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29)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29화(129/218)
시간을 돌렸다는 태양신의 말에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그만큼 놀라운 말이었다.
“시간을 돌렸다고요?”
[그래. 세상이 멸망하기 전으로 돌렸지. 많은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기에 이십 년이 최대였단다.]나는 기가 차 허, 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십 년이라고 해도 애초에 시간을 돌린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
물론 마법 중에도 시간에 관련된 마법은 있었다.
나도 시간 마법에 대해 연구를 했었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세계의 시간을 돌린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태양신이 말한 섭리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 태양신은 그 당연한 섭리를 거슬렀다고 말하고 있었다.
[본래는 불가능한 게 맞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하늘의 섭리이고,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내 부정에 답하는 태양신의 음색에는 고저가 없었다.
“그런데 당신은 시간을 돌렸다면서요.”
[내 힘 전부를 걸고 돌렸다는 말을 기억하니?]조금 전 태양신이 했던 말이었다.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는 작은 권능을 행사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내 권위를 잃었단다.]권능을 행하지 못할 정도라니.
그 순간 언젠가 들었던 한 가지 정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방금 태양신의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이었다.
일 년쯤 전이었나, 유르젠이 알아 두어야 할 것 같다며 보고했던 내용이었다.
-신전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확실히 신전 내부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내부 분위기가?
내 물음에 유르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말을 이었다.
-십오 년쯤 전부터 서서히 신의 힘을 내려 받는 이의 숫자가 줄었다고 합니다. 신관과 성기사 열 명이 있다고 하면 여덟 명은 힘을 받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다섯 명도 힘들다고 하더군요.
-흐음……. 근데 지금까지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종종 있었잖아.
확실히 숫자가 줄었다는 게 눈에 보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껏 신전의 역사를 보면 유난히 신전의 위세가 줄었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유르젠이 말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힘을 내려 받는 이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을 때가 지금이 아닌 과거에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만약 그 이유가 전부였다면 별일이 아니겠죠.
-다른 이유가 있나 보네.
떨떠름한 내 말에 유르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잃은 신관과 성기사들이 생겼습니다.
그러고는 서류를 내밀며 하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힘을 잃었다고?
-네. 불의를 행하거나 신을 모독하지 않았음에도 하루아침에 힘이 사라지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꽤 많이요.
그건 확실히 심각하다고 칭할 만한 일이 맞았다.
나는 늘어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유르젠이 내민 서류를 받아 들었다.
-무슨 일이람…….
심각한 얼굴로 속독한 서류에는 글자와 숫자가 함께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이유 없이 힘을 잃은 이들의 숫자는 대략 육십 명으로 추정 중.
언뜻 보기에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애초에 신전에 있는 신관과 성기사 모두가 신의 권능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마법사가 될 수는 없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면 좀 심각한데?
-그러니 신전이 기를 쓰고 이야기가 퍼져 나가는 걸 막고 있죠.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유르젠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 말에 동조했다.
신관이나 성기사들은 신의 진노를 사면 힘을 잃었다.
여기서 신의 진노를 산다는 것은 살인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거나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여기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기에 본질을 교묘히 비틀어 악랄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읽은 이 서류에는 평소 신실하던 이들까지 힘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건이 있는 거라면 신전 내부의 분위기가 흉흉할 법도 했다.
유르젠이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신관이 아무 이유 없이 힘을 잃은 일이 처음 발생한 건 대략 구 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으음.
-그 신관은 평소 행실이 바르고 필요하다면 신에게 목숨을 바칠 수도 있을 정도로 신실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신전 측에서는 그 신관의 말을 믿지 않았답니다.
-……그렇겠지.
-그 당시에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 흐지부지 넘어간 모양입니다. 신전 측에서는 그 신관이 뒤에서 무언가 신의 진노를 살 짓을 했다고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태가 커진 후 심각성을 깨달은 신전의 고위층은 그 사실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뭐, 그치들로서는 당연하겠지요.
어디나 자신의 이익을 좇는 탐욕가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건 신전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그 당시의 신전에는 타락한 이들이 많았다고 하니까.
나는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신전의 이미지가 실추될 테니까.
-맞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어찌어찌 잘 감추었던 모양이지만…….
유르젠이 흐린 끝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전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 실패한 거겠지.
아무리 제재를 한다고 해도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빛과도 같았다.
그때의 기억을 상기했던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태양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힘을 내려 받는 이들이 줄어들고 힘을 잃는 이들까지 생겨난 게…….”
[……내 권능이 약해졌으니 나누어 줄 힘이 없었지.]태양신은 느릿하게 긍정했다.
그러고는 덧붙여 말했다.
[십 년 전 나는 다시금 힘을 써야 했다. 힘을 잃은 아이들이 생긴 건 그 때문이야.]십 년 전.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나는 떨리는 눈으로 태양신을 응시했다.
태양신이 힘을 써야 했던 십 년 전의 일.
내가 이곳에서 처음 눈을 뜨게 된 건…….
[그건 너를 이곳에 불러오기 위함이었다.]지금으로부터 딱 십 년 전이었다.
그때였다.
쿵-
온통 새하얗던 공간이 끝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늘의 만남이 끝나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어진 시간이 끝난 모양이구나.]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본 태양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직, 아직 얘기를 덜 들었는데……!”
나는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태양신을 바라보았다.
원작은 정확히 무엇이며 그곳에 등장했던 아일라는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정말 원래부터 에리타 크로바하츠였다면 어째서 나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십 년 전에야 나를 불러왔던 건지.
아직 물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공간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초조해 말거라.]“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나는 빠르게 물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찾아올 수 있었다.
내 물음에 태양신은 잠시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시 만날 수 있단다.]그 말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 너를 만나러 오느라 힘을 많이 썼단다. 그러니 당분간은 네가 찾아와도 만나 줄 수가 없어.]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받았으니 지금 당장은 안 된다는 말을 들어도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오렴. 그때는 오늘 알려 주지 못했던 것들을 전부 알려 주겠다.]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한 달이라는 약속을 끝으로 하얀 공간은 남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태양신의 마지막 말이었다.
***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도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기도실 문이 무사한 것을 보니 아주 오래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테인이 순하다고는 하나 약속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저 기도실 문을 가만히 둘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아…….”
벗어 들고 있던 구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내 발에 신겨져 있었다.
나는 멍하니 드레스 위에 얌전히 놓인 내 손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정적 속에 홀로 남겨지자 그저 멍했다.
“……흑.”
그때, 내 드레스 위로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툭- 투둑-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은 물방울은 내가 눈을 한 번 깜박이자 또다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물방울이라 칭했던 건 내 눈물이었다.
갑자기 미칠 듯한 슬픔이 몰려왔다.
그건 내가 주체할 수 있는 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왜, 왜 갑자기…….”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울음이 울컥 치밀어 목을 막았기 때문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나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 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무의미하게도 닦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으흑, 으…….”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이 범람했다.
“읏, 윽…….”
평범한 울음이 아니었다.
그냥 조금 슬퍼서 나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슬픔이고 분노였으며 안도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터뜨린 눈물이 진정한 내 감정임을 알아챘다.
조금 전 내가 담담했던 건 태양신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홀로 남은 지금 터져 나온 이 울분은 막혀 있던 내 감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조여드는 가슴을 붙잡은 채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