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39)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39화(139/218)
“춥지 않은 곳에서도 몇 가지 조건만 완벽하게 지키면 루비히커스를 키우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네에?”
내 말에 바이올렛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춥지 않은 지역에서 루비히커스를 길러 내는 방법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뭐, 마탑에서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하지만 이타적인 집단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마탑이었으니 아마 저들끼리 정보를 독점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전까지 트란 열매를 독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들 외에도 마탑이 쥐고 놓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겠지.
“궁금한가요, 영애?”
나는 눈을 접어 웃으며 물었다.
“네, 네!”
바이올렛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착하고 순한 아가씨였다.
내게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도, 식물을 대하는 바이올렛의 태도를 보니 좋아하는 것들에는 원래 그렇게 열정적인 모양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까 생각보다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저번에 매몰차게 대했던 건 내가 잘못한 게 맞았다.
“그럼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알려 줄게요.”
“부탁을요?”
“네, 영애의 허락이 꼭 필요한 부탁이거든요.”
내 말에 바이올렛은 아주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좋아요!”
삼 초도 채 지나기 전에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해 본 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대답이었다.
내가 이상한 부탁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담.
“음,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그럼요! 대공녀님께서 제게 하실 부탁이란 게 무엇인가요?”
바이올렛은 새순의 빛깔을 머금은 눈을 빛내며 내게 물어 왔다.
나는 잠시 바이올렛의 얼굴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영애가 저랑 친하게 지내 주었으면 해요.”
그게 내 부탁이었다.
“그게 무슨…….”
바이올렛은 끝이 올라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예상하지 못한 내 부탁의 내용에 얼이 빠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그날 영애에게 못되게 굴고 나서 많이 후회했거든요.”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아무리 내가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는 해도 바이올렛은 그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올렛에게 구구절절한 사정을 늘어놓을 생각 역시 없는 내 선택은 일전의 내 행동에 대해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렇게 영애를 초대한 것도 그날 일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어서예요.”
내 눈과 마주친, 봄의 새순을 닮은 바이올렛의 연두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대공녀님이 제게 미안해하실 게……. 아니, 그보다 대공녀님은 저한테 못되게 구신 적이 없는걸요!”
그러더니 바이올렛은 이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소리쳤다.
그야말로 없는 소리였다.
내가 저에게 못되게 군 적이 없기는.
“내가 영애에게 쌀쌀맞게 굴었잖아요.”
“아니에요!”
나는 내 잘못을 시인했지만 바이올렛은 그를 부정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누가 보면 우리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뀐 줄 알겠네.
“왜 그렇게까지 내 편을 들어 주는 거예요?”
나는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이유를 물었다.
바이올렛이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돌아선 건 충분히 쌀쌀맞은 행동이었다.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청할 정도의 큰 잘못은 아니지만 마음이 상하기에는 충분한 그런 행동.
“……오히려 제가 대공녀님께 사과드려야 하는걸요. 검은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대공녀님께 무례하게 굴었던 것에 대해서요.”
내 물음에 예쁘게 물들인 손톱을 매만지던 바이올렛이 뱉은 건 웅얼거림에 가까운 말이었다.
“영애…….”
“다른 사람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는데, 제가 대공녀님께 했던 행동이 그것과 다를 바 없더라구요. ……정말 죄송해요.”
바이올렛은 진솔한 사과를 건네며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바이올렛에게 사과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하지만 그녀의 솔직한 사과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건 사실이었다.
까칠하고 콧대 높은 후작가의 장미라는 세간의 소문이 틀렸다는 걸 첫 만남부터 알게 되긴 했지만…….
‘……소문의 와전이 얼마나 심한 건지 알겠네, 진짜.’
오늘 이 만남이 끝나면 유르젠에게 연락해서 앞으로는 소문을 수집할 때 세 번 네 번 확인을 거치라고 해야겠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도대체가 저 모습 어디가 까칠하고 콧대 높다는 거람.
“그럼 이렇게 해요.”
나는 애써 표정을 정돈하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영애도 서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니까 우리 서로의 사과를 받아 주는 거예요. 어때요?”
“…….”
입을 꾹 다문 바이올렛의 표정은 누가 보아도 내키지 않는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었다.
세상에,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다투는 귀족이라니.
이게 무슨 이상한 일이람.
어쨌든 바이올렛의 불만스러운 얼굴에 나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원래 친구 사이에는 담아 두고 그런 거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영애랑 그런 친구 관계 하고 싶거든요.”
“대공녀님…….”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오늘 사과한 걸로 이전 일은 다 털어 버려요.”
내 말에 바이올렛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감사해요!”
“나야말로 사과 받아 줘서 고마워요.”
배시시 웃던 바이올렛은 슬그머니 내 옆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저, 그럼 이제 앞으로 자주 후작가로 초대해도 될까요?”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오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요.”
“같이 식물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놀러도 다니구요? 둘이 같이 피크닉도 갈 수 있을까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것도 친구의 사회적 의미에 아주 충실한.
‘바이올렛에게는 친하게 지내는 영애가 몇 명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근데 왜 내가 첫 친구인 것처럼 얘기하냔 말이지.’
저번에 바이올렛의 티타임에 갔을 때 봤던 이들 중 두 명도 바이올렛의 친구였다.
“으음, 그러면 좋겠죠.”
어찌 되었든 나 역시 나름대로 바이올렛과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으니 가끔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정도는 좋을 것 같고.
“세상에, 감사해요, 대공녀님!”
이상한 감사 인사였지만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암묵적인 오늘의 초대 시간이 끝났을 때, 바이올렛은 왔을 때보다 적어도 열 배는 더 밝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도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사비…… 아니, 바이올렛.”
무심코 성을 부르려던 나는 그녀의 열렬한 시선에 호칭을 바꾸어 불렀다.
“그럼 편지할게요! 조만간 또 뵈어요, 대공녀님!”
그러자 바이올렛은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이랴-!”
마부의 채찍질과 함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말은 금세 마차를 끌고 저 멀리로 사라졌다.
아직 저녁이 오지도 않았지만, 체력은 이미 고갈된 지 오래였다.
***
다음 날 오후.
“아가씨, 오늘은 테인 님이랑 같이 안 가세요?”
“응?”
“아까 전에 테인 님이 도련님 서재로 가시길래요!”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오라버니가 테인한테 뭘 가르쳐 줄 거라고 그러던데.”
아마 검술이 아닐까 싶었다.
“……요즘 나보다 두 사람이 더 친한 것 같단 말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후, 아가씨, 질투하세요?”
“질투는 무슨……. 그냥 오라버니가 뭐 가르치는지 얘기도 안 해 주고 테인도 안 말해 주잖아. 치사해서 그래.”
이건 질투가 아니라 그냥 서운함의 표현일 뿐이었다.
오늘도 오라버니가 테인을 홀랑 채 갔으니.
거기다 테인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슬그머니 에일런에게 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았다.
“도대체 뭘 가르치길래 나한테 비밀이냔 말이지. 내가 알면 못 하게 하기라도 하냐고.”
테인과 대공령에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슬그머니 물어보았지만 테인은 곤란해하는 얼굴을 하더니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거기다 에일런은 다정하게 웃으며 미안, 비밀이야, 라고 말했다.
‘서로 숨기는 거 없기로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물론 테인을 추궁하지는 못했다.
에일런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걸 알고 있으니 목적도 함께 있는 대상도 전부 알려 준 셈이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절로 미간이 불만스럽게 좁혀졌다.
‘다음에는 그냥 오라버니를 졸라 봐야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준비가 끝났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가씨!”
“으응, 오늘도 고마워.”
내 이동 방법을 아는 메리와 마릴린은 정리할 것들을 챙겨 들고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간 후 나는 괜히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메리와 마릴린의 손길이 닿은 모습은 내가 보아도 썩 괜찮게 느껴졌다.
초록색 원피스에 화려하지 않은 반묶음 머리가 잘 어울렸다.
조금 뒤면 밀색으로 물들 머리카락이었다.
“……꼭 옛날 같네.”
평소 입는 귀족의 옷차림이 아닌 적당히 수수한 원피스를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떠오른 기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곧 만날 이 역시 나와 비슷한, 그러니까 평민의 옷차림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해 더 그랬다.
“흠흠, 얼른 밑에 들렀다 가야겠다.”
따악-
시계를 한 번 확인한 나는 손가락을 튕겨 바로 연구실로 이동했다.
평소 저택 안에서 이동할 때는 마법을 잘 쓰지 않았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보아도 칼리온을 만나는 게 좋아서 그렇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건 좀 오버인가…….”
나는 조금 전 책상 위에 올려 둔 작은 바구니를 흘겨보았다.
저 안에는 에반이 만든 특제 쿠키와 자그만 간식거리들이 들어 있었다.
“들고 가면 좀 민망할 것 같기도 한데…….”
지금 내가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에반이 챙겨 둔 바구니를 거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받아 온 것도 나였다.
“에이, 몰라.”
손을 휘젓자 바구니가 아공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냥 아공간에 넣어 뒀다가 괜찮으면 꺼내지, 뭐.’
그럼 문제없잖아?
그 후 연구실에서 필요한 아티팩트와 트란 나무에 줄 선물을 몇 개 챙긴 나는 가지고 왔던 노트를 펼쳐 짤막한 글을 적었다.
-저 준비 끝났어요! 지금 가면 될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내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곧바로 답장이 적혔다.
“흐흥.”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제 칼리온이 보내 준 좌표를 넣어 술식을 완성했다.
“이동.”
괜히 기분이 좋아 평소 잘 외치지 않던 시동어까지 읊자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오랜만입니다.”
나는 웃음기 어린 다정한 인사와 함께 눈을 떴다.
“오랜만이에요,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