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3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38화(138/218)
“크로바하츠 대공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바이올렛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건 테르반이었다.
집사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대공녀님, 초대에 감사드려요.”
테르반의 인사를 받은 바이올렛은 곧바로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나야말로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사비에르 영애. 오는 길은 편안했나요?”
“네, 네!”
조금 긴장한 것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바이올렛의 대답 소리는 생각보다 우렁찼다.
“아…….”
본인도 그 커다란 대답에 놀란 건지 바이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볼을 붉혔다.
본래가 원체 날카롭고 도도하게 생긴 미인이라 화가 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부끄러워하는 얼굴이었다.
“편안했다니 다행이네요. 정원에 자리를 준비해 두었는데, 가면서 얘기라도 나눠요.”
부드럽게 말을 건넨 나는 바이올렛과 걸음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준비해 둔 장소에서 메리와 마릴린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테르반은 따라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 정원과 유리온실 중 어디가 좋을까 고민했던 내 선택은 유리온실이었다.
“영애, 온실에 자리를 준비해 두었는데 혹시 바깥이 더 좋은가요?”
“아, 아니요! 저는 어디든지 대공녀님이 좋아하시는 곳이 좋아요…….”
그래도 혹시나 해 물어보자 바이올렛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말꼬리를 늘렸다.
아까 전까지 내가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바이올렛은 나보다 더 긴장한 모양새였다.
원래 자기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내 긴장은 풀리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아예 같이 얼어붙거나.
바이올렛의 초조해 보이는 모습에 긴장이 탁 풀린 걸 보니 나는 전자인 모양이었다.
“그럼 온실로 가면 되겠네요. 아마 영애 마음에도 들 거예요.”
거리가 조금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저택 안이었기에 온실까지 걸어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둥근 온실의 규모를 본 바이올렛의 감탄사였다.
나는 바이올렛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음, 조금 크죠?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놀랐어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연무장 두 개를 합쳐 둔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온실은 반원 모양의 유리 돔을 지붕에 얹어 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달칵-
우리가 온실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어린 하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투명한 유리문을 당겨 열었다.
“고마워!”
나는 온실 안으로 들어가며 주근깨가 귀여운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헤헤, 별말씀을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아가씨!”
어린 하녀의 목소리를 끝으로 문이 닫혔다.
조금 전까지 바깥에서 들려오던 생활 소음이 뚝 끊긴 온실 안은 고요했다.
“소리가…….”
바이올렛이 고개를 돌려 투명한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연무장이 있거든요. 예민한 식물들이 많아서 온실을 만들 때 바깥의 소리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했대요.”
내 말에 바이올렛의 얼굴에 놀람을 넘어 경탄이 서렸다.
“너무 멋져요…….”
중얼거리는 바이올렛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저 눈을 보니 생각보다 더 원예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영애가 식물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길래 여기를 보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세상에, 대공녀님…….”
바이올렛은 무언가 벅찬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저만의 온실을 갖고 싶어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이런 곳을 보게 되다니 너무 좋아요!”
“어머, 정말요?”
그건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네에. 제가 외국에서 들여온 식물들을 키워 보려니까 다들 자라는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얼마 자라다가 금세 시들어 버리더라구요.”
바이올렛은 이제 긴장을 전부 떨친 건지 조잘조잘 얘기하기 시작했다.
“으음, 아무래도 그렇죠. 식물이 자라는 데는 습도나 온도, 하다못해 흙도 중요하니……. 음?”
바이올렛의 말에 긍정하던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 있는 건 바이올렛뿐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녀의 연두색 눈동자가 아주 초롱초롱하게 빛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말에 뭔가 문제라도…….”
“아뇨!”
바이올렛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럼 왜…….”
그렇게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는지…….
나는 떨떠름하게 물으며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아, 그게…….”
물론 저 말만으로도 내 의도는 전달이 되었는지 바이올렛은 답지 않게 망설이며 우물쭈물했다.
“혹시 대공녀님도 식물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그, 대공녀님도 식물을 키워 보신 것 같아서…….”
그러다가 꺼낸 건 물음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냐니.
“으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긴 했다.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바이올렛이 키우는 것들과 결이 조금 다를 테지만.
‘비록 용도가 마법 연구에 쓰기 위해서긴 하지만…… 어쨌든 식물들을 키우긴 하니까.’
희귀하거나 아주 소량으로밖에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연구를 거듭해 직접 키우고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식물도 있었고 열 명에게 물으면 열 명 전부 모르는 식물도 있었다.
내 대답에 바이올렛은 눈에 띄게 환해진 표정을 했다.
‘공통점이 생겨서 그런가?’
조금 생각해 보니 식물을 좋아한다는 취향이 겹쳐서 저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수도에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없지만 대공령에는 제가 가꾸던 온실도 있었어요.”
조금 더 긴 문장을 덧붙이자 바이올렛은 더욱 신이 나 보이는 얼굴로 활발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얘기를 나누며 습관처럼 상대의 얼굴을 살핀 덕에 나는 온실의 중앙에 마련된 티 테이블에 도착했을 때 묘하게 시무룩해진 바이올렛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영애, 혹시 잠깐 온실 안을 좀 둘러보겠어요?”
그렇게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당장 앉자고 하기도 미안하잖아.
“아…….”
바이올렛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데 본래는 티타임을 먼저 즐기는 게 원칙이라 고민하는 듯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거 보면서 얘기하는 편이 더 좋잖아요. 마침 저도 조금 걷고 싶기도 하고.”
나는 뒷말을 덧붙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원래 이런 건 주최자가 먼저 물꼬를 터 주어야 했다.
비록 두 명뿐인 티타임이라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그럼 잠시만 구경해도 될까요?”
바이올렛은 조금 전보다 열 배는 행복해진 얼굴로 긍정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얼마든지요.”
***
사실 나는 마법 재료들에 대해서만 빠삭하지 일반 식물까지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마법 재료로 사용되는 식물들만 해도 방대했기에 일반 식물들까지 알아 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페른은 평범한 식물들도 잘 아는 것 같지만…….’
자칭 배움의 미학을 안다는 페른과 달리 나는 내가 흥미 있는 분야 외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었고.
‘마법 연구랑 흑마법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만 해도 몇 년 내내 얼마나 바빴다고.’
합리화의 기색이 살짝 엿보이는 말이었으나 어쨌든 내가 바빴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온실 안에는 내가 아는 식물들이 많았다.
‘애초에 이 온실을 만든 이유가 마법 재료들을 편하게 기르기 위함이니까.’
우리 가문에서는 대대로 마법사나 검사들이 나왔다.
이 온실 역시 백 년 전, 마법사셨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지으신 거였다.
그러니 목적에 맞게 안에 심어진 식물 중 다수가 마법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위험성은 없는 것들이지만.’
지금 눈앞의 꽃 역시 내가 잘 아는 것이었다.
“이건…… 루비히커스인가요?”
어딘가 놀란 듯한 얼굴로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붉은 꽃잎을 다섯 장 달고 있는 꽃을 바라보던 바이올렛이 물었다.
“맞아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히커스.
추운 지역, 그것도 눈이 가득 쌓인 설산 위에 서식하는 이 꽃은 붉은 꽃잎이 마치 루비 같다 하여 루비히커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깊게 쌓인 눈을 뚫고 자라나기에 다 자란 루비히커스의 줄기는 무려 삼 미터에 달했다.
마법 재료이면서 자라는 조건이 까다로웠기에 꽤 희귀한 꽃이기도 했다.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아니었으면 나도 고생 좀 할 뻔했지.’
루비히커스는 눈만 있다고 다 자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눈이 없는 곳이라고 다 자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 심어진 아이들은 아직 꽃을 틔운 지 얼마 안 돼서 줄기가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래도 두 뼘 길이는 충분히 넘으니 다른 꽃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긴 하지만.
“아직 작은 아이들이었군요! 세상에, 춥지 않은 곳에서도 키울 수가 있는 거였다니…….”
바이올렛의 말마따나 이 온실은 전혀 춥지 않았다.
일 년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몇 달 전에 제롬이 씨앗을 구해다 주어서 저도 키워 봤는데 얼마 못 가서 죽어 버리더라구요.”
바이올렛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눈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가문의 마법사를 붙여 몇 시간마다 새로운 눈을 공급해 주었는데도 결국은 꽃도 틔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죠.”
꽃을 하나 키우자고 몸값 비싼 마법사를 상시 대기 시켰다니.
물론 루비히커스도 비싼 값에 거래되긴 하지만 바이올렛이 돈을 벌자고 꽃을 키우는 건 아닐 테니까.
‘여러모로 열정이 대단하네.’
대륙 곳곳에 마법 재료를 위한 화원이 몇 개씩이나 있는 내가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말이긴 했다.
“음, 영애.”
나는 바이올렛의 루비히커스를 본 적이 없기에 시들어 버린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키워 내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선물로 주려고 준비한 게 있긴 한데…….’
루비히커스를 키우는 방법도 같이 알려 주면서 사과하면 될 듯싶었다.
원래 선물은 다다익선인 법이니까.
더군다나 나는 바이올렛에게 사과할 게 있는 처지니 더욱 완벽한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