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67화(167/218)
테인의 표정은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우선 마차로…….”
테인의 말에 나는 덩달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니.
“어라? 빨리 오셨구먼요.”
“예. 상단으로 가는 길을 재촉해 주시면 좋겠는데.”
“예이, 알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답지 않게 마부를 재촉한 테인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나를 에스코트했다.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내가 마차에 올라타자 테인이 곧바로 문을 닫았다.
우웅-
새어 나가면 위험한 이야기인 듯싶어 나는 마차 내부에 사일런스 마법을 둘렀다.
“이제 말해도 돼. 무슨 일이야?”
“연설을 위해 나서기 직전에 황제가 쓰러졌어요.”
“……뭐라고?”
테인이 전한 말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이었다.
황제가 쓰러졌다니.
“주인님이 들어가시고 나서 조금 뒤에 유르젠 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황제가 쓰러진 건 독 때문으로 추정되고 아직 대중들에게는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확한 건 유르젠 님이 나중에 연락을 달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그럼 오늘 연설은 취소됐겠네?”
“네. 일단 취소해서 지금 군중들을 해산시키는 중이래요.”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갑자기 멀쩡하던 황제가 쓰러지다니. 그것도 사아에 대해 대대적인 발표를 하는 날, 단상에 오르기 직전에.
어린아이도 알아챌 법한 구린내가 풀풀 풍겼다.
“고마워, 테인. 유르젠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갑자기 마차에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나는 아공간에서 비상용 통신구를 꺼냈다.
키잉-
빠르게 마력을 주입하고 좌표를 정하자 곧바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유르젠!”
나는 다급하게 유르젠을 불렀다.
그의 얼굴도 딱히 좋지는 않았다.
-테인에게서 전해 들으셨습니까?
“응, 방금 들었어. 그보다 지금 상황은 어때? 궁 내부랑 외부 상황은?”
-저도 아직 완벽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일단 황제는 중태이고 계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닙니다. 외부로는 사정이 생겨 일정이 미뤄졌다고만 알려졌고요.
아직 일반 백성들은 황제가 쓰러진 걸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일단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귀족들은 전부 알고 있는 거야?”
-현재는 연회장 안에 들어간 귀족들만 알고 있습니다. 황제가 쓰러진 건 소연회장 안이라서요.
오늘 황제가 사아에 대해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장소는 드넓은 황궁의 외곽에 지어진 소연회장이었다.
정확히는 소연회장과 맞닿은 넓은 광장에 백성들이 모일 예정이고, 황제는 그 광장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연설하려는 거였다.
그렇다는 건 후작 이상의 귀족들만이 황제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와 에일런도 황궁에 갔으니 아마 아버지는 연회장 안에 들어가셨을 테고.
“여론은 어때?”
-아직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 어수선합니다만……. 아마 몇 시간 내로 수도에 소문이 돌 것 같습니다. 황제가 쓰러지는 모습을 어렴풋하게 본 이들이 있는 모양인지라.
그 말에 나는 탄식을 흘렸다.
안 좋은 소식이 도는 건 금방이었다.
누군가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자극적이었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아주 좋아하니까.
하필이면 오늘을 골라 이런 일을 벌인 이들의 목적도 그것이겠지.
황제 독살 미수 사건이라면 흑마법으로 소란스럽던 제국의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꿔 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유르젠이 낮은 목소리로 말해 왔다.
-이건 아직 분위기에 불과하긴 합니다만, 이 황자 전하께로 의심이 쏠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유르젠이 빠르게 뱉은 말에 나는 바보처럼 되물었다.
이 상황에 칼리온이 의심받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황제가 쓰러지고 얼마나 지났는데?”
-한 시간 정도입니다.
젠장. 생각보다 기도실에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모양이었다.
“그보다 왜 칼……, 아니, 전하께서 의심받으시는 건데? 황제가 쓰러진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제대로 조사한 건 맞대?”
나는 답답한 마음에 초조하게 물었다.
사아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시작되기 직전 쓰러진 황제.
황후의 수작이 분명했다.
황제의 입에서 사아에 대한 말이 나오면 손해를 볼 사람은 사아와 황후뿐이니까.
그 과정에서 죄를 뒤집어씌울 사람으로 칼리온을 선택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엿같은 상황에 절로 욕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 황자 전하께서 의심받으시는 이유는 독의 종류 때문입니다.
“독의 종류?”
그런 게 이렇게 빨리 밝혀지던가? 상식적으로 황제에게 흔적이 남는 독을 사용했을 리가 없는데.
그때 설마 하는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황후가 일부러 흔적이 남는 독을 사용한 거라면……?
내가 그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유르젠의 설명이 이어졌다.
-쓰러진 직후 황제 폐하께서 토하신 검붉은 피가 몇 초 후에 짙은 녹색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독 중에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건 하나뿐이고요.
“……그 독이 뭔데.”
-킬라인 왕국에서 나는 리칸이라는 꽃의 줄기를 사용한 독입니다.
……킬라인 왕국. 익숙한 이름이었다.
나는 그제야 황후가 노린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킬라인 왕국이라면…….”
-이 황자 전하께서 수도로 귀환하시기 직전에 계셨던 전쟁터가 킬라인 왕국의 국경이죠. 더군다나 그 독은 킬라인 왕국의 군에서만 취급되는 종류입니다.
“……하지만 고작 그거 하나로 전하를 범인으로 몰기에는 모자라잖아. 아무리 군에서만 취급하는 거라고 해도 구하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애써 담담하게 대꾸했지만 부정할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확정 짓기에는 모자라지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는 충분합니다. 의심스러운 부분을 일단 수면 위로 올려 두면 증거는 만들어서 들이밀어도 되니까요.
아, 이거였구나.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욕에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저열하고도 악랄한 수작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칼리온을 범인으로 몰아가기 딱 좋은 수작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공정하고 정확한 조사를 거친다면 칼리온의 짓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겠지만 황후가 그렇게 둘 리 없었다.
어떻게든 칼리온의 짓으로 몰아가겠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거짓 증인, 거짓 증거. 분명히 둘 중 하나는 나올 것이었다. 아니면 둘 다 나오거나.
“……일단 알았어. 다른 소식 있으면 바로 연락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쉬고 계세요.
“응…….”
내 힘없는 대답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제국이 발칵 뒤집힐 일이 일어났으니 유르젠도 바쁠 터였다.
“오셨어요, 아가씨!”
“으응. 그보다 아버지랑 오라버니는 아직 안 오셨지?”
“네? 네. 황궁에 계실 시간이니까요.”
테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리에게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예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메리, 그럼 이따가 아버지랑 오라버니 집에 오시면 바로 나한테 말해 줘.”
“그럴게요. 쉬세요, 아가씨! 거기 테인 님도 얼른 나오시구요.”
발랄하게 대답한 메리가 테인을 이끌고 문을 나섰다.
***
에리타가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황궁에는 고요하고도 날카로운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황제가 쓰러진 건 사아에 대한 중대한 발표를 위해 그가 발코니로 나서기 직전이었다.
시종들이 커튼을 걷으려던 순간, 황제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그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아슬란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칼리온의 시선이 황제에게 닿았다.
“커억-!”
그때 울컥, 하는 소리와 함께 황제의 발치로 검붉은색의 피가 떨어졌다.
쿵-
그 피가 짙은 녹색으로 바뀜과 동시에 비틀거리던 황제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폐, 폐하!”
황제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본 황후는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충격으로 다리의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황후 폐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지탱한 건 황후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황후궁의 시녀장이었다.
델리아 란테. 사아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이.
그 짧은 장면을 보고 돌아가는 상황을 대략 알아챈 아슬란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당장 폐하를 침실로 옮기고 신관과 의원을 불러와라! 어서!”
테시스의 급한 호통에 호위를 서던 제1 기사단장이 황제를 업고 시종장과 함께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신관과 의원을 부르기 위해 호위 기사 둘이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후 아수라장이 된 주변을 통제한 건 칼리온이었다.
당장 황제가 쓰러진 지금 황궁의 통제권은 황제의 정부인인 황후에게 있지만 그 황후는 충격받은 얼굴로 제 시녀장에게 기대어 숨만 색색 내쉬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모든 사용인들을 데려가 증언을 확보하도록. 또한 이전에 폐하께서 만지고 드셨던 모든 것을 조사해.”
칼리온의 말에 우르르 몰려온 기사들이 시녀와 하녀, 시종들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잡아갔다.
황제가 독에 당한 지금 당연한 처사였다.
사용인들은 저마다 목청을 높이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기사들의 억센 손길은 단호했다.
원래 그리 바글바글하지 않던 공간이 한층 더 한적해지자 칼리온은 소연회장에 남은 고위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스무 명도 채 되지 않는 이들은 제국의 중추이자 황제가 쓰러지는 상황을 눈앞에서 본 목격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안에 이 일을 꾸민 주범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당장에는 증거가 없지만.
“지금부터 폐하께서 쓰러지시는 것을 목격한 이들 전부 이곳에서 나가지 못합니다.”
칼리온의 말과 동시에 소연회장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 황자의 말대로 폐하의 상태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 이곳을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할 것이오.”
굳은 얼굴의 테시스가 칼리온의 편을 들었다.
고위 귀족들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앞에서 목격한 탓이었다.
“황후 폐하를 침실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그때 황후를 부축하고 있던 델리아가 입을 열었다.
조금 쉰 듯한 목소리는 황후에 대한 걱정으로 잔뜩 흐려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