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5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55화(155/218)
사아가 내보인 패는 불안정하지만 강했다.
무슨 수로 사로잡은 건지는 몰라도 탈론은 몬스터가 들끓는 북부에서도 먹이 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한 마수였다.
“테인, 탈론과는 최대한 부딪치지 마.”
“알겠습니다.”
내 곁을 지키는 테인에게 속삭이자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흑마법사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 탈론은 새끼를 죽인 자들을 먼저 물어뜯는다는 것이었다.
새끼의 사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탈론이랑 부딪치기 전에 끝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처리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감당할 수는 있으나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성체가 된 탈론은 노련한 기사들도 열 이상씩 조를 지어 상대해야 할 만큼 강한 마수였으니까.
콰앙-!
그때 다시 한번 저 반대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고통을 나타내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함께였다.
에일런이 탈론과 맞붙은 게 틀림없었다.
‘빨리 끝내고 떠나야겠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탈론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최대한 빠르게 장치를 부수고 이곳을 떠나는 게 우선순위였다.
탈론과 대치하게 된다면 실력을 드러내거나 다치거나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니까.
계획은 틀어졌지만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 의지를 따라 조금 더 짙은 농도의 마력을 담은 얼음 창이 방어 막을 꿰뚫었다.
파삭- 쩌저적-
작지만 선명한 소리를 내며 박힌 얼음 창의 주변부터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아의 흑마법사들이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지만 그 공격은 내게 닿기도 전 테인이 모조리 쳐 내고 베었다.
애초에 흑마법사들의 주특기는 전면전이 아니라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비열한 짓거리였으니.
“젠장, 탈론들은 뭘 하는 거야!”
“그, 그게, 피아 식별이 안 돼서 저희 측도 같이 당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쪽에 잠입한 이의 실력이 범상치 않아서 저희만으로는 상대가 어려…….”
“으아악!”
당황한 흑마법사의 보고와 동시에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이 공간을 덮었다.
저 반대쪽에 있는 내 일행은 에일런뿐이고, 그의 목소리가 아니니 비명의 주인은 사아의 누군가일 터.
눈앞의 흑마법사도 그걸 알아챈 건지 후드 아래로 보이는 입술을 세게 물었다.
탈론을 화나게 만든 건 우리보다 쪽수가 많은 그들에게 더 손해였다.
“젠장! 이것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명령이다! 당장 이동 마법진을 가동시켜!”
운 좋게도 내 앞에 있던 저자가 사아의 명령권을 쥐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소리침과 동시에 우리를 향해 흑마법을 사용하던 이들이 전부 똑같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변질된 룬어의 주문이 시작되자 우리가 깨부수고 있던 장치 아래에서 어두운 마력이 피어올랐다.
퍼져 있는 흑마법사들의 몸에서도 같은 마력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 장치와 함께 이곳을 뜰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대로 떠나게는 못 두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유리관 안의 괴생물체를 깨우지 않는 게 의아했지만 지금은 저 망할 유리관을 부수는 게 먼저였다.
“잠시만 부탁할게.”
“네, 주인님.”
내 짧은 말을 알아들은 테인이 곧바로 내 앞을 막고 섰다.
나는 상급 마법 중 위력만은 최상급 마법에 필적하는 술식을 떠올렸다.
상급 마법사일 당시 북부에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일명 마력 잡아먹는 불꽃.
이름 그대로 마력을 쪽쪽 빨아 먹는 그 불꽃은 시전자가 가진 마력량에 따라 위력이 달라졌다.
‘지금 상황에서 딱 알맞은 마법이지.’
최상급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파괴적인 마법.
캐스팅이 끝난 마법이 내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라! 유리관 앞을 지켜라!”
내가 준비하는 마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흑마법사가 다급하게 제 지팡이로 바닥을 다섯 번 내리찍으며 고함쳤다.
그러자 탈론을 막고 테인과 나를 공격하던 이들 모두가 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게 무슨…….”
투구를 쓰고 칼을 휘두르던 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괴생물체들이 잠들어 있는 유리관 앞이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알아챘다.
저건, 저건…….
닿지 못할 걸 알면서도 손을 뻗었다.
“잠깐……!”
내가 내 마법에 대항하는 방패가 된 이들의 눈에 이지가 없다는 걸 알아챈 건 너무 늦은 후였다.
콰아앙- 펑!
퍽-
역겨운 소리와 함께 마법이 화려한 불꽃을 틔우며 폭발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려던 나를 테인이 붙잡았다.
“잠깐, 테인, 잠깐만…….”
“죄송합니다. 위험해요.”
속삭이듯 사죄한 테인이 빠르게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어 찢었다.
이동 마법보다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바뀌는 탓에 초토화된 제단 내부와 몸에 붙은 불꽃을 꺼트리기 위해 바닥을 구르는 흑마법사들이 보였다.
멍한 눈으로 유리관 앞을 가로막았다가 온몸이 녹아내린 병사들의 흔적도 보였다.
내가 그 장면을 본 건 고작해야 몇 초에 불과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뇌리에 깊숙이 박힌 후였다.
“허억……!”
나는 속에서 밀려오는 토기를 애써 짓눌렀다.
이동 마법으로 인한 울렁거림이 아니었다.
“에리타, 괜찮아?”
“……괜찮아요.”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표정을 관리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지만 오늘만큼은 내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나의 괜찮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서 쉬어, 에리타.”
“주군께는 저와 소대공님이 보고드리겠습니다.”
페른과 에일런은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고, 테인은 안절부절못하며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사실 스스로도 느껴졌다. 지금 내 상태가 괜찮지 않다는 게.
“……그럼 오늘만 부탁드릴게요.”
평소라면 먼저 들어가 쉬라는 말을 거절하고 함께 사로잡은 흑마법사들을 추궁하겠다 나섰겠지만 오늘은 그들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남아 있던 내 마력의 대부분을 밀어 넣은 불덩이는 사람을 불태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유리관을 깨트리고 장치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멀쩡한 척을 한다고 해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집으로 들어서 목욕을 준비해 달라고 말하자 메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욕탕으로 안내했다.
“아가씨, 온도 유지는 해 놓겠지만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되어요.”
“응, 알았어…….”
다정한 어름에 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메리가 나간 후 따끈한 물이 몸을 감쌌지만 여전히 손끝이 저릿하고 차가웠다.
물속에 손을 담그고 꿈지럭거려 보아도 서늘한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분명 사아는 이 세상에 있어 악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을 납치해 저들을 위한 제물로 사용하고 그로도 모자라 살아도 산 것이 아닌 키메라로 만들었다.
힘을 얻기 위해 인간성을 저버린 이들.
그 제단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에 가담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잖아…….”
나는 주먹을 꾹 쥐며 작게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마지막에 유리관 앞을 가로막았던 이들은 사아가 아니었다.
사아의 흑마법사들을 지키며 탈론에게 맞서고 우리를 공격했기에 사아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술에 의해 자아가 사라져 흑마법사의 꼭두각시가 된…….
“……욱.”
간신히 가라앉혔던 토기가 다시금 치밀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강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비명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그들은 내 불꽃에 숨을 거둘 때까지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자신들이 유리관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쓰였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제 의지로 그곳에 선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 마법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으…….”
그들의 정신은 이미 바스러졌고, 그렇기에 더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평범한 사람을 죽였다는 내 죄책감을 덜어 주는 건 아니었다.
“……미안해요. 미리 알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미리 알았으면 그들까지 구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들이 온건한 죽음을 맞이하게는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끔찍하고 파괴적인 죽음이 아니라.
나는 아직 이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
목욕탕에서 나오니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따뜻한 물 속에 있던 몸은 나른했지만 반대로 정신은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멀쩡했다.
“아가씨,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방으로 가져올까요?”
“오늘은 괜찮아…….”
메리의 물음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뭔가 삼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음식을 앞에 두고 구역질을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백배 나았다.
“기껏 물어 줬는데 거절해서 미안. 오늘은 그냥 혼자 쉴게. 메리도 가서 쉬어.”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려 노력하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메리의 얼굴에 서린 걱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너무 혼자 앓지는 마셨으면 좋겠어요.”
잠시 걸음을 망설이던 메리는 이내 다가와 나를 한 번 꼭 안아 주며 다정하고도 서글픈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응, 메리. 고마워.”
가라앉은 기분은 여전했으나 메리가 건네준 온기는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