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1)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81화(181/218)
쿵- 쨍그랑-!
황후의 거친 손길에 던져진 저 먼 동대륙의 옥색 도자기가 산산이 조각났다.
“허억, 허억…….”
그로도 모자라 옆에 놓인 화려한 조각상까지 쥐어 든 황후가 팔을 휘두르려던 순간이었다.
탁-
분노로 붉어진 얼굴을 한 황후는 그 조각상이 어젯밤 멍한 눈빛의 남자가 사랑을 속삭인 후 건넸던 선물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황후 폐하, 이제 그만하시지요.”
그 조각상을 제외한 다른 도자기와 장식품이 모조리 박살 난 후 델리아가 다가와 그녀를 말렸다.
“그만? 지금 그만이라고 했어?!”
형형하게 눈을 치켜뜬 황후가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어젯밤만 해도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어 간다는 것에 취해 얼마나 황홀한 기분을 느꼈던가.
그런데 오늘 아침을 먹은 후 올라온 보고는 그 기분을 순식간에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칼리온이 누명을 썼다고?! 하, 내 율리스를 죽이려 들어 놓고는 누명이라니!”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황후는 누가 보아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평민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 하나 통제를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도대체 아버지는 뭘 하고 계시느냔 말이야!”
황후는 격분하며 이미 엉망이 된 테이블 위를 쓸어 버렸다.
황후가 칼리온에게 걸었던 저주는 더 지독한 것이 되어 돌아왔다.
잠이 들 때마다 끔찍한 악몽을 꾸는 바람에 탄력이 넘치던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눈두덩은 퀭해졌다. 나날이 몸이 망가져 가는 건 당연했다.
황후는 다시금 골을 타고 올라오는 두통과 덜덜 떨려 오는 손에 침대 옆으로 기듯이 달려가서는 서랍을 열고 약병을 꺼냈다.
“하으윽, 으…….”
그녀는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약병에서 새까만 덩어리 두 개를 꺼내 빠르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제야 떨리던 손이 멈추고 그녀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할 준비를 하던 두통이 멈추었다.
금지된 주술과 흑마법을 사용해 만들어 낸 약으로 저주의 효과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이런,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건가요?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강한 약을 준비하라 일러야겠네요.”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황후의 곁으로 다가온 델리아가 꾸며 낸 다정함을 담고 황후의 머리칼을 정돈했다.
“황후 폐하, 고작 미개한 평민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입니다. 그들은 우매하여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고 떠들어 대지요. 금방 사그라들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세요.”
“……그래. 그런 멍청한 것들도 보살피는 게 제국의 어미가 할 역할이지.”
“예, 그럼요.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황후 폐하를 지극히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곧 일 황자 전하가 황태자가 되실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세요.”
“율리스……. 아아, 하나뿐인 내 남편.”
델리아의 조곤조곤 달래는 목소리가 황제를 언급하자 황후의 분노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분노가 가라앉아 붉은 기가 가신 황후의 얼굴은 거칠고 수척했다.
화장품을 짙게 발랐다고 한들 움푹 들어간 눈가와 핼쑥해진 볼까지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그보다 요즘 제물 수급이 더디다고 들었는데.”
황후가 꺼낸 말에 델리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짜증이 묻은 얼굴로 눈을 감고 숨을 내쉬는 황후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일 황자를 황위에 앉히면 하루빨리 황후부터 제거해야겠어.’
오래전부터 그녀가 길들인 황후는 증오에 눈이 멀어 사용하기 좋은 장기말이었다.
보답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그녀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아주 손쉬웠다.
큰 권력을 가진 황후를 손에 쥔 덕에 사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사아의 최종 목표에 이르는 데 있어 황후의 존재는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황후보다는 어린 황제를 손에 쥐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극진히 사랑하던 어미를 잃고 비통함에 잠긴 젊은 황제의 정신을 손아귀에 넣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그 후에는 흑마법사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
미처 찾지 못한 형제들을 전부 모으고 다시는 누군가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그들의 신을 이 땅에 강림시킬 것이었다.
머지않은 미래를 떠올리니 황후의 징징거림도 기껍게 들렸다.
“수급이 더딘 것이 아니라 습격으로 망가진 키메라들을 다시 만들어 내느라 잠시 필요한 제물의 양이 많아졌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황제 폐하를 깨우는 데에도 많은 제물이 들어갔고요.”
“율리스……. 그래, 망할 칼리온이 내 남편을 죽이려 들었지. 그 어미나 아들이나 똑같이 교활하기 짝이 없어.”
“황후 폐하께 진상하는 제물들은 언제나 최상급으로 넉넉히 준비해 두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금세 표정을 고친 델리아가 나긋나긋하게 말하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황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델리아, 당장 율리스를 보러 가야겠어.”
비록 자의가 아닐지라도 저를 사랑하는 지금의 황제라면 하루빨리 테시스를 황태자로 세우자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테니까.
“그럼 치장을 새로 하고 드레스도 갈아입으셔야겠네요.”
엉망이 된 방을 떠나 드레스 룸으로 들어간 황후는 물결치는 치맛단을 따라 층층이 보석이 박힌 화려한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그런 뒤 무너진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틀어 올린 후 과한 듯한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까지 전부 착용했다.
우아한 걸음걸이로 궁을 나선 황후가 향한 곳은 요즘 황제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녀의 정원이었다.
황후의 정원은 여럿이었지만 그 정원은 새빨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그녀가 특히나 아끼는 곳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갑작스러운 황후의 등장에도 황제의 시종장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 해고당한 옛 시종장의 후임인 그는 레노센의 가신 중 하나인 스벤 자작이었다.
황후는 그 말을 듣고 화사한 미소를 띠며 익숙하게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 걸음의 끝에는 독에 당해 일주일을 쓰러져 있느라 조금 수척해졌지만 여전히 얼굴만은 번드르르한 황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율리스.”
사뿐사뿐 다가간 황후가 황제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어깨에 새하얀 손을 얹었다.
“아, 내 사랑 아이샤.”
그러자 조금 느리게 뒤로 돈 황제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소? 아무래도 그냥 내가 황후궁으로 갈 것을 그랬어.”
어딘가 공허하게 울리는 황제의 말은 그 내용이나 목소리나 전부 달큼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 말을 직접 들은 황후의 얼굴에는 행복을 듬뿍 담은 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황제의 모든 행동과 말, 눈빛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황후는 끝이 정해진 행복에 취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일 황자의 황태자 즉위식 날짜가 공표되었다.
***
온갖 소문이 제국을 휩쓰는 와중 테시스의 황태자 즉위식 날이 당장 내일로 다가왔다.
내일은 칼리온이 황궁을 떠난 지 꼬박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이쪽도 준비 끝났습니다.”
기사단을 맡은 재클린 후작과 마법 병단 쪽을 맡은 페른이 짤막한 보고와 함께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가장 좋은 엔딩은 황후와 사아가 순순히 그들의 죄에 대한 값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 쉽게 끝을 인정할 리 없지.’
제국 내에서 칼리온은 도망친 반역자였지만 우리의 적은 칼리온이 살아 있다는 것과 그가 저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쪽도 우리가 움직인다면 그 날짜가 내일이 되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것이었다.
‘사아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해서 정확한 전력 파악이 어려운 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흑마법사의 수는 확실히 줄여 두었으니까.
황태자 즉위가 결정된 순간부터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기에 바로 전날인 오늘 남은 건 점검뿐이었다.
‘내일이면 모든 게 끝이라니…….’
바닥으로 시선을 내린 나는 가만히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처음부터 내 목표는 칼리온이 무사히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그를 위한 오랜 준비가 끝을 맺는 날이었다.
‘기분이 영 이상하네. 실감이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아의 본거지에 잠입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안 들었는데.
말은 이렇게 했어도 나는 내가 왜 심란한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 가족과 칼리온에게만 넌지시 알린 후 혼자 준비했던 게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꼭 내 손으로 그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델리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 선의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 이.
실험체로 쓰이다가 스스로 심장을 찔렀던 나.
나를 구하려다 인간이 아닌 것들의 검에 몸을 꿰뚫린 내 아버지.
그 모든 참극을 견디지 못하고 홀로 목숨을 끊은 내 오라버니.
진명을 알 수 없는 그 추악한 흑마법사만은 내 손으로 끝장을 내야 했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성적인 이유 하나가 더 있었다.
‘몸을 옮겨 목숨을 부지하는 주술…….’
흑마법 중에서도 최고위에 속하는 주술로, 수많은 제물을 바쳐 여분의 목숨을 만들어 두는 것.
델리아가 그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델리아의 목숨을 끊는 건 내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