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95)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7화(195/218)
폐황후가 저지른 짓의 대가는 사형밖에 없었다.
황후로 인해 죽은 이들의 숫자가 수만이었다. 황후는 죽어서도 그 목숨값을 치르지 못하리라.
“다른 귀족들의 처벌은 거의 다 정해졌다고 들었어요.”
“예. 레노센 공작을 필두로 선황비와 선대공비 시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은 사형에 처해질 겁니다. 이 부분에서는 스승님이 워낙 강경하셔서 다른 귀족들이 토를 달지 못하더군요.”
칼리온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아실라 황비와 내 엄마, 세르비아.
십 년도 더 된 일에 대한 죗값이 이제야 치러진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그 죗값을 치르게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내게는 두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어쩐지 두 사람이 그리웠다.
그의 어머니를 깊게 사랑하던 칼리온은 나보다 더하겠지.
나는 그의 손을 맞잡은 내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 힘을 느낀 듯이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흘린 칼리온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다른 일 황자파 귀족들은 각자의 죄질에 따른 처벌을 받을 예정입니다. 그들 중에도 무고한 이들이 있고, 죄질이 가벼운 자들도 있으니까요.”
황후를 따르던 귀족들, 다시 말해 테시스를 지지하던 이들은 전부 심문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미 파악하고 있던 그들의 만행과 심문 과정에서 새로이 드러난 죄에 대한 죗값.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건 얼추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마 적어도 한두 달은 더 바쁠 게 뻔했다.
게다가 황태자 자리에 오르는 일도 있었으니.
그러나 내가 그에게 황태자 즉위식에 대한 것을 묻는 것보다 폐황후가 갇힌 지하 옥사 앞에 도착하는 게 더 빨랐다.
일반적인 감옥과 달리 아이샤 레노센이 갇힌 지하 감옥은 지난 백 년간 갇힌 이가 없던 곳이었다.
현대 사회, 내 전생의 사회보다 법이 적용되는 범위가 더 작았으므로 이 지하 감옥에 갇히는 건 제국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범죄자라는 뜻도 되었다.
금지된 흑마법을 익힌 것으로도 모자라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폐황후는 이 감옥 외에 갈 곳이 없었다.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칼리온의 걱정 어린 물음에 나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못내 걱정이 되는지 내 손을 쉬이 놓지 못하던 칼리온은 결국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귓가로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서 보이는 건 아마 그대가 알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정신도 온전치 않고요.”
마지막으로 본 폐황후의 모습은 온몸에 새카만 기운을 두르고 핏줄을 전부 검게 물들인,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 후로도 벌써 열흘에 달하는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은 더 망가져 있겠지.
“……괜찮아요. 제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거니까. 예상하지 못한 바도 아니구요.”
나는 나를 끌어안은 칼리온의 허리를 팔로 감고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본래 나는 폐황후를 볼 생각이 없었다.
델리아의 영혼을 소멸시킴으로써 내 몫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
폐황후는 아버지와 칼리온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생각을 바꾸어 재판을 하루 앞둔 오늘 폐황후를 찾아온 건, 아버지의 결정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폐황후를 볼 생각이 없다고 하셨지.’
며칠 전 내게 자신의 뜻을 전한 아버지는 정말로 폐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어째서 그러시냐 묻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내가 직접 이곳에 오는 것을 택했다.
“……저 이제 다녀올게요, 전하.”
칼리온의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푼 나는 살짝 고개를 틀어 그의 날 선 턱에 입을 맞추고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에리타.”
“이건 기다려 주시는 보답.”
작게 웃으며 장난스레 속삭이자 잠시 멍한 얼굴을 했던 칼리온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부드러운 입술을 꾹 눌렀다가 뗐다.
“……나와서 제대로 해 줘요. 보답이라기에는 너무 짧아서.”
놀려 먹으려다가 되레 칼리온의 낮은 속삭임을 들은 나만 얼굴이 시뻘게졌다.
‘완전 반칙이야…….’
다른 생각은 머릿속에서 다 날려 버릴 만큼 강력한 칼리온의 반칙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상처 납니다.”
그마저도 나직이 웃으며 내 입술을 매만지는 칼리온에 의해 힘을 풀어야 했지만.
그런 칼리온의 반칙이 한 번 더 이어졌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는 날의 저는 인내심이 상당히 짧은 편이거든요.”
“……그럴게요.”
장난스러운 듯 다정한 그의 말에 나는 붉어진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느린 걸음으로 칼리온이 미리 손을 써 두어 아무도 없는 지하 감옥 입구에 들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리겠습니다.”
“다녀올게요.”
끼이익- 탁!
옅은 웃음이 묻은 칼리온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육중한 문이 닫혔다.
수백 년 전, 흉악한 범죄자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 감옥은 깊은 땅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내 낮은 구두가 계단을 디딜 때마다 저 지하 밑까지 소리가 울렸다.
‘……어마어마한 마법진이네.’
지하 감옥에 대한 내 감상은 그랬다.
제국 역사상 최고라 불렸던 대마법사가 설계하고 그 제자들과 함께 걸어 둔 마법은 지금에 와서도 아주 견고히 작동하고 있었다.
저 아래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그를 증명했다.
그렇게 오 분쯤 계단을 내려갔을까.
“들어가십시오.”
작은 문 앞을 지키고 선 검은 투구를 쓴 기사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고마워요.”
나는 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거목 같은 느낌의 마력이 나를 훅 덮치기를 잠시.
“……공허네.”
조금 전 내려오며 봤던 것과는 이질적인 공간이 보였다.
아까 느꼈던 강한 마력의 응집은 이 공간 때문이었구나.
이건 텔레포트 마법과 유사한 결이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술식과 복잡한 방어진과 결계가 합쳐진 마법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한중간에는 사각형 감옥이 보였다.
그 안에는 백색으로 세어 버린 머리칼에 온몸에 검은 실선이 가득한 수척한 여자 하나가 쓰러지듯 앉아 있었다.
폐황후, 아이샤 레노센이었다.
저벅, 저벅.
나는 느릿하게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감옥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시선이 마주치자 아무런 생기도 없이 멍하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 반응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폐황후가 흑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내는 데에 내가 참여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을 테니.
“이렇게 둘이 보는 건 처음이네요. 어떻게, 그 안은 편안하신가요?”
나는 생긋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정말로 폐황후의 편의가 궁금해 묻는 건 아니었다. 속 좀 뒤집어지라고 하는 소리지.
“편안? 하! 네가, 지금 편, 안이라고 했어?”
뚝뚝 끊기는 폐황후의 물음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악귀 같았다.
“하긴. 당신 같은 사람은 그 어디서도 편안하면 안 되지. 잘됐네요, 편안하지를 못해서.”
“……왜, 찾아온 것이냐. 나를 조롱하러, 왔나? 감히, 이 나를?”
저 꼴이 된 지금에도 폐황후의 그 드높은 자존감은 꺾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것밖에 붙잡을 게 없어 놓지 못하는 것이거나.
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그런 건 아니에요. 나보다 못한 자를 조롱하는 취미는 없어서.”
“……진작 죽, 였어야 했다. 너를, 흡, 진작 죽였어야 했어!”
폐황후는 서슬 퍼런 눈을 번뜩이더니 쇳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내 말이 어지간히도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이런, 안타까워라.”
나는 성의 없이 추임새를 넣고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폐황후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온 건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
“근데 안 물어보려고.”
원래는 내 엄마, 세르비아를 죽인 이유를 묻고자 했다.
친구였던 선황비와 내 엄마를 전부 죽음으로 몰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는지. 정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지.
그러나 폐황후의 꼴을 보니 이제는 왜 아버지가 그녀를 보지 않겠다고 했는지 조금쯤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제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이에게 내가 당신 때문에 고통스러웠노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그 사람을 만족스러워하게 해 주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거겠지.
내가 바라는 건 폐황후가 죽기 전까지 최악의 고통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짓의 대가를 조금이나마 돌려받는 거니까.
“대신 당신이 알아야 하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요.”
말을 마친 나는 손을 들어 폐황후에게로 뻗고는 짤막한 단어를 읊조렸다. 그러자 내 손에서 눈이 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폐황후를 감싼 그 빛은 몇 초간 지속되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고작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새하얗게 질린 폐황후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