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8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186화(186/218)
“이 막이 사라지기 전에는 그 안에서 나오지 마세요! 절대 나오면 안 됩니다, 아셨죠?”
마력을 담은 내 목소리가 넓게 퍼졌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절대 나가지 않겠습니다!”
수천 명의 목소리가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 감싸는 보호막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내가 마르지 않는 마력을 타고났다고 해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여분으로 준비해 둔 것까지 다 썼네…….’
물론 내가 할 일은 보호진을 만드는 것 외에도 더 있었기에 지금 저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는 건 내 마력이 아니라 아까 귀족들의 머리 위로 던졌던 구슬형 아티팩트였다.
“재클린 후작님, 낙오된 사람들까지 제가 볼 수가 없어서 그쪽은 따로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대공녀.”
사람들을 보호하던 와중에도 거두지 않았던 내 마력이 강하게 자신이 찾아낸 존재의 위치를 알렸다.
“……델리아.”
그 마력의 끝에서 보인 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 초조한지 직접 모습을 드러낸 델리아였다.
나는 당장 뛰쳐나가고픈 마음을 꾹 참고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와 에일런, 그리고 칼리온은 가장 압도적인 실력으로 생체 괴물들을 베어 내고 있었다.
목숨이 끊어진 실험체들은 사체를 남기지 않았다. 녹아내려 새까맣고 질척한 무언가의 흔적만을 남겼다.
‘남은 건 반 정도…….’
예상을 빗나가 백을 훌쩍 넘어 이백에 가까웠던 생체 괴물들도 이제는 그 수가 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흑마법사의 위치를 알리는 빛은 고작해야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황제와 테시스, 그리고 황후는 진작 빼돌렸다.
예뻐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인질로 사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가야 해.’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나뿐인 지금.
나를 구하려다 죽은 내 가족. 스스로 심장을 찔렀던 나. 그리고 멸망해버린 세계.
겪었으되 없었던 일이 된 과거의 원한을 갚을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페른, 이거 받아요.”
나는 빠르게 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적절한 곳에 실드를 펼쳐 아군을 보호하고 원거리 공격을 가하고 있는 페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 다섯 개의 푸른 보석을 쥐여 주었다.
“예? 이게 뭔데요?”
“최상급 마력석을 가공한 거예요.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마력이 모자라면 써요. 알았죠?”
지금 귀족들 전체를 보호하고 있는 실드는 내가 만든 아티팩트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었기에 내가 자리를 떠도 상관이 없었다.
우리의 전력은 약하지 않았고, 내가 델리아를 빠르게 처리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아니, 어디를 가신다는……!”
나는 페른의 말에 “대장 잡으러요!”라는 간단한 답을 남기고 곧장 이동 마법을 썼다.
***
델리아를 본 순간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몇 개인지도 모를 칼에 관통당했던 아버지의 최후가 눈앞을 스쳤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그 과거가 두렵고 끔찍했기에 나는 홀로 델리아와 대치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 것들을 다 제쳐 두고라도 델리아를 상대하는 건 내가 되어야 했지만.
“……델리아 란테.”
내 부름에 델리아의 서늘한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본래 특색 없이 평범하던 생김새가 분노와 광기에 젖어 스산하게 보였다.
“너는……!”
이내 나를 알아본 모양인지 그 얼굴이 야차같이 일그러졌다.
나는 일부러 생긋 웃었다.
“우리 구면이죠?”
“너…….”
“에리타 크로바하츠. 내 이름이에요. 그쪽이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단 날려 먹은 거랑 이 황자 전하의 저주 푼 거, 그거 다 내가 한 거예요.”
살면서 내 성격이 딱히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델리아의 신경 줄을 닥닥 긁어 버리고 싶었다.
유치한 장난질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델리아에게 선사할 진짜 복수는 따로 있으니까.
빈정거림에 가까운 내 말을 들은 델리아가 눈을 희번덕 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어머, 몰랐나 보네요. 세상에, 아직도 모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런 미친년이……!”
델리아에게서 듣는 미친년이라는 소리는 제법 상쾌했다.
그녀는 내 인생을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으니까.
스스로가 계획한 모든 일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델리아가 내게 나타내는 분노는 내 복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미친년이라……. 당신 입에서 나오기에 그보다 웃긴 소리가 없는데.”
“……너는 도대체 왜 끼어든 거지? 대체 왜!”
왜 끼어들었냐니.
이 일은 처음부터 나와 연관된 것이었다.
“당신이 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놨잖아.”
“……뭐라?”
“당신과 황후의 이기심으로 인해 내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었고 내 오라버니는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어. 나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랐지.”
델리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뭐, 이건 내 개인적인 원한이야. 내가 직접 당신을 마무리 짓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나 내가 델리아의 앞에 선 게 오로지 내 개인적인 원한 때문인 건 아니었다.
“그동안 당신의 손에 죽어 나간 사람들의 숫자를 기억해?”
“내가 그딴 걸 왜 알아야 하지?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거늘!”
내 말에 델리아가 표독스러운 어조로 일갈했다.
델리아가 내 말을 듣고 아, 내 잘못이구나, 라는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반응은 생각보다 더 뻔뻔하고 경멸스러웠다.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고작 버러지 같은 평민들 몇 죽어 나가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고작 몇……. 장난해? 당신 때문에 스러진 목숨이 최소 오만 명이야. 그중에 절반 이상은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었어!”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살아 있어도 한낱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을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내가 친히 대의를 위한 디딤돌로 써 준 거란 말이다. 그들이 내게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거늘!”
델리아는 제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턱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이와 이가 부딪혀 내는 까드득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델리아의 말은 전부 미친 말뿐이었다. 듣고 있으면 내 머리마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은 미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래, 당신은 그런 인간이었지.”
“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는 악마. ……그게 당신이야.”
“하! 입바른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그딴 말을 지껄여 대는 걸 보니 네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고작 그따위 일로 내 일을 망치려 들었다니 믿을 수 없이 멍청하구나!”
고작 그따위 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짓밟아 놓은 게 고작 그따위 일이라고.
“하하……. 정말이지 변한 게 없네.”
나는 작게 실소하며 타오르려는 분노의 불씨를 짓밟아 껐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저 모습에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당신은 죗값을 치러야 해.’
하지만 그 분노를 풀고자 쓸데없는 데 힘을 빼는 어리석은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이긴 했지만 델리아는 강한 상대였고, 최대한 빠르게 끝내려면 집중해서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내가 신은 아니지만, 당신에게 죗값을 물을 자격은 충분히 되겠지. 안 그래?”
작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나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민 후 살짝 주먹을 쥐었다.
오늘을 위해서 내가 몇 날 며칠을 투자해 개량한 마법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쓸 일은 없겠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쿠구궁-
땅을 뚫고 올라온 새하얀 빛줄기들이 높게 치솟아 델리아의 주위를 감쌌다.
촘촘하게 올라가다가 위에서 둥글게 마무리 지어진 그것은 감옥의 철창……, 아니, 얇고 긴 새장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화아악-
그리고 한 번 더 솟아오른 새하얀 막이 나와 델리아를 감싸 주변과 분리했다.
이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저곳과 우리가 있는 이곳은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었다.
“에리타……!”
바깥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 혼자 나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그런 내 모습을 본 델리아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을 상대하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해.”
읊조리듯 중얼거린 후 나는 느슨하게 쥐었던 주먹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키이잉-
청아한 소리를 낸 빛줄기들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무슨……!”
빛줄기 안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자 델리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쉰 명은 들어갈 만큼 여유롭던 공간이 점차 서른 명, 스무 명, 열 명도 못 설 정도로 줄어들었다.
“나라고 다짜고짜 그쪽을 잡으러 온 게 아니거든요.”
“비겁한 짓거리를 하는구나……!”
그제야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자각한 모양인지 델리아가 이를 갈며 쥐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내리꽂았다.
순식간에 땅이 검게 물들었다.
그워어- 우어어- 끼에에엑-!
마치 지옥문이 열린 것처럼 검게 물든 땅에서 흉측한 괴물들이 기어 올라왔다.
생체 실험으로 만들어진 병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흑마법으로 불러낸 괴물들이었다.
쿵-! 쿵-!
그 괴물들은 제 몸이 타들어 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델리아를 가둔 빛줄기들에 몸을 부딪쳐 댔다.
“……열심히 발악해 보세요.”
그렇게 빛줄기들을 쾅쾅 치받는 시끄러운 소리가 몇십 번 울렸을까.
공으로 사아의 수장이 된 건 아닌지 기어이 검은 손 하나가 빛줄기 사이를 비집고 나와 내 목을 향해 쏘아져 왔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내게 닿지 못하고 내 마법에 으스러졌지만, 델리아의 얼굴에는 희망이 생겼다.
델리아는 내가 왜 틈새를 허용했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수백의 거무스름한 것들을 불러냈다.
스스로가 갇힌 공간 안에서 힘을 사용하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빨리 지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사람한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내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악당은, 내 생각만큼 크고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탐욕에 젖어 아무런 감흥 없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죽이는 악인이었을 뿐이었다.
발악하던 황후를 보던 때와 비슷한 감상이었다.
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날아오는 거무스름한 형체들을 응시했다.
“하하!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델리아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끼에에에엑-!
검은 덩어리들은 내 몸에 닿지 못하고 무언가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그러고는 괴로운 듯 몸을 뒤틀다가 한 줌의 재가 되지도 못한 채 소멸했다.
내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투명한 막은 손목에 찬 팔찌의 힘이었다.
“이익! 네까짓 게……!”
그 방어 막은 내게만 보였기에 델리아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분에 젖어 더더욱 힘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땅에서는 한 마리의 검은 형체도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