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96)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8화(196/218)
나는 느릿하게 마력을 거두었다.
“……허억!”
누가 목을 조르기라도 한 듯이 숨을 멈추고 있던 폐황후가 그제야 터뜨리듯 숨을 내쉬었다.
“으으, 아, 하악, 헉! 쿨럭……, 켁!”
이미 망가져 버린 그녀의 몸은 갑자기 들어온 공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폐황후가 괴로운 듯이 몸을 마구 비틀어 댔다.
나는 그런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지 않았고, 그 거칠던 숨이 진정된 건 삼 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다 봤어요? 당신의 미래가 될 모습인데.”
숨이 막혔던 것의 반작용으로 눈물이 고인 폐황후의 공포에 찬 눈이 나를 향했다.
내가 조금 전 폐황후에게 보여 준 건, 제 영혼을 대가로 강대한 힘을 탐한 흑마법사의 말로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귀 같은 악마들에게 영혼을 갉아 먹히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소멸하는 것.
“나, 나는 내 영혼을 바친 적이 없, 없다!”
폐황후가 더듬더듬 소리쳤다.
……아, 그건 나도 알지.
“알아요. 이 꼴 당하기 싫어서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 댔던 거잖아.”
내 말에 폐황후의 얼굴에 안도가 서렸다.
그렇게 더한 명예와 권력, 힘을 갈망하며 죄 없는 이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 밀어 넣고는, 정작 자신은 그저 편안하고 안온한 죽음을 원하고 있다니.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내 얼굴에 삐뚜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뭐, 이론상으로는 당신의 말이 맞아요. 어디까지나 이론에 그쳐서 그렇지.”
“……뭐, 라?”
그 말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폐황후의 성대에서 턱턱 끊어지는 물음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안심이 떠올랐던 얼굴 위에 다시 뚜렷한 불안이 우위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생긋 웃으며 황후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바쳐진 영혼이 당신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당신이 힘을 쓸 수 있었는지.”
“그게, 무슨…….”
“지금 망가진 그쪽 몸이 증명하잖아요. 이미 흑마법에 물들었다고.”
“……나를 겁, 주려 헛소리를, 켁, 지껄여 대는구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웃기네…….”
그저 자신의 말로를 알려 주는 것뿐인데 겁을 주려 한다 여기다니. 생각이 너무 소박하잖아.
끝없는 악몽 속에 가둔 것도 아니고 실재하지 않는 고통을 매분 매초 느끼게 하지도 않았는데.
“겁은 나나 봐요? 편안하게 죽지 못할 수도 있다니까.”
폐황후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시익, 시익 거칠게 새는 숨소리가 그녀의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는 걸 나타냈다.
나는 생긋 웃으며 나긋하게 폐황후가 모르고 있었을 사실을 하나 더 말해 주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이 황자 전하께 걸었던 저주, 내가 풀었다는 거.”
그 속삭임에 폐황후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놀람은 이내 끔찍하리만치 추악한 분노로 변했다.
“네가 모든, 것을 망친, 주범이로구나!”
폐황후는 악다구니를 쓰며 기어 오다시피 해 창살을 부여잡았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아뇨. 모든 걸 망친 건 당신의 과한 욕심과 자리를 잘못 찾은 분노예요.”
“하!”
“당신의 분노는 황제 폐하를 향해야 했어요. 당신의 감정을 받아 주지 않은 것도 황제고, 원치도 않은 이를 겁탈한 것도 황제였으니까.”
“너, 이……!”
“아, 걱정하지 말아요. 당연히 황제도 정당한 죗값을 치를 거니까.”
내 말에 폐황후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본래 자신이 옳다고 세뇌하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스스로가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고작 당신 하나가 그리 생각한다고 진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너……!”
“당신은 금지된 흑마법에 손을 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거예요.”
폐황후는 분노를 참기 어려운지 실핏줄이 터져 흉흉한 눈으로 나를 찢어 죽이기라도 할 듯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속이 시원해졌다.
저렇게 나를 증오하는 모습을 보며 속이 시원해진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나는 정말로 후련했다.
폐황후가 죽어 가면서도 제 죽음을 억울해하고 나를 원망했으면 좋겠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의 마음에는 끝의 끝까지 평온이 없을 테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폐황후에게 그녀가 모를 사실 하나를 더 알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도 며칠 전에 제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셨어요.”
“……뭐라?”
감옥에 갇힌 이에게 바깥 상황이 어떤지 알려 주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계속해서 불안해하라고.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항상 마음 졸이라고.
그러나 폐황후의 경우에는 바깥 상황에 대해 알려 주는 게 그녀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마법에 잠식되어 있던 동안의 일을 모두 기억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내일 있을 재판에 참여하신다니까 그때 보세요.”
내 말에 폐황후가 얼어붙었다.
이전, 폐황후가 황제를 진실로 사랑했다는 칼리온의 말을 듣고도 조금은 긴가민가했는데 저 반응을 보니 어느 정도는 사실인 듯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황제의 이야기에 저런 얼굴을 하다니.
‘……하긴. 그러니까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서라도 그의 사랑을 받고자 했겠지.’
그건 진실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끔찍할 정도로 음습하고 괴이한 집착에 가까웠으나 폐황후가 황제에게 이제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짙은 감정을 가졌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황제도 폐황후도 불쌍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로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니까.
“당신은 죽어서도 평안하지 못할 거예요. 그건 내가 장담해.”
“…….”
“황제도 곧 따라갈 테니 끝없는 지옥 속에서 얌전히 고통스러워해요.”
나는 그 말을 남긴 채 폐황후에게서 몸을 돌렸다.
“자, 잠깐……!”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
“에리타.”
내려올 때와 같이 기사의 곁을 지나쳐 긴 계단을 오르자 다정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는 칼리온이 보였다.
“다녀왔어요.”
나는 마주 웃으며 그의 품에 폭, 안겨 들었다. 탄탄한 팔이 흔들림 없이 나를 지탱했다.
***
여유로운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귀족 재판과 신성 재판이 결합된 재판이 내일이었기에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칼리온이 머무는 황태자궁으로 정해졌다.
그가 새로이 사용하는 황태자궁은 이전의 이 황자궁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더 크고 웅장했으며, 궁인 또한 몇 배는 많았다.
그 모습을 보자 괜스레 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간의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우리는 손을 잡고 황태자궁 뒤편에 위치한 정원을 걸었다.
겨울에 접어든 날씨가 사늘했으나 챙겨 입은 겉옷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맞잡은 손의 온기 덕분에 춥지 않다고 하기에는, 솔직히 그래 봐야 손만 따뜻할 뿐이었다.
애초에 수도의 겨울은 그리 추운 편이 아니었고.
“올해는 눈이 언제쯤 올까요?”
“기상학자들의 말로는 작년보다 조금 더 이르게 올 것 같다고 합니다.”
작년보다 조금 이르게라…….
“……음, 생각해 보니까 저는 수도에서 온전한 겨울을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사실을 고백했다. 내가 먼저 물었지만 작년의 첫눈이 언제 내렸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칼리온이 낮게 웃으며 동조했다.
“저 역시 최근 몇 년은 수도에서 겨울을 보내지 않아서 첫눈이 언제 내렸는지 모릅니다.”
“그건 저랑 똑같네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우리는 처음 아는 사실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잘되었군요.”
“뭐가요?”
“작년에 첫눈이 언제 내렸는지 모르니 조금 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흥, 그렇네요.”
누군가에게 작년에 첫눈이 언제 내렸느냐 물으면 해결될 문제였으나 우리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정확한 날짜가 궁금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겨울의 끝물에 그대와 다시 만났군요.”
“음,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쯤이었죠? 이름을 뭐라고 소개하셨더라……. 자유 기사 리안 경이라고 하셨던가요?”
나는 피실피실 웃으며 칼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리안이 칼리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당시에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놀랐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저는 정직하게 제 이름을 알려 드렸는데 말이에요.”
“그건……. 미안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제가 죄인이네요.”
내 장난스러운 타박에 칼리온이 순순히 제 잘못을 시인했다.
당연한 순서로 우리 둘의 얼굴에 웃음이 서렸다.
“이 황자궁은 재건 중이죠?”
“네. 아마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지어질 겁니다. 완공되면 황자궁이 아닌 다른 궁으로 사용될 거고요.”
“흐음. 하긴, 불이 났던 자리니까 좀 꺼림칙하겠죠.”
물론 그 불은 폐황후의 수작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거였지만 굳이 찝찝함을 남겨 둘 필요는 없지.
그 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내 죽어 가는 몰골로 칼리온을 찾아온 바론에 의해 헤어졌다.
“연락할게요!”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조심히 가요.”
“에이, 일 초면 방으로 가는걸요. 전하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구요. 잠은 최소 네 시간 이상 자기. 안 잊으셨죠?”
“꼭 지키겠습니다.”
내 당부에 칼리온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온은 내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까지도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