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2화(2/218)
내가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후였다.
눈에 띄지 않게 뒤로 돌아 들어온 나는 차오른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도 원장과 릴리의 외출용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다행이다.”
나는 그제야 조심히 문을 닫고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애들은 놀고 있을 시간이니까 아무도 못 봤을 거야.’
바구니를 열어 가져온 야채를 한곳에 모아 두고 고기는 꺼내어 찬물에 넣어 두었다.
냉장고가 없는 이 시대에는 마법석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고아원에 그런 사치품이 있을 리 없었다.
“처음에 고기가 상했을 때 엄청나게 혼났었지…….”
비싼 고기를 못 쓰게 만들었다며 저녁도 먹지 못하고 바깥으로 쫓겨나 밤을 지새웠다.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분이 차오르고 눈물이 나왔지만 부모 없는 고아의 신세라 불평조차 하지 못했다.
성인만 되면 바로 여기서 나가야지.
“……에휴, 스튜나 끓여야겠다.”
고기가 있긴 하지만 아주 적은 양이라 스튜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행히 짬밥이 있는지라 요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의 특성상 평범한 조리 시설을 가진 고아원에서 어려운 요리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먼저 모아 둔 야채를 손질했다.
양파까지 전부 썰어 둔 다음, 고기도 작게 조각냈다.
‘원장이 최대한 작게 조각내라고 했으니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 먹으려면 주먹만 한 고기를 적어도 스무 조각 이상으로 잘라 내야 했다.
재료를 넣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를 보자 절로 군침이 돌았다.
“고기는 이 주 만인가?”
조금 남아 있던 토마토를 넣어 붉은색이 우러난 스튜는 냄새마저 끝내줬다.
‘제발 아무도 내가 늦은 건 못 봤어야 할 텐데.’
이런 것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억울했지만 원장에게 들켜 뾰족한 눈초리와 함께 째지는 목소리를 듣는 건 사양이었다.
그때, 부엌 바깥이 시끌시끌해졌다.
“원장님, 오셨어요!”
“와아! 새 옷이다!”
후다닥 문 앞으로 나가자 방금 들어왔는지 외출복 차림인 원장과 릴리가 보였다.
“너 저녁 준비는 다 했니?”
“……네, 거의 다 했어요.”
다행히도 늦은 것에 대한 추궁은 아니었다.
조금 전 준비한 식사를 끝내고.
“내일 오는 사람은 어떤 분일까?”
“원장님이 엄청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셨잖아. 기대된다!”
아이들이 저마다 손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노닥거렸다.
내일 귀한 사람이 온다며 바닥에 광이 날 정도로 닦으라는 원장의 말 때문이었다.
‘내일도 종일 다락방에 들어가 있어야겠네.’
내일 누군가 고아원에 온다는 건 다른 아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빨리 열 살쯤 먹었으면 좋겠다.’
그때였다.
“너는 안 기쁜가 보네?”
한숨을 내쉬며 걸레질을 하는 내 옆으로 릴리가 다가왔다.
또 내 복장을 뒤집으려고 온 게 틀림없었다.
“내가 기쁠 이유가 없잖아.”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대답했다.
릴리는 그런 내 대답에 코웃음을 치며 자기 할 말을 하기 바빴다.
“내일 귀족 나리께서 오신댔어. 원장님은 분명 날 데리러 오시는 거라고 하더라.”
“……그런데?”
“검은 머리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너는 평생 여기서 살겠네?”
아니나 다를까 잔인하기 짝이 없는 그 말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철없고 조금 못된 아이라는 건 알지만 굳이 찾아와서 저런 말을 하는 저의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악의 어린 말에 굳어 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불쌍해서 어떡해. 그러니까 청소라도 똑바로 해. 혹시 아니? 내가 귀족 아가씨가 되면 돈 한 푼이라도 줄지.”
아무런 말도 없이 걸어가는 내 귓가에 깔깔대는 릴리의 웃음이 박혀 들었다.
가장 비참한 건 나보고 평생 여기서 살겠다며 비아냥거리는 릴리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성인이 되면 나가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게 정말 가능할지는 나 역시 확신하지 못했으니까.
***
“……흐으.”
얇은 거적때기 담요 안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는 것을 들키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나는 울음소리를 꾹꾹 눌러 죽였다.
이십 년을 고아로 살았지만 불현듯 찾아드는 외로움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나도 엄마 아빠가 생길 거래!’
‘정말?’
‘응! 아까 나한테 곧 데리러 오겠다면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예쁜 필통도 주셨어!’
‘우와! 좋겠다!’
그 외로움은 함께 고통을 견디던 친구들이 하나, 둘 새로운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고아원을 나설 때마다 깊이를 더해 갔다.
어릴 때는 그게 못내 서러워서 왜 나는 엄마 아빠가 생기지 않냐고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게도 부모님이 생길 거라는 원장의 말에 나는 잔뜩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잠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 설렘은 나를 만나러 온 부부의 말에 산산이 조각났다.
‘어머. 아이가 사진으로 봤던 거랑은 좀 다르네요……?’
‘어쩐지 애가 좀 어두워 보여서요. 저희랑은 안 맞을 것 같습니다.’
원장은 그게 내가 못나서라고 했다. 나 같은 아이를 사랑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어렸던 나는 그렇게 희망을 잃어 갔다.
“……그냥 죽었으면 좋았을걸.”
그런데 다시 태어난 인생도 고아라니.
너는 평생 가족을 가질 수 없다는 저주 같았다.
“으…….”
만약 신이 있다면,
나를 이리로 보낸 신이 정말로 있다면……
더는 홀로 외롭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
“얘들아! 얼른 씻고 준비하렴!”
“네!”
“릴리! 얼른 이리 오렴. 어제 새로 산 원피스에 이 구두 신고, 머리 끈은…… 이게 좋겠구나!”
답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고아원의 하루는 평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원장은 부산스레 움직이며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살폈다.
‘아마 어제 온다고 한 귀족 때문이겠지.’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가진 옷 중에서 제일 예쁜 것을 꺼내 입었다.
아마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이겠지.
수도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는 입양을 원하는 귀족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으니까.
“얼마 안 남았어! 준비 다 한 애들부터 원장님 앞으로 와 보렴!”
“저요!”
“저도 다 했어요!”
어제 그렇게 으스대던 릴리 역시 상큼한 노란색의 원피스와 연두색 구두를 예쁘게 차려입고 있었다.
나는 내 옷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거칠거칠한 싸구려 옷감에, 잔뜩 해지고 더러워진 낡은 원피스.
화사한 릴리의 원피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저, 원장님, 저는 이걸 입고 나가나요?’
‘뭐? 허, 참.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너처럼 새까만 머리를 가진 애를 누가 데려가겠니? 괜히 얼쩡거리다가 눈에 띄지 말고 손님들 오시면 얌전히 다락에 숨어 있어.’
1년 동안 입양을 위해 고아원을 방문한 사람은 몇 있었으나, 그때마다 나는 다락 위에 갇히다시피 숨어 있어야 했다.
그건 오늘도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다락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억울해.”
검은 머리가 저주를 받았다는 것도, 그리고 하필 내가 검은 머리를 가진 것도.
전부 억울한 것투성이였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는 늘 피어올랐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올 때면 꼭 창문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혹시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까 봐서.
혹시나 그 사람이 나를 보고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까 봐.
……혹시나 그 사람이 내 가족이 되어 줄까, 하는 기대 때문에.
“어, 마차네.”
실망을 거듭한 사람에게도 실낱같은 기대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내 시선이 창문 너머, 저 멀리서 고아원을 향해 오는 마차로 향했다.
“얘들아! 저기 마차가 오는구나! 얼른 밖으로 나가자!”
“나 어제 너무 설레서 잠 못 잤어…….”
“나두. 이번에는 진짜 나였으면 좋겠다.”
잔뜩 분주해진 원장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아이들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가 창문 아래에서 들려왔다.
고아원 정문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다락방 창문이 유일하게 고마울 때였다.
“와아, 마차다!”
“우와! 저번에 테오가 타고 간 마차보다 훨씬 커!”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마차는 어김없이 내 시선도 훔쳐 갔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지금껏 이곳에 살면서 본 마차 중에 가장 크고 화려했다.
“저게 소설에서 보던 사두마차구나…….”
평소보다 배로 유난을 떨어 대던 원장님의 반응 역시 이해가 됐다.
저런 마차를 탈 정도의 귀족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꽤 높은 직급이겠지.
그런 귀족가에서 리센 고아원의 아이를 입양해 간다면 원장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리라.
“워, 워.”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다가오던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가 말들을 달래는 사이, 마차의 문이 열렸다.
“어떤 귀족일까?”
“나는 멋진 왕자님 같은 분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어떤 사람일까.
나 역시 저런 마차를 타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저 정도면 아일라는 사랑스러워에 나온 사람일 수도 있겠다.’
처음으로 원작에 근접한 사람을 볼 수 있겠다는 사실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나는 열린 마차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
열린 마차 문에서 파란 머리의 남자가 나왔다.
그는 걸음을 옮기려다 잠시 마차 안으로 몸을 넣고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안에 남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마친 남자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원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방문했던 페른입니다. 대, 아니, 백작님은 안에 계시고요.”
“호호,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렇지, 얘들아?”
“네!”
그 모습에 하하, 웃은 페른이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이 무언가를 탐색하듯 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참 씩씩하네요.”
“그럼요. 저희 애들 전부 아주 씩씩하고 총명하답니다.”
“흐음. 여기 있는 아이들이 고아원에 있는 전부인가요?”
페른은 약간의 동정심으로 부디 원장이 옳은 대답을 하길 바랐다.
“네. 이 아이들이 전부랍니다.”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원장에 그는 조용히 마차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제 주군은 이 대답을 들으셨을 것이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마차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장신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작님.”
고개를 숙인 페른의 반응에 원장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백작이라니!’
사륜마차를 끌고 올 때부터 부자 냄새가 폴폴 나는 것이 감이 아주 좋더니만, 백작이라니!
이대로면 리센 고아원이 유명해지는 것도 시간문제리라!
“다시 한번 묻겠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이게 전부인가?”
미래의 영광에 취한 원장은 또다시 던져진 질문에 별생각 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다락방에 있을 검은 머리 하나가 생각났지만 금세 지워졌다.
“그럼요! 제가 어찌 백작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말 이 아이들이 전부예요.”
“그렇군.”
그 대답에 남자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말려 올라간 것을 보지 못한 원장이 가식적으로 웃으며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럼 저 다락방에 있는 아이는 뭐지?”
정확하게 다락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묻는 남자에, 원장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 그건……!”
‘쟤는 왜 눈에 띄어서!’
의도치 않게 들켜 버렸지만 저주받은 아이임을 알리면 백작도 관심을 끄리라.
원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 아이는 검은 머리를 가진 아이입니다. 저주를 받은 아이라 차마 백작님께 보이지 못했음을 헤아려 주세요.”
“헤아려 달라?”
“혹시나 백작님께 누가 될까 하는 노파심에 그런 것이어요. 원하신다면 얼른 데리고 오겠습니다.”
원장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애써 침착한 척 말하는 원장의 말에 남자가 픽 웃었다.
저주받은 검은 머리라…….
너무나 익숙한 말이 아닌가.
“저 아이, 이름이 뭐지?”
“리, 리타입니다.”
그래. 에리타, 네가 맞는구나.
죄인처럼 숨어 저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딸의 멍한 표정에, 아슬란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른하게 속삭였다.
“아버지가 왔단다, 에리타.”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