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7)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7화(17/218)
“아버지! 오라버니!”
“안녕, 에리타. 좋은 아침.”
내가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와 있었다.
‘예? 오늘은 안 됩니다!’
‘불가능이 어디 있나. 무조건 되게 만들어.’
‘하하. 주군께서 농담을 다 하시고.’
‘이게 농담으로 들리나?’
‘안 됩니다! 저는 못 해요! 가시려면 저를 죽이고 가셔야 할 겁니다!’
잠시 어제의 상황을 떠올린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원래는 어제 가려고 했지만 사색이 된 페른이 안타까워서 오늘 가자고 했었지.
아버지는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했지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절망스러운 페른의 얼굴을.
페른의 얼굴에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니 차마 나까지 조를 수가 없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십시오.”
“다녀오세요, 아가씨!”
“다녀올게!”
나는 우리를 배웅하는 테르반과 메리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손을 붙잡고 문을 나서자 커다란 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에 새겨진 덩굴에 감싸인 두 자루의 검은 크로바하츠의 문장이었다.
‘흠흠. 나도 이제 이 정도는 알지.’
저택 도서관에는 종류를 불문하고 아주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제국의 역사와 가문들에 관해 적힌 책도 당연히 있었고.
‘음. 근데 마차가 엄청 높네.’
커다래서 그런지 마차의 높이가 생각보다 더 높았다.
올라가려면 내 키로는 끙끙대야 할 정도?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잠시만.”
오라버니가 먼저 마차에 올라타 내게 손을 내밀고.
“으앗!”
아버지가 가볍게 나를 들어 마차 위로 올려 주셨다.
오라버니의 손을 붙잡고 마차 안으로 들어선 나는 속으로 머쓱하게 웃었다.
“출발하지.”
아버지의 말에 마차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슥 둘러본 내부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심플했다. 의자는 침대 못지않게 폭신했지만.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려다 아직 오라버니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오라버니.”
“응?”
손을 놓아 달라 말하려 했지만, 다정한 얼굴을 보자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으응,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
“하하. 그게 뭐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헤헤 웃자 오라버니가 나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내 옆얼굴로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맞은편에 앉은 아버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더듬더듬 얼굴을 만져 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건 없었다.
“에리타가 나한테만 좋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설마요…….”
나는 속삭이는 오라버니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설마 아버지가 그런 것 때문에 그러시겠어?
‘계속 보고 계시잖아.’
음. 설마 진짜 그건가?
시선을 데구르르 굴리며 고민하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아버지!”
평소와 같은 표정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같이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너무너무 좋아요!”
나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사실이니까.
“그래.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니 이게 정답인 듯싶었다.
***
“와아. 바깥이 너무 예뻐요!”
나는 달리는 마차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가을이라 알록달록한 나무들이 화려하게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을에 가까워지는지 건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저택이 마을에서는 좀 떨어져 있거든.”
나는 오라버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차분하고 조용한 대공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북적거리고 활발한 느낌.
“이제 내려야겠구나.”
“와아!”
나는 아버지의 말에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고아원이 있던 리센에서는 검은 머리를 싫어했는데…….’
이곳은 아버지가 있는 대공령이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적의 어린 시선이 선명했다.
“저, 아버지.”
“그래.”
“……머리색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혹시나 아버지의 기분이 상할까 싶어 말을 흐렸다.
하지만 마차의 문이 열리고, 아버지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한 번 쓰다듬었다.
마치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처럼.
“이곳에서 검은색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몇백 년간 대공가 사람들이 다스려 온 곳이니.”
“아…….”
“그리고 저번에 머리색을 바꾸었던 건 네 존재를 숨기기 위함이었지, 머리가 까맣기 때문이 아니었어.”
그제야 리센에서 머리색을 바꾸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대공령 사람들은 검은 머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긴. 애초에 대공령을 다스린 건 대공가 사람들일 테니까. 이해가 되네.
마차 밖에서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아버지의 모습이 든든했다.
내 손을 한 번 꾹 붙잡아 주며 웃는 오라버니도 있었다.
그래. 다짐했잖아. 지레 겁먹고 걱정하지 말자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
마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북적거리는 거리의 모습이었다.
내가 있던 리센보다 사람도 많고 건물도 더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아버지의 말에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 잃을 수도 있으니까 손은 놓지 말고.”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손을 꼭 붙잡은 나는 그 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지?”
“저거 사줄까?”
내가 시선을 두는 것마다 족족 사려고 하는 아버지와 오라버니 덕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카일.”
“예, 주군.”
“나눠서 들도록.”
내가 말리기도 전에 값을 치르는 두 사람 덕에 비밀리에 호위하던 기사들의 손만 무거워졌다.
나는 호위하는 기사들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지만.
지금까지 산 게 뭐 뭐 있더라. 일단 옷, 신발, 장난감, 거기다 케이크.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번 순서는 내가 빤히 바라보던 인형이었다.
아니, 물론 귀여워서 보긴 했는데…….
“감사합니다아…….”
결국 곰돌이 인형은 내가 안고 다니기로 했다. 대신 이제는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둘과 약속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다짐한 게 무색하게도 이번에는 내가 사고 싶은 게 생겼다.
정확히는 먹고 싶은 거.
길거리에서 파는 군것질거리인데 과일을 설탕물에 담가 굳힌 꼬치였다.
반지르르한 겉면에 단번에 홀려 버린 나는 옆을 힐끗 올려보았다.
내가 사지 말자고 해놓고 저거 사달라고 하면 너무 민망하잖아.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눈치가 아주 귀신같다는 것이었다.
“저거 먹고 싶어?”
과일 꼬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게 오라버니가 물었다.
“네…….”
잠시 우물쭈물하던 나는 소심하게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원하던 과일 꼬치를 손에 넣었다.
한입 베어 물자 딱딱한 설탕 코팅이 와삭 부서지며 상큼한 과즙이 흘러나왔다.
“와, 엄청 맛있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그러게. 엄청 달달하다.”
“오라버니는 오렌지네요?”
“응. 에리타는 딸기네?”
나와 같은 꼬치를 손에 쥔 오라버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건 필요 없다고 해서 우리 둘 것만 사긴 했는데…….
어쩐지 신경이 쓰인 나는 슬쩍 내 꼬치를 내밀었다. 과일이 하나하나 꽂혀 있어서 내가 먹던 딸기는 다 먹은 후였다.
“아버지도 드셔 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그래.”
내 말에 잠시 멈칫한 아버지가 이내 허리를 숙여 과일을 베어 물었다.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떠세요?”
“맛있구나.”
그렇게 말하며 웃는 아버지의 미간이 평소랑 다르게 조금 찡그려진 것도 같은데. 금방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내가 잘못 본 건가 하던 순간 저번에 들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단 걸 안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게다가 이건 디저트처럼 적당히 단 것도 아니고 완전 설탕 덩어린데…….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축 처진 눈꼬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죄송해요……. 아버지가 단 거 안 좋아하시는 걸 깜빡했어요…….”
내 말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내 부드러이 웃으며 내 볼에 묻은 설탕 조각을 털어 냈다.
“네가 주는 거라면 다 좋다. 그러니 울상 짓지 말거라.”
“그래도…….”
“정말 괜찮대도.”
아버지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아는데…….
이 꼬치는 일단 내가 다 먹어 버려야겠어.
곰 인형에 설탕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며 빠르게 꼬치를 먹으며 다짐했다.
저택에 가면 페른이나 테르반을 붙잡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걸 알아내겠다고.
그래서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아리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
아슬란은 작디작은 제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무룩한 에리타의 모습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된 기억 중 하나였다. 아직도 눈앞에 선명해서 너무도 그리운 추억이 된.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미숙했던 시절. 그는 소대공이었으며 세르비아는 후작 영애였다.
“아슬란, 이것도 먹어 볼래요?”
“……괜찮습니다.”
“나만 먹기 미안해서 그래요. 응?”
아슬란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제 앞에 내밀어진 케이크 조각을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다디단 초콜릿 케이크. 단것을 질색하는 제게는 사약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었으면 가차 없이 내쳤겠지만 상대는 그가 유일하게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행이라면 그가 표정 관리에 아주 능숙했다는 점이다.
“맛있어요?”
어쩔 수 없이 조금 찌푸려지려던 미간을 애써 편 아슬란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슬란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이 세르비아였다.
“거짓말. 눈썹이 삐죽했거든요.”
당황한 아슬란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다시 한번 거짓말했다.
본래 아슬란을 알던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할 모습이었다.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흐응, 정말요?”
왜인지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처럼 들렸지만 아슬란은 꿋꿋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입 더 먹을 수 있겠네요?”
그제야 그는 사실을 실토했다. 실은 단것을 잘 먹지 못한다고.
“거 봐요. 진작 말해 줬으면 안 줬을 텐데.”
“……먹을 수 없는 건 아니라서.”
“정말이지……. 사람이 왜 그렇게 착해요. 싫으면 싫다고 말도 해야지.”
아슬란의 어깨에 톡 기댄 세르비아가 미안한 듯 작게 말했다.
본인이 추궁해 놓고 사실을 말하자 시무룩해진 것 역시 그녀였다.
세르비아는 그를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저뿐이라는 것을 알까. 하지만 굳이 제 본래 모습을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세르비아에게는 보여 줄 일이 없는 모습이니까.
승리 위에 군림하던 아슬란이 유일하게 패자가 되는 순간은 세르비아의 앞뿐이었다.
“그대가 주었지 않습니까.”
“그게 뭐예요!”
이내 맑은 웃음을 터뜨렸던 세르비아가 어여뻤던 그날.
눈꼬리가 축 처져 시무룩해진 에리타의 모습과 겹쳐 보인 그날의 기억에 홀로 과거를 추억했다.
행복했지만 떠올리면 한없이 슬펐던 그 시절을,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