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79)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79화(179/218)
“전하, 황후 폐하께서 내일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셨는데 어찌할까요?”
“……몸이 좋지 않아 아침은 무리일 것 같다고 전하도록.”
“예?”
테시스의 나직한 답에 시종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평소 황후의 제안을 거절하는 법이 없던 일 황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니 정말 몸이 좋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예, 예……. 그럼 황후 폐하께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시스는 고개를 조아리는 시종장에게서 시선을 뗐다.
“용건이 끝났으면 물러가라. 편하게 쉬고 싶으니 문 앞은 치워 놓고.”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황태자 전하.”
얍삽한 미소를 지은 시종장이 새로운 호칭으로 테시스를 칭한 후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하.”
테시스는 시종장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황태자. 분명 얼마 전까지는 그 역시 목표로 했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급하고도 달갑지 않은 호칭에 그저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의 세상은 이미 뒤바뀐 채였다.
커다란 창을 반쯤 연 테시스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러 감정이 엉망으로 뒤섞여 그조차도 당장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어머니…….’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죄책감과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 그리고 짙은 무력감이었다.
황후궁에서 제 어머니와 황후궁의 시녀장이 나눈 이야기를 엿들은 순간부터 그때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선황비, 흑마법, 세르비아, 칼리온…….
몇몇 단어들이 끊임없이 그의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리고 그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지금껏 그가 살아온 세상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럴 리가 없다고, 제가 잘못 들은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되뇌었다.
하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그의 내면에는 커다란 파도가 몰아쳤다.
이미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어머니의 궁에 드나들기 시작했던 검은 로브의 사람들…….’
분명 어릴 적의 기억이었지만 그들이 풍기던 불길한 기운만은 똑똑히 기억했다.
결국 그는 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스스로의 추악한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을 인정하고 나자 그제야 제 어머니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선대공비와 선황비, 그리고 칼리온…….’
괴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테시스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진실이 너무도 무거웠다.
그때였다.
“벌써 황태자 전하라 불리시는군요, 형님.”
지금 이곳에서 들릴 리가 없는,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테시스는 빠르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얼굴을 드러낸 칼리온이 서 있었다.
“칼리온…….”
테시스는 신음하듯이 이복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조금 전까지 생각하던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제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에게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 칼리온이 품속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사일런스 마법이 저장된 스크롤입니다.”
지이익-
간단하게 설명한 칼리온이 곧바로 종이를 찢자 스크롤은 희미한 빛을 낸 후 사라졌다.
테시스는 제 궁에 침입한 칼리온을 보았으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어떻게 들어왔느냐는 물음은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의 배다른 동생은 어릴 적부터 검술에 뛰어난 성취를 보였고, 지금은 소드 마스터에 근접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기사였으니.
황궁의 경비가 삼엄하다 한들 이미 내부 지리를 훤히 알고 있는 그에게는 조그만 걸림돌도 되지 않았을 테지.
“어쩐 일이라…….”
테시스의 질문 아닌 질문을 들은 칼리온은 말끝을 늘이며 느슨하게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제 앞에 서 있는 테시스를 바라보았다.
고작 하루 만에 테시스의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흔들리고 부서지던 게 어제부로 완벽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겠지만.
“형님이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한 답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황후는 알려 주지 않을 테고……, 형님도 그쪽에게 물을 생각은 없을 테니. 이 정도면 제 용건은 충분히 설명한 것 같군요.”
칼리온의 덤덤한 어조에는 비꼬는 기색도, 원망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를 낮잡아 칭하였으나 칼리온의 입장에서는 당연했으니 무엄하다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도 없었고.
이복동생은 분명히 그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지 않았다면 끝까지 테시스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터였다.
“진실…….”
칼리온이 말한 답을 듣고 싶기도,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듣는다면 그는 어느 쪽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는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할 테니까.
괴로운 고민에 잠긴 테시스를 바라보던 칼리온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선택은 형님이 하세요. 어느 쪽이 옳은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
“내가 오늘 찾아온 것은 이게 조금 더 쉬운 길인 탓도 있지만 황후의 죄를 몰랐던 형님까지 처단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진실을 택하지 않았을 때의 뒷감당은 홀로 하셔야 할 겁니다.”
담담한 말을 끝으로 칼리온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이복동생의 덤덤한 말과 모습에 테시스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칼리온이 한 말은 얼핏 냉정했으나 속을 들여다본다면 그저 자비롭기만 했다.
모친의 죄를 알지 못한 테시스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지.’
저 고요한 눈빛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날것의 비난을 받는 게 더 감내하기 쉽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친이 칼리온의 모친을 죽였다. 그로도 모자라 칼리온까지 죽이려 들었다.
‘너는 도대체…….’
테시스는 핏기를 잃은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만약 그였다면 저리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자의 아들에게 너는 몰랐으니 네 어미의 죄를 너에게까지 묻고 싶지 않다,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
테시스는 도저히 자신 있게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칼리온은 표정 관리도 잊고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테시스를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방금 그가 한 말은 테시스에게 진실과 황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추악하고도 역겨운 진실을 직시할 것인지, 아니면 제 모친의 편에 서서 눈과 귀를 막을 것인지.
이것으로 그가 배다른 형제에게 보일 수 있는 호의는 전부 보였다.
칼리온은 테시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테시스는 칼리온을 싫어했고 경계했으며 적으로 여겼으니까.
황궁에서 이복형제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칼리온은 테시스 역시 황후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테시스는 흑마법에 대한 걸 몰랐으니까.’
그는 제 어머니를 죽인 게 황후라는 사실 역시 몰랐다.
황후에게 할 복수를 테시스에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렇게 조금 길었던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침통한 얼굴의 테시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
아침을 먹던 도중이었다.
“황제가 깨어났다구요?”
“그래. 오늘 새벽에 눈을 떴다고 하더구나.”
아버지의 말에 나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쓰러진 후로 육 일이 지났다. 그러니 거진 일주일 만에 깨어난 셈이었다.
“깨어난 사실은 아직 비밀인 거죠?”
“대외적으로는. 아마 고위 귀족들은 오전 중으로 알게 될 것 같구나.”
고위 귀족들이 오전 중으로 알게 된다면 공식적으로 황제의 쾌차를 알리는 건 내일쯤이 되겠군.
‘황후는 황제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칼리온의 말이 정답이었네.’
나는 접시에 남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마저 찍어 입에 넣은 후 포크를 내려 두었다.
황제가 쓰러져 있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황후와 일 황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의 뒤를 팠다.
‘아주 축제라도 있는 분위기였지.’
요 근래 일 황자파 내부의 분위기는 아주 축제 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황제가 쓰러진 상태이니 겉으로는 침통한 얼굴들을 꾸며 냈지만 저들끼리는 벌써 테시스가 황제가 된 양 떠들어 댔다.
‘……테시스 루인 엘베르.’
내가 테시스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표면적인 것과 상단의 정보를 통해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내가 원작이라고 여겨 왔던 이야기 속에서 서브 남주의 포지션을 맡고 있긴 했지만 워낙에 주인공 시점에서만 서술되어 있었던 터라 그의 비중은 뭇 조연에 불과했다.
‘……아실라의 장례식 때 처음 봤었지.’
내가 칼리온을 처음 만난 날은 테시스를 처음 본 날이기도 했다.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지만.
그 후 두 번째로 테시스를 보게 된 건 몇 달 전에 있었던 데뷔탕트 무도회가 있었던 날이다.
‘칼리온이 테시스는 황후가 한 짓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했었는데.’
그 이유는 황후가 테시스를 그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기말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정말 테시스가 아무것도 모르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나는 그만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식후 입가심을 위해 준비된 티를 한 모금 마셨다.
“에리타, 오늘도 저쪽에 갈 거야?”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일런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느긋하게 턱을 괴며 물었다.
그가 말하는 저쪽은 고위 귀족들의 저택이 즐비한 이쪽 거리가 아닌, 부유한 상인과 하위 귀족들이 많이 사는 반대쪽 거리를 뜻했다.
그리고 지금 저쪽에 있는 내 저택에 거주하고 있는 건 칼리온과 그의 직속 수하들이었고.
“자꾸 놀리지 말라니까요…….”
“놀리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나도 오늘 그쪽에 가려고 하거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에일런을 지그시 바라보았지만 훤칠한 얼굴은 다정하기만 했다.
이상함을 찾지 못한 나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연구실에 종일 틀어박혀야 해서 못 가요. 페른이 제 아티팩트 하나를 부숴 먹었거든요.”
정확하게는 아티팩트에 새긴 마법진을 참고하겠다며 빌려 갔다가 실수로 내 아티팩트에 칼을 대는 바람에 못 쓰게 되어 버린 거지만.
결과만 두고 보자면 부숴 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그 탓에 칼리온을 만나러 가는 건 저녁이 되어서나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나만 가야겠네.”
그런 내 말을 들은 에일런이 가볍게 웃었다.
“……저 이따 저녁에는 저쪽에 갈 거예요.”
결국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