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Villain’s Lost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0)
악당의 잃어버린 딸이 되었다 20화(20/218)
어느덧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공표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공표라고 해 봤자 황가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게 다라고 하시긴 했는데…….’
수도에서는 그 일로 한참 소란스러웠다지만, 대공령을 떠날 일이 없었던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지난 1년간 대공령은 평화롭기 짝이 없었으니까.
어디가 소란스럽든지 말든지 내 일상은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흘러가던 중이었다.
“흐음. 오늘은 무슨 책을 읽지.”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오늘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다.
“페른 경이랑 수업하는 게 내일이니까…….”
내가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1년. 그사이 제법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저택 식구들과 완전히 친해진 것도 그중 하나였다.
온화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테르반. 인상과 다르게 살가운 성격의 에반. 내 하녀인 메리와 마릴린.
그 외에도 정원사 아저씨라든가, 기사단장님이라든가.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전부 말을 트고 지냈다.
‘나름 이 저택의 인기인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 사용인들과 어색했던 걸 생각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제일 좋은 변화는 가족들과도 더 가까워졌다는 거.
어색했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편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희희낙락 놀기만 한 건 아니고.’
1년이라는 기간은 심란하던 내 마음을 정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흐음. 이번에는 빛 마법이 좋겠다.”
나는 책장에서 오래된 마법책 한 권을 골라냈다.
낡은 책이지만 보존이 잘되어 있어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태초의 빛.
“이번 이름도 아주 대단하구만.”
옛날 마법사들은 전부 허세가 대단했던 게 틀림없다.
마법서치고 이름이 거창하지 않은 건 하나도 못 봤으니까.
죄다 작열하는 불, 바다의 권능, 산을 가르는 바람, 이런 식이랄까.
귀족의 기본 소양부터 역사, 정치 등등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의외로 마법에도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 걱정하는 모양새였지만 나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미래에 쓸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늘어나기도 했고,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마법이 아닌가.
이름만 들어도 배우고 싶은 의욕이 퐁퐁 샘솟게 했다.
물론 스킬 북이나 이런 건 없다.
열심히 룬어를 공부해서 수식을 외워야 하기에 어렵긴 했으나 마법은 생각보다 더 내 적성에 맞았다.
“몰랐는데 공부도 나름 재미있었지.”
겉으로는 아이지만 속에 든 건 어른인지라 몰랐던 걸 알아 가는 과정이 제법 즐거웠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한국이었으면 돌 맞을 소리지만 사실이라구.’
거기에는 선생님이 좋은 덕도 있었다.
기초 예법과 공부, 그리고 마법은 전부 페른에게서 배우고 있었는데, 평소 장난스러운 모습과 달리 의외로 그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스파르타식이긴 해도 요점만 쏙쏙 가르쳐 주니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학원 선생님으로 이름 좀 날렸겠는데?”
잠시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페른의 모습을 상상해 본 나는 작게 키득거렸다.
상상 속 모습은 나름 잘 어울렸다.
“아가씨, 여기 계세요?”
그때, 나를 찾는 메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책장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서관에서는 누군가를 찾으려면 저렇게 소리를 내는 편이 훨씬 빨랐다.
공공 도서관이면 민폐겠지만, 여기는 우리 집 도서관이니까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메리? 나 여기 있어!”
나 역시 여기 있다고 외치자 잠시 후 책장 사이로 메리가 나타났다.
1년 전 나를 붙잡고 펑펑 울던 메리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가씨! 여기 계셨네요.”
“응. 책을 좀 고르려구. 근데 무슨 일이야?”
“아차. 주인님께서 찾으세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버지가?”
“네. 집무실로 와 주셨으면 하신대요. 급한 용무이신 것 같았어요.”
나를 부르러 온 메리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는 듯했다.
같이 아침 먹은 게 한 시간 전인데 무슨 일이람…….
이 의문은 아버지한테 가 보면 풀리겠지.
“메리, 그럼 이거 내 방에 좀 가져다줄래? 부탁할게!”
“네! 곱게 가져다 둘게요.”
나는 골라 두었던 책을 메리에게 맡긴 후 도서관을 나섰다.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하는 길은 이제 익숙했다.
지난 1년간 거의 매일 드나들었으니 어색한 게 더 이상하려나.
사용인이 열어 준 문으로 들어서니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이전에는 민망했던 시선 역시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넘길 수 있게 되었다.
“왔어?”
오라버니의 다정한 환영에 배시시 웃은 나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소파에 앉았다.
“갑자기 불러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어쩐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표정이 안 좋으시지?
덜컥 걱정이 들었다.
“급히 전해야 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서두를 던진 오라버니에 나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평소보다 어두워진 얼굴을 보니 역시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
……많이 나쁜 일인가?
스멀스멀 걱정이 크기를 불렸다.
지난 1년 동안은 평온하기만 했는데.
그런 우리를 잠시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잠시 황궁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황궁을요?”
갑작스러운 말에 절로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황궁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다.
아버지가 고위 귀족이니 아주 못 갈 건 없지만…….
이제는 제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제법 아는 나는 황실과 대공가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현 황제의 일방적인 경계 때문이지.
권력 다툼만큼 복잡한 건 없다더니.
뭐, 황제가 어쨌든 아버지 역시 딱히 권력에는 관심이 없어서 수도에 안 가고 대공령에 있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황궁에 간다니. 뭐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데 들려온 말은 내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황비께서 돌아가셨다는구나. 황궁에서 장례식이 열린다고 하니 가 보아야겠지.”
“……황비께서 말입니까?”
오라버니의 물음에 아버지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답이었다.
……누가 죽어?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았지만 방금 들은 사실에 잔뜩 놀란 내게는 닿지 못했다.
지금 내가 들은 게 사실인가? 도대체 왜?
차라리 내 귀가 이상해졌다는 게 더 신빙성 있겠다.
“…… 리타. 에리타?”
“네?”
잠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던 나는 아버지가 두어 번 더 부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같이 가고 싶지 않으면 저택에 남아 있어도 괜찮다.”
“아…….”
“필수는 아니니 꼭 가지 않아도 돼.”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나 보다.
아버지는 넋을 놓고 있던 내 모습에 부드럽게 다독이듯 말했다. 원치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황비의 장례식…….’
사실 아직도 내가 들은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지금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새하얘지는 머리에, 나는 입 안 살을 잘근잘근 씹어 정신을 차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도 아버지랑 오라버니랑 같이 갈래요.”
“괜찮겠니?”
놀라긴 했지만, 그 이유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누군가의 죽음이 충격적인 게 아니라 지금 죽은 이의 죽음이 충격적인 거니까.
내가 간다고 해서 뭔가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내 불안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가기로 결정을 내린 후로는 금방이었다.
말이 나오고 한 시간 뒤, 우리는 마차에 앉아 있었다.
수도 근처까지는 마법으로 이동하고, 거기서부터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수도와 대공령이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을 달려서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으니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
수도로 향하는 마차 내부는 고요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고, 나 역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차라리 조용한 게 더 나았다.
나는 내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도대체 뭐가 바뀐 거야.’
황도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미래라 확신할 수 있는 원작이 틀어졌다.
그 사실은 생각보다 더 큰 불안을 가져왔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황비가 죽는 건 원작에서 없던 내용이야. 분명해.’
제국의 황비인 그녀는 남자 주인공의 모친이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꽤 비중 있는 조연.
‘황비는 원작에서 끝까지 살아 있었어.’
원작에서 황비는 남주와 여주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남주가 황제가 될 수 있게 든든히 뒤를 받쳐 주었던 인물.
‘그런데 왜지? 도대체 왜 벌써 죽은 거야.’
그런 그녀가 없다면 앞으로의 미래 역시 바뀔 게 당연했다.
당장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칼리온이 자기 세력을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내가 절대로 원치 않는 상황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원작과 달라진 사실은 딱 하나였다.
‘……내 존재.’
원작에서는 내 존재 자체가 없던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아원에 있던 에리타를 아슬란이 찾지 못했던 거겠지.
원래 에리타가 어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 열병으로 죽었겠거니 짐작하는 것뿐.
원작에서 아슬란에게 잃어버린 딸이 있다는 사실은 딱 한 줄의 서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와 달라진 건 정말로 내 존재뿐이다. 아버지가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 단 하나.
‘그런데 정말 그것 때문일까?’
하지만 황비와 나 사이의 접점이 무엇이기에.
나비 효과라고 해도 어떻게 이 정도의 일이 일어난 거지?
무엇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원작이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알던 미래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못내 불안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미래를 바꾸겠다고 다짐을 한 이상, 나는 마냥 편하게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작은 변수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들려온 소식은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배 속에 돌덩이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야.’
복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황비의 죽음이 순리일 리가 없다. 여기서 순리는 원작이니까.
기분 나쁜 불안감이 발목께에서 찰랑댔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은연중에 느낀 거겠지.
이 일이 분명히 나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거라는 것과……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음의 시작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몰랐던 내 불안의 근원.
그건 뒤틀린 원작으로 인해서 변하게 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