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3)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53화(153/218)
연구실 지하로 내려온 우리는 내가 미리 설치해 둔 커다란 수정구를 통해 제단 내부를 살폈다.
그 수정구는 내가 심어 둔 케두의 눈알과 연결된 것이었다.
보여 주는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아 발광용 마석이 드문드문 박힌 벽과 땅만 보였지만.
이 수정구 안에는 케두의 눈알에서 떼어 낸 힘줄이 들어 있었다.
케두의 눈알도 이 수정구도 일회용이라는 소리였다.
“케두의 눈알이라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커다란 수정구에 잡히는 움직임이 없다는 걸 확인한 페른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마법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요. 케두의 눈알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생각도 못 했거든요.”
케두의 눈알.
일명 천연 감시 아티팩트라 불리는 케두의 눈알은 말 그대로 케두라는 마수의 눈알이었다.
케두는 스무 개의 다리에 눈알을 하나씩 달고 있는, 징그럽기 짝이 없는 마수였다.
그 징그러운 마수는 십 년에 한 번씩 눈알 갈이를 하는데, 그때 버려지는 눈알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처럼 관찰 내지는 감시 용도로 쓰였다.
케두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눈알은 흔한 돌멩이의 외형을 띠니 위장 능력 역시 최고였다.
아티팩트가 아니기에 마력을 품고 있지도 않아서 돈 많은 귀족들이 구린 짓을 할 때 많이들 찾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남의 약점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았댔지.’
아무리 봐도 치정과 암투에 최적화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단 말이야.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워낙 장점이 뚜렷하니 지금까지도 찾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오십 년 전부터 케두의 씨가 마른 덕분에 한정된 물량만이 남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말이다.
“나 참. 제가 구해 보려고 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흐흥, 라그라스 상단은 귀한 것들을 많이 취급하거든요.”
“지인 할인을 기대해도 됩니까?”
“저는 행정 쪽으로는 연이 없어서요. 말은 해 둘게요.”
나중에 하나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새초롬하게 대답하자 페른이 헛웃음을 흘렸다.
페른이 케두의 눈알을 원하는 거야 연구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실 케두의 눈알이 아니라 케두 자체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구구절절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족과 가족처럼 믿는 페른이라고 해도, 라그라스 상단은 유르젠의 것이었다.
‘유르젠의 밑천을 다 털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유르젠은 늘 자신은 나를 대신해 상단을 운영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현재 라그라스 상단의 실소유주가 나로 되어 있기는 했다.
명의를 바꿔 주겠다는 내 말을 유르젠이 벌써 삼 년이나 거절해 온 탓이었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운영하면서 아예 가지라는 건 왜 자꾸 거절하는 거람.’
유르젠이 라그라스 상단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았다.
그 애정과 열정은 가끔 정보나 알려 주고 마법 아티팩트나 만들어서 주는 나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냥 나중에 몰래 명의를 바꿔 버릴까. 자기가 상단주 된다고 나랑 모른 척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잠시 유르젠을 떠올리던 나는 조만간 그를 한번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뒤 다시 수정구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때 미동도 없이 고요하던 수정구 속 풍경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케두의 눈알이 느릿하게 굴러가기 시작한 탓이었다.
아주 천천히 바뀌던 풍경은 어느덧 제단의 계단 앞을 비추고 있었다.
‘신기하네…….’
분명 몸에서 떨어져 나온 눈알이 꾸물꾸물 계단을 올라가는 걸 보니 신기했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케두의 눈알이 감지한 움직임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저건…….”
케두의 눈알은 그저 시야만을 공유했기에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알던 제단 뒤의 공간으로 향하는 돌문이 열려 있었다.
그 문은 제단 뒤에 숨겨진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납치한 사람들을 감금해 두고, 생체 실험을 하는 곳.
태양신이 내게 보여 주었던 장면 속에서 에리타 크로바하츠가 실험체로 고통받았던 그곳.
***
“저 제단을 없애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내 주장은 정론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
제단을 망가뜨리는 건 사아에 가장 확실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건 알지만 제가 직접 가지 않으면 그 공간은 못 비틀어요.”
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보호 아래에만 있어야 할 만큼 어리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아가.”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어 갔다.
“위험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전면전에 약해요.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기습에는 더더욱.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우리는 사아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유리관에 잠들어 있는 괴생명체의 능력이 어떤지도 모르고.
하지만 세상에는 위험해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저는 거기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 나가는 거라구요.”
내가 케두의 눈알을 통해 본 장면 속의 사람들에게서 느낀 건 동질감과 엇비슷한 무언가였다.
확실하게 동질감이라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나는 그저 과거의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던 걸 보았을 뿐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건 사실이었다.
이미 늦어 버린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을 구할 기회가 있는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제단을 치면 사아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예요.”
그 제단이 사아의 본진으로 예상되는 건 사실이나 그들의 활동지가 그곳 하나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은신처나 다른 거점이 있겠지.
하나 그 제단이 사아에 중요한 곳임은 확실했다.
제단 내부에서 생체 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적어도 생체 실험을 저지시킬 수는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도 그 끔찍한 생체 실험이 계속되는 건 원치 않으시잖아요.”
“……그래.”
내 곧은 시선을 마주하던 아버지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이었다.
나는 그제야 웃었다.
“네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항상 잊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눈빛은 복잡한 것 같기도, 어딘가 허전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내가 알기에는 아직 이른 감정이었다.
“제가 지금도 어린애면 큰일이죠.”
“나는 네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여도 좋을 것 같구나.”
“아버지도 참…….”
그러나 아버지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그 기분을 나 역시 느껴 본 적 있으니까.
***
주위를 스윽 둘러보자 똑같이 생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세 명이 보였다.
하얀 무늬가 수놓아진 검은 로브의 질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에일런과 페른, 그리고 테인.
오늘 사아의 제단에 잠입하는 건 나를 포함해 그렇게 총 네 명이었다.
“아버지와 전하께서 참석하신 황궁 회의는 두 시간 안에 끝나.”
“두 시간이면 충분하죠.”
아버지와 칼리온이 황궁에 있는 사이 계획을 실행하는 건 황후와 사아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뭐, 당분간은 아버지와 칼리온이 터뜨린 것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없겠지만.
“미리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한 번만 다시 알려 드릴게요.”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는 사아의 제단에 잠입해 납치된 사람들을 구할 거예요. 그 후에는 제단을 파괴할 거구요.”
사아가 실험체와 제물로 쓰기 위해 납치한 사람 중 제단 안에 감금된 이들은 어림잡아 백여 명쯤으로 추정됐다.
당연하게도 사아가 납치한 이들은 그 백여 명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제단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일부에 불과할 테지.
“빈민가에 도착하면 우선 제가 통로를 엽니다. 그러고는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거예요.”
“하면 이 검은 로브는 왜……?”
페른이 거추장스러운 검은 로브를 두 손가락으로 집으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요. 만약 모습을 들키더라도 제단을 망가뜨린 게 우리라는 걸 알려 줄 필요는 없잖아요? 그 로브, 사아의 흑마법사들이 입는 것과 똑같이 해 달라고 특별 제작을 맡긴 거거든요.”
겉모습을 바꾸는 마법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제단 내부에 어떤 장치가 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침입을 경계하는 곳에는 그 침입에 대비한 모종의 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과거의 마법은 그 성취에 있어 지금보다 단계가 훌쩍 높았다.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고 얼마 남지 않은 몇천 년 전의 마법서 중에는 그 당시의 감지 마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둔 것도 있었다.
‘지금은 유독 많이 퇴화했지만 과거엔 다양한 감지 마법이 존재하고 연구되었지.’
그러니 과거에 만들어진 그 공간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예측이 가능한 변수는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게 좋겠지.
“하긴. 그 망할 제단은 과거 마법의 잔재물이니 무언가 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혼잣말 같은 페른의 말에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전하의 저주를 풀었으니 저쪽도 날이 섰을 거예요. 크로바하츠가 전하의 뒤에 섰음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확실히 에일런과 내 검은 머리는 어디서든지 눈에 확 띄었다.
유일한 건 아니지만 흔치 않은 색인 건 맞으니까.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면 모르겠지만 요사스러운 빛이 가득한 제단 안에서는 확실하게 보일 것이었다.
페른의 푸른 머리칼과 테인의 잿빛 머리칼도 마찬가지였다.
뭐든 우리를 특정할 수 있을 만한 건 없애야지.
“어쨌든 그렇게 제단 안으로 들어가면 페른이 사람들을 옮겨 주세요. 대규모 이동 마법진을 펼쳐야 하니까 적어도 삼 분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겠고.”
이후로는 유동적으로 대처하기로 미리 정해 두었다.
그저 때려 부수는 데에는 딱히 계획이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