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85화(185/218)
찬란한 빛이 시야를 뒤덮은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길다고 해 봐야 눈을 두어 번 깜빡였을 시간이 지난 후.
“으, 으아악! 악마다……!”
귀족 중 누군가가 체면도 잊고 경망스럽게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모인 이들 중 그 누구도 소리를 지르며 나동그라진 그 귀족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세, 세상에……!”
“저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귀족들은 저마다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외궁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평민들에게도 황후를 감싼 검은 아지랑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저 잉크 같은 검은색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불길함을 끌어모은 듯한, 질척하고도 음산한 검은색이었다.
그 새까만 아지랑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황후의 몸을 휘감고 그 주위를 기어 다녔다.
거기다 황후의 피부가 점차 거멓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혈관이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눈이 흐릿한 사람이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사악하고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한 흑마법의 흔적이었다.
“아니야! 나, 나는 아니란 말이다! 칼리온 저 악독한 놈이 무슨 수를 쓴 게 틀림없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고 화들짝 놀란 황후가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저어 댔으나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이 빛은 모두에게 내려앉은 겁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썼다면 대신관이 눈치채지 않았겠습니까.”
“예, 분명히 저도 잠시 깃들었다 간 태양신의 힘을 느꼈습니다. 신성력이 아닌 다른 기운은 황자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순수한 마력이겠지요.”
대신관마저 긍정한 이상 황후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아무 데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가장 믿는 그녀의 시녀장은 보이지 않았고, 흑마법에 정신을 잠식당한 황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석상처럼 서 있기만 했다.
언제나 황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던 아버지, 레노센 공작은 차마 그녀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다……!”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발악하며 고개를 휙휙 돌려 대던 황후의 시선이 칼리온의 뒤에 선 테시스에게 닿았다.
그녀의 자랑스러운 아들. 어미를 지극히도 사랑하는 착한 아들.
“황자, 황태자……, 황태자는 이 어미를 믿지요? 이게 다 저 악독한 놈의 계략입니다, 테시스. 이 어미를 수렁에 빠뜨리려는 술수예요……! 아아, 우리 아드님, 어서 이 어미에게로 오세요. 황태자, 그대가 나를 살려 주어야지요!”
광기가 서린 눈을 치켜뜬 황후가 휘적거리며 테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중얼거렸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눈물을 흘렸다가 다시 버럭,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광인의 것이었다.
“어머니…….”
“테시스! 거기서 무얼 하는 겁니까! 당장 그 찢어 죽일 놈에게서 떨어져 이 어미를 구해 달라니까요!”
빈말로도 제정신이라 하기 어려운 모친의 행태에 테시스의 낯에 참담함이 어렸다.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그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끝내 테시스는 어미가 뻗은 손을 외면했다.
당장에라도 어찌 그리하셨냐고, 내가 그리도 미덥지 못해서, 그래서 저런 것의 힘을 빌려서라도 나를 황제로 만들고자 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테시스는 그의 어머니가 흑마법에 손을 댄 이유가 그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비참했다. 그의 어머니가 추락하는 이유에 그가 없어서.
“테시스! 네가 어찌 이 어미를 외면한단 말이냐! 네가 어찌-! 아버님, 무어라 말을 좀 해 보세요! 아버님!”
황후의 곱던 얼굴과 몸은 새까맣게 물든 혈관으로 이미 흉측하게 변한 채였다.
그런 몰골로 몸을 뒤틀어 대며 소리치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이 시간부로 황후, 아이샤 레노센을 제국의 공적으로 간주합니다. 황후는 금지된 흑마법을 다루고 흑마법사들과 내통한 죄로 신성 재판에 회부될 것이며, 재판이 있을 때까지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도록 지하 감옥에 가둬질 것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황후다! 황후란 말이다!”
“또한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색출해 낼 겁니다. 지금 당장 빠져나갔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칼리온의 힘 있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리온의 명령에 이어 대신관의 무언의 동의를 얻은 성기사단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을 때였다.
“으, 으아악!”
“이게 뭐야!”
갑작스럽게 땅에서 솟구치고 공중에서 튀어나온 괴생물체들에 비명이 울렸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백은 되어 보이는 끔찍한 외형의 괴생물체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사람들을 보호해라-! 괴물 퇴치보다 인명 보호를 우선하도록!”
빠르게 뛰쳐나간 재클린 후작이 소리치자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모를 무장한 기사들이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마법사들은 대규모 실드를 펼치고 이동 마법을 외워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데에 주력했고, 기사들은 사람을 공격하는 괴생물체들을 견제하는 데에 집중했다.
아군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무리해 괴생물체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
“오늘 우리는 인간들을 보호하고 섭리를 거스른 것들을 모조리 죽여 없앱니다. 신중을 기하는 건 좋지만 망설이지는 마십시오!”
높은 건물 위에서 소리친 테인이 곧바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뛰어내린 잿빛 머리칼을 한 남자의 모습은 땅에 닿기 전에 커다란 회색 늑대로 변했다.
아우우우-
멀리 울려 퍼지는 하울링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이상하게 생긴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으하하!”
“이봐, 인간들을 보호하라고 하셨잖아!”
“나는 보호 전문이 아니라서!”
테인이 아수라장으로 뛰어들고, 수많은 수인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부분 수화를 한 상태로 무기를 휘둘러 싸우는 이들도 있었고, 테인과 같이 완전 수화를 해 괴생물체들을 물어 죽이는 이들도 있었다.
에리타가 맺어 준 칼리온의 새로운 아군, 수인족이었다.
바델 숲의 수인 중 가장 정예만을 추린 삼백의 수인들은 괴생물체들을 상대하기에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재클린 후작이 이끄는 기사단과 수인족이 외궁에서 먼 쪽을 맡았다면 수백에 달하는 귀족들의 보호를 맡은 건 대공가의 기사단과 칼리온의 기사단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알았나!”
“예, 단장님!”
“좋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군, 대공 전하께 바칠 목을 베러 가자!”
호탕한 목소리의 기사단장, 가힐이 이끄는 대공가의 기사단은 가문의 상징이 새겨진 갑옷을 두르고 괴생물체들에게 맞섰다.
칼리온의 기사단은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추어 은밀하게 접근했다.
격렬한 전투의 시작이었다.
***
생체 병기들이 나타난 후, 페른과 나는 미리 상의했던 대로 움직였다.
내 신호와 함께 곳곳에서 밝게 빛나는 하얀 빛, 즉 흑마법사들은 아버지의 기사들이 맡았으므로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건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데. 그때 절반 이상을 없앴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많을 수가 있지?’
무슨 수를 썼는지 생체 병기의 수는 예상했던 것의 몇 배였다.
‘……쪼갰네.’
그리고 몇 초 후 나는 생체 병기의 수가 내 생각보다 많은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수는 몇 배나 많았지만 하나하나의 무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강하지 않다고 해도 금지된 술법으로 만들어진 병기였으니 우리가 대비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측의 전력을 따져 보았을 때, 이 상황은 우리의 예상 범주 안에 속했다.
“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사, 살려 줘! 살려 줘……!”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들은 아무런 전조 없이 땅에서 솟거나 허공을 찢고 나타났다.
그렇기에 대규모 실드를 발동시키기 전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 그것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을 맡은 건 나였다.
나는 미리 외워 두었던 마법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술식을 맺었다.
“후우…….”
내가 손짓하자 빠르게 쏘아져 나간 얼음 화살들이 정확히 내가 목표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파바박- 팍-!
사람들 사이를 헤집던 괴물들의 몸에 화살이 꽂힌 순간, 커다란 몸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생체 병기는 기사들에 의해 완전히 목숨이 끊겼다.
“페른, 그쪽도 다 됐어요?!”
“예, 준비됐습니다!”
페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구슬 모양의 아티팩트를 귀족들을 모아 둔 곳 위로 던졌다.
파앗-
내가 던진 구슬은 공중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푸르고 투명한 방어 막이 대신 채웠다.
“거기 안에 가만히 계세요! 괜히 움직이다가 빠져나오면 다시 못 넣어 드려요!”
마법을 이용해 공중에 뜬 나는 귀족들을 스쳐 지나가며 강하게 경고했다.
“대공녀가 마법을……?”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뒤에서 저들이 그렇게 찾아 대던 체통도 버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게 들렸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페른이 저쪽을 맡는 사이 평민들에게도 보호막을 씌우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