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7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70화(170/218)
익숙한 침대에 걸터앉은 칼리온은 느릿하게 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그의 결백을 밝힌다며 사용인들 전부를 취조실로 데려간 탓에 황자궁 내부에는 적막이 흘렀다.
“…….”
굳이 감각을 퍼뜨려 보지 않더라도 지금 그의 침실 앞을 지키고 선 황실 기사단의 기척이 느껴졌다.
황위 계승권자인 황자의 침실을 철통같이 지키고 선 저들의 목적은 호위가 아닌 감시였다.
황후의 명을 받아 칼리온이 침실을 나설 수도, 그의 세력과 접촉할 수도 없게 하기 위한.
진상이 명백하게 밝혀질 때까지 자숙하는 게 칼리온을 위해서도 좋을 거라는 권유에 따른 조치였지만, 말이 좋아 권유이지 사실상 감금에 가까웠다.
본래 그가 사용하던 검은 별 같잖지도 않은 이유를 들먹여 가져갔고, 침실 내부에 있던 장식용 검도 모조리 치웠다.
구린 속내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참…… 한결같이 비열한 수법을 좋아하시는군.”
타이밍 좋게 기절한 척하더니 공교롭게도 독의 종류가 밝혀질 때 다시 나타나 충격받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던 황후를 떠올리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정녕 네, 네가…….
-제가 무엇을요.
-네가 폐하를……. 어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어떻게!
-황후 폐하, 고작 독의 이름이 밝혀졌을 뿐입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으니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시고…….
-아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칼리온, 미안하구나, 너도 당황했을 텐데……. 폐하께서 쓰러지셨다는 충격에……. 네가 그럴 리 없지. 그래, 확실히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텐데 내가 너무, 흐흑…….
명확한 증거도 없건만 의혹과 심증만으로 칼리온을 몰아가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울먹이며 칼리온을 옹호하던 황후.
하지만 옹호하는 척 뱉은 말은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포석을 깔아 둔 것에 불과했다.
그건 칼리온이 황후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도 얼굴에 서린 감정의 작은 조각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황제가 쓰러짐에 충격을 받아 횡설수설하며 눈물까지 머금었던 황후의 얼굴 깊은 곳에 깔린 감정은 희열이었다.
아주 깊은 곳에 서린 희미한 감정이라 다른 이들은 알아챌 수도 없는.
혼자 신파극을 찍는 꼴이 웃겼다. 특히 짜증이 나는 부분이라면 그런 황후의 저열한 감정을 아는 게 저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연기를 배워야 하나…….”
칼리온은 무감한 낯으로 실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어찌나 실감이 나게 연기를 하던지 다른 이들의 눈에는 눈앞에서 남편이 쓰러진 것에 충격을 받아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진 가여운 황후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에 기반한 소문이 황궁과 사교계에 파다함에도 말이다.
잠시 황후에 대해 생각하던 칼리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소한의 필요한 가구들로만 채워진 침실은 제가 십 년을 넘게 사용한 곳이지만 딱히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비단 침실뿐 아니라 황자궁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것이라고는 그의 집무실에 있었던 작은 상자와 가죽 노트 한 권뿐이었는데, 그것들은 기사단이 들이닥치기 전 바론을 통해 빼돌려 두었다.
그러니 이 황자궁에는 더 이상 그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바론도 이제 반역자 신세가 되겠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느긋한 감상이었다.
몇 시간 후면 황후는 제 신분을 이렇게 발표할 것이었다.
아비를 죽이려 한 아들. 제 범행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궁에 불을 지르고 도주한, 황제 독살 시도의 범인.
내일이면 자극적인 제목을 단 신문과 소문들이 구석구석 스미지 않는 곳이 없는 악취처럼 널리 퍼져 나갈 터였다.
그에 따라 칼리온의 직속 부하들 역시 그와 관련된 이들로 간주될 터.
‘잠깐 정도는 몰락이 머지않음을 모르는 아둔한 이의 헛짓거리를 참아 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오늘 황후의 얼굴에 희미하게 비쳤던 희열이 절망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뭐, 지금도 스스로가 걸었던 저주가 되돌아온 여파에 매시간 말라 가고 있겠지만.
곧 그 절망이 몇 배로 깊어지게 만들 것이었다.
칼리온이 감흥 없는 얼굴로 눈을 내리감았을 때였다.
탓-
넓게 퍼뜨린 그의 감각에 은밀한 움직임이 걸려들었다.
황후가 가짜 증인의 가짜 증언을 듣기 위해 사용인들을 모조리 끌고 간 덕에 그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황후의 사주를 받아 자신을 죽이기 위해 숨어든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든 다섯이든 그들이 낼 수 있는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암살자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기척을 지우는 것이었다.
발소리를 없애고 숨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한다. 존재감을 지우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암살자가 무서운 것은 기척 없이 다가와 목덜미에 칼을 내리꽂기 때문이니까.
그런 탓에 암살자의 검술 실력이 기사만큼 좋은 경우는 드물었다.
‘접근을 들킨 순간부터 암살자는 가장 큰 무기를 잃는 셈이지.’
뭐, 지금 오는 이들은 일 처리 솜씨가 대륙에서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암살 길드의 정예이니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테지만.
‘대충 십 분쯤이면 해결되겠군.’
칼리온은 황후의 계획을 역이용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대충 가늠해 보았다.
정확한 건 암살자들의 실력을 봐야 알겠지만 예상한 시간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을 터였다.
오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딱히 자랑이라고 꺼내는 말은 아니지만 그의 검술 스승은 아슬란 크로바하츠였고 대련 상대는 에일런 크로바하츠였다.
아슬란이 칼리온을 돕기로 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그에게 모든 경우에 대한 검술을 가르쳤다.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 기사를 상대하는 법, 다수를 상대하는 법, 그리고 암살자를 상대하는 법까지 전부.
칼리온은 성실한 제자였고 제법 재능이 있기도 했다.
‘스승님의 성에 차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크로바하츠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두 사람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뒤이어 떠오른 한 사람의 얼굴에 칼리온의 입매가 부드럽게 풀어졌을 때였다.
스윽-
침실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단순히 교대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 이 뒤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침실 주변에 무서울 정도의 고요와 정적이 내려앉았다.
다만 기사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찾아온 건 암살자와 정적뿐이 아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무색무취의 독도 함께였다.
밤손님에게 안타까운 사실이라면 칼리온이 그들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사전에 해독제를 먹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종류가 무엇이든 효과가 특출난 독일 터이니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칼리온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내성과 해독제의 효과를 더하면 최소 한두 시간은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후우…….”
칼리온은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부러 무방비하게 앉은 상태 그대로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아주 약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 때.
‘……지금!’
푹-
칼리온이 휘두른 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검은 복면을 쓴 이의 목에 박혀 들었다.
정확히는 제복 안감에 부착해 두었던 가느다란 칼날이.
“커억…….”
단번에 급소를 찔린 복면인은 작은 신음을 마지막으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숨은 끊긴 채였다.
칼리온은 쓰러진 복면인이 쥐고 있던 단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어깨를 회전시켜 허공의 한 곳으로 단도를 던졌다.
이 모든 게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푸욱-
공기의 저항도 받지 않는 건지 소리도 없이 거세게 날아간 단도는 던진 이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이루었다.
퍽-!
몇 초 후, 칼리온이 던진 단도에 이마를 꿰뚫린 복면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떨어진 육체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순간 눈 깜빡하는 사이에 같은 편 두 명을 잃어버린 암살자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어둠 속에 숨어 목표를 노리고 있던 조의 조장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그들의 목표가 이미 저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음을……, 아니, 진작부터 알아차리고 오히려 저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게다가 준비한 독은 전혀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고.
그 사실을 늦게 알아챈 대가는 두 부하의 죽음이었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이 임무에서 몇 명의 부하를 잃겠구나, 하는 그런.
일종의 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수많은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받지 말았어야 하는 의뢰였다.’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목표인 제국의 이 황자는 전쟁뿐 아니라 이러한 암살 시도에도 익숙한 이였다.
암살자를 대하는 능숙한 태도가 그것을 증명했다.
-어떡합니까, 조장.
그때 다른 곳에서 고요히 몸을 숨긴 다른 부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암살자는 그 존재를 들킨 순간부터 전력을 절반은 깎아 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상대가 미리 독을 풀어야 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격차는 절반 이상이 될 테고.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이 될 수 없었다.
임무를 실패한 순간 그들은 수장의 손에 죽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은 희박할지라도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
-……우선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한다.
-알겠습니다.
조장은 잠시의 망설임을 뒤로하고 그들이 행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들은 언제나처럼 임무를 완수하는 것일 테고, 실패한다면 전원 목숨을 잃을 터였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무리 거절하기 힘든 대상의 의뢰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그의 선택으로 인해 그뿐만 아니라 조원들의 목숨을 모조리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과거의 선택을 돌릴 수 없기에 짧았고, 조장은 날카롭게 벼린 단도를 조금 더 세게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