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2)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62화(162/218)
후다닥 도망쳐 연구실로 내려온 나는 푹신한 소파에 눕듯이 기대어 앉았다.
그런데 문이 닫히는 소리는 들렸지만 뒤따라 소파로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을 휙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단정한 자세로 문 앞에 선 테인이 보였다.
“테인.”
나는 불만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불량한 목소리로 테인을 불렀다.
“왜 또 거기 있어. 빨리 와서 앉아.”
“저는 호위이니 여기에 서 있는 게 맞습니다.”
“그럼 온종일 거기 서 있으려고?”
“네.”
빨리 오라며 손짓하자 테인은 순한 얼굴로 고집을 부렸다.
옛날에는 내가 한두 번 찡찡대면 못 이기는 척 와 주더니. 요즘 들어 테인의 태도가 한층 더 완강해졌다.
‘저게 다 오라버니랑 무슨 훈련을 한다고 한 날 이후로 저렇단 말이지.’
에일런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에일런과 훈련을 시작한 날부터 저렇게 고집쟁이로 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물론 오라버니가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건 잘 알지만, 저 순한 애를 온종일 세워 놓아야 하는 내 입장도 생각을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어릴 적 쓰던 떼쟁이 말투를 꺼냈다.
“그럼 와서 나랑 얘기하자. 응? 누가 서서 얘기하냐구.”
“에리타 님…….”
테인이 벽 한 겹을 두른 건 맞지만 나는 테인의 고집을 꺾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쪽으로 가서 얘기할까? 안 그래도 나 요즘 운동 부족이라는 소리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거든. 서 있는 것도 운동이라면 운동이지, 뭐.”
그렇게 말하며 내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자 드디어 테인의 얼굴에서 완고함이 사라지고 난처함이 떠올랐다.
구십 프로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뭐어…… 어제 열심히 힘쓰고 와서 서 있는 게 조금 힘들긴 하지만 테인이랑 얘기하려면 조금 힘든 게 대수겠어? 그냥 조금 힘든 건데 말이야.”
내가 부러 ‘조금’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한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주인님은 너무하세요.”
울상을 지은 테인이 타박타박 걸어와 나를 다시 앉히고는 내 옆에 살짝 앉았다.
“아니, 내가 뭘 너무해.”
“그렇게 말하면 제가 올 거 아셨잖아요…….”
“음, 그야 그렇지.”
뻔뻔하게 대꾸하자 테인의 동그란 눈망울에 심통이 차올랐다.
삐지는 건 어릴 때랑 똑같군.
나는 속으로 허허 웃으며 테인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약으셨어요…….”
원래 짜증도 내 본 사람이 잘 내는 거라고, 테인이 나를 타박하는 말은 고작해야 약았다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테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착실히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팔이 아플까 싶어 제 몸을 숙이는 거였다.
하여튼 이렇게 착해서 어쩌려고.
사람이 적당히 약기도 해야 사는 게 편한 법인데. 물론 나는 테인의 이런 부분을 좋아하지만.
“나는 테인 네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그랬지. 내가 어떻게 너만 세워 두고 마음 편하게 있겠어. 응?”
“원래 호위들은 다 그렇게 하는걸요……. 만약 제가 아닌 다른 호위였어도 이렇게 옆에 앉혀서 쓰다듬어 주실 거예요?”
나는 그 어이없는 물음에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테인의 눈망울은 내가 긍정의 답을 꺼내면 금방이라도 시무룩하게 축 처질 것만 같았다.
“아니, 내가 다른 사람한테 왜 이러겠어.”
“그야 에리타 님은 친절하고 상냥하시니까요…….”
도대체 테인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사람을 착하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테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야. 네가 나한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랑 같다고 생각해?”
애초에 다른 사람이 호위였다면 밀착 호위를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옆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는 건 오로지 테인한테만 하는 행동이란 말이지.
“이런 건 너한테만 하는 거야. 너는 단순한 호위가 아니잖아.”
나는 다시금 테인은 참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튀어나온 테인의 늑대 귀를 살살 매만져 주었다.
그러자 테인이 만족한 듯이 헤실헤실 풀어진 표정으로 그르릉거렸다.
“아, 오랜만에 수화할래? 저택에 있으면서는 자주 못 했잖아. 답답하지 않아?”
잠시 보드라운 테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나는 마침 생각난 말을 꺼냈다.
테인은 기사단 건물에서 생활하니 아무래도 늑대의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어려울 터였다.
“지금요?”
테인이 문을 흘긋 바라보더니 무언가 탐탁지 않아 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딱히 변하고 싶지 않은 건가? 그렇다기에는 늑대로 있는 편이 더 편할 텐데.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니면 누가 들어올까 봐 그러나?’
테인이 수인이라는 걸 아는 건 저택에서 나와 아버지, 에일런 그리고 페른이 전부였으니까.
“응, 나랑 연구실에 있을 때는 편하게 있어도 괜찮다고 했잖아.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안 들어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
안심하라는 듯이 머리를 헝클이자 테인은 그제야 미적미적 소파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느릿한 움직임이 조금 의아하긴 했으나 내가 뭔가 마음에 안 드냐고 묻는 것보다 테인이 앙증맞은 회색 늑대로 변하는 게 먼저였다.
새끼 강아지만 한 크기로 몸을 줄여 수화한 테인이 소파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따끈한 발바닥을 내 다리 위에 툭, 올렸다.
입꼬리가 절로 치솟는 귀여움이었다.
“크기는 일부러 줄인 거야? 더 크게 있어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자그맣게 변한 테인을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테인은 성체가 된 순간부터 완전 수화 형태 모습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수인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작게 변해 달라고 졸라도 절대 싫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통에 이렇게 작은 테인의 모습은 몇 년간 보지 못했는데…….
“아, 너무 귀엽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내 소원을 들어준 거람? 오늘 나 생일인가?”
나는 오만 주접을 떨며 자그만 테인을 잔뜩 귀여워했다.
그러자 테인이 내게 안긴 채로 동그랗고 따끈한 머리를 내 손에 슥슥 비볐다.
“흐흐, 내일 유르젠 만나러 가면 자랑해야겠다. 유르젠이 안 그래 보여도 귀여운 거 되게 좋아하거든.”
정확히는 테인의 어린 늑대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아니라고? 아냐, 맞다니까. 확실해.”
내 손을 아프지 않게 앙앙 무는 테인은 아니라는 뜻을 전했지만 그게 아닐 리 없었다.
옛날에 유르젠과 함께 나들이를 하러 가서 테인을 닮은 귀여운 강아지 인형을 사려니까 유르젠이 옆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사는 김에 두 개를 사서 유르젠에게 선물이라고 안겨 줬더니 지금까지도 집무실 책상 한쪽에 그 인형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놓여 있었다.
“테인 너도 유르젠 책상 위에 있는 강아지 인형 알지?”
내 물음에 회색 늑대가 어쩐지 떨떠름해 보이는 모습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그런 잿빛 털 뭉치를 능숙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옛날에 내가 너 닮은 것 같아서 두 개 사서 유르젠한테 선물해 준 거거든. 아직도 애지중지하는 거 보면 유르젠도 너 귀여워하는 거 맞다니까.”
“끼이잉- 끙-”
낑낑거리는 테인의 반응을 보니 여전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흠, 어쨌든 내일은 유르젠 보러 갔다가 신전에 갈 거야. 테인 너도 같이 갈 거지?”
바쁘게 사느라 시간이 빨리 지나서 그런지 벌써 태양신을 다시 만날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 있었다.
내일 가면 전부 알 수 있겠지.
그때 테인이 둥그런 눈망울을 축 늘어뜨리고 내 손을 핥았다.
늑대 모습을 한 테인은 불안하거나 걱정이 될 때 이렇게 내 손을 핥았다.
신전에 다녀온 뒤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걱정하는 거야? 괜찮아. 저번에는 그냥 좀 기분이 안 좋았었거든. 그래서 그래.”
저번에 신전에 갔을 때는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글자로만 알고 있던 가족들의 최후를 직접 보았기에 충격을 쉬이 떨쳐 내지 못했던 거였다.
이번에도 내가 모르던 사실을 알기 위해 가는 거긴 하지만 저번과 달리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니까.
무엇을 들어도 저번처럼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테인에게 그 이유를 알려 줄 수 없는 건 미안했지만.
“어쨌든 같이 간다는 뜻이지?”
그에 테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읏차- 그럼 편하게 쉬고 있어. 나는 손봐야 할 아티팩트가 몇 개 있거든.”
나는 부드럽게 테인을 소파에 내려놓은 후 귀찮음을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따 저녁에는 칼리온을 만나기로 했으니 그 전까지 할 일을 전부 끝내 놓을 생각이었다.
‘빨리 보고 싶다…….’
지금쯤이면 칼리온은 아마도 서류 처리나 안건 회의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일단 나도 하나 끝내 놓고 연락해야겠네.”
어젯밤부터 들뜬 기분에 평소보다 깊게 생각하지 못한 나는 알지 못했다.
소파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은 테인의 눈동자에 옅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왜 테인이 오늘따라 내게 더 치대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