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4)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54화(154/218)
“그럼 다들 잠시 눈 감고 계세요.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이들이 눈을 감은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투명화 마법과 이동 마법을 동시에 외웠다.
화아악-
시야를 가렸던 밝은 빛이 사그라든 후.
한 점의 구름도 없이 태양이 쨍쨍한 하늘 아래에 있으나 빈민가의 중심부는 우울하고 어두웠다.
“……시작할게요.”
작게 시작을 알린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땅을 손으로 짚은 후 마력을 운용했다.
제단의 문을 열기 위함이었다.
쉬운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왔을 때 이미 밑 작업을 해 두었기에 저번보다는 몇십 배 더 수월했다.
‘황후와 델리아 모두 황궁에 있으니까 잘하면 제단을 망가뜨릴 수도 있겠다.’
며칠간 지켜본 결과, 델리아로 추정되는 이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만 제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황궁에 있어야 하니 당연하겠지.
게다가 예상했던 대로 델리아가 사아의 수장인 건 확실해 보였다.
‘흑마법사들이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게 델리아뿐이니 아니면 억울하지.’
케두의 눈알은 어젯밤 쓰임을 다하고 소멸했다.
나흘이라는 시간은 계획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들어갑니다.”
마법진의 개방 준비를 완료한 내 말에 세 사람은 저마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주 미세하게 퍼져 나온 마력이 땅으로 스며들던 어느 순간, 시야가 바뀌었다.
우리가 남긴 흔적은 희미한 발자국이 전부였다.
***
우리가 선 위치가 바뀜과 동시에 나는 투명화 마법을 해제했다.
다른 마법을 사용하며 정확한 타이밍에 마법을 거두는 건 내게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대의 마법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당시의 감지 마법을 피할 정도로 빠삭하지는 않았다.
이 비밀 공간에 감지 마법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으니까.
사아아-
발광용 마석에서 나오는 빛과 암울한 보랏빛 횃불이 옅은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이 공간에 존재하는 빛의 전부였다.
케두의 눈알을 통해 보았던 게 아니라도 나는 이미 이곳을 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여기는 태양신이 보여 준 그곳의 제단과 똑같아.’
사아의 흑마법사들이 만든 공간이 아니라 천 년 전의 유산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와 보니까 더 거지 같네.’
한없이 음침하고 질척한 공기가 폐부에 들어차자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솟았다.
아무도 없어.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에일런의 입 모양에 우리는 조용히 제단의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공간을 지나치게 믿는 건지 솟아오른 제단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품속에서 특색 없는 싸구려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 분.’
그러고는 오른손을 고스란히 펴 다른 세 사람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 주었다.
나와 테인은 곧 열릴 공간의 오른쪽으로, 에일런과 페른은 왼쪽으로 붙어 섰다.
그렇게 미세한 부스럭 소리도 없이 오 분이 지나고.
쿠구궁-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제단 뒤편의 돌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오늘은 조금 멀리 돌아야겠네.”
안쪽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래. 안 그래도 요즘 멀리 안 나가고 이 근처에서만 데려왔더니 애가 없어졌니 뭐니 하는 놈들이 늘어나서 영 곤란해.”
“빈민가 놈들의 말이니 믿는 사람들이 있겠냐 싶긴 하지만.”
“뭐, 델리아 님이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말라고 하셨으니 어쩔 수 없지.”
“하긴. 전염병으로 얻은 제물들은 전부 그분의 저주 억제에 쓰이니…….”
“이봐, 그건 비밀이라고 했잖아. 엿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델리아 님이 가만두시지 않을 거라고.”
‘……!’
껄렁거리는 두 흑마법사의 말은 예상치 못한 수익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나 지금 당장은 분노를 표할 수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여기 계시지도 않은데……. 알았어. 조심하면 될 거 아니야. 하여튼 까칠하기는.”
상대의 타박에 불만스레 중얼거리던 흑마법사의 말을 끝으로 발걸음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소드 마스터인 에일런과 그에 근접한 테인의 움직임은 그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
“그런……, 컥.”
소리 없이 팔을 뻗은 에일런과 테인이 각각 한 사람씩을 맡아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당연히 소리도 흔적도 남지 않았다.
두 흑마법사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던져둔 후 우리는 아직 열려 있는 제단 뒤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
케두의 눈알을 통해 이 공간의 문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닫힌다는 걸 확인했기에 급할 건 없었다.
쿵- 쿵- 쿵-
몇 개의 돌문을 통과하자 가장 뒤쪽의 문부터 간격을 두고 느리게 닫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악!”
“어휴, 오늘따라 왜 이리 시끄럽냐.”
“나라고 알겠냐?”
바로 앞에서는 흑마법사들의 평화로운 목소리와 공포에 잠식된 이들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다.
한쪽에서는 끔찍하리만치 처절한 비명이 울리는데 한쪽은 한없이 평온했다.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페른, 준비됐어요?
벙긋거리다시피 물은 내 말에 위장용 스태프를 쥔 페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었다.
우우웅- 파앗-
나는 지금껏 한 줌도 흘려보내지 않았던 마력을 개방했다.
내가 개방한 마력은 곧바로 이 비밀 공간을 이루는 마법진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뭐, 뭐야!”
비밀 공간 내부의 모든 불이 꺼졌다.
발광용 마석부터 횃불, 생체 실험용 장치들까지 모조리.
“당장 불부터 밝혀!”
흑마법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레 시야가 차단되었으니 놀랐겠지.
일시적으로 공간의 지배권을 강탈한 것으로는 이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내 일행들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테인은 조용히 내 곁으로 붙어 서 여전히 다른 이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나를 보호했고, 에일런은 페른을 덜렁 들어 빠르게 달렸다.
혼란을 틈타 인질들이 있는 곳으로 페른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어둠에서도 선명히 앞을 볼 수 있는 소드 마스터의 신체 능력으로 적당한 흑마법사를 생포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불은 아직이야?!”
“조금만 기다……. 잠깐, 누군가 마법진에 손을 댔다!”
그 말과 동시에 허둥지둥하던 흑마법사들의 태도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래 봤자 페른의 마법은 이미 완성됐다.
화아악-
최상급 마법사의 대규모 마법진이 펼쳐졌다.
“침입자다!”
“젠장, 어떻게 들어온 거지? 우선 방어 막부터 가동시켜!”
아직 우리를 찾지 못한 흑마법사들이 저들끼리 소리를 쳤다.
콰앙-!
드디어 흑마법사들이 제대로 된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내 반대편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에일런이 일으킨 거대한 파열음은 이곳에 오기 전 우리끼리 정한 신호였다.
페른이 납치된 사람들과 생포한 흑마법사를 데리고 무사히 이곳을 떠났다는 신호.
그건 우리의 첫 번째 목표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공간의 지배권을 강탈하던 마력을 거둬들이고 미리 캐스팅 해 두었던 마법을 펼쳤다.
어둡던 시야가 밝아지자 사아가 나를 발견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기다! 마법을 사용하는 저자를 붙잡아!”
흑마법사가 아닌 사아의 일원들이 나와 테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원색을 띠는 내 마법은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곳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순수한 마법사의 마력은 흑마법사들의 어둡고 끈적한 마력과는 백팔십도 다르니 그들이 나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아주 쉬웠다.
“너는 당장 가서 그걸 깨워!”
“뭐? 그건 아직…….”
“빨리!”
파앗-
내 마법이 유리관과 장치를 두드리려던 순간 그 위로 불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마법은 허공에서 소멸했다.
‘방어 막인가 보네.’
하지만 방어 막의 존재는 예상 범주 내였다.
나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손을 휘둘렀다.
쾅! 콰앙!
커다란 불덩이가 방어 막을 강타하는 소리가 연달아 귀를 울렸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중상급 마법만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 불투명한 막은 쉬이 뚫리지 않았다.
‘적어도 구색만 갖춘 방어 막은 아니라는 거군.’
내가 조금 더 강한 상급 마법을 사용하려던 그때였다.
“그르륵-”
툭, 하고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 직후, 목 안쪽을 심하게 긁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소름 끼치는 그 소리는 언젠가 북부에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급하게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흑마법사들을 처리하던 테인이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탈론이 총 여섯 마리입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마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탈론? 북부에만 사는 그것들이 어떻게 여기에…….”
의아함은 잠시였다.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이 빌어먹을 흑마법사들이 생체 실험에 쓰기 위해 포획했겠지.
흉악한 외형과 달리 본래 탈론은 포악한 마수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게 있어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탈론은 인간이 아닌 마수를 잡아먹었고, 간혹 산에서 길을 잃은 인간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그런 탈론이 인간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구는 건 딱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새끼가 위험에 처했거나, 혹은 이미 새끼를 잃은 경우.
그리고 저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날뛰는 건 지금이 후자의 상황이라는 것을 뜻했다.
빠르게 바닥을 훑은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짓씹듯이 뇌까렸다.
“새끼를 죽였어.”
“……새끼를요.”
내가 본 건 나와 테인의 뒤쪽에 던져진 자그만 마수의 시체 너덧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우리를 저지하기 위해 저 탈론들의 새끼를 죽인 것이다.
그것도 탈론들의 눈앞에서.
크륵-!
탈론의 포효가 지하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