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198)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외전 10화(198/218)
“……안 놀라시네요?”
“놀라면 멋이 없잖아요. 속으로는 놀랐습니다.”
칼리온이 아까 한 약속을 지키려는 듯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속삭였다.
전혀 안 놀란 것 같지만.
게다가 놀라면 멋이 없긴 무슨. 그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이러는 건데…….
“……흠. 어쨌든 이제는 진짜 출발할게요.”
괜히 흥흥거린 나는 칼리온의 손을 붙잡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계산이 끝난 술식의 시동어를 외웠다.
‘이동.’
새하얗게 터져 나온 내 마력이 나와 칼리온을 감쌌다.
그 마력이 사라진 후 눈을 뜨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대공령 뒤편의 숲이 보였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내 말에 눈꺼풀을 들어 올린 칼리온이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호수가 눈앞에 보이고, 울창한 평지 숲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긴…….”
나는 반가운 풍경에 포슬포슬 웃으며 칼리온의 손을 살살 잡아끌었다.
“대공령이에요.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이 대공성이구요, 여긴 그 뒤에 있는 숲이랍니다.”
일전 테인과 한번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아까 갑자기 칼리온과도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오니 몇 달 전 트란 열매 양식장에 함께 갔던 기억도 나고.
‘……그때 칼리온 진짜 선수 같았는데.’
일직선 길을 앞두고 자신이 길치라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된다며 내 손을 잡았었지.
지금과 그때에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서도 손을 잡고 입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번에 대공령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근데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바쁘실 테고, 오늘은 하루 종일 저한테 주시기로 한 게 생각나서요.”
칼리온은 오늘 하루 온전히 나와 함께할 예정이었다.
내가 조른 건 아니고, 칼리온이 더는 못 버티겠다며 바론에게 오늘은 일정을 잡지 말라고 했다나.
평소였다면 보좌관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했겠지만, 혈중 남자 친구 농도가 부족해진 나는 나와 통신을 하던 칼리온의 뒤에서 핼쑥한 얼굴로 녹아 가던 바론의 소리 없는 외침을 애써 무시했다.
그 결과 이렇게 단둘이 데이트를 오게 되었으니 나와 칼리온에게는 만족스러운 엔딩이었다.
“…….”
내 말을 들은 칼리온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희미하게 보이는 대공성을 바라보았다.
그쪽에 무언가 특별한 게 보이나 싶어 나 역시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내 눈에는 성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전하, 왜 그러세요?”
“……아,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그렇게 말하는 칼리온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도대체 어떤 옛날 생각을 했길래 저렇게 예쁘게 웃는담.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내 물음보다 칼리온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다.
“데려와 줘서 고맙습니다. 어디 먼 데로 간다기에 수도 외곽 정도를 생각했는데, 대공령으로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그의 얼굴에는 정말로 대공령에 와 기쁘다는 듯이 진심 어린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어쩐지 나보다도 더 이곳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와 보신 적 있으세요?”
그 얼굴을 보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흔쾌히 답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칼리온은 정말로 환하게 웃으며 내 기대를 배신했다.
“비밀입니다.”
“…….”
……아니, 이게 뭐라고 비밀이야. 우리 집에 온 적 있냐고 물었는데 그걸 안 알려 준다고?
나는 실망하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안 알려 주실 거예요? 진짜로?”
그가 한 번 거절한 탓에 더 궁금해져 나도 모르게 조르는 말투가 나왔다.
그런 내 물음에 칼리온은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
“네, 진짜 비밀입니다.”
나는 그의 낮은 목소리가 읊은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빡거렸다.
진짜로? 아니, 진짜 안 알려 준다고?
“……여기 저희 집인데요?”
“음, 그거야 알고 있죠.”
내 벙찐 질문에 칼리온은 상큼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우리 집에 와 본 적 있냐고 묻는데 진짜 안 알려 줘?
“……진짜 안 알려 주실 거예요? 저도 모르는 사이 언제 오셨는지 진짜 궁금하단 말이에요…….”
“흠, 사람에게는 누구나 홀로 간직하고픈 추억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죠.”
내가 바라면 모든 것을 다 해 줄 듯 굴던 칼리온의 단호한 거절에 얼이 빠졌다.
우리 집에서 나 빼고 홀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뭐가 있는데!
그리고 추억이 있다는 건 대공령에 와 봤다는 뜻이잖아.
“……완전 치사해요.”
나는 투덜거리며 칼리온의 손을 놓고는 혼자 척척 걸어갔다.
“전에는 숨기는 거 절대 없게 하겠다고 해 놓구…….”
어른스럽게 굴고 싶었으나 연애에 한해서 나는 심통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퉁하게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그를 증명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아공간에 들어 있던 바구니에 담아 온 우리의 점심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돗자리를 팡팡 털어 잔디 위에 깔았다.
물론 칼리온이 내게 모든 걸 말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그럴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서운하단 말이야.’
도대체 대공령에 무슨 추억이 있길래 그렇게 예쁘게 웃었냐고.
……설마 아버지나 에일런이랑 뭐 좋은 일이 있었나? 근데 그렇다기에는 두 사람 성격이 그럴 성격이 아닌데.
“화났습니까?”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칼리온이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이런 걸로 화내지 않아요.”
“그렇다기에는 입술이 댓 발 나왔는데…….”
“……착각이에요.”
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나는 절대 고작 칼리온이 추억인지 뭔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고 화를 낼 만큼 속이 좁지 않았다.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좀 서운한 거라고.
그런 나를 달래듯이 나를 더 단단히 끌어안은 칼리온이 조곤조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아주 오래된 추억이라 그렇습니다. 혼자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 특히 그대에게는 털어놓기가 부끄러웠고요.”
칼리온의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그가 떠올린 추억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 같지 않은가.
내가 수도로 가기 전 대공령에서 칼리온과 만난 적이 있던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법 쪽으로 재능을 타고난 덕인지 기억력 하나는 꽤 괜찮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대공령과 칼리온을 연관 지을 수 있는 기억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
나는 나를 가둔 칼리온의 품에서 벗어나 그와 마주 보고 섰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추억에 제가 있어요?”
그 후, 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을 만큼이나 애정이 흘러넘치는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임을.
“있습니다. 전부 그대뿐인 추억이에요.”
역시나 긍정이었다.
***
칼리온은 내 손을 이끌어 조금 전 내가 팡팡 털어 깔아 둔 돗자리로 향했다.
나는 군말 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걸어가 칼리온의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온화한 대공령은 초가을쯤의 날씨였다.
그럼에도 칼리온은 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재킷을 벗어 내 무릎 위를 덮어 주었다.
칼리온이 그리도 예쁘게 웃었던 기억 속에 내가 있는데, 정작 나는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기분이 미묘했다.
그때, 칼리온이 입을 열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겠다고 하신 스승님은 가장 먼저 제게 검술을 가르치셨습니다.”
흘러나온 말은 그의 말대로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부터 전쟁터로 가기 전까지, 저는 주에 한 번씩 스승님께 검술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로 여기서요.”
“……대공령에서요?”
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여기서 검술 훈련을 받았다니. 몇 년을 대공령에서 지냈던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일전에 말했듯이 스승님과 소대공은 그대에게 저와 관련된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게 될 테지만, 그때까지는 그대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자라길 바라셨죠.”
이전, 가면무도회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수도가 아닌 이곳에서 검술 훈련을 받은 이유는 보안 때문입니다. 스승님의 손 아래 있는 대공령에는 황제와 폐황후 두 사람의 시선이 미치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매주 여기로 오셨던 거예요?”
“간혹 감시가 심할 때는 오지 못했지만 거의 매주 왔습니다.”
열두 살의 그가 열다섯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기 전까지, 삼 년이나 그가 이곳을 찾아오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했다.
……아니, 정말로 보지 못했나?
“제가 그대를 처음 본 건 스승님에게서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었을 무렵입니다.”
칼리온이 홀로 간직해 왔던 추억이 내 앞에 그려졌다.
***
열셋의 칼리온은 덤덤한 얼굴로 제 스승이 그에게 준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크로바하츠 대공의 보좌관이자 제국의 몇 안 되는 최상급 마법사인 페른 아일리시가 만든 아티팩트는 금세 칼리온과 똑같이 생긴 더미를 만들어 냈다.
이는 황제와 황후가 칼리온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 황자궁의 궁인을 최소한으로 줄였기에 가능한 위장이었다.
누군가 이 방에서 일정 거리 이내로 진입하면 곧바로 그를 이곳으로 이동시키는 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허술한 위장만으로도 충분했다.
준비를 마친 칼리온은 주위를 한 번 살핀 후 손에 쥔 구슬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화아악-
아주 작은 빛이 칼리온의 몸을 희미하게 감쌌고, 이윽고 방 안에는 칼리온의 모습을 한 허상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