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66화(166/218)
태양신의 말에 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한국에서의 내 삶.
죽을 만큼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 대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빈말로도 행복했다고 하기는 어렵지.’
태어난 순간 가족에게 버려졌고, 본인들의 선택으로 나를 데려갔던 새로운 가족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나를 버렸다.
고아원의 원장은 유독 나를 싫어했고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나를 미워하는 대신 무시했다.
그렇게 살아온 이십 년에 가까운 삶에서 배운 건 체념이었다.
“……저보다 힘들었던 사람도 많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딱히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느릿하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
평생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행복의 순위를 매겨 보자면 하위권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네 영혼은 그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세계의 이들은 알게 모르게 너에게서 이질감을 느꼈겠지.]나한테서 이질감을 느꼈을 거라고.
원장이 유독 나를 싫어했던 것도,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꺼렸던 것도, 그게 전부 내가 온전한 그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말일까.
내가 유난히 짜증을 유발하는 못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태양신과 마주하고 있기에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던 어두운 감정 조각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조각이었지만.
[나는 너를 발견한 즉시 이곳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네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닌 여기였으니까.]“……저를 발견한 건 제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보다 더 일찍이었나 보네요.”
[그래.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 하지만 나는 너도 알다시피 시간을 되돌린 일로 대부분의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너를 바로 데리고 오지 못했어.]나는 이어진 태양신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를 데려올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을 무렵에는 너와 이 세계를 연결할 매개체가 필요했다.]“……매개체요?”
[너와 이곳을 연결하는 끈. 네가 이곳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그 말에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건 오늘 물으려 했던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책…….”
아일라는 사랑스러워.
내 짤막한 말에 태양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힘을 잃은 내가 너에게 접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이었다.]그 책이 내가 이곳을 인식하게 만든 매개체라는 소리였다.
“그럼 갑자기 그 책에 관심이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겠네요.”
[그렇지. 너를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네가 그 책과 접촉을 해야 했으니까.]그렇다면 원래는 관심도 없던 소설책을 갑자기 홀린 듯이 샀던 이유도 설명이 됐다.
한낱 인간이 무슨 수로 신의 뜻을 거부하겠어.
혼자 수긍하던 나는 그 책에 관해 아직 풀리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을 더 꺼내 들었다.
“그 책에 대해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말해 보렴.]“……거기에 나온 아일라는 없는 인물인 건가요?”
데뷔탕트 무도회가 있었던 그때 유르젠의 보고를 받은 후부터 내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주제였다.
몇 년 전 조사에서 아일라는 분명히 살아 있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조사 결과가 나왔지.
하지만 몇 달 전의 조사에서는 아일라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 있었다.
멀쩡하게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고, 유르젠도 상단의 정보원들도 아일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그 기이하고도 끔찍한 현상에 눈물이 줄줄 새어 나올 만큼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네 물음에 정확하게 답해 주자면 아일라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란다.]태양신의 대답을 듣자 굳었던 어깨에서 힘이 탁,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일라의 존재가 나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닐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위선적인 안도감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얼굴을 바라보던 태양신이 끝나지 않은 설명을 이었다.
[그 책의 내용은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자 안배였다.]“선물이라구요?”
태양신이 내게 주는 선물이자 안배였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때 문득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내가 아일라의 것을 가로챘다고 생각했던 그 행운들.
[네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적혀 있지 않았니. 그게 내 선물이란다.]태양신의 확답에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그 소설 속의 아일라는 행운의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지나가다가 땅에서 주운 고철 덩어리가 진귀한 보물이라든가, 우연히 도와주게 된 사람이 어느 나라의 굉장한 재력가라든가…….’
그런데 아일라의 그 모든 행운이 나에게 주는 태양신의 선물이었다니.
그 기가 막히고도 어이가 없는 말에 진지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지나친 선물 아닌가요.”
[내 욕심으로 시간을 돌려 네가 고통받았으니 네 아픔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렴.]……보상.
그 단어 하나에 위로를 받은 듯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갑자기 속에 무언가 얹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치민 말을 그냥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보상이라는 단어가 내게 어떻게 와닿는지를 말해 봐도 태양신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지난번 만남으로 배운 게 있었다.
어차피 지금 이상으로 그 선물이라는 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생각도 없고.
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을 택했다.
“그게 당신이 나한테 주는 보상이라는 건 이해했어요. 아일라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그런데 안배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내 말에 태양신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줄곧 다정하고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그 미세한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아주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다른 이의 표정을 읽는 데에는 도가 튼 나였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차라리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동시에 나는 알 수 있었다.
태양신이 저 안배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실수였으리라는 걸.
[그건 섭리에 어긋나 알려 줄 수가 없겠구나.]아니나 다를까 태양신은 원래대로 돌아온 표정으로 태연하게 섭리를 운운했다.
그 뻔뻔한 작태에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파져 왔다.
나도 태양신에게 그다지 기대한 게 없으니 배신감이라기보다는 짜증이 치밀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지금 눈앞의 신이 말한 안배.
내 생각에는 그게 나를 위한 안배가 아니라, 나를 이용해 흑마법을 치우려는 태양신 자신을 위한 안배 같거든.
아마도 선황비의 장례식 이후에 보았던 그 환상 같은 것도 태양신이 한 거겠지.
사랑하는 가족의 참혹한 죽음이 흑마법으로 인한 것이라는 걸 내가 알게 하려는 의도의.
물론 태양신에 대한 내 감정이 좋지 않기에 너무 과하게 꼬아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조금 전의 보상이라는 단어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은 탓일 수도 있었고.
태양신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안배가 뭔지 말을 해 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다른 건 전부 이야기했으면서.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태양신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 내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섭리……. 그럼 어쩔 수 없죠.”
나는 아쉽지 않다는 얼굴로 담담하게 섭리라는 말을 수긍했다.
태양신을 닦달해 봤자 소용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미 대부분 다 들었다.
명확히 듣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건 지금까지 들은 것들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냥 신전을 벗어나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쨌든 나는 십 년 전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 대가로 많은 힘을 썼기에 지금까지 반쯤 잠들어 있었고.]마침 이야기도 슬슬 끝나 가는 기색이 보였다.
그렇게 몇 마디가 더 이어진 후, 아마도 마지막일 태양신과의 이야기는 미묘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제가 다시 한번 가족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태양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설사 태양신이 정말로 나를 이용해 흑마법에 대비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가 시간을 돌렸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게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나야말로 고맙구나.]나는 무엇에 대한 고마움인지 묻지 않았다.
태양신도 구태여 나를 더 붙잡지 않았다.
“그럼 갈게요.”
[언젠가 다시 만나러 와 준다면 좋겠구나. ……잘 가렴, 내 아이야.]그 말을 끝으로 새하얀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
저번과 같이 눈을 뜨자 보이는 건 그리 넓지 않은 기도실이었다.
“……진짜 끝났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태양신의 앞에서 억제되어 있던 감정이 풀려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이리저리 튀는 감정을 토닥토닥 진정시켰다.
다행히 저번처럼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지는 않았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 기도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문을 나서자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은 테인이 급하게 내 곁으로 다가섰다.
“주인님, 빨리 저택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