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4화(14/218)
“하암…….”
나는 졸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방을 정돈하는 마릴린도, 나를 깨우러 온 메리도 없었다.
2주간의 노력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택에 온 뒤로 유난히 잠이 많아진 나는 아침에도 잘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메리가 깨워줘야 했지…….’
아침마다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깨워 주는 게 어색해서 홀로 일어나기 도전 중이었다.
어제는 비몽사몽 하던 차에 메리가 들어와서 안타깝게 실패했지만, 오늘은 완벽한 성공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어느덧 내가 대공가에 온 지 이 주가 넘었다.
이 주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만, 내가 대공가에 적응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내 방은 더더욱.
여전히 호화로운 천장이었지만 이제는 보고 놀라지 않는 것만 봐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푹신한 침대를 만끽하던 나는 폭신한 러그 위로 내려섰다.
“지금이 몇 시지?”
메리와 마릴린이 들어오기 딱 5분 전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털 슬리퍼를 신고 시계를 흘낏 본 후 창가 앞으로 다가섰다.
어제는 솜사탕같이 몽글몽글한 구름이 떠 있었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처음 데려갔던 호수는 그 뒤로 내가 저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3순위가 되었다.
일등은 정원. 이등은 도서관. 그리고 삼등이 그 호수.
차례로 지난 이 주간 내가 가장 많이 들렀던 곳들이다.
“그럼 오늘은 오라버니 검술 연습이나 구경할까?”
오늘도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내가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의 일정을 정했을 무렵.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메리예요.”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조그만 목소리가 문을 넘어 들어왔다.
메리다!
“드……!”
의기양양하게 문 앞으로 걸어가던 나는 번뜩 스친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다.
뱉으려던 단어를 다시 삼키고 짓궂은 미소를 지은 채 침대 위로 달려갔다.
달칵. 내가 이불을 뒤집어씀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뒤이어 침대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애써 호흡을 골랐다.
“아가씨 이제…….”
“메리!”
“엄마야!”
메리의 이름을 부르며 이불을 확 젖히자 깜짝 놀란 메리가 보였다.
신이 나 웃던 나는 조금 심했나 싶어 흘깃 눈치를 보았다.
“많이 놀랐어?”
“완전 깜빡 속았네요. 저는 아가씨가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시무룩하게 묻자 메리가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역시 메리는 착하다니까.
나는 이불을 걷고 다시 폭신한 러그 위로 내려섰다.
“좋은 아침이야, 메리!”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히히 웃으며 인사를 건넨 나는 메리의 말에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이 주간의 내 도전은 메리와 마릴린만 아는 것이었다.
“나 원래는 엄청 일찍 일어났는걸!”
“정말요?”
웃음이 묻은 말투를 보니 메리는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인데.
하긴. 메리는 여태껏 내가 잠만보처럼 잠에 빠진 모습만 보았으니까.
그럼에도 괜히 억울해진 나는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진짠데. 일찍 일어나야 안 혼났거든.”
내가 그 말을 꺼낸 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말로 그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툭 튀어나온 말.
내 말이 메리에게 그런 의미로 들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가 되고 나서야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 이 분위기 어쩔 거야. 그런 말은 왜 해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딱 일 분 전으로 돌리고 싶었다.
“아가씨…….”
울상이 된 메리의 얼굴이 퍽 난감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메리는 나를 과하게 챙기는 면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그런 말을 했으니.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쩌면 좋지.
나는 어쩔 줄 몰라 슬며시 메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진짜 괜찮은데.”
“그런 말 마세요…….”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잖아.
앞으로는 그냥 입을 다물어야겠다.
나는 속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분위기가 될 줄 알았으면 그런 말 하지 말걸.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이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내가 꺼내든 카드는 결국 말 돌리기였다.
아침 내내 이러고 있는 건 절대 안 되지.
“메, 메리! 나 배고픈 거 같아!”
“…….”
“얼른 준비하고 내려갈래. 응?”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메리를 재촉했다.
풀릴 줄 모르던 메리의 표정은 내가 메리의 손을 꼭 붙잡고 이리저리 흔든 후에야 조금 괜찮아졌다.
‘……휴. 십년감수 했네.’
터벅터벅 식당으로 향하던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다행스럽게도 메리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앗. 마릴린!”
식당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 앞에서 마주친 마릴린에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릴린은 내가 여기 온 첫날, 서재 앞에서 마주쳤던 하녀 중 한 명이었다.
첫날 있었던 일 때문인지 쭈뼛거리던 처음과 달리, 활달하고 솔직한 성격이었다.
“있지, 나 오늘 혼자 일어났다?”
“정말요?”
조르르 달려가 소곤소곤 말해주자 마릴린이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일찍 일어난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뿌듯함과는 별개로 그 놀랍다는 반응에 내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일찍 일어난 게 그렇게 놀라워?”
물론 아까의 싸한 분위기를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기에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음.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럼?”
“아가씨는 보통 메리 언니가 세 번쯤 깨워야 일어나셨잖아요.”
밝게 웃으며 던진 마릴린의 말에 왜인지 뼈가 욱신거렸다.
……사실이라서 반박할 수도 없고.
잠시 마릴린이 아주 솔직하다는 사실을 잊은 내 탓이지.
“……그건.”
나는 이제는 안 그렇다고 변명을 하려다, 괜히 구차해져 그만두었다.
‘이 어린애 취급에 익숙해져서 문제야…….’
아이의 몸에 들어온 탓인지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처음에는 일부러 단순하게 했던 말도 지금은 익숙해졌고.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릴린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주인님이랑 도련님은 먼저 내려와 계세요!”
“……그걸 먼저 말해 줬어야지.”
물론 먼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 건 나지만.
“나 먼저 갈게! 이따 봐!”
“이따 봬요, 아가씨!”
나는 후다닥 식당으로 들어가며 마릴린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내려가서 아버지랑 오라버니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매일같이 식사 시간에 맞춰 빠듯하게 일어난 탓에, 한 번도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네 본 적이 없었다.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나를 보며 인사해 주는 게 기분이 좋아서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었는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언제나와 같이 가장 마지막으로 의자에 앉은 건 나였다.
“안녕, 에리타.”
“좋은 아침이구나.”
“아버지랑 오라버니도 좋은 아침이에요!”
내가 들어서자 이쪽을 바라보며 웃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보며 나 역시 활발하게 인사를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거라.”
그리고 익숙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내일은 내가 제일 먼저 내려와야지. 진짜. 꼭!”
장렬히 실패한 계획에 내일을 기약하며 말이다.
***
챙-!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에일런과 대공가 기사단 소속 기사의 대련이었다.
아직 열다섯도 되지 않은 에일런은 상대 기사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니, 에일런이 조금 더 우세한가?
나는 그에서 조금 떨어진 화단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멋지다.”
그때 에일런의 위로 검이 빠르게 떨어졌다.
그저 대련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기세가 상당히 매서워 나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아……!”
다행스럽게도 검을 발견한 에일런이 땅을 박차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어딜!”
먼저 자세를 가다듬은 에일런의 검이 유려한 선을 그리며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잘한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를 응원했다.
챙그랑-
반짝이는 검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상대의 것이었다.
“졌습니다.”
상대 기사가 양손을 들고 패배를 시인하자 에일런이 목을 겨누고 있던 검을 거두어들였다.
“와아!”
에일런의 승리에 발을 동동 구르며 구경하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나를 발견한 에일런의 눈매가 둥그렇게 휘었다.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못하는 게 없다니까.’
그 미소에 손을 흔든 나는 후다닥 챙겨 두었던 물과 수건을 집어 들었다.
“오라버니!”
검을 갈무리하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에일런의 앞으로 달려가 먼저 물부터 내밀었다.
“여기 물이요!”
“안 그래도 된다니까…….”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에일런은 미안한 듯 말했지만, 이건 순전히 내가 하고 싶어 하녀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에일런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도…….”
“오라버니가 좋아서 하는 건데…….”
자꾸만 미안해하는 에일런에 나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정말 못 이기겠다니까.”
“…….”
“고마워, 에리타.”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에일런이 이내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내가 내민 물을 받아 들었다.
“여기 수건도 있어요!”
“응? 수건도 가져왔어?”
“그럼요! 저도 이 정도는 안다구요.”
물에 이어 수건을 내밀자 잠시 놀란 얼굴을 한 에일런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올렸던 손은 깨끗하지 못한 탓에 다시 내려갔지만.
잠시 에일런이 훈련을 쉬는 시간을 틈타 우리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조잘조잘 말을 하면 에일런이 맞장구를 쳐 주는 식이었다.
“오라버니 완전 멋졌어요!”
“정말?”
“네! 마지막에 검을 이렇게! 올려쳤는데 막 챙그랑 하고 떨어진 거요!”
나는 마지막에 에일런이 상대의 검을 올려쳤던 것을 따라 했다.
“하하. 에리타가 멋지다고 해주니 좋은걸.”
“이건 비밀인데요…….”
나는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라버니가 제일 잘하시는 것 같아요.”
“응?”
“진짜로요. 오라버니가 제일 멋져요!”
나는 가까워진 에일런의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내 손짓을 따라 고개를 숙였던 에일런이 내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다른 기사의 실력도 출중했지만, 내 눈에는 에일런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 오라버니가 제일 잘나 보이는걸.’
나는 속으로 그런 팔불출 같은 생각도 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주는 내가 에일런과 친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도 있고 말이다.
“나한테도 에리타가 제일 멋져.”
에일런이 피식 웃으며 내 볼을 톡 건드렸다.
“정말요?”
“그럼. 제일 멋지지.”
그 후 칭찬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끝이 나지 않는 탓에 서로를 빤히 바라보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가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즐겁고 생각보다 더 정겨웠다.
나는 이곳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