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6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68화(168/218)
칼리온은 황후를 걱정하는 델리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아는 황후라면 고작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을 리 없었다.
‘황제를 직접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황제가 쓰러져 봤자 테시스에게 유리한 구석은 없었다.
당장에 제국에서 이름을 더 많이 알린 것도 칼리온이고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 세력들을 보아도 테시스가 아주 압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황후만큼 칼리온의 동향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으니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황자 전하……!”
그때 델리아가 다시금 재촉했다.
“……어머니를 침실로 모셔라. 데른, 벤. 그대들이 함께 가도록 하게.”
그런 델리아의 말에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한 건 테시스였다.
그는 어딘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호위 기사 둘을 호명해 델리아의 곁에 붙였다.
벌컥-
황후를 부축한 델리아와 그 뒤를 따르는 기사 둘의 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졌다.
테시스는 문이 닫히고도 한참 동안 육중한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비칠 터였다.
하지만 칼리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황후를 바라보던 테시스의 시선에 미약하디미약한 의심과 제 모친을 의심하는 데에서 기인한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사아의 정체를 밝혔던 회의 때보다 더 살이 내린 것도 같았다.
‘확실히 형님이 뭔가 알아채긴 알아챈 모양인데…….’
감추지 못한 불안감이 테시스의 얼굴에 옅게 묻어 있었다.
바깥에 모였던 사람들을 해산시키는 건 제2 기사단이 맡았다.
갑자기 취소된 연설은 백성들의 불만을 자아냈지만 당장 황궁 내에 그것을 신경 쓸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나 참, 이게 무슨 일인지.”
“폐하께서는 괜찮으실지 걱정이군요.”
몇몇 귀족들은 황제를 향한 걱정을 드러냈고, 몇몇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칼리온은 그런 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억겁 같은 삼십 분이 흘렀다.
***
한편 바깥에 있던 에일런은 소연회장 내부의 소란스러움을 느낀 후 곧바로 넓게 퍼뜨렸던 감각을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소드 마스터의 청력은 집중한다면 시끄럽기가 시장 바닥과도 같은 곳에서도 원하는 곳의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황제 폐하!
-세상에, 독이야!
놀란 고위 귀족들과 사용인들의 새된 목소리가 크게 울렸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황제 독살 사건이라니.’
오늘의 연설이 누구에게 가장 피해를 줄지 아는 에일런으로서는 이것이 누구의 꿍꿍이인지 단번에 감이 왔다.
아마 황제와 함께 소연회장 안에 있던 아버지와 칼리온도 알아차렸겠지.
황제가 치료를 위해 침실로 사라지고, 칼리온이 내부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 황궁 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척척 걸어 나왔다.
그중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이가 큰 목소리를 냈다.
“오늘 있을 예정이던 황제 폐하의 연설이 내부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바요!”
무슨 사정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간략한 통보였다.
그에 좌중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니, 흑마법이면 심각한 일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취소해도 되는 거야?”
“난들 알겠나. 어휴, 일도 빠지고 왔는데 헛고생했구먼.”
“그러게나 말이야. 내부 사정은 무슨 내부 사정인지.”
하나둘 흩어지는 인파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속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몇백 년 만에 다시 제국에 그 더러운 발자취를 드러낸 흑마법의 심각성을 얼추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알려 주지도 않고 그냥 자리를 파하라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답답한 게 당연했다.
“언제 다시 발표하겠다는 말도 없었지?”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냥 오늘 못 하니까 돌아가라고만 하지!”
기사에게 사정을 물으러 다녀온 사람들의 짜증이 어린 얼굴들이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나타냈다.
하지만 단단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길의 질서를 통제하고 있었기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은 없었다.
‘……황후궁으로 가야겠군.’
에일런은 옆에 있던 제롬에게 짤막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럼 저는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러 가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이어진 상황까지 마저 파악한 에일런은 빠르게 기척을 지우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에일런이 모습을 감춘 것을 아는 이는 옆에 있던 제롬 사비에르뿐이었다.
***
본래 오늘 있을 예정이던 황제의 연설 탓인지 아니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황제 독살 사건 때문인지 황궁 내부는 어수선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머리색을 마법으로 바꾼 에일런은 기척을 지우고 인적이 드문 곳을 밟아 드넓은 황궁을 익숙하게 가로질렀다.
각 기사단의 단장 정도면 모를까 일반 기사들과 평범한 사용인들은 작정하고 존재감을 흩뜨린 소드 마스터의 존재를 눈치챌 수 없었다.
“이건 황제궁에서 일하는 시종들이 하는 말을 엿들은 건데, 폐하께서 위독하시대.”
“……뭐? 그게 정말이야?”
“아니, 아까 소연회장에서 기사들이 사용인들을 우르르 끌어내더라니까? 무슨 일이 난 게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오늘 있을 예정이던 연설도 갑자기 취소됐고.”
“세상에…….”
황제가 쓰러진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그 전파 속도가 훨씬 빨랐다.
적극적으로 소문을 확산시키는 꼴을 보니 아마도 이 사건의 주범에게서 사주를 받은 모양이었다.
흑마법으로 시끌시끌한 제국을 휩쓸기에는 황제의 건강에 관한 문제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게다가 말이야…….”
“뭔데?”
“폐하께서 독을 드셨다는 소리도 있어.”
“뭐?!”
그게 단순한 건강 악화가 아니라 독살 사건이라면 더더욱.
소문을 나르던 더벅머리 하인의 입에서 나온 독이라는 말에 하녀들이 눈을 크게 떴다.
“쉿……! 비밀이야, 비밀. 확실한 것도 아니고.”
비밀이라기에는 쑥덕대는 목소리가 꽤 컸다.
뛰어난 검사가 아니더라도 주변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당장 저 무리의 주변만 봐도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아닌 척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황후궁으로 가는 동안 여러 번 더 그와 같은 장면을 본 에일런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이 속도라면 황궁 밖으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황후에게 한 방 먹었군.’
일 황자가 월등히 우세한 상황이 아닌 지금 당장 황제를 건드리지는 않을 거라고 경계를 느슨히 한 게 실책이었다.
타닥-
어느새 목적지에 근접한 에일런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땅을 박찼다.
건물 벽을 소리 없이 두어 번 더 박찬 에일런이 멈춘 건 거대한 황후궁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지붕 위에 선 모습이 위태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잘 단련된 육체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다.
우웅-
옅게 새어 나온 에일런의 붉은 마력이 한 번 자리를 휘감은 후.
지붕 위에 있던 인영의 모습이 경계부터 옅어지더니, 이내 투명해졌다.
***
“황후 폐하께서는 충격으로 잠시 기절하신 듯합니다.”
“단순한 기절이란 말인가?”
“예……. 일어나신다면 오늘 하루는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시면 될 듯합니다.”
“흐음.”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황후의 상태는 정말로 단순한 기절이었다.
의원은 제 진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지만 좋지 않은 시녀장의 안색을 보자 어쩐지 어깨가 움츠러듦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한기가 팔뚝을 타고 오소소 올라왔다.
“알겠네. 이만 물러가 보게.”
“……예.”
다행히 축객령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떨어졌다.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는 시녀장의 목소리에 의원은 몸을 움찔 떨더니 빠른 속도로 제 도구들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시녀들이 열어 준 문으로 후다닥 나간 의원은 숨도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해 황후궁을 나섰다.
‘으으, 살이 떨린다, 살이 떨려.’
평소라면 황족을 담당하는 스승과 대선배가 이 자리에 왔어야 하는 건데…….
하필이면 황후궁의 시녀가 찾아오기 전 황제궁으로 갈 게 뭐람.
아직 황궁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의원은 콩알만 해진 간이 들어 있을 배를 쓱쓱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어머니께서 항상 배포가 왜 이리 작냐고 하시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먼그래.”
스승이 은퇴하고 나면 제가 황족을 담당하는 주치의가 될 텐데 오늘 한번 겪어 본 황후를 보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눈앞이 캄캄했다.
제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황후는 그저 기절한 상태로 누워 있었을 뿐이지만 묘하게 꺼림칙한 공기가 감도는 것이 황족이라면 기절했어도 전부 그런 오라를 내뿜는 건가 싶었다.
그 꺼림칙한 공기는 황후의 침실에 짙게 배 있는 사기 탓이었지만 허술한 의원이 알아챌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