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6화(16/218)
시작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대련.
그건 솔직히 말해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검술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으니까.
가끔 휴대폰으로 보았던 검도나 펜싱과는 기세부터 달랐다.
시작과 동시에 아버지를 향해 쏟아지는 에일런의 검이 매서웠다.
아까처럼 빠르지 않으면 모를까, 이리 휙 저리 휙 하는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저기 페른. 지금 오라버니가 이기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대공 전하께서는 반격하지 않고 계시거든요.”
나는 페른의 말에 미간을 꾸깃꾸깃 구기고 유심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자세히 바라보자 페른의 말대로 아버지는 그저 오라버니의 공격을 막고만 있었다.
몰아치는 오라버니의 공격에도 간결한 움직임만으로 막아내는 걸 보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와아! 그렇네요?”
“예. 주군께서 제대로 상대를 하시면 너무 금방 끝나니까요.”
“와…….”
“그래서 보통 기사들과 대련을 하실 때도 왼손만 쓰거나 한 발 이상 움직이지 않는 조건으로 많이 하십니다.”
나는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아까 보니까 오라버니 실력도 장난 아니던데……. 아버지는 얼마나 세다는 거야.
검을 휘두르는 손을 바꾸는 건 반대쪽 손으로 글씨를 쓰는 거보다 백만 배는 어려울 텐데.
그때였다.
“언제까지 막고만 계실 겁니까!”
그리 외치며 땅을 박찬 에일런의 검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 색이 너무도 선명해 마치 타오르는 불이 검을 휘감고 있는 모양새처럼 보였다.
“저건……!”
“저렇게 선명한 오러라면 마스터의 수준인데……!”
술렁이는 주변과 놀란 듯한 페른의 목소리.
그중 마스터라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지금껏 담담하던 아버지의 얼굴에도 미약한 놀람이 번져 있었다.
“……그래. 너도 그저 아이가 아니라 이거냐?”
“큭!”
“좋다.”
매끈한 검과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이 부딪혔지만 밀려난 건 오라버니였다.
누가 보기에도 더 위협적이었던 에일런의 검을 가볍게 쳐낸 아버지가 씩 웃었다.
“잘 보거라.”
그 순간이었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아버지의 검 주위로 어둠이 몰려들었다.
오라버니의 것과 비슷하지만 붉지 않고 온전히 새까맸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마저 빛을 잃게 만드는 어둠이었다.
잠시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던 둘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날카로운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새까만 검과 검붉은 검이 마주치며 흙먼지가 날렸다.
“……정말 한계가 없으시군.”
너털웃음을 터뜨린 페른이 손가락을 튕기자, 우리의 앞에 투명한 벽이 일렁였다.
“한계가 없다니요?”
“전하의 오러 말입니다.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더 어마어마하거든요.”
전력이 아니실 텐데도 손이 저절로 떨릴 정돕니다. 슬쩍 내려다보자 페른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조금 의아하긴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나는 잔뜩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게 바로 소설 속 최강자의 모습이구나.’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즐거운 것처럼.
챙그랑-!
그리고 허공을 날아 흙바닥에 꽂힌 검날.
팽팽하게 이어지던 대련은 마지막으로 올려친 아버지의 검에 오라버니의 검이 두 동강 나며 끝났다.
“많이 늘었구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아버지가 오라버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아버지를 따라가기에는 멀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웃는 오라버니도 결과와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먼저 아버지가 몸을 돌리고, 그 뒤를 따른 오라버니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버지! 오라버니!”
나는 후다닥 달려가 둘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빨갛고 까만 검이 주는 임팩트가 워낙 컸어야지.
원래 여기 사람들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평범한 21세기에 살다 온 내가 보기에는 다소 놀라운 장면이었다.
음 좋아. 일단 보기에는 다친 데 없고.
만족스레 끄덕거리며 한 걸음 물러나자 웃고 있는 둘의 얼굴이 보였다.
“주군.”
그때 가끔 마주쳐 어색하게 알고 있던 기사단장님이 아버지를 불렀다.
“제가 그리 한번 와 달라 부탁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더니.”
“그 이유는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랜만에 연무장에 오셨는데 기사들 훈련도 한 번 봐주시지요.”
지금까지 아버지랑 이야기한 사람 중에 저렇게 말을 편하게 한 사람이 있던가?
슬쩍 올려다보자 아버지가 골치 아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상당히 친근한 관계구나 싶었다.
적발의 단장님이 척 봐도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둘의 관계는 페른과 아버지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까워 보였다.
확실히 단장님이 연륜이 더 있으셔서 그런가?
“……이제 올라가려던 참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그리 말하자 기사단장님의 시선도 내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기사단장님이 씩 웃으며 내 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가씨도 올라가실 겁니까?”
“네? 아, 아뇨. 아직…….”
할 것도 없고…….
얼떨결에 대답하자 기사단장님이 시원하게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이것 보시지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능글맞은 단장님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아버지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딱 다섯이다.”
“다섯이면 충분합니다.”
뭐가 다섯이지?
내 조그만 궁금증은 금방 해결되었다.
***
“저번에 아버지가 훈련 도와주러 오셨다가 온종일 잡혀 계셨거든.”
“아…….”
“귀찮으셔서 그런지 그 뒤로는 잘 안 내려오셔.”
다섯이라는 게 아버지랑 대련할 기사가 다섯이라는 소리였구나.
하긴. 온종일 붙잡혀서 훈련을 도와주는 건 아무리 아버지여도 힘드시겠지.
일주일 내내 기사들과 맞붙어도 아버지가 이길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전하 승!”
또다시 아버지의 승리를 알리는 기사의 외침.
‘이번이 벌써 세 번째네.’
나는 에일런과 함께 벤치에 앉아 아버지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세 번째 대련이 끝난 상황이었다.
이어진 네 번째, 다섯 번째도 전부 끝이 나는 데까지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르침을 위해 일부러 검을 오래 맞대어 준 게 이 정도라니.
마침 대련을 끝낸 아버지가 별로 흐트러진 곳 없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버지!”
“에리타.”
동당거리던 다리는 멈추고 일어서자 금세 다가온 아버지가 자연스레 나를 들어 올렸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의 대련을 했음에도 땀조차 흘리지 않은 모습이 굉장히 멋졌다.
꼭 소설에 나오는 최강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 소설에 나오는 최강자 맞지.’
나는 소설 속 아슬란의 설정을 기억해 내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검사면서 검술 자체로도 제국 최강이라니.
완전 설정 과다 아냐?
남자 주인공보다 더 좋은 스펙을 가진 게 우리 아버지였다.
게다가 이 빛나는 외모를 보라.
다른 소설이었으면 사연 있는 남자 주인공 감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진짜 멋졌어요! 검이 막 이렇게 이렇게……!”
나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아까 본 것을 흉내 내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아버지가 낮게 웃었다.
검게 일렁이던 검은 마치 스X워즈에서 보던 광선검 같았다.
여기서는 말해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랑 오라버니 둘 다 세상에서 제일 멋져요!”
“하하. 고마워, 에리타.”
에일런이 가볍게 웃었다.
사실 아까부터 멋지다고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랑 오라버니한테 같이 말하고 싶어 꾹 참았거든.
“네가 검을 좋아할 줄은 몰랐구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검을 기사단장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줄 몰랐지. 근데 그렇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 누가 안 반하겠어요.
슬쩍 눈치를 본 나는 아까부터 하던 생각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
“그래. 에리타.”
“저도 검을 배우고 싶어요……!”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한 말이었다.
검을 배우면 약한 몸도 좀 튼튼해질까 싶기도 하고.
호기롭게 말을 꺼낸 나와 달리,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검을……?”
“네! 저택에서 아무것도 안 하니까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으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아버지가 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쉬이 답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자 딱히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안 되나?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한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에일런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는 된다고 해주실 거죠, 그렇죠?’
그런 마음을 담은 눈빛이었다.
“으음…….”
에일런의 눈가에 난처함이 매달렸다.
오라버니 역시 그다지 찬성하는 건 아닌 듯했다.
“검은 조금 더 크고 나서 배우는 게 어떻겠니.”
아버지가 꺼낸 말은 아직 내가 너무 어려 몸에 부담이 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슬며시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음. 확실히 너무 가늘긴 해.’
거기다 체력도 좋은 편은 아니지.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 걱정이라잖아.
조금 아쉽긴 하지만 굳이 걱정을 끼치며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자각한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사실 검을 배우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했던 탓도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거라고는 일어나서 밥 먹기, 놀기, 밥 먹기, 그리고 또 놀기. 이게 다였으니까.
“검은 네가 조금만 더 크면 꼭 가르쳐 주마. 그러니 속상해 말거라.”
“나중에는 꼭 가르쳐 주시기예요!”
“그래. 지금은 검 대신에 다른 것부터 배워 보는 게 어떻겠니? 뭐든지 말하려무나.”
부드러운 만류에 울적하기도 잠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더 좋은 방향이었다.
그래. 지금은 다른 것부터 배우는 게 더 좋겠다.
여기서 귀족으로 살아가려면 예법이나, 역사 등 기본적인 소양은 익히는 게 좋을 테지.
내가 생산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에일런이 아버지를 부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가도 되지 않습니까.”
“아, 그래. 그렇지.”
아버지 역시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아는지 입매가 만족스레 호선을 그렸다.
그러니까 어딜 나가도 된다는 건데.
나만 모르는 소리에 소외감을 느낀 것도 잠시.
“에리타, 마을에 나가 보겠니?”
“……마을에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저택 밖에 나가 보겠냐니.
내가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겠다는 말에 부러 나가 보고 싶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랑 오라버니도 같이요?”
“그래. 같이.”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번갈아 바라보자 둘 다 다정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저택 바깥에 나간다니.
“네! 갈래요!”
당연하게도, 내 대답은 긍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