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3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30화(130/218)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신전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머리에 뜨문뜨문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차 안에서는 그저 멍했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다른 이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꿈은 아니겠지.”
나는 머리끝까지 올렸던 이불을 살짝 내리며 중얼거렸다.
숨이 조금 막혔다.
다행히 신전 기도실 안에서 진이 빠질 정도로 울었기에 더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
그런데도 머릿속은 여전히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복잡했다.
단시간에 너무 커다란 사실을 여럿 받아들인 탓일 테지.
아마 내가 아닌 그 누구더라도 이 상황 속에서 침착할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의 전제가 바뀌었다.
태양신의 앞에서는 고저 없는 감정이 싫었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그때의 침착함이 그리웠다.
‘나 참, 이게 뭔지…….’
이렇게 무거운 얘기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사실 아직까지 내가 정말 에리타 크로바하츠라는 것도, 멸망으로 치달았던 세계를 안타까워한 태양신이 시간을 돌렸다는 말도 전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았다.
“…….”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발코니를 향해 돌아누웠다.
커튼을 치지 않아 바깥이 고스란히 보였다.
어두운 밤하늘에 휘영청 뜬 달이 어여뻤다.
“평소랑 똑같네.”
내 세계가 뒤바뀐 날이었으나 바깥은 여느 때와 같았다.
한 번 멸망에 다다랐던 세계에서는 종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겠지.”
나는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때의 멸망은 없던 일이 되었고, 그 사실을 아는 건 태양신과 나뿐이니까.
그렇게 십여 분을 더 멍하니 있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멸망한 세계의 파편을 본 게 나뿐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간에 또 한 번 감사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내일 일어나면 아버지랑 오라버니한테 사랑한다고 해야지.’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이제는 해도 되는 말이었다.
***
“…… 씨! …… 상에!”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윙윙대며 울렸다.
“…… 을 가져오고 주인님께 알리도록 해! 얼른!”
뒤이어 들린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웅웅거렸지만 조금 깬 정신 탓인지 약간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조급하게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이였다.
‘무슨 일이지…….’
답지 않게 소리를 높이는 메리에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방금 눈을 떠서 그런지 흐릿한 시야에 두어 번 눈을 깜빡여 보았지만 눈앞은 여전히 흐렸다.
“왜…… 윽.”
입을 열자 쇳소리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타는 듯이 따가운 목에 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눈앞이 흐렸고 목이 아팠으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모자라 머리는 지끈거렸다.
몸은 마치 공중에 붕 뜬 것처럼 가볍기도 했고 저 깊은 물 속에 처박힌 것처럼 무겁기도 했다.
‘아, 나 아프구나.’
그제야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약을 가지고 올 거예요! 지금 열이 너무 심하셔서…….”
그것도 열이 펄펄 끓을 정도로 아주 심하게.
내가 일어난 것을 눈치챈 메리가 언제 가져온 건지 시원한 천으로 땀에 젖은 내 얼굴을 닦아 냈다.
그런 메리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메리를 달래 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메리……. 콜록, 콜록!”
고작 메리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목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 내 정신 좀 봐! 우선 미지근한 물부터 조금 마시셔요. 열이 많이 나서 그런지 목도 상하신 것 같아요.”
메리는 조심스레 나를 살짝 일으킨 뒤 내 입술에 컵을 가져다 대었다.
평소였다면 직접 컵을 받아 들었겠으나 손가락 끝에조차 힘이 들어가지 않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프면서 괜한 자존심을 세우고 싶지도 않았고.
“그럼 다시 누워 계세요. 조금 전에 마릴린이 약을 가지러 갔으니까…….”
메리는 잔뜩 속상해하는 얼굴로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목이 아파 무어라 대답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희미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항상 아프실 때마다 이렇게 심하게 아프셔서 어떡하지…….”
메리는 천이 미지근해질 새도 없이 계속 물에 적셔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온몸이 다 저리고 쑤시는 데다가 몽롱한 걸 보니 정말 제대로 아픈 모양이었다.
눈을 꾹 감아 보았지만 두통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야…….’
누군가 머릿속을 후벼 파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픈 건 싫은데…….’
나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멍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기실 따지고 보면 나는 자잘하게 아픈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대신 한번 앓으면 아주 심하게 앓아누웠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아프더니 올해는 지금인가 보네…….’
어떤 때는 일주일을 꼬박 아팠고 어떤 때는 하루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며칠 동안 아픈지는 매년 달랐지만 공통점이라면 자리보전하는 동안 끔찍하게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달뜬 숨을 내뱉었다.
끔찍한 고통보다도 이 아픔이 금방 사그라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는 게 싫었다.
‘아파도 신관이 소용없으니…….’
내가 열 살쯤 먹었을 때 가족을 만나고 처음으로 열이 펄펄 끓었던 날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소리에 급하게 달려온 아버지는 열이 들끓는 내 몸에 급하게 신관을 불렀다.
-신관, 당장 신관을 불러와!
-예, 예!
-아버, 아버지…… 너무 아파요…….
나는 온몸을 지배하는 고통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허덕였다.
처음 리센에서 눈을 떴을 때, 그러니까 내가 본래의 자리를 찾았을 때 일주일간 앓았던 고통과 흡사했다.
-에리타, 아비가 여기 있다. 걱정할 것 없어. 금방 괜찮아질 것이야. 응?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신관이 올 때까지 내 손을 붙잡고 옆에서 직접 내 물수건을 갈았다.
에일런 역시 아픈 내 옆을 지켰다.
하지만 신관이 도착해도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신성력이 내게 통하지 않았으니까.
-뭐라? 치료되지 않는다니!
-그, 그게…… 이유는 저도 잘 모르지만…… 대공녀님께는 신성력이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모자란 느낌이 듭니다.
아버지의 노성에 신관은 쩔쩔매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한 건 제가 알 수 없으나 간혹 체질상 신성력이 잘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대공녀님처럼 아예 먹히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럼 치료할 수 없다는 소린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약을 먹고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젠장!
흐릿한 기억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신관과 살벌하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명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대화의 내용이었다.
내 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성력이 먹히지 않았다.
그게 치료든 축복이든 무엇인지와 관련 없이 신성력이라면 싸그리 전부 말이다.
지금까지는 망할 체질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쩌면 신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신성력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그 탓에 나는 아플 때마다 약을 먹고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치료 마법을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외상에 한정되어 있었다.
‘열이 펄펄 끓는 건 외상이 아니니까.’
그때 달칵, 하고 조용히 문이 열렸다.
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렸다.
들어온 건 쟁반에 무언가 바리바리 챙겨 들고 온 마릴린이었다.
“메리 언니, 여기 약이요. 우선 이것부터 드시고 다른 약은 간단하게 뭐라도 먹은 후에 드셔야 한대요.”
마릴린이 들고 온 쟁반 위의 약그릇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약도.
‘제일 최근에 먹었던 게 작년 겨울이었던가…….’
북부에서 보내던 겨울 도중이었던 것 같은데.
열이 나는 탓인지 생각이 더디고 뚝뚝 끊겼다.
“으…….”
거기다 무언가를 생각할수록 머리를 두드리는 두통이 더 심해져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쓰디쓴 약을 힘겹게 전부 삼키고 다시 자리에 누웠을 때였다.
달칵-
아버지가 답지 않게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왔다.
“에리타…….”
급하게 내 침대 옆으로 다가온 아버지의 얼굴에는 속상함과 걱정이 가득했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죽이 올라오면 들여보내겠습니다.”
“그러도록.”
침대 옆 협탁에 약이 놓인 쟁반을 올려 둔 마릴린은 메리와 함께 방을 나섰다.
그 과정에 어색함이란 없었다.
아버지가 아픈 내 곁을 지키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에일런이 있을 때는 두 사람이 모두 내게 붙어 있었고.
“아가, 다 괜찮다.”
아버지는 손수 천을 들고 내 얼굴을 닦았다.
매년 한 번씩은 아픈 탓에 서툴렀던 아버지의 병간호도 수준급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건 여전히 쇳소리뿐이었다.
“그래, 여기 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여기 있을 테니 부르지 말아.”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아픔은 약과였다.
숨이 턱턱 막히고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조금만 먹자꾸나. 이것만 먹고 푹 자렴.”
목이 퉁퉁 부은 건지 아주 묽은 죽을 삼키는 것도 고역이었다.
약을 먹고 누웠지만 약효가 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손을 붙잡은 아버지의 손은 어쩐지 서늘했다.
아버지의 손이 차가운 건지 내 몸이 지나치게 뜨거운 건지 몽롱한 정신으로는 알 수 없었다.
“으…….”
온몸이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프고 눈앞이 흐렸다.
나도 모르게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매년 겪는 고통이었지만 나는 평생토록 이 고통에 익숙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