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4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43화(143/218)
“델리아 란테. 황후궁의 시녀장입니다.”
“시녀장?”
“예, 황후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입니다. 테시스의 어릴 적 유모이기도 하고.”
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단서는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전하께서도 보신 적이 있나요?”
나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황궁에 있으니 당연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 본 적 있습니다. 아무래도 황후의 최측근이니까요.”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한데 델리아 란테가 황후의 시녀장인 걸 몰랐다면 그대는 어디서 그 이름을 들은 겁니까?”
칼리온이 드러낸 의문은 타당했다.
작게 숨을 들이쉰 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제단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내 물음에 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델리아라는 이름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거예요. 사정상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출처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증거를 얻은 출처는 태양신이 내게 보여 주었던 다른 시간 선의 과거니까.
그저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대를 믿어요.”
내 설명이 빈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칼리온은 선선히 수긍했다.
그 후 내 요청에 따라 칼리온이 설명한 델리아의 외관은 태양신이 보여 주었던 시간 속의 델리아와 일치했다.
비록 내가 본 건 후드를 뒤집어쓴 그녀였으나 체격과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황후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이 전부 일치했다.
“……그 사람이 단서예요.”
“단서라는 말은 황후의 시녀장이 흑마법에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까?”
내 말에 칼리온이 조곤조곤하게 물어 왔다.
“그냥 연관된 정도가 아니에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본 장면 속 델리아라는 여인은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적어도 황후와 같은 위치였다.
다른 흑마법사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정중함, 아니, 그 이상이었다.
“적어도 그 집단의 간부급이에요. 본인 자신도 흑마법사고.”
“그렇다면 시녀장의 뒤를 파 보아야겠군요. 저도 정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거라……. 케이든에게 일러두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칼리온은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고 내 말에 다음 계획을 세웠다.
조금 전 내가 그에게 출처를 알려 주기가 어렵다고 한 탓이겠지.
그는 눈치가 빨랐고,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아는 이였다.
그래서 그와 있으면 내 의견을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물씬 들었…….
“그럼 황후와 연관된 단서를 찾았으니 그대가 빈민가에 직접 가겠다는 계획은 폐기한 겁니다.”
……취소.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다른 얘기잖아요.”
델리아는 델리아대로 조사하고 빈민가는 빈민가대로 조사하면 되는 거지!
처음으로 칼리온과 내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순간이었다.
“…….”
“…….”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주한 푸른 눈동자가 그늘 아래에서도 반짝였다.
“스승님께서도 동의하시면 저도 아무 말 않겠습니다.”
먼저 입을 연 건 칼리온이었다.
“……치사해요.”
“무엇이요.”
“아버지는 절대 허락 안 하실 거라구요……. 제가 전하께 먼저 말씀드린 이유가 뭔데요.”
나는 부루퉁한 얼굴로 꿍얼거렸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나는 칼리온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칼리온이 헛웃음을 뱉었다.
“저 역시 그대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대가 위험해지는 일에는 당연히 반대일 수밖에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고.
칼리온의 다정한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내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나 에일런보다는 더 객관적인 관점으로 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데.
내 당황한 얼굴에 칼리온은 옅게 웃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닌 것 압니다. 그저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겁이 조금 더 많을 뿐이에요.”
“겁이 많다니요?”
의아한 말이었다.
어딜 보나 칼리온은 겁이 많다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내 물음에 칼리온은 눈을 살짝 내리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대가 위험해지는 게 무섭습니다. 에리타 그대가 얼마나 강한지와는 관계없이요.”
고백에 가까운 그의 언어가 나긋하게 귓가에 내려앉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당연하게도 싫거나 기가 막힌다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미쳤나 봐…….’
마치 연무장을 열 바퀴쯤 뛴 것처럼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쿵쿵 울려 댔기 때문이었다.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열이 몰린 귓가가 홧홧했다.
저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오늘의 칼리온은 정말 이상했다.
‘너무…… 너무 그런데…….’
마치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칼리온의 진솔한 말에 전투력을 상실한 사이, 빈민가에 대한 건 아버지와 에일런과 함께 상의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칼리온이 다감하게 나를 어르고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것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칼리온이 이겼다고 볼 수 있었다.
“제 말을 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하하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어떻게 고집을 부리겠어…….’
내가 세워 두었던 계획이 틀어졌지만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알아본 다음에 가 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보았던 건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 선이니 신중을 기해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일단은 더 중요한 게 있기도 하고.’
앰버 길드와 유르젠이 델리아에 대해 조사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것 역시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
칼리온과 함께 트란 나무 군락지에 다녀온 후 정확히 나흘이 지난 오늘.
“고마워, 유르젠.”
“별말씀을. ……그보다 오늘 바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유르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시간 끌어서 좋을 게 뭐 있어. 쉬운 일정이 아니니까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지.”
내 말에 유르젠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이유는 알 만했다.
내가 시작한다는 일정이 칼리온의 저주를 파훼하기 위한 약을 만드는 거니까.
본래 나는 한번 집중하면 다른 것들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건 한번 꽂히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제발 몸 좀 잘 챙기면서 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유르젠이 미간을 매만지며 건넨 말은 나를 위한 당부였다.
“하하…….”
“웃지만 마시고 대답을 해 주십시오.”
유르젠의 말투는 딱딱했으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기에 그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며칠 전 신전에 다녀왔던 내가 쓰러졌다는 걸 전해 듣고는 몸에 좋은 것들을 한가득 보냈던 그였기에 그 걱정이 더 와닿는 것도 있었다.
“으응, 이번에는 꼭 그럴게. 그리고 테인도 나랑 같이 있으니까 더 괜찮지 않을까?”
나는 부러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테인에게도 단단히 일러둘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알았대도.”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유르젠이 문지르던 미간이 그의 손안에서 또다시 와그작 구겨졌다.
……말 잘못했다.
“당신의 알겠다는 정말 알았다는 뜻이 아니질 않습니까.”
“……진짜 조심할게.”
유르젠의 입에서 ‘당신’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으므로 나는 얌전히 몸을 사리며 조금 더 순하게 대답했다.
두 손은 예쁘게 무릎 위에 모아 둔 채로 말이다.
유르젠은 늘상 내게 예의를 차렸지만 내가 건강에 소홀할 때면 서늘하기가 북부의 만년설 못지않았다.
아버지와 에일런만큼이나 그도 내 건강에 예민했다.
‘유르젠 앞에서 코피를 터뜨린 게 한두 번이었어야지…….’
따지고 보면 지금 유르젠이 내 건강 걱정에 극성맞아진 것도 다 내가 빌미를 제공한 탓이었다.
“어쨌든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연락하시고요.”
“그럴게! 유르젠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잘 챙겨. 알았지?”
유르젠은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할게!”
나는 트란 열매를 아공간 속에 집어넣은 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르젠과 더 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마법을 사용해 바로 집으로 이동한다는 걸 알면서도 헤어지며 건네는 인사는 늘 같았다.
‘하여튼 걱정이 많다니까.’
물론 나는 그런 유르젠을 좋아했지만.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연구실로 가기 전 내 방에서 필요한 것들을 전부 챙겼다.
“메리, 나 오늘은 점심이랑 저녁 전부 연구실에서 해결할 거야.”
“네에?!”
“에반한테 간단한 걸로 식사거리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줄래? 샌드위치나 빵 정도면 될 것 같아.”
내 말뜻을 이해한 메리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오늘 하루만이신 거예요?”
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예상대로라면 하루 정도면 끝날 터였다. 만약 일이 예상대로 잘 풀린다면.
‘하지만 항상 계산대로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거기다 오늘은 나도 처음 도전해 보는 주제였다.
계획대로 될지 나도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재료 조합도 처음 보는 것들이고……. 음, 하루는 안 되겠다.’
나는 오늘 하루만이라는 대답을 쓱쓱 지워 냈다.
괜히 하루로 잡았다가 그보다 더 걸리는 날에는 걱정과 잔소리 폭탄을 번갈아 받을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크게 질러 놓는 게 훨씬 낫지.
“길면 사나흘 정도 걸릴 수도 있을 거야.”
“세상에, 아가씨이…….”
“무조건 그만큼 걸린다는 건 아니야. 그냥 예상이 그렇다는 거지, 예상이.”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메리는 울상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사나흘씩 연구실에 틀어박힌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늘 이렇게 걱정을 한다니까.
“누가 보면 내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줄 알겠다. 집중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래.”
나는 작게 웃으며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아가씨는 밥도 안 드시고 잠도 안 주무시잖아요…….”
“아니지. 잘 안 먹고 잘 안 자는 거라고 해 줘.”
괜히 한번 발랄하게 딴지를 걸어 보았지만 메리의 차가운 눈초리만 얻었다.
“흠흠, 어쨌든 에반한테 부탁 좀 해 줄래? 나는 아버지랑 오라버니 뵙고 바로 연구실로 갈 거라서.”
“……빨리 나오셔야 해요.”
“최대한 노력할게.”
메리가 원하는 답은 노력한다는 말이 아니라 알겠다는 대답이겠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