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1)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51화(151/218)
나는 재빨리 퍼트렸던 마력들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무슨 일이야.”
일러두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눈을 뜨자 에일런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이 보였다.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요.”
나는 주위를 잠시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사아의 제단을 찾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어요. 정확히 이곳에 문이 있고요.”
내가 가리킨 건 우리의 발아래 쪽에 위치한 집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마력을 느끼니 기가 막혔다.
“……하.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몰랐다니.”
에일런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몇 년간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 속이 쓰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를 알아내지 못한 건 당연했다.
내가 흑마법사의 존재를 안 것도, 이 제단의 위치를 알아낸 것도 전부 태양신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니까.
더군다나 이 제단은…….
“간이 큰 거죠. 수도에서 이렇게 가까운 데에 본거지를 만들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뭐, 정확히는 원래 있던 곳을 쓴 거겠지만.”
“원래 있던 곳?”
에일런이 내 말의 한 부분을 집어냈다.
“제가 예상했던 거랑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나는 마른 입술을 한 번 훑은 후 입을 열었다.
“이 밑에 있는 사아의 제단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거예요.”
내가 방금 알아낸 건 다름이 아니라 마법진의 생성 시기였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그건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읽어 낸 게 맞는다면 제단을 감싼 마법진의 술식 배열은 현재의 것이 아니에요. 최소한 몇백 년…… 아니, 천 년쯤 전의 것이라고 봐야겠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용하는 마법의 종류에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 마법진을 이루는 술식은 달랐다.
현재 사용되는 마법진은 계속해서 간소화를 거친 것들이었다.
더 쉽게 배우고 더 편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어떻게 보면 사용하기는 편해졌지만 그만큼 위력도 낮아진 거나 진배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마법진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결국 수천 년 전의 마법은 잊혔다.
당연했다.
종족 간의 싸움이 치열했던 과거를 지나 지금은 인간들이 독주하고 있으니까.
강력하지만 복잡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마법을 익히느라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마법은 점점 쇠퇴하는 중이었다.
“오라버니도 지금의 마법과 천 년 전의 마법이 다르다는 건 아실 거예요.”
“……그래.”
에일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탓이었다.
흑마법의 폐해가 대두되어 황실에서 말살을 명했던 것은 삼백 년 전의 일이지만 흑마법은 그 전부터 존재했다.
아마도 이 제단은 과거의 흑마법사들이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네. 대책을 강구해야 하니까.”
에일런의 말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과거의 마법은 현재의 마법보다 몇 배는 더 발전했었다.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당연한 선택지였다.
만약 내가 이 마법진을 읽어 낼 수 없다면 말이다.
“오라버니, 페른 경은 과거의 마법을 잊지 않은 마법사예요.”
나는 씩 웃으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는 그런 페른 경에게 마법을 배웠구요.”
***
처음에 내가 마력을 거두어들였던 건 애초부터 현재의 마법진을 생각하고 운용한 마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평소 사용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마력을 퍼뜨렸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갈래로 마력이 흘렀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대단하네.’
이 마법진은 과거의 마법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실력자의 것이 분명했다.
내가 사용하는 마법 역시 과거의 것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미 잊힌 과거의 마법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후…….”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 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본래 다른 이의 진을 읽어 내는 것은 큰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더군다나 이건 명백히 현재의 마법보다 더 상위의 것.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인 건 맞지만, 크게 보자면 오히려 우리에게 득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 마법진을 만든 이가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마법진이 아니라는 것.
사아아-
내 마력이 아주 조심스럽게 룬 문자를 뒤덮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주 작은 틈.
제단 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마법을 불어넣는 것.
‘어디냐.’
내 의지를 담은 마력이 견고한 마법진 사이의 틈을 찾아 몸을 뻗었다.
짐승이 먹이를 찾아 땅에 코를 처박고 냄새를 맡듯이 느릿하지만 집요하게 진 위를 돌아다니는 마력.
‘찾았다……!’
그렇게 십여 분을 바짝 집중했던 나는 드디어 미세한 틈을 찾아냈다.
애를 조금 먹긴 했지만 나름 수월한 진행이었다.
물론 지금부터가 더 중요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는 양손으로 땅을 짚고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여린 꽃잎을 다룰 때보다 더 부드럽고 섬세하게.
순간 파슷- 하는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틈이 벌어졌다가, 무언가를 삼킨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틈이 메꾸어졌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끝난 일이었다.
‘됐다.’
찰나의 순간 동안 벌어졌던 틈은 무언가를 삼킨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초기 목적을 달성했지만 나는 마력을 거두지 않았다.
조금 전 마법진의 정체를 알고 난 후 생각해 낸 한 가지를 더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도박이지만, 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성공할 자신은 없지만 실패하더라도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은 후 다시 한번 마력을 넓게 흩뿌렸다.
깃털이 내려앉는 것보다 더 느리고 부드럽게.
그러나 땅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놓치는 곳 없이 촘촘하게.
마법진의 한구석도 빠짐없이 내 마력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일정한 위치에 있는 룬 문자의 배열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됐다.’
미미한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차오른 숨을 길게 내뱉으며 손을 거두었다.
“에리타, 괜찮아?”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에일런은 곧바로 반응했다.
나는 피곤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성공했어요. 물론 저도 괜찮구요.”
사아의 흑마법사들은 진을 이루는 룬 문자의 일부가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없을 것이다.
비밀 공간은 건재할 테고, 좌표와 문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마법진의 문자 일부를 내 소유로 바꾼 건 전혀 기대하지 않던 수확이었다.
복잡하고 심오한 과거의 마법진이기에 가능한 일.
사아에게는 안된 일이었고, 우리에게는 천운이 따른 일이었다.
***
일렬로 늘어선 유리관 안에 갇힌 정체 모를 생명체들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푸른 듯 투명한 물이 가득 차 있는 유리관 안의 생명체들은 본래의 형태를 전부 잃은 채였다.
그것들은 인간의 얼굴과 몸통을 가지고 있으나 팔은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짐승의 것이었고 다리는 길쭉한 말 수인의 것이었다.
그중에는 피부가 녹색으로 물든 이들도 있었다.
“재생력은 어떻지?”
“본래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칩니다.”
“비율을 조금 더 올려 보도록.”
“하지만 델리아 님, 그건…….”
후드를 쓴 델리아의 명에 연구를 맡은 흑마법사가 난색을 표했다.
“평범한 사람을 사용한 결과로는 이게 최선입니다. 여기서 비율을 더 높이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합니다.”
현재 주어진 재료로는 이게 최선입니다.
흑마법사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그 말을 전했다.
델리아의 명령은 절대적이나, 그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은 없었다.
“젠장……. 안 돼, 너무 느려.”
그런 흑마법사의 답에 델리아는 답지 않게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며칠 전 그녀의 계획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던 황후에게 차질이 생긴 탓이었다.
“그 애송이 놈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게 틀림없다. 그 옆에는 역겨운 마법사가 붙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저주를 파훼한 마법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상급에 다다른 마법사가 분명했다.
‘페른 아일리시, 그놈인가?’
현존하는 최상급 마법사 중 칼리온이 손을 뻗을 수 있는 건 그자와 용병왕뿐이었다.
크로바하츠는 이전부터 황후의 뒤를 쫓았으니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터.
델리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려 했다.
그때였다.
“……!”
핏발이 선 눈으로 실험의 수치를 확인하던 델리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노려보다시피 둘러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 것 같은데.”
그런 델리아의 반응에 흑마법사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인 건 평소와 같이 평화로운 내부의 모습이었다.
끔찍한 비명과 진득한 혈 향과 악취는 그들에게 일상이었다.
“……저는 모르겠군요. 어차피 이 공간을 열 수 있는 건 델리아 님뿐이지 않습니까.”
그들의 수장은 요즘 들어 부쩍 예민해졌다.
물론 그들도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델리아는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다가, 퍼뜨렸던 기운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에리타의 말대로 이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공간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불행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