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28화(128/218)
[드디어 이곳에 왔구나.]그렇게 찾던 목소리를 들은 후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헛웃음이었다.
드디어 왔다고?
“하, 하하…….”
턱 끝까지 차오른 원망은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것이 되어 토해 내듯 쏟아졌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고개를 쳐들고 내 앞에 내려앉은 빛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내 앞의 존재가 신이라고 불린다는 걸 알지만 존대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정신에 누군가를 존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알아야 할 것들이 이거였어?”
갈라지고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야…….]태양신은 그런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불렀다.
위선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이걸 보여 주는 이유가 뭔데?”
나는 따지듯이 소리쳤다.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라는 건 알지만 지금 내가 본 것들은 내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설명 하나 없이 이런 거 보여 주면 내가,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고. 어떻게 돼먹은 일인지 알려 주지도 않고! 저 사람들이 죽는 걸 보여 준 이유가 뭐냔 말이야…….”
비참하게 눈을 감은 내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이 턱턱 막히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어디 한 군데가 망가진 것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긴 시간 동안 몇 번 눈을 뜨지도 못하고 황후의 손에서 철저히 망가진 에리타.
결국에는 제 심장에 직접 날카로운 칼날을 박아 넣어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마무리한 에리타를 떠올리자 가슴이 저미듯 아파져 왔다.
하지만 그 죽음마저도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할지라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에리타가 그렇게 아픈 죽음을 택한 이유는 저를 절박하게 부르는 아버지와 에일런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방금 네가 보고 온 건 과거이자 미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란다. 적어도 지금 이 시간 선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니 그리 슬퍼할 이유가…….]“그게……!”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태양신의 말을 끊었다.
과거이면서 미래가 될지도 몰랐던 것.
서로 연계된 뜻을 가졌으나 공동의 주어를 가질 수 없는 두 단어.
그것에 대해 의아함을 표하기보다도 차오른 분노가 먼저였다.
“그게 말이나 돼?!”
지금 눈앞에 당면한 상황이 아니니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지극히 이성적이어서 잔인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신의 기준과 인간의 기준은 다르다고 하던 말을 이렇게 실감했다.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 그랬기에 자비를 베풀고 우리를 포용했다.
하지만 그게 신이 인간의 감정을 전부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 일어날 일이 아니니까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나는 희게 느껴질 만큼이나 투명한 금안을 노려보았다.
그저 덩어리였던 빛은 어느새 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조각상과 흡사한 외양의 여인은 내가 알고 있는 태양신의 모습이었다.
경계가 흐리면서도 뚜렷한 얼굴은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나는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다.
너무 세게 문 탓에 핏방울이 맺혀 비릿한 쇠 맛이 났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여운 내 아이야, 나는 신이란다. 내가 빛을 부어 만든 인간을 사랑하지만 나는 신이기에 인간의 감정까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흘러나온 말에 힘이 탁 빠졌다.
신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신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다르다는 사실은 이런 것을 뜻했다.
내가 어째서 슬퍼하는지 백날을 설명해도 태양신은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
신이기 때문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하기까지 한 눈을 몇 초간 마주했을까.
지금까지 분노했던 것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지금 내 슬픔이 사라진 것도, 당신 때문인가요.”
나는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감정이 거세된 것처럼 마음이 잔잔해졌다.
강제로 분노가 사그라든 기분은 나쁘다 못해 시궁창에 처박힌 것처럼 더러웠다.
하지만 그 감정조차 폭포에 쓸려 가는 나뭇잎처럼 금세 사라졌다.
[……그래. 네가 내 눈을 마주했으니까. 신에게는 과한 감정이 필요치 않지. 그게 슬픔이든 분노든.]태양신이 담담히 내 말에 긍정했다.
지저귀는 카나리아의 것보다 곱고 바다 위에서 울리는 세이렌의 것보다 더 신비로운 목소리였으나 온기는 없었다.
“하…….”
헛웃음에 가까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이야, 내게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단다.]그때 다시금 태양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
[신이 인간계에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그리고 그 시간조차 네게 보여 준 것들로 인해 극히 짧아졌단다.]그 말에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태양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부질없는 기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태양신을 찾아온 건 이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그럼 내가 묻는 것에 전부 대답해 줄 수 있나요?”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나는 당신이 말하는 섭리가 어떤 건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냥 대답할 수 있는 건 전부 대답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내 단호한 말에 여인의 형상을 한 태양신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제쳐 두고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후 입을 열었다.
“나는 누구인가요?”
어쩌면 멍청하게까지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타인에게 묻는다는 건.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꼭 들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원작 속의 에리타에게 빙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이 새로이 생겨났다.
말도 안 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한 가설이지만 나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내가 보았던……, 당신이 과거이자 미래라고 했던 그 장면 속에 있던 에리타 크로바하츠.”
[…….]“그건 나인가요?”
내 물음에 태양신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투명한 금안을 곧게 응시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 신전에 들어와 그 시간의 장면들을 보기 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가설이었다.
나는 나와 에리타의 존재를 완벽히 구분 짓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 이제는 당신이 내게 답해 줄 차례예요.”
지금껏 내가 에리타로 살아온 십 년의 세월 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나 지금은 확신이 들었다.
내 가설이 맞을 거라는 확신.
[……네 말이 맞다.]확신이 사실로 변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지 않았다.
분명 오늘 이전에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덤덤히 받아들여졌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조금 늦게 확인했을 뿐인 것처럼.
이것 역시 태양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 하하…….”
저절로 힘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맨발에 눈물범벅인 얼굴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은 미친 사람이라 착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슬픔과 분노가 일지 않으니 기뻐할 수밖에.
나는 겨우겨우 웃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그건…….]“어차피 내가 안 물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 모난 돌처럼 톡 튀어나온 존재라는 건 알았다.
태양신이 나를 기다리고 내 부름에 응답한 이유도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 하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우선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단다.]“상관없어요. 어차피 전부 물을 거였으니까.”
나는 바르게 서서 말했다.
신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신이 내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만약 오늘 전부 들을 수 없다면 내일 다시 오면 되고, 그걸로도 안 되면 다음 날 또 오면 된다.
[조금 전 내가 네게 보여 주었던 건…….]태양신이 답지 않게 잠시 말을 흐렸다.
그 말을 서두로 태양신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태양신의 설명은 믿기 힘든 이야기투성이였다.
“이 세계가 한 번 멸망했었다니. 그게 대체…….”
나는 놀란 나머지 말끝을 흐렸다.
정확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뒷말을 이어 나간 건 태양신이었다.
[내가 사랑한 이 세계가 멸망한 건 네가 보았던 장면 뒤에 일어난 일이란다.]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에리타가 스스로 심장을 찌르고 아버지와 에일런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 죽음에 내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슬픔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 후의 시간이 어째서 멸망으로 치달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에 태양신은 여전히 담담하지만 아주 조금쯤 비탄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계는 흑마법으로 인해 멸망했다.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은 고통 속에 허덕였고, 그 영혼들은 갈가리 찢겨 나갔지.]“흑마법…….”
나는 태양신의 말 중에서 들린 익숙한 단어를 곱씹었다.
[그리고 너 역시 그것과 엮여 있었단다.]그때 태양신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와 엮여 있었다니, 그게 무슨…….”
나는 문득 스쳐 지나간 장면에 말을 멈추었다.
내가 보았던 장면 속에서 에리타 크로바하츠는 황후와 알 수 없는 집단의 실험체로 쓰였다.
그리고 연구원처럼 보이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에리타를 실험체로 사용하며 자신들의 연구에 큰 발전이 있었다고 했다.
아마 그것과 연관이 있을 테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 내 행보가 그 시간대의 것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흑마법으로 인해 세상이 멸망했다면 어떤 방향으로든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게 영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이 이상은 섭리에 어긋나기에 더 말해 줄 수가 없구나.]나는 태양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한 것을 조를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사랑한 세상이 흑마법으로 멸망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뒤늦게서야 개입했지만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후였단다.]자세한 설명을 들은 건 아니지만 어쩐지 감이 왔다.
아까 보았던 장면 속에서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사악한 일들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태양신이 말한 멸망은 아마 그것들과 관련이 있을 테지.
[그래서 나는 내 힘 전부를 걸고 시간을 돌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