. ……하여튼 저주받은 핏줄 같으니.”
“그 덕분에 연구가 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기며 나누는 대화에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주받은 핏줄.
계집과 저주받은, 그리고 방대한 마력.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여긴 과거일 텐데…….’
나는 세 단어가 주는 익숙함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황후와 델리아라는 이가 실험실이라 부른 곳으로 들어선 순간, 설마는 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