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7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75화(175/218)
“……황태자 즉위식이라니요?!”
사비에르 후작이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내 속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 황자의 황태자 즉위식이라니.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그때를 기다리는 건 너무 늦지 않을까?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까지 시일이 지체된다면 일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황태자가 정해진 후 그를 돌이키는 것은 지금보다 수 배는 어려울 겁니다……!”
사비에르 후작이 당황이 묻은 목소리로 의견을 토해 냈고, 옆에 앉은 재클린 후작도 말은 않지만 같은 의견인 듯싶었다.
발레리아 후작은 칼리온을 전적으로 믿는 모양인지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고, 아버지와 에일런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일단 더 들어 봐야 이해가 될 것 같은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칼리온이 입을 열었다.
“황후는 이달 내로 형님의 즉위식을 거행하려 할 겁니다.”
“그건 확신할 수가 없는 문제 아닙니까.”
“아니요, 확실합니다. 황후로서는 내 부상이 의심되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황제가 쓰러지고 내가 그 범인으로 몰렸으니 일 황자를 황태자로 세운다면 반응도 좋을 테고.”
“하지만 전하,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무모합니다.”
칼리온의 말에 반박하고 나선 건 재클린 후작이었다.
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여 재클린 후작의 발언을 허락했다.
“말해 보세요.”
“다른 건 전부 제쳐 둔다고 하더라도 전하의 무죄를 증명하는 일은 시일이 너무 늦어지면 곤란합니다. 제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지금이 아니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믿지 않는 제국민들도 많다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지금 알려진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 후에 전하의 무죄가 밝혀진다고 한들 지금 같은 큰 사건이 없는 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어려울 거예요.”
재클린 후작과 사비에르 후작이 정중하지만 머뭇거리지는 않는 태도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군신 관계이지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아직 황후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칼리온과 아버지가 황궁 회의에서 밝혔으니 사아의 존재는 알아도 황후가 사아와 함께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칼리온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후와 흑마법의 연관성을 잠시 숨기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었다.
거기에 최측근이라는 재클린 후작과 사비에르 후작도 포함되는 건지는 몰랐지만.
만약 황후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지금보다 더한 파장이 일면 일었지, 덜하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그제야 칼리온이 어째서 일 황자의 황태자 즉위식으로 날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태자 즉위식은 멀리서나마 제국민들도 관람이 가능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리기에는 그처럼 사람이 많이 모일 때가 가장 좋기는 하지.
나와 눈이 마주친 에일런이 내 생각이 맞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좀 미리 알려 주시지…….’
직접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던 에일런이 조금은 야속했다.
“아직 경들에게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때 칼리온이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눈빛을 본 나는 칼리온이 지금 흑마법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임을 눈치챘다.
“말씀하지 않으신 부분이라니요?”
“황궁 회의에 나왔던 내용을 기억합니까?”
“황궁 회의라 하심은…….”
잠시 기억을 되새기는 듯하던 사비에르 후작이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혹 흑마법을 이르심입니까.”
정답이었다.
“맞습니다. 내가 사아라는 흑마법사 단체에 대해 얘기했었죠. 본래 어제는 그 사실을 공표하는 날이었고.”
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왜 하필이면 어제 황후가 황제를 건드렸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지금껏 황제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던 황후였는데.”
“그게 무슨…….”
“시기가 너무 공교롭게 맞물린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황제가 쓰러진 탓에 묻힌 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대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발레리아 후작은 칼리온에게 미리 들어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는지 조금 참담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만큼 칼리온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거웠다.
흑마법에 손을 댄 자가 촌구석의 필부라 하여도 큰일일 터인데,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제국의 황후라니.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국의 평화마저 뒤흔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황후의 욕심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전하, 설마 황후 폐하께서…….”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재클린 후작의 단단하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비에르 후작도 충격받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흑마법사……. 쉬이 믿기 힘든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어, 어떻게…….”
“하면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사아라는 단체도 황후가 부리는 이들입니까?”
“정확히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죠.”
뒤이어 칼리온은 사아의 수장으로 예상되는 이가 황후궁의 시녀장인 델리아 란테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칼리온의 말이 끝나자 응접실 내부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전하.”
정적을 깬 건 발레리아 후작이었다.
“예, 후작.”
칼리온은 편하게 대하던 아까와 달리 공적인 호칭으로 대답했다.
“황후께서 흑마법사시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고도 확실한 증거가요.”
발레리아 후작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황후였으니. 어쭙잖은 증거를 들이밀었다가는 도리어 역풍을 맞을 터였다.
물론 그건 확실한 증거가 없을 때의 이야기고.
“생포한 사아의 흑마법사가 있습니다. 그들이 증인이 될 겁니다.”
앰버 길드가 흑마법사들에게 걸린 제약을 푸는 데에 성공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제약이 풀렸음에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실한 증거라고 하기에 모자랍니다.”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던 재클린 후작이 다시금 진지한 낯으로 돌아와 말했다.
분명 흑마법사의 증언은 쓸 만한 증거였다. 하지만 언어에 불과하기에 물질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황후와 레노센이 기를 쓰고 발뺌한다면 그를 뒤집을 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때 칼리온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는 설명을 부탁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참……. 그래서 물어본 거였구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발레리아 후작의 부드러운 눈빛과 재클린 후작과 사비에르 후작의 놀란 눈빛이 내게 닿았다.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아는 건 극소수였으니 지금껏 나를 평범한 대공녀로만 여겼을 이들로서는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는 그 시선에 화답하듯이 싱긋 웃었다.
마법은 내 주 분야였고, 흑마법사를 제외하면 흑마법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내 원인 모를 두통, 그걸 해결해 준 이가 대공녀입니다.”
칼리온이 먼저 운을 띄워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걸렸던 저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우선 전하의 원인 모를 두통은 병이 아니라 저주였어요. 물론 그 저주를 건 자는 황후고요.”
***
칼리온에게 걸려 있던 악독한 저주, 사아의 존재와 그들의 만행, 그리고 황후가 흑마법사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낼 방법.
이 부분들에 대한 내 설명이 끝난 후, 응접실에는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복잡한 내용은 최대한 쳐 내고 이해하기 쉽도록 짤막하게 설명했으니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조용한 건 아닐 터였다.
“허어……. 이것 참 다행인 일이긴 한데…….”
“어쨌든 증거 부분에 있어서는 대공녀가 힘써 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설명 후로 두 시간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의 초조함이 보이던 재클린 후작과 사비에르 후작의 얼굴이 지금은 밝았다.
필요한 이야기를 전부 나누고 헤어지기 전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말이 많지 않아 보이는 재클린 후작은 짤막한 눈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의 성격이 본래 그런 것을 알았기에 나도 살풋 웃으며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사교적으로 보이는 사비에르 후작은 아까 전의 감탄을 이어 나갔다.
“대공녀가 마법사……, 그것도 대마법사였다니. 허허, 이것 참, 아일리시 경의 최연소 기록이 깨졌군요.”
“아하하, 좋은 스승을 둔 덕분에요.”
내 겸양에 흘끗 시선이 스친 페른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 있었다.
“스승이 누구이기에 대공녀가 그리 말하는지 궁금하군요.”
“최연소 대마법사 칭호를 제 스승님으로부터 물려받았죠.”
나는 작게 웃으며 페른 쪽을 바라보았다.
“흠흠, 본래 스승이란 저보다 나은 제자를 키워 내야 하는 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주 성공한 인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하!”
웬일로 가만히 웃고만 있나 싶던 순간 페른이 슬그머니 이쪽으로 다가와 사비에르 후작의 앞에서 콧대를 세웠다.
“허허, 그것도 그렇군요! 아무래도 아일리시 경은 가르치는 일에도 재능이 있나 보오.”
“뭐, 대공녀께서 워낙에 영민하신 덕이지요.”
사비에르 후작과 잠시 잡담을 주고받는 페른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하여튼 쉬운 남자라니까…….’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전하.”
길지 않은 인사가 끝나자 재클린 후작과 사비에르 후작은 왔을 때와 같이 빠르게 저택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